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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고전 이야기

명길묻 20,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 WALDEN 숲속의 생활] 1부

by 코리안랍비 2022.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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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인문학포럼 발표문)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 WALDEN 숲속의 생활] 1부

  • 월든 오두막집-에 대한 - 삽화 - 지금도 있다
    구글출처 이미지 - 월든 오두막집


나는 소로의 [월든]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나름의 평설을 하고자 한다. 함부로 이 분의 삶을 재단하고 싶지 않은 생각도 있고, 머리로만 [월든]을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려 놓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과소유보다는 적은 소유를 통해, 조금이라도 삶을 단순화하려는 마음을 가질려고 한다.


나의 [월든]에 대한 기억은 22살로 내려간다. 나는 22살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방황하던 사람이었다. 나의 남동생도 일찍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때로는 사는 것이 너무 슬프고 우울해서, "나도 일찍 촛불처럼 살다가 산화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은 "내가 내 삶을 개척하고, 사이먼 앤 가펑클이 노래한 것처럼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는 것"이었다. 일종의 독립선언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고독한 투쟁]을 해야 했다. 교회와 학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현실주의자라기보다는 초월주의자처럼 변모해갔다.

책속의 이상을 보면 책속의 인물처럼 되고 싶었다. 그러나 책밖의 현실을 보면 그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이 되고도 싶었다. 이상과 현실, 이 두 기둥을 다 양손으로 붙잡으면서 가는 것이 고독한 남자의 삶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4학년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본다.
대학교 4학년 시절, 내가 다니는 교회에는 도서관이 있었다. 섬기시는 담임 목사님이 책을 좋아하셨고(그 목사님은 그 당시에도 3만권의 책을 소장하고 계셨다. 나는 그분의 영적 제자였다), 대학생들이 다니는 대학교회여서 [작은 도서관]이 구비되었던 것 같다. 나는 자주 그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읽기를 했다. 나의 독서멘토는 담임목사님이시다.


오늘처럼 더운 대학 4학년 여름날, 한 여학생 후배가 잠시 도서관에 들어 왔다. 나보다 3살이 어린 간호학과 일학년생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를 많이도 좋아했던 여학생으로 기억된다.


같이 독서토론도 여러번 했는데, 문학도를 꿈꾸던 문학소녀가 대학에서는 간호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현실적인 판단에서였다. 예나 지금이나 직업이 중요하던 시절이기에 간호학과를 다니면서 독서를 취미로 하는 여학생이었다. 그런데 [한권의 책이 인생을 바꾼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 후배로 기억된다.

"선배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 누구이며 뭔지 알아요?"
"글쎄?"
"전 헨리 데이빗 소로를 제일 좋아하고, 그분의 작품인 [월든]을 가장 좋아합니다."
"(짐짓 놀라며), 네가 소로와 그분의 작품 월든을 알아?
"그거 제목이나 저자만 알아도 대단한건데 "


대학 2학년 시절 잠시 읽어보았지만, 다 읽지 못하고 지루하여 덮었었다.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나중에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읽으면서 [월든]이라는 작품이 정말 대단한 고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배는 자신은 여고시절 2학년때 그분의 작품을 읽고, 평생을 자연주의자처럼 살고자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나는 그 풋풋했던 후배에게 "도시삶을 맛을 들이면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을 해주며, "[월든숲]은 지금처럼 도시화가 안된 1800년대 후반의 모습이니까 그런 유유자적한 도가적 삶은 지금과 어울리지 않아"라고 충고를 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지금 그 [월든 프로젝트]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정확한지 모르지만 20여년간 간호사 생활을 하고, 속리산 자락이 있는 충북 보은에 들어가서, 보험일도 하면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며, 글을 쓰는 신출내기 작가가 되었다고 들었다. 남편은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귀농하여 농사를 짓는 파머다. 그 사이에 수많은 문학책을 읽고, 그 문학책들을 카페에 전시도 하고, 사람들에게 맛있는 자연산 쥬스도 제공한다고 한다. 그 후배가 지금은 그립다. 보은에 [대추축제]가 있는데, 그때 그 후배의 북카페에 가보고 싶다. 카페이름이 [월든]인지 아닌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도 작은 책방을 만들면 [월든]이라 짓고 싶다.

  • 월든 초창기 - 삽화 그림 - 표지
    구글출처 이미지 - 월든 오두막집


서두가 길어졌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소로가 누군지, 아니면 [월든]은 어떤 작품인지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물론 읽어본 분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월든]은 호돈의 '주홍글씨', 허먼 멜빌의 '모비딕', 우리자 메이의 '작은 아씨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헤밍웨이의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처럼 미국을 만든 책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나는 루소의 말인,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자연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도시삶에 익숙해지면 문제많은 도시중독자가 되어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이다. 이 순리를 거슬러서 사는 것은 인간의 자연성을 거부하는 생활방식이다. 그래서 도시인들은 늘 자연에 대한 동경 혹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있다. 매주 도시인들은 시골로, 산으로, 강으로 돌아다니는 잠시의 유목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MBN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는 필자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다. TV를 볼 시간이 없어서, 나는 나의 서재에 TV를 설치하여, 중간 중간 시청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6년간 인기 프로이다. 매주 수요일만 되면 본방 사수를 위해서 일찍 퇴근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출연자인 '자연인'은 개그맨 이승윤이나 윤택 두 사람이 나오며, 자연인과 며칠간 생활을 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로의 오두막집과 비슷한 곳에서 잠도 잔다. 체험 삶의 현장이다.


이 프로가 인기인 것은 지나친 경쟁이나 과도한 비교의식으로 지친 현대인들이 휴식과 힐링을 갈망한다는 방증이 된다.
나의 주변에도 의외로 [자연인]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귀농이나 귀촌, 혹은 전원생활에 대한 수요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 힘들거든 월든을 만나라. - 일찍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천재 - 월든 호수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가다.
    네이버 출처 이미지



그런데 200년전 바로 미국에서 위대한 '자연인'이 탄생했으니, 바로 헨리 데이빗 소로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 1817~1862 ) 는 미국의 수필가이자 시인이며 실천적 철학자이다.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초월주의자인 랄프 왈도 에머슨과 친교를 맺고 1845 년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교회에 있는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홀로 지내며 매일 관찰한 것과 사색한 것을 방대한 양의 일기로 남긴다.


<월든 또는 숲속의 생활> 은 자신이 지낸 2년 2개월간의 호숫가 생활의 삶을 기록한 것이다. 그가 살던 시대는 흑인 노예들이,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비참한 삶을 살고 있고 북부에서는 자유민들이 끊임 없는 물욕때문에 임금노동의 노역을 달게 받아들이던 때였다.


[월든]을 읽으면, 그는 숲속에서 세상과 단절하고 담을 쌓은 초월주의자의 이미지가 강하다. 책을 읽어보면 자연에 대한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풍자나 비판이 많이 녹아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내기가 그리 녹녹치 않다. 솔직히, 한번 읽기도 쉽지 않다.


[무소유] 로 알려진, 법정 스님도 잠자리 머리맡에 항시 두고 읽었다고 한다. 천천히 느린 독서를 통해서 소로의 정신세계와 코드를 맞추려고 노력하셨다고 한다. 법정 스님도 소로처럼 험한 산중에 2-3평짜리 집을 짓고서 살기도 하였다.

  • 월든 호수 - 법정 스님의 방문 - 나도 가보고 싶은 호수
    구글출처 이미지 - 월든 호수



생전에 월든을 좋아하셨던 법정 스님은,

"훌륭한 고전은 눈으로 읽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두런두런 소리를 내어 읽을 때 그 메아리가 영혼까지 울리는 법이다" 라고 했다.

그래서 필자도 소리를 내어 읽기를 시작했다. 소리를 내어 읽으면 속도는 현저히 느려진다. 생각의 속도도 느려진다. 그리고 서서히 달구지를 매고 걸어가는 소와 같은 속도까지 내려간다. 걷기의 철학이 생긴다.

이 글을 쓰기전에, 출출하여 절친한 식당에 들렸다.
그리고 소로의 [월든]을 소리내어 묵상(묵상은 조용히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어 주절주절 읽는 법)을 하였다.
그러자 식당 아주머니는, "무슨 좋은 책이길래 소리를 내어서 읽으십니까?"
나는 "세상에서 제일 한가한 책이어서 한가로이 소리내어 읽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정말 소리를 내어서 읽어보니, 눈으로 읽는 것과는 다른 맛이 있다. 우와, 낭독의 재발견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책은 여행이다" 라고 하였다. 어찌보면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과 같은 것이다. 멀리 길을 떠나는 나그네는 짐이 가벼워야 한다. 다른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오로지 목적지를 향하여 느린 걸음이지만 마음을 다해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로의 [월든]의 한 부분에서는, "진정한 삶을 시작하는 것은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일과 같다"라고 한다.

소로는 [월든]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으로 들어간 이유를, "인생의 곁가지를 버리고 삶의 정수를 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는 것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 사람은 더 부유하다"라고 한다. "남들과 똑같은 것을 추구하지 말고 주체적인 삶을 살라"라고 조언한다.

놀라운 것은, 이 [월든]이란 책은 불과 그의 나이 30에 썼다는 것이다. 그는 천재 문필가임에 틀림없다.

이 [월든]은 초판 2000부가 팔리기 까지 5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월든]을 출판할 곳을 10년동안 찾지 못하다가 1854년에 가서야 2000부를 간행했는데, 5년동안 고작 1300권만 팔렸다고 한다. 그후 절판도 되었다. 그러나 작가가 세상을 떠난뒤에, 그 가치가 재평가되면서 고전의 반열에 오른다.

위대한 미국인 '에머슨'의 그늘에 가려 빛을 못보았지만 그는 20세기에 들어서 가장 혁신적인 사상가요 생태론자요, 예언적인 지성으로 부활한다.

그래서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시로 유명한 로버트 프로스트 시인은 "이 한권의 책으로 소로는 우리가 미국에서 가졌던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라고 극찬했다.


필자의 생각에, 세계최고의 명문 하버드를 나온 재원이, 월든숲으로 가서 오두막집을 짓고, 현실을 초월하여 산다는 것이 정말 기이한 삶이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하버드 하면 역대 수많은 지도자들과 위대한 인물들을 배출한 학교이다. 4선 대통령인 루즈벨트도 하버드 출신이다. 최근 리더중의 리더인 오바마 전대통령도 하버드 출신이다. 부시도 하버드 출신이다. 유명한 케네디도 하버드 출신이다. 최근에 읽었던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센델도 하버드대 출신 교수이다. 반기문 전유엔사무총장도 하버드에서 수학했다.

국립생태원장이며, 이화여대 석좌교수인 최재천 박사도 하버드 출신이다. 웃자는 말로 나는 하버드를 나오지는 않았다. 이스라엘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잠시 유유자적했다.

그런 명문대 출신이 숲으로 들어가서, 오두막집을 짓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으니 기이하기도 할 것이다. 그 당시 1800년대에는 숲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닐 것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소로는 그 당시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뉴스거리가 된 사람임에 틀림없다.

1845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날, 신이나 돈, 혹은 국가가 아니라 완전한 내면의 소리를 듣고 따르기 위해 숲으로 간다. 28살의 초월주의자 젊은이의 독립선언!

그리고 '가장 단순한 삶'에 대한 위대한 실험이 시작된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하다. 그리고 가능한 한 체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깊이 있는 삶을 통해 삶의 정수를 모두 빨아들이고, 굵직한 낫질로 삶이 아닌 모든 것들을 짧게 베어버리고 삶을 극한으로 몰아세워, 최소한의 조건만 갖춘 강인한 스파르타식 삶을 살고 싶었다"

소로가 생각한 이상적인 삶은 물질이 아닌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삶이었고 그런 그의 눈에 물질만능에 찌든 사람들의 모습은 인생의 본질을 외면한 "삶이 아닌 삶"으로 여겨졌다. 소로에게는 삶의 목적은 삶, 그 자체였다.

소로는 자연과 교감하며 자신이 먹을 것을 직접 자신이 생산하고, 자연의 섭리나 계절의 순환에 자신을 맞춰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궁극의 행복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을 손수 실천해 보여주고 싶었었다.

그는 짧다면 짧은 2년 2개월의 오두막 살이를 그만두고 다시 메사추세츠로 들어간다. 그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의 완벽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소로가 원하는 절대적 자유이며 어떤 일체의 욕심도 비워놓고, 자연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몰아일체적 삶이었다. 소로는 집으로 돌아온다. 자기가 머무는 집이 마치 자연이 되길 바라면서이다.

"밥벌이를 그대의 직접으로 삼지 말고 도락으로 삼으라.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려 들지 말라. 진취성과 신념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에 머무르면서 농노처럼 인생을 보내는 것이다."

  • 월든 - 소로- 세계에서 제일 멋진 책 - 생태인문학의 창시자
    네이버 출처 이미지



글이 길어졌다. 과감히 소로의 낫으로 길어진 글의 풀밭을 베어버리자.

'인생의 본질적인 것만을 직시하려고 했던 무소유의 삶'을 살아간 소로, 45세라는 나이에 단명하지만 그가 보여준 삶의 자세는 사후 15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게도 훌륭한 표본이 될 것이다. 그저 쓸데없는 일로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하거나 쓸데없는 일들로 다람쥐 체바퀴처럼 도는 인생에게 소로의 [월든]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바른 길을 가르쳐 줄 것이다.

결핵이 심각해져서 45세로 숨을 거드면서 소로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제야 멋진 항해가 시작되는군"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하버드를 나와 엘리트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저항한 소로의 위대한 평범함을 나는 본다. 나는 그에게 "인생은 짧다. 그러나 예술은 길다"는 격언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부르도 싶다. 사람은 그 가진 소유에 의해서 평가받기 보다, 그가 가진 위대한 생각과 실천에 의해서 평가받는다.

요즘 우리는 거대하지만 혼탁한 세상의 탁류에 휩쓸려 가고 있다. 죽은 고기처럼 배를 하늘로 향하고 그냥 쓸려 내려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른다.

작금의 한국사회를 보라. 사회 경제적 양극화와 불균형으로 사회적 갈등을 더욱 증폭되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고 선도하는 지도자는 있으나 사실상 부재중인 것 같다. 어느 누구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기대조차도 이제는 하기 힘들어졌다.

모순일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대안부재의 시대] 에는 가까운 도시의 중심부로 가기보다는 도리어 숲속의 길에서 지혜를 찾아야 한다. 숲속으로 가는 길은 우리의 내면으로 향하는 길을 알려줄 것이며, 경쟁과열로 더워진 우리의 심신을 회복하고 힘을 얻는 것이라고 믿는다. 당장 숲으로 가서 [월든]을 읽으라.

무소유의 삶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최소의 것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무소유의 삶을 살지는 못한다. 나도 무소유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다만 과소유를 하고자 하는 마음만 내려 놓아도 소로가 추구했던 '자연스러운 삶'에 가까워지리라고 믿는다.
언젠가 기회가 되어, 미국의 보스턴에 가면 꼭 월든숲과 1945년 발견된 소로의 오두막집도 방문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우리의 마음에 [월든 숲의 오두막집]을 지어보자.
그게 단 2년 2개월일지라도......단순하게 살기로 작정하자!

지금도 나의 책상머리에는 [월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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