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인문학서
[맹자]를 읽으면서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 !!
요즘 들어서 [경제.경영학] 공부를 다시하고 있다.
경제이론이나 경영이론을 몰라서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의 불평등성이 너무나 심화되었기 때문에
이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연 우리는 '잘먹고 잘사는 나라'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예전에는 '절대적 빈곤' 즉 헝그리한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대적 빈곤' 의 시대가 되었다.
그러면서 '앵그리한 시대'로 돌변하였다.
헝그리한 세상에서 앵그리한 세상으로의 변모가 이루어진 것이
얼마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근본문제로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상대적 빈곤감이나 박탈감이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현 상태에 대한 불만족이나 불평등성을 예전보다 더욱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현정부에 대한 여러 경제정책이나 기조가 너무나 잘못되었다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문제도 마치 '정부탓'인 것처럼 여긴다.
물론 한국국민들이 다른 어느 민족보다 '불평불만지수'가 높다고 한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런 불평이나 불만이 곧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공자가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 라고 하였는데, 과연 이 정부가 가난을 퇴치하고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지는 의문이다. 갈수록 국민생활의 질이나 행복감은 떨어지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그렇다고 존 에프 케네디 미국 전대통령의 말대로, 나라가 무엇인가를 해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수준 낮은 국민성도 문제이다.
요즘 들어서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정부에 대한, 지도자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많아졌다고 한다. 4.15총선을 앞두고 선거의 판도도 바뀔 태세이다.
요즘 쓰는 말중에
"법치보다 중요한 것은 밥치다" 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온고지신]의 자세로,
옛 현인들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런 한국의 현상황을 보면서, [맹자]의 말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오늘은 서재에서 [맹자]의 책을 다시 보았다.
[맹자]의 양혜왕편을 보면 재미있는 내용이 나온다.
양혜왕이 당대 최고의 카운셀러 겸 컨설턴트인
맹자를 불러서 '왕도'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질문을 던진다.
유교가 하나의 정치철학으로 자리잡던 시대이니,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맹자는 가지고 있었다.
"오직 선비만이 항산(살아갈 수 있는 일정한 재산이나 생업)
이 없이
항심(늘 지니고 있는 떳떳하고 편안한 마음)을 할 수 있고,
일반 백성으로 말하면, 항산이 없으면 항심을 못 갖게 됩니다.
진실로 항심이 없으면 방탕하고 편벽되고 사특하고 사치하는 일을 못하는 짓이 없을 것이니, 죄에 빠진 뒤에 따라가서 처벌한다면, 이는 백성을 속이는 것입니다.
어찌 인자한 사람이 왕위에 있으면 서 백성을 속이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현명한 임금은 백성들의 산업을 마련해 주되, 반드시 위로는 넉넉히 부모를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넉넉히 처자를 먹여 살릴 수 있어서, 풍년엔튼 일생을 배불리 먹고, 흉년에도 죽음을 면하게 해줍니다.
그런 뒤에 그들을 몰아 선한 길로 가게 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따라가기가 수월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백성의 산업을 마련한다는 것이,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부족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먹여 살리기에 부족하여,
풍년에도 일생을 고생하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니,
이래서는 죽는 것을 구제해 주기에도 힘이 모자랄 터인데,
어느 겨를에 예의를 행하겠습니까?
왕이 인정을 펴보시려거든 어찌 그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는 말은, 산업이 늘 풍부하여야 하고, 일자리가 많아야 하며, 충분한 보수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안정적이지 않으면 마음의 안정도 없다는 의미이다.
국가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바로 [민생안정]이다.
맹자는 [국태민안]을 말하였다. 바로 국가가 태평하여야 하고, 백성이 편안해야 좋은 나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껏 한국이나 일본 중국은 이 [국태민안]을 항시 강조하였다. 국가의 존립근거가 바로 백성의 생존을 잘 보장해야 하는 것임을 맹자는 강조한 것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의 근본이 바로,
국민들이 부모를 섬길 수 있는 정도의 넉넉함과
처자를 먹여 살 릴 수 있을 정도의 복지생활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 라는 말은
일종의 권력층이나 유산계급층에서 말하는 허풍이거나 변명일지도 모른다.
가난 구제는 나라가 하여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말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만연해지는 불평등성을 줄이고
불균형을 바로잡는 노력이 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일본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인들은 더블 케어의 늪에 빠져 있다."
여기서 더블 케어는 위로는 노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처자식을 돌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트리플 케어'를 말하고 싶다.
인구가 노령화되고, 고령사회로 오면서
이제는 위로는 노부모세대, 아래로는 처자식 세대, 그리고 이제는 손자 손녀세대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지금의 4,50대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50대가 되면서 더블 케어, 혹은 트리플 케어의 순간을 오래 오래 맞이하고 있다. 항상 산업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산업이 어느날 줄어들거나, 없어지게 되면 항심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지급은 냉혹한 경쟁시대이며, 시장자본주의 시대이다.
많은 4,50대는 이제 2-3개의 잡을 갖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이다.
그만큼 버티거나 정상적인 생활패턴을 유지하기 힘들 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하는 일이 3-4가지가 된다.
피곤하고 지치기도 하지만, 계속 일을 해야 한다.
심지어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탄도 가끔 한다.
"도대체 한달에 얼마를 벌어야 할까?"
"나는 언제쯤 재정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비단 나 자신만 하는게 아니라
상당수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 라는 것...
이것은 맹자의 놀라운 통찰력임에 분명하다.
얼마전 통계가 이를 잘 반영한다.
우리 국민의 최대 관심사가 [안정적 일자리]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안정적 일자리]가 과연 얼마나 될까?
6,70대 취업은 늘었지만,
4,50대 취업은 도리어 4%이상 마이너스라고 한다.
더블 케어나 트리플 케어를 담당해야 할 4,50대는
이 국가의 허리이고 근간이다.
이들을 위한 정책이나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국은 그리 행복한 나라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항상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는 것을 보면
[먹고 사는 문제가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문제] 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고,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뛰고 있는 것이다. 2500년전의 맹자로부터
귀한 인문학적 가르침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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