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머리를 훈련하는 유대인들에게서 배우라 - 하브루타의 중요성을 깨달아라
매일 머리를 훈련하는 유대인들에게서 배우라 !!
호모 아카데미쿠스
기독교는 '기도하는 종교'라면
유대교는 '배우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도에 힘쓰지만
배우는 것에는 그리 힘쓰지 않는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것으로 종교생활이나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믿는 것과 배우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배우기를 게을리 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성장하거나 성공적인 크리스찬이 될 수 없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성서의 민족'으로 불리워왔다. (필자는 지금의 유대인들은 '공부하는 민족'으로 부르고 싶다.) 이들이 단순히 어린 시절부터 성서를 믿어왔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니다. 이들은 성서에 있는 생각이나 사상을 자신들이 것으로 소화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이를 일상생활에 적용하고 보탬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우리는 성서중심으로 살면서 경건하게 삶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결코 공허한 이상론에 빠져서 현실세계를 외면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경건하면서 현실세계에서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일이 유대인 교육의 핵심이다.
우리가 사실 성서를 공부하는 것도
알고보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다.
물론 성서를 공부하든, 탈무드를 공부하든, 아니면 일반 학문을 공부하든 중요한 것은 사고력(thinking power)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고력을 키우려면 어려서부터 질문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무엇이든 의문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앎의 길이 열리게 된다. 의문을 갖는 것은 곧 지성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리고 사람은 무엇인가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진다. 배움은 또 다른 배움으로 이어진다. 질문은 인간을 진보시키는 길잡이이다.
유대사회에서 공부하고 배우는 것은 바로 '사과에 꿀을 발라서 먹는 것'과 같이 여겼다. 배우는 즐거움과 달콤함을 어려서부터 알게 한다. 과연 "공부하는 것은 달콤한 것일까?" 우리 본성상 맞지 않아 보인다. 보통 사람들은 부와 쾌락을 얻고,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성공을 달콤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학문과 공부야말로 달콤한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질문하는 풍토와 환경'을 가정속에 조성한다. 또한 학교에서도 교실수업의 주류가 바로 '질문의 홍수'를 일으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질문하는 아이들은 반드시 높은 사고력의 소유자가 되게 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배운다는 것을 괴로움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매일 매일 머리를 훈련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긴다. 높은 사고력과 질문하는 힘을 훈련하면 반드시 사회에서 직면한 수많은 문제에 대한 솔루션(해법)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성서는 여러가지로 아동교육의 절대적인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어린이가 가는 길에 적합하도록 가르쳐라. 그러면 어른이 된 뒤에도 그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 고 말한다.(잠언)
미쉬나에 보면, 어린 시절의 교육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것은 깨끗한 종이 위에 씌어진 잉크와 같으며 노년기의 교육은 더러운 종이 위에 씌어진 잉크와 같다] 이를 다른 말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려서부터 성서를 배우면 그 말씀이 핏속으로 흡수되어 입으로 깨끗하게 나올 수 있으며, 노년에 배우면 피로 흡수되지 못하여 깨끗한 말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잠언은 "젊었을 때 그들을 원치 않으면 어찌 노년에 얻을 수 있으리요" 라고 말씀한다.
우리도 머리를 매일 매일 훈련해 나가야한다. 그래야만 이전의 자기보다 뛰어난 오늘의 사람이 될 수 있다. 탈무드는 말한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은 정말 뛰어난 사람이다라고 할 수 없다. 이전의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정말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뛰어넘으려고 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초월하려고 노력하는사람이 언젠가는 남들보다 훌륭하게 된다.
지금은 '공부전쟁의 시대'이다. 그래서 '호모 아카데미쿠스' 라는 말도 나왔다. 바로 '공부하는 인간'이다. 배우는 사람, 배우는 조직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기도하며 생각하는 경건훈련과 더불어서, 질문하고 사고하는 머리훈련에 힘써야 한다. 그래야 나이가 들어서도 성장한다. 필자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은 역시 '공부'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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