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08 00:36
이스라엘 교육과 리더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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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로쉬 가돌 패밀리>>
로쉬 카탄과 로쉬 가돌 - 1부
A Rosh Katan and A Rosh Gadol 1st Session made by Paul Kim
문화는 역사와 언어로 이루어진 세대의 전승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를 주도하는 것은 바로 그 세대속에서 관통하는 정신이나
면면히 흐르는 집단적 습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라는 것을 논할 때 반드시 엘리트 중심으로 논할 것인가, 아니면 그 시대를 살았던 보통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논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역사는 엘리트를 중심으로 기술되며, 그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정신 곧 리더쉽에 대한 기술이 중요부분을 차지한다. 사람의 신체로 따지면 손도 있고 발도 있지만 결국 머리(head)를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한다. 머리는 곧 정신의 요체이며, 이성과 감정을 다루고 통제하며, 지성과 창조력을 결정한다. 리더쉽이라는 것은 곧 머리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오랫동안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핵심사상과 정신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오래된 역사를 중심으로 살펴보되 어떤 중요한 핵심가치(Core Values)나 사상(Thoughts)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리더쉽 부문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이에 관한 수많은 문헌들과 데이터들이 있지만 어떤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엇인가 발견하는 것들이 있다. 하나의 단서가 곧 큰 아이디어의 보고를 얻는 것이 된다. 성서 욥기의 말씀처럼 시작은 미약하여도 나중은 창대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 단서가 되는 결정적인 어휘가 있다. 바로 로쉬 카탄과 로쉬 가돌(A Rosh Katan and A Rosh Gadol)이다.
최근에 한국에서 유행하는 하브루타(일대일 토론학습법)라는 것도 중요한 핵심가치는 되지만, 유대인 사회에서 하브루타는 학습이론이 아니라 생활속에서 이미 자리잡은 실질적 교육가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일대일 토론학습법보다는 집단적 토론학습법이 대세가 되고 있다. 즉 하나의 머리를 쓰는 것보다는 여러 머리를 쓰는 집단지성이나 집단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이 이들을 규명하는 가치로 볼 수 있다. 이스라엘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피부로 다가온 것은 바로 이러한 협업이나 집단지성과 관련된 활동이 창업이나 창조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결국 이스라엘을 ‘스타트업 네이션 - 창업국가’라는 닉네임을 붙이게 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집단지성도 결국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뛰어난 사람의 생각과 아이디어가 같은 의식이나 관념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고, 이들이 서로 협업하고 단결하여 놀라운 성과를 내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하브루타나 집단지성에도 로쉬 가돌이나 로쉬 카탄의 시크릿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은 유대인의 핵심 리더쉽을 논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아마 한국에서는 거의 소개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한국에서 오래전에 쉐마 교육이 성행하였다. 쉐마라는 것은 신명기 6장에 나온 ‘들으라 이스라엘’ 이라는 부분에서 나오는데,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새길때, 개인의 축복과 더불어서 가족과 사회, 그리고 나아가 민족과 국가의 축복으로 이어진다는 시크릿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현장이나 일반학교(기독교계통위주)에 가보면 하브루타는 물론이요 쉐마교육이 그리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서당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제도권 교육이나 입시위주의 교육, 심지어 엘리트교육이 주류임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입신양명] 사상이나 [입신출세]의 욕구가 강하게 들어 있어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바로 [엘리트 교육]에 대한 것이다.
탈무드에 보면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라” 라는 말이 나온다. 다시 말하면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노력은 보통으로 하는 사람이 많다” 라는 것으로 바꾸어도 된다.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천재나 영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과 다른 생각이나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곧 개성이 강한 사람이면서, 창조의 정신과 개척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를 비교하면서 성장하는 사람이야말로 유대인 교육의 핵심이기도 하다.
역사를 보면 이들은 많은 인구를 거느리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이웃 강대국이나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들을 상대하려면 머리를 쓰는 일을 앞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별로 없고 이동하면서 움직이는 유목인들이 많았다. 또한 여러 전쟁과 지배를 피해서 전 세계로 흩어지면서 손안에 귀금속이나 보석류들을 챙기고 다니는 유대인들이 많았다. 곧 생존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었다. 탈무드에서는 그래서 “자식들에게 기술을 가르쳐라 그렇지 않으면 도둑놈을 만든다” 라고 하였다. 기술이 있어야 어디를 가더라도 직업을 구하고 먹고 살 수 있는 생존이 이루어지는것이다. 오죽 심하면 랍비들도 기술과 직업을 가지고 살도록 부탁할 정도이다. 전쟁과 환난이 닥치면 이들을 지켜줄 것은 많은 돈과 물질, 그리고 기술이라고 본 것이다. 많은 돈과 물질이 부족하면 기술과 지식을 많이 습득하여 가난을 벗어나도록 가르친다. 그래서 어떤 랍비는 “생존의 기술이 최고의 기술이다” 라고 하였다.
이러한 생존의 기술이 그 민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 비밀과 시크릿은 바로 로쉬 가돌이나 로쉬 카탄에 있었다. 곧 ‘머리 사용법’이다.
필자가 유학을 했던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 교육학부 교수로 있는
알렉스 폼슨(Alex Pomson) 박사가 있다. 그는 [유대인들의 리더쉽]을 강의하면서 리더쉽의 핵심이 “어떻게 사람들이 행동하고, 그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지 그들이 차지하는 지위에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모든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리더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리더쉽을 특정한 소수나 엘리트들에게만 국한 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는 리더쉽이라기보다는 전체주의적 특성이다.
폼슨 교수는 유대인의 리더쉽을 논할 때, “어떤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면서 어떤 자기인식(self-awareness)의 틀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가 보는 리더쉽은 상당히 ‘주관적 입장 subjective stance' 이다. 바로 ’개성중시 리더쉽‘이 이들의 리더쉽의 요체라는 것이다. 폼슨 교수는 이러한 특정한 가정(assumption)을 통해서 유대인들의 삶과 그들의 삶의 원천을 [자기인식] 또는 [자기발견]이라는 측면에서 리더쉽을 고찰한다.
여기에 대한 함의(implication)를 보면, 그동안의 전통적인 리더쉽은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지만,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고 움직이냐에 대한 것은 자기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기 인식이라 함은 소크라테스적으로 말하면, [나 자신을 잘 알고,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일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자기 인식이 강한 사람들은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관념이 강하다.
그러면서 ‘로쉬 가돌형과 로쉬 카탄형’ 리더로 구분한다.
로쉬 가돌이라는 것은 Big Headedness [큰 머리]정도로 해석이 된다.
이는 바로 성서 히브리어에서 비롯된 것이며 많은 여러 가지의 품성들(qualities)을 내포한 말이다. 이 단어는 무엇인가 할 필요가 있는 일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갖는 것이며, 근본적으로 인생의 빅 픽처 - 큰 그림을 그리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개념을 말한다. 그런 류의 ‘큰 머리형 리더’는 상당히 자신이 세운 목표와 비전에 대해서 일관성을 가지고 접근한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방식이나 길로 가기보다 자신이 만들어 가는 방식과 길을 고집스럽게 가려고 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로쉬 카탄이라는 것은 Small Headedness [작은 머리] 정도로 해석이 된다.
폼슨 교수는 이러한 사람들을 그저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들’ 정도로 말한다. 이는 주도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뒷 자리에 앉아서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따라가는 류의 사람을 말한다. 무엇인가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하려고 도전하거나 노력하지 않는다. 또한 광범위한 수준의 지식과 정보에 대해서도 불충분하게 흡수하려고 한다. 그냥 집단에 순응하고 집단사고(Group Think)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폼슨 교수는 이런 류의 리더가 세상에 많다고 말한다. 물론 그들도 좋은 리더는 많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리더쉽이 제대로 행사되는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성서에 나온 로쉬 카탄형과 로쉬 가돌형 인물을 고르라면 어떤 인물을 고를 것인가? 창세기 6장에는 노아가 등장한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등장한다. 성서는 의인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경우는 ‘하나님 앞에서 걸었다’ 라고 기록한다. 여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랍비들의 해석이 있다. 특히 라쉬라는 걸출하고 뛰어난 중세의 랍비는 노아와 아브라함의 삶을 비교해서 말했다.
거기서 그는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방주를 짓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생명을 구했으나 결국 방주라는 큰 상자에 갇혀 살았다고 보았다. 또한 방주를 나오고 나서도 포도원을 일구며 포도주에 취해서 벌거벗고 추한 모습을 보였다는 성서의 부분을 보면서 노아는 ‘상자속에 갇힌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성서는 솔직하고 정직한 책이다. 그래서 성서가 나는 좋다. 이 부분에 대해서 노아의 추태까지 기록하고 자손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우상의 제국인 우르를 떠나서 아버지 데라와 함께 하란까지 갔고, 거기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까지 온 인물이다. 라쉬는 이 아브라함을 ‘상자밖으로 나온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그가 많은 허물과 잘못을 남겼지만, 그는 스스로를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고, 그리고 스스로 의를 행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용기와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머문 사람이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자식 이삭을 낳고, 그리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낳았다. 아브라함은 후손들로부터 가장 높은 존경을 받고, 지금도 믿음의 조상으로 남아 있다.
중세 히브리어를 보면 히브리어 슬랭(Slang)이 있다. Noach was a "Rosh Katan(small head)" while Avraham was a "Rosh Gadol(big head)"
이를 달리 말하면, [로쉬 카탄은 지극히 소견이 좁고 단순하며 어떤 시련이나 도전에 직면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욕심을 바꾸거나 저항하려고 하지 않으며, 기꺼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리스크를 껴안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로쉬 가돌은 꿈과 비전의 크기나 크고 대국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그 사람은 주어진 변화나 도전에 미리 준비하고 움직인다. 또한 자신들에게 직면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즉흥적이거나 도외시하지 않고 심사숙고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다] 라고 할 수 있다. 로쉬 가돌형 인간은 곧 확고한 자기 인식과 신념을 기반으로 하여서 대사회나 민족이나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사람이다. 이런 아브라함을 역할 모델로 삼아서 살아온 세대들이 바로 [로쉬 가돌형 인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유대인들의 리더쉽의 시크릿이 존재한다고 본다.
유대인들에게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말은 어떤 스페셜한 영역에서 스페셜한 사람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마치 창의적인 사람, 창조적인 사람은 스페셜한 사람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창의적인 사람은 로쉬 가돌형 사람이라고 말한다. 바로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학교 시스템을 보자. 학교 시스템은 지극히 고정된 시스템이다. 여기에서 어떤 상상력이나 창조력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상당부분 모든 교육 시스템이 획일화되고, 통제화되어 있다. 그런 시스템속에서는 ‘로쉬 카탄형’ 사람들을 많이 양성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마치 상자속에 사람들을 집어 넣고 그 상자속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보는 방식이다. 그 상자를 벗어나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창의성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히브리어로 창의성을 ‘Yetziratiyut 예찌라티요트’ 라고 한다. 이 말속에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사고방식에 기초하여 어떤 특정한 자리가 있어서 그 자리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어떤 어려운 문제가 도전이 있을 때 ‘나는 이것을 할 수 있어 I can do it' 이라고 하는 자기 인식에서 비롯된 ’책임감 responsibilities)‘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잘 보면 반응하다라는 response와 능력이라는 ability가 합쳐져 있다. 이 말은 곧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어떤 자극과 도전에 있어서 이에 응전하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창조성은 어떤 특정한 천재나 영재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문제에 대한 반응하는 힘 - 곧 책임감이 강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질(quality)이라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책임감을 넘어서는 것을 ‘집단 지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집단 지성이 바로 유대인 사회를 최상의 지식과 정보집단으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그런데 나는 집단 지성이라는 말보다는 ‘집단 책임감’이라는 말로 대체하려고 한다.
이를 히브리어로는 ‘Areyvut 아레이보트 Collective Resposibility’ 라고 한다.
이 말은 이미 히브리어로 있는데 한국에서는 아마 거의 처음 쓰는 말이다.
앞의 예찌라티오트와 아래의 아레이보트라는 두 단어를 로쉬 가돌과 연결지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은 관계의 존재이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적다. 그런데 협업이나 집단적 활동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것은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각 조직을 보면 ‘팀’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이 많은데, 여기에는 팀장이 있고, 팀원이 있다. 그런데 팀장이 주도권을 가지고 팀원들을 이끌어 가는 것은 단순히 Headship에 가깝지 Leadership과는 거리가 멀다. 팀이 필요한 것은 팀웍이지 팀장웍이 아닌 것이다.
결혼하는 것도 바로 팀웍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결속하여 힘과 지혜를 모으면 엄청난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chances)이나 잠재성(Potential)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나는 [집단 책임감]에 대해서 말했다.
이는 바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 하나의 존재이지만, 어떤 집단이나 조직에 속한 하나이다. 그래서 조직론에서는 우리는 ‘조직속에서 태어나서 조직속에서 살다가 조직속에서 죽는다’ 라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이스라엘의 자손들 The children of Israel 브네이 이스라엘 B'nei ISRAEL ' 이라는 민족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성서의 민족이면서 탈무드의 민족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스라엘의 자손들‘이라고 규정짓는다. 선민의식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높고 원대한 자기 인식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유대인들은 ‘신성한 하나님의 자녀다’ 라는 정체성이다. 왕족들에게서 이런 류의 의식이 있다. ‘나는 왕의 자녀다’ 라는 정체성이 이들의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로쉬 가돌형 인간은 바로 나 자신의 자기 인식이나 자기 정체성이 남다르고 할 수 있다. 이를 철학적으로 말하면 ‘나의 나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사느라 자신의 에너지와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려고 에너지와 힘을 쓰는 사람이다.
유대인들의 리더쉽의 요체는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전체 유대민족과 연결지어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필요한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책임감을 갖고 문제에 대하여 접근하고 대응하는 것이며, 나 자신을 전체 민족과 국가와 연결지어 생각하고 움직이는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애국심]이라고 불러도 좋다.
또 하나의 로쉬 가돌형 인간에서서 발견할 수 있는 가치는 바로 ‘목적지향Purposefulness)’이라는 것이다. 이를 히브리어로 보면 ‘yiud 이요드 ' 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 [미션 mission] 이라고 부른다.
유대인 리더쉽의 요체중에서 이러한 이요드가 있는데, 이 이요드라는 것은 사명이나 미션으로 해석해도 좋지만, 이는 다른 사람의 삶을 바꾸는 것(Change people's lives)이라고 보면 된다. 자기 변화가 없이는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기 인식을 기반으로 하여서, 책임감을 강조하고, 그리고 나아가 높은 수준의 민족의식을 갖추어야 남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관념을 키워온 것이다.
유대인 리더들(Jewish Leaders)은 과거의 자신들의 조상들이나 세대들의 경험과 가치관을 상당부분 지키며 유지 발전하는 것을 큰 가치로 여긴다. 성서의 인물들이나 탈무드의 인물들의 삶을 통해서 자신들의 자기 발견을 이루고, 더 나은 사람, 세상을 개선하고 바꾸는 티쿤 올람(이는 개선된 세상이라는 뜻)의 사람으로 발전하는 것을 귀한 가치로 여긴다. 그래서 이들에게 있어서 성서교육이나 탈무드교육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에 걸맞게 역사교육이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유발 하라리의 경우 히브리대학교 역사학 교수이다. 그가 바로 로쉬 가돌형 학자이다. 그의 책을 보면 로쉬 카탄형으로 기술하지 않는다. 상당부분 백과사전적인 광범위한 독서와 지식습득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생각과 의견, 사상과 감정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역사적인 사람이 되고 싶으면 역사학을 깊이 넓게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이를 [히스토리 메이커 History Maker] 라고 부르고 싶다.
지금까지 로쉬 가돌과 로쉬 카탄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았다. 특히 로쉬 가돌에 대해서 살펴 보았는데, 여기에 여러 가지 특질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기술한 스티븐 코비가 있다.
그 책을 보면 가장 중요한 습관을 ‘자기 주도성'이라고 밝힌다. 자기 주도성이라는 성공습관을 가진 사람은 곧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그러한 책임감에는 도덕성이나 윤리성도 반영이 된다. 또한 문제나 도전에 대한 해결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유대인 교육은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한 자기 주도성과 책임감을 가장 큰 성공습관으로 기르는데 역점을 두고 있음을 본다. 또한 개성과 창의성에 대한 존중하는 문화나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다는 것도 있다. 또한 자신을 전체 민족과 생각하는 집단 책임감이나 신성한 정체성을 형성하는데서 이들의 저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다음 기사는 [스타트업 네이션 Start-up Nation]이라는 단 세노르와 사울 싱어의 책을 중심으로 로쉬 가돌과 로쉬 카탄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2부도 기대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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