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과 법치(法治)에 대하여
“나는 이 정부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이 나라를 사랑 한다” - 어느 시인
민주주의의 기본은 무엇인가? 바로 법치이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완성체가 되어야 한다.
공화주의는 누구에게나 공정한 법치주의의 기반위에서
자유와 공공의 이익을 취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 하는 의심이 최근에 들었다.
헌법 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
대학에서 도둑강의로 [헌법학 개론]을 수강한 적이 있다.
그 수업에서 기억나는 것은 헌법적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것인데, 이 헌법에 근간하여 다른 법들이 세밀하고 치밀하게 짜여 있다. 헌법은 모든 법위에 상위법이다. 하지만 이 상위법은 너무나 추상적이어서 여러 가지로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과연 헌법에 입각하여 이 나라가 운영되고 있는가? 법치(法治)보다 인치(人治)에 좌우되지는 않는지 우리는 확인해보아야 한다.
과연 그렇다면 헌법을 가진 나라들은 과연 ‘헌법의 정신’에 입각하여 법치주의를 구현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법에 대해서 아둔한 사람일지라도 일정 법은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상당부분 법치주의의 구현을 위해서 많은 법조인들이
애를 쓰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자신들이 양심과 도덕성을 가지고
법치주의에 입각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권력층]이나 [기득권층]에 있어서 법의 적용문제는 쉽지 않다.
얼마 전부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아들 군복무에 대한 ‘병역비리’의 문제로 세간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조국 사태에서도 자신의 딸 ‘조민’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과 갈등이 붉어져 있었다. 결국 조국 전법무는 사퇴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는 자식들의 안위와 미래를 위해서 애를 쓴다. 하지만 지도층의 자제들의 문제라면 상당히 달라진다. 국민들은 [법앞에 평등]을 강조하면서, [공평성이나 공정성에 대한 인지]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하다.
나는 법대를 마친 사람이 아니지만, 적어도 [평등이나 형평성에 대한 인지]는 누구보다 높다. 법치에 대한 지각이나 헌법적 가치에 대해서도 상당히 높다. 많은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그저 [누구에게나 골고루 기회와 균등의 원리가 적용되는가 혹은 안되는가]는 쉽게 판가름할 수 있다.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이고가 1862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몇 번이고 읽고 읽어서 그 내용에 대해서는 너무나 쉽게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교훈적이고 상징적인 소설이다.
여기의 주인공 [장발장]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장발장은 고작 빵 한조각을 훔친 죄로 인하여 무려 19년이나 옥살이를 한 인물이다.하지만 19년간을 그가 옥살이라는 한 것은 [법치주의]에 근간해서 보면 아주 타당하고 합리적인 처벌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시절에 읽을 때는 장발장이 너무나 불쌍하고 가련한 인물로 비추어졌다.
청년기에 읽을 때는 장발장의 그런 옥살이가 서서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는 빵집의 유리창을 깨고 그 사이로 손을 넣어서 빵을 훔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유리창을 깼으니 [기물파손죄]에 해당한다.
그리고 남의 집에 손을 넣어서 훔쳤으니 [무단침입죄]에 해당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총까지 소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불법무기소지죄]도 추가가 된다. 또한 그의 강도죄는 낮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밤에 이루어졌으니 [가중처벌대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첫재판에서 선고받은 벌은 5년 형이었다.
거기에 장발장은 형 집행중에 모범수가 아니라, 4번의 탈옥수로서 형기가 늘어나 총 19년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대한민국의 상황으로 돌아보자.
그저 배고파 힘들어하는 누님과 7명의 조카를 위해서 빵을 훔친 장발장은
[3일 굶어서 도둑 없다]는 한국의 전통 속담과도 일치되는 인간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는 빵이 풍부한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이런 빵조차도 줄 수 없는 야박한 인심]에 대한 실망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빵을 훔쳤다. 엄연히 죄인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나는 그의 행동에서 철저히 [법의 테두리에 갇힌 프랑스의 단면]을 많이 보게 된다.
어린 시절 가난하고 힘든 환경에서 자란 장발장은 [누나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다. 장성하여 누나의 조카들을 위해서 그는 뼈가 빠지도록 농장일을 한다. 그리고 겨울이 되어 식량이 부족하자 사냥이라도 해서 짐슴을 잡아 오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마져도 그는 실패를 한다.
너무나 힘든 청년 노동자 장발장, 그런 그는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파 울고 있을 조카들을 생각하니 진열대에 놓인 빵을 보고 충동적으로 훔친 것이다.
[충동적으로 훔친 사람]인 이 장발장에게 기계적인 법적용이 그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그의 형 집행에 대해서 [동정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다만 한 사람 미리엘 주교가 있었다.
그가 19년이 지나서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이끈 것은 감옥살이가 아니었다.
세상에 대한 증오와 원한으로 가득찬 힘센 장사 [장발장]을 올바른 길로 이끈다는 것은 용서와 사랑의 수호자 [미리엘 신부의 마음씀]이었다. 은식기와 금촛대를 훔쳐간 그이지만 “나는 그에게 이것을 주었소. 이것이 내 것이 아니요” 라며 거짓말을 한 미리엘 신부에게서
장발장은 ‘그리스도 Christ'를 발견한다.
나는 가끔씩 성공회대 [신영복] 고 교수의 책들을 본다.
그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는 감옥살이를 절대 후회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다시는 국가나 정부를 상대로 자신의 사상이나 운동을 펼치지 않는다. 다시 책을 읽고, 여행하면서, 자신의 사색의 세계를 펼쳐나간다. 세상을 향하여 싸우던 사람에서, 세상의 사람들과 공존하며 배려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감옥이라는 것이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님도 보여준다.
사람을 바꾸는 것이 법이 아님도 보여준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사람에 대한 예의와 사랑이다.
법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행동을 유도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목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법이 강화되면 도덕이 약화된다. 도덕이 강화되어야 법없이도 살아가는 사회가 온다. 법치이든 인치이든 우선 중요한 것은 [양심의 회복, 도덕성의 회복]이다.
법치와 인치 이 둘이 서로 보완하면서 나아가야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장발장을 바꾼 것은 법치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인치도 아니었다.
2020년 코로나 19 사태로 인하여서, 많은 이들이 가난해지고 있고, 힘들고 거칠어지고 있다 이럴때 도둑이나 강도가 늘어날 것은 불보듯 뻔하다. 3일 굶어 훔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럴 때 과연 법의 테두리에서 사람들을 강제할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범죄한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아량을 베풀지는 [인간의 선한 판단]에 달려 있다.
특히 법을 다루는 [판사나 법조인]의 판단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양심과 도덕성을 최대한으로 지킬 수 있을 때 법치보다 덕치를 앞세우게 된다.
우리가 지금은 법치와 인치의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할 시기가 왔다.
빵 한조각을 훔친 장발장이지만 이로 인해 형벌을 받은 장발장이지만, 이 빵 한조각도 나누어 줄 수 있는 아량과 인간에 대한 예의도 중요하다. 우리도 상황에 따라서 [장발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사회가 이런 사람도 포용할 수 있는 [관대함]이 아쉽기만 하다.
무슨 일이든 [나로부터] 시작되면 된다.
며칠 전에는 나에게 5만원을 빌리러 오신 분이 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5만원을 빼어서 드렸다.
그리고 ‘더 필요하시면 오십시오’ 라고 말했다.
돌아가는 그분의 표정에서 나는 ‘안도감’을 발견하였다.
나는 미리엘 주교는 아니지만,
적어도 장발장을 바꾼 그의 태도에
경의를 표하는 사람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레미제라블]을 읽는다.
불후의 명작은 불우한 시절에 만들어진다.
이 글은 2020년에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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