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읽는 이유 그리고 고양이
전업작가가 아닌데도, 나는 매일 1-2편의 글을 씁니다.
이러한 글을 쓰려면 그만한 독서내공이 요구됩니다.
물론 학문적인 능력이나 지성적인 역량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독서에는 그런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나 책을 대할 수 있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누구나 연습을 열심히 하고, 누구나 진심을 다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문학서를 대하는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가장 사람다운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괴테는 [문학이 세상을 구원한다] 고 표방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밤 이상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를 포함하여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정말 책들이 나를 바꾸고, 이 환멸이 가득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거울을 보면서 나를 들여다보면, 나는 아직 그대로인 같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세상은 추하고 더러우며, 위험하고 불평불만과 환멸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톨스토이가 말한대로 반대로 생각해 봅니다.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자신을 바꾸려는 사람은 적다"
그렇습니다. 책읽기는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바꾸는 일입니다.
우리가 인삼이나 산삼이 면역력을 강화하고, 맑은 공기와 신선한 물들이 서서히 몸을 건강하게 해주듯이, 책들은 나의 정신적인 면역력을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건전한 정신을 주고, 내 몸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하였습니다.
그 변화는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 같은 그런 장자의 호접몽이었습니다.
오늘은 나의 수많은 책들이 있는 서재안을 둘러봅니다.
그리고 "그 많은 책들을 왜 나는 읽었을까?"
그런데 지금도 수많은 책들이 내가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주 누군가가 나의 처소를 방문을 합니다.
그리고 많은 책들을 보면서 놀라기도 하지만,
그들의 표정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저 많은 책들이 무슨 소용이람"
"저 사람은 왜 책에 파묻혀서 살지, 돈이나 더 벌지"
말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말하는 표정을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읽기를 오래하다보면 사람을 읽어내는 능력이 크게 신장됩니다.
지난밤 그런 생각이 들자, 이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은 결국 "책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 이었습니다.
나는 책을 사랑하고, 책읽기를 즐거워합니다.
나보다 더한 독서가들이나, 책수집가들도 있습니다.
대학교 교수들이나, 저명한 작가들은 나보다 더 책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그것이 직업이고, 돈벌이를 해줄 수단이나 요량으로 여깁니다.
직업으로서 학문을 한 사람들은 많은 책이 그저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책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너무 강렬해서
나는 "책들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축구장의 골키퍼처럼, 나는 책시장의 북키퍼인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책을 읽는 것은 "그 책 자체와의 만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책을 만나고, 책의 저자를 만납니다. 거기서 [책의 힘]을 발견합니다.
결국, "나는 책을 지켜주고, 계속해서 책들을 만나는 것이 나의 할일" 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오늘 글 제목에, 고양이가 들어갑니다.
책과 고양이가 무슨 상관이 있길래 이렇게 제목을 달았을까요?
책과 고양이가 너무나 닮았습니다.
책은 동물로 말하면 개보다는 고양이가 가깝습니다.
개보다는 아직 인기가 떨어지는 반려동물이지만,
책으로는 정말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최근에는 고양이와 관련된 책들이 출판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문학에서는 고양이와 관련된 책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고양이와 관련된 책들이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오래전에는 에드가 앨런 포는 [검은 고양이]를 썼고, 나쓰메 소세키는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를 썼습니다. 최근에는 문학적 깊이와 감동이 가득한 제임스 헤리엇의 [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고양이] , 다키모로 고토의 [슬픔의 밑바닥에서 고양이가 가르쳐 준 것]이 있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고양이의 이야기를 담은 나쓰카와 소스케의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베르베르 베르나르는 [고양이]라는 소설을 출판하였습니다.
그 한 대목이 이렇습니다. "고양이의 생각; 인간은 나를 먹여주고, 지켜주고, 사랑해준다. 인간에게 나는 신이 분명하다"
이상하게 책과 고양이는 닮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책에 애정을 가하듯, 고양이에게 애정을 가합니다.
책도 소중하고, 고양이도 소중합니다.
책을 읽고 글쓰는 사람들은 애정을 갈구하고 개보다는
조용이 곁을 지켜주는 고양이에게 매력을 더 느낍니다.
베르베르도 [소설 고양이]에서 "나를 지켜주고 내게 영감을 주는 고양이와 함께 조용히 일하는 것, 이게 바로 내가 꿈꾸는 삶이야" 라고 합니다.
세상은 갈수록 나노사회로 갑니다. 1인가구가 급증하고, 사람들은 더욱 외로움에 깊어지고, 길어집니다. 그래서 그 외로움을 해소하고 달래줄 무언가에 기댑니다.
솔직히 이런 면에서는 책보다 고양이가 더 좋습니다. 고양이는 개처럼 짓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자리를 지켜줍니다. 개가 동적이라면 고양이는 정적입니다.
이런 면에서 나는 책이라는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책들을 지켜주는 것 같지만 그 책들이 거꾸로 나를 지켜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나의 외로움을 달래줍니다. 때로는 책은 내가 모으고 구비를 하지만 그 책에게 달려가면 어려운 문제나 난관도 풀어주기도 합니다.
때론 나는 그 책들이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마치 고양이가 자신의 주인을 안보는 듯 보고 있듯이...
고양이는 조용합니다. 책도 조용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 침묵으로 더 많은 말을 합니다.
'책읽는 사람'의 고요하고 조용한 분위기나 이미지가 고양이와 겹칩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 [고양이 관련 책들의 인기]가 높다고 봅니다.
책과 고양이는 서로 닯았습니다.
책읽는 사람과 고양이가 서로 닮았습니다.
그런 묘한 교감이 드는 글쓰기였습니다.
나는 더이상 세상을 바꾸는 것에 관심이 없어집니다.
결국 나를 바꾸기 위해서 살아야 하고 독서를 해야 하는 것을 깨우칩니다.
책이라는 것은 내가 사랑하고, 읽지 않으면 그저 블럭이나 장식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책이 나를 지켜줍니다. 나의 외로움을 달래줍니다. 매일 매일 나를 만납니다. 마치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처럼.... 조용히 아주 조용히...
소소한 행복을 전달해줍니다.
나는 아직 고양이를 키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를 보면 사랑스럽습니다.
때로는 개보다 더 매력이 있습니다. 그 묘하고 신비한 매력이 책속에 가득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고양이같은 책들에게 더욱 애정을 쏟고, 가까이 하면, 이 책들이 결국 나를 지켜주고, 나를 바꾸어 나갑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그런 파급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책이나 고양이를 내가 지키는 것 같지만, 결국 이 책이나 고양이가 나를 켜 줄 것입니다. 참으로 묘하고 신비한 매력을 책과 고양이에서 찾은 오늘이었습니다. 아, 오늘밤은 정말 잠이 잘 올 것 같습니다.
또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은 위험합니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책가게를 맡기면 대박날 것 같습니다.
요즘 가장 핫한 동물도 고양이요, 핫한 책들도 고양이니까요.
그래서 내일은 고양이 관련 책들을 사서 죄다 보고 싶습니다.
고전도 좋지만, 유행하는 책들도 좋습니다. 고전의 딱딱함과 질김도 즐기지만
유행하는 책들의 신변잡기적인 소프트함도 즐깁니다.
결론은 책과 고양이는 서로 닮았다 라는 것입니다. Have a nic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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