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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동식물의 문학사 & 탐험사&세계사

동서양세계사3, 가장 심플한 안경의 세계사

by 코리안랍비 2022.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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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심플한 가면, 안경


<안경 열기>

어린 시절에는 안경을 쓴 친구들이 거의 하나도 없었다. 가끔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전학 온 친구들이 안경을 착용한 것을 빼놓고는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지금도 안경착용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안경을 쓴 친구들을 보면 대체로 공부를 잘하고, 모범생이라는 이미지도 강하였다.

그러나 이제 안경은 전국민의 필수품이 되었다. 우리 나라의 학생들의 절반이 안경을 착용한다. 나의 가정에도 안경을 쓴 사람이 4명이나 된다. 늦둥이 막내만 안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조만간에 안경을 쓸 것이다. 휴대폰과 TV시청을 과도하게 하는 것과 더불어서 여러 가지로 많은 독서도 눈을 해치는 요인이 된다.

나는 대학교 2학년부터 안경을 썼다. 어둡고 침침한 백열등 아래서 문학책과 철학책을 열심히 보다가 결국 눈이 나빠졌는데 컨텍트 렌즈보다는 그냥 안경을 쓰는 것이 좋아서 지금도 그냥 안경을 착용한다. 오늘은 전국민의 필수품 안경에 대해서 논하려고 한다. 물론 안경에 대한 나름대로의 에세이도 준비하였다.

안경(眼境 glasses), 시력이 나쁜 눈을 잘 보이기 위해서 또는 눈을 바람, 먼지, 강한 햇빛 따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얼굴에 쓰느 물건이다. 안경은 안경테와, 안경알,안경다리로 구성되어 있다.

안경은 태의 유무에 따라서 일반적인 안경테, 반무테, 그리고 무테로 나누어진다.
안경렌즈는 유리 렌즈와 플라스틱 렌즈로 나누어진다. 유리 렌즈는 수명이 긴 반면에 무겁고 깨지기 쉽다. 플라스틱 렌즈는 수명이 짧은 반면에 가볍고 깨어지지 않는다. 빛을 받으면 선글라스처럼 짙은 색으로 변하는 변색렌즈도 있다. 렌즈중에는 ‘고굴절렌즈’가 있는데 통상의 안경 렌즈보다 굴절률이 높은 재질을 이용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많이 안경을 착용한다고 한다. 이제는 이 안경도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 안경까지 등장하였다. 안경은 이제 대세 트랜드이고 패션이고 유행이다. 안경은 이제 필수도구이다.
<안경의 문화사, 리차드 코손 2003년 참조>


<안경의 역사>

최초의 안경은 1286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되었다.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는데 ‘최초제작설’에 대한 신빙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는 1271년부터 1295년까지 중국 원나라에서 관직을 맡아 머물렀고, 이때 본 관습과 생활상을 견문록에 기록했다. “ 원나라의 늙은 신하들은 거북의 등껍질로 만든 볼록 렌즈 안경을 끼고 있다”고 남겼다. 몽골을 여행한 기욤 드 뤼브루크 역시 중국인이 안경을 낀 것을 관찰했으며 그가 귀국후 베이컨에게 말해 베이컨이 안경을 탄생시켰다는 일화도 있다.

알베르트 망구엘은 자신이 지은 [독서의 역사]라는 책에서 안경을 최초로 발명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 세명을 언급한다. 각각 조르다노다 리발토, 스피나, 로저 베이컨이다. 모두 13-14세기 인물로서 앞에 두 사람은 이탈리아인이고, 로저 베이컨은 영국 사람이다. 특히 로저 베이컨은 1268년에

“누구든지 수정이나 유리를 통해 글자나 작은 물체를 관찰하면, 그리고 그 수정이나 유리가 둥근 것을 자른 단면이고 그 볼록한 면에 눈 쪼긍로 향하여 있을 때 글자가 훨씬 크고 잘 보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로저 베이컨이 최초의 개발자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덧붙여서 유럽 그림에 안경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352년 톰마소 다 모데나가 프로방스 지역 생 제르 성당의 위고 추기경을 그린 초상이라고 한다.


<<역사속의 안경들>>
지금이야 안경이 친숙한 시대이지만, 과거에는 안경이 매우 귀하고 값비싼 물건이었다.

광해군 6년, 1614년에 최초의 백과사전인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보면 안경의 전래에 대한 기록이 있다. “안경은 200년 전 처음 있었던 물건” 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조선의 통신사로서 일본에 다녀온 김성일의 안경이 유물로 전해지고 있는데, 김성일은 임진왜란 초기인 1593년에 사망한 사람으로서, 여러 정황을 종합하여 보면 그 전인 1580년경을 전후하여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그 당시의 안경은 지금의 안경과는 다른 확대경에 가까웠다.

이 때에는 안경 다리가 없어서 안경의 렌즈 양쪽에 끈을 달아 착용하였다. 그 당시에 안경의 이름은 네덜란드 사람의 이름을 따라서 ‘왜납’ 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안경의 페르시아어인 ‘에이나크 eynak’의 음차이다.

당시의 안경은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널리 쓰였다. 안경을 쓰는데 대한 예법도 까다로웠다. 지위가높거나 나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것은 금물이었다. 임금도 어전회의에서 안경을 벗는게 원칙이었다. 임금이 안경을 안 쓸 정도면 당대의 강한 유교적 분위기를 여실히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안경을 쓴 왕은 정조이다.

정조는 안경을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눈이 좋지 않아서 안경을 끼고 정무를 보기도 하였다. 1800년 정조 24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보면 정조가 안경을 쓰고 조정에 나가면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할 것 같아 쓰고 나설 수 없다고 기록하고 공식 석상에서는 안경착용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한다. 임금앞에서는 신하는 안경을 착용할 수 없었고 다만 어의만은 시침을 해야 하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가장 어른 나이에 안경을 쓴 임금은 ‘헌종’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외척인 ‘조병구’가 더 눈이 나빠서 안경을 썼는데 그것도 헌종 앞에서 안경을 쓴 적이 있었다. 나중에 “외삼촌의 목에는 칼이 들어가지 않는가?” 라고 버럭 화를 냈다. 이 헌중의 압박에 의해서 결국 ‘조병구’는 자살하기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안경을 쓰게 된 것이 사실 오래되지 않았다. 아직도 선글라스를 끼면 어른들 앞에서는 벗는 문화가 한국에 남아 있다. 외국에서는 반대로 선글라스를 착용하여도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레옹]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정조의 학사출신인 '공부벌레' 정약용 선생도 안경을 쓴 모습의 초상화를 남겼다.
다산께서는 '강진'에 유배를 가서도 안경을 착용하였다고 한다. 책을 많이 보면 눈이 나빠지는 것은 사실이다. 자연을 많이 보아야 눈이 좋아진다.

안경을 처음 접하고 놀라워한 조선 후기의 시인인 ‘이서우’는 안경을 묘사한 시까지 남겼다.

“동그렇게 다음은 수정 알 한 쌍
눈에 끼면 가는 글씨 파리 대가리만하네
우습다. 옥루(玉樓, 코)끼여 괴로우니
향로에서 나는 향기를 맡을 수 없네”

한국의 초당대학교(전라도 무안)에 가보면 안경박물관이 있다.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대못안경(1350년경 독일)과 우리나라의 최초의 안경이라는 김성일 안경도 있다. 심지어 조선시대 정조대왕, 고종황제의 안경, 백범 김구 선생의 상징이 된 뿔테안경도 볼 수 있다. 전봉준 장군, 프란체스카 여사, 맥아더 장군, 도공 심수관의 안경, 초대 대통령 이승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안경도 전시되어 있다. 어떻게 모았을까? 신기할 따름이다.


<안경의 선진국 일본>

안경의 선진국은 전세계에서 1위 국가가 일본이다.
일본에 몇차례 가보아도 일본인들이 그리 안경을 많이 착용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안경의 세계사를 준비하면서 그것이 무척 궁금하였다. 도쿄나 오사카를 가보아도 안경을 착용한 사람들의 비율이 불과 10%도 되지 않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일본이 안경 선진국이라고 하여서 많은 이들이 착용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안경착용을 기피한다고 한다. 그 내막을 들여다본다.

일본의 안경에 관한 역사도 상당히 오래되었다.
1551년 스페인 선교사 자비엘에 의해 일본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현재 일본 인구의 60% 이상이 안경 또는 콘텍트 렌즈를 착용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거리엔 안경 쓴 사람이 드물다. 시력이 나쁜 사람이 절반 이상인데도 왜 이들은 안경을 기피할까?

그 이유중에 하나가 콘텐트 렌즈의 보편화이다. 이들은 밖에서는 콘텍트 렌즈를 착용하고 안에서는 안경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안경 = 공부벌레?라는 부정적 이미지도 한몫을 한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안경을 쓰면 이제 공부벌레보다.... 인터넷 벌레, 유투브 벌레라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안경착용자를 보면 공부만 할 줄 알고 사회성도 부족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이미 이들은 학창시절부터 콘텍트 렌즈에 익숙하다. 야구와 스포츠 활동을 하는 선수들은 눈이 나빠도 안경착용보다는 콘텍트 렌즈를 착용한다. 예전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의 여자 컬링 선수들은 ‘영미 영미’ 외치면서 전원이 안경착용자들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한명도 착용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다양한 기능성 안경을 더 선호한다. 일본에 여행가면 한국보다 더 다양한 안경을 만날 수 있다. 일본 안경점에 들려서 안경을 구매하는 것도 좋다. 노 제팬 No Japan 이라고 하여 일본 브랜드를 사주지 않는 것도 어찌보면 여행자의 바람직한 모습도 아니다. “한류 한류” 소리지르면서, 정작 상호 거래가 없다면 이 또한 진정한 한류가 아닐 것이다.


<세계 4대 안경생산지는 한국>

대구에 가면 안경산업특구가 있다.
이곳이 바로 세계 4대 안경생산지이다.
이곳에서 전국 안경의 82%가 집적화되어 있다.
물론 중국산 저가 안경에 밀리고는 있지만 여전히 안경산업의 메카로 존재하고 있다. 이제는 각 대학에서 고급인력을 활용하여 안경산업을 대폭 중점 육성하여 세계 제 1의 수출지역으로 도약하려고 하고 있다.
대구국제광학전, 안경거리조성, 안경축제개최를 상호연계하여 국내외적으로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대구 북부가 세계적인 안경집산지임을 널리 알리고 한국 안경의 이미지를 제고함으로써 우리 안경산업이 거듭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슈퍼맨과 레옹의 안경>

안경은 ‘가장 심플한 가면’ 이라고 부른다. 안경을 보는 것을 담당하는 최전방의 도구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마법과 같은 기능으로 한때 악마의 도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안경을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며 이미지를 바꾼다.
신문사의 수습기자인 클라크 켄트는 와이셔츠를 찢고 안경을 벗음과 동시에 하늘을 나는 슈퍼맨이 된다. 그 슈퍼맨의 아들은 오랫동안 아빠가 진짜 슈퍼맨으로 오해하고 살았다고 한다. 물론 말이 안되는 설정이지만, 고작 안경을 안쓴다고 슈퍼맨을 못 알아 보는 것이 말이 안된다.

물론 같은 기자들은 클라크 켄트를 슈퍼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었을 것이다. 닮은데는 있지만 다른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1978년도 영화를 보면, 클라크 켄트의 안경은 자신의 행성 크립톤의 광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따라서 렌즈가 지속적으로 저강도의 최면 효과를 일으키는데 이 최면 효과 덕분에 사람들이 클라크를 슈퍼맨으로 의심하지 않게 하였다고 한다.

하여간 슈퍼맨 시리즈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안경을 쓰면 기자요, 안경을 벗으면 슈퍼맨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레옹의 안경스타일은 정말 멋지다. 가게에 가면 가끔 ‘레옹스타일’의 안경을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동그란 스타일의 안경을 ‘존 레논’ 스타일 선글라스는 ‘레옹’ 스타일 안경이라고 부른다.

영화속 레옹이 쓴 선글라스는 3종 세트이다. 그래서 모두들 딱히 각인되지는 않지만 비슷하면 레옹안경이라고 한다. 스틸컷에 사용한 안경은 투명한 테의 안경이고 영화속에서는 스틸테이다. 처음에는 레옹만 둥근테의 블랙 안경을 쓰다가 여주인공인 마틸다도 레옹스타일의 안경을 쓴다. 레옹은 선글라스를 쓰고, 마틸다는 식물을 들고 둘이 걸어가는 장면은 레옹영화의 압권이기도 하다. 마틸다도 검은 안경을 착용하는 모습이 보여주는데 지금도 참으로 트랜디한 모습이다.



다음의 글은 나의 안경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 성격의 글이다.

<안경이 보이지 않는 당황스러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눈이 나쁜 사람에게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바로 안경을 찾는 일이다. 안경을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가 있다.이리 저리 찾다가 허둥대는 모습이 정말 싫어진다.그러다가 찾으면 다행인데, 출근 시간은 다가오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그러다가 가족들을 동원하여 찾아보게 한다.그렇게 찾아도 쉽게 찾아지지 않는데,

찾고보면 의외의 장소가 아니라 늘 친밀한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냥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고, 다시 눈에 착용을 하는데 이때 비로소 안경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된다.

사물이라는 것이 그렇다. 있을 때는 별 고마움을 모르다가 있다가 보이지 않으면 불편하고, 찾고 찾다가 기어코 찾으면 그리도 감사한 것이 사물이다.

안경의 소중함 - 있다가 없으면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다른 물건들도 마찬가지이다. 있다가 안보이거나,
있다가 사라지면 그 빈공간이나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만 보아도 이런 감정이 나오는데
이를 인문학적으로 되돌려 생각을 해본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우리는 살아간다.물론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도 살아가지만,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우리가 친하고 잘 지내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과연 얼마나 여기고 살아갈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던져본다.
소중함, 이는 많아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적어서 아니면 거의 없어서 생기는 감정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그러면서 우리 스스로가 소중함의 감정을 놓치고 살아간다.

안경 하나만 찾는데서 오는 '당황스러움'
그리고 찾았을 때 '다행스러움'의 감정이 교차하면서
나는 소중함에 대해서 너무나 놓쳐 버리고 살았다는 생각이 또 교차한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가는 자신이 크게 보인다.
안경을 찾는 일,

사소해보이지만, 작은 가르침을 주는 시간이 되었다.
익숙한 사람들에게 그저 익숙함만으로 상대하였던 자신
소중하다고 귀중하다는 의식을 저변에 깔지 못하고 상대하였던 자신을 성찰하게 만든다.

또한 찾은 안경을 쓰고 다니면서
안경알이 지저분해 보여서 안경닦는 수건을 또한 찾아 보았는데, 또한 그것도 제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이리 저리 서랍을 뒤져서 하나를 겨우 발견하였다. 안경닦는 수건이야 안경점에서 여러 개를 얻을 수 있지만, 집안에서 겨우 하나를 찾으면서 그것도 '다행이다' 라는 감정이 또 유발되어진다.
정말 돈으로는 얼마 되지 않는 안경수건이지만,
이 수건조차도 하나만 남아 있을 때 이것도 소중해진다.
그렇게 안경을 닦으면서 또 생각을 한다.
안경을 닦으니 다시 맑아져서 더 선명하게
외부 사물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눈을 닦는 일은 왜 하지 않을까? 스스로 반문해 본다.
안경을 닦으면서 눈을 닦지 않는다는 것
그것도 또한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눈을 닦는다는 것은 사실 마음을 닦는다는
수행과 수신의 행동과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마음을 닦는 사람,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
바른 마음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고, 미래를 바라보고,
우주를 바라보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아직도 그것과 거리가 너무나 먼 자신을 본다.

오늘 이래 저래 안경이 주는 교훈에 사로잡혔다.
안경을 찾고, 안경을 닦고 그리고 안경을 다시 쓰면서
이제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로 다짐해본다.
나이가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인문학적인
성찰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소중함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물론 나 자신도 아직도 멀었다.
우리는 인생훈련을 받는다.
어찌보면 그 훈련은 광야훈련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을 하는 그 인생훈련에 참가한 훈련생들이 바로 우리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중함을 알아서, 자신을 잘 관리하고 준비시켜야 한다. 바른 말로 하면,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잃어버려야 찾는 우리 자신
아직은 어리석지만 현명함과 지혜로움을 찾아가는 우리 자신 물건도 소중하지만, 나도 소중하고, 남도 소중하다는 [소중의식]을 갖고 살아야 함을 발견한다.
나는 아직도 멀었다.
그렇지만 계속 가고 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을 보면서 계속 가고 있다.
나는 나의 발걸음을 스스로 축복한다.

  • 구글출처 이미지 안경이 멋진 수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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