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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와 코칭 & 멘토링

탈무드와 논어연구3, 유학과 유대교의 본질 그리고 하브루타

by 코리안랍비 2022.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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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 - 짝을 지어 공부하기? 짝을 지어 공부시키기 !!

 

  • 구글출처 이미지 - 하브루타의 핵심


[하라와 하지 마라]

오늘은 특이한 주제를 들고 나왔다.하브루타 교육운동을 하면서, 동서양의 생각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관점의 차이를 많이 발견한다. 하지만 차이점도 발견하지만 공통점이나 공유할 점도 발견한데서 큰 수확이나 보람이 아닐 수 없다.

하브루타식 접근방법은 창의성을 촉발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런데 기존이 유사하브루타는 남의 것을 그대로 베끼는 식이었다. 사실상 그것은 모방이 아니라 표절에 가까운 것이다. 모방에도 윤리성이 반드시 요구가 된다.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말하고, 유대민족의 고유의 것을 마치 자신의 것으로 이식하려는 노력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다른 진리나 가치에 도달하는 접근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만병통치약처럼 판단하는 것도 실상은 지적 교만을 유발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미국식 경제경영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인문학적인 식견이 상당히 약하였다. 그런데 그 공백을 매꾼 것은 다름 아닌 독서였고, 성서연구였다. 또한 탈무드를 오랫동안 익힌 것이 주효했다.
동서양의 고전부터 시작해서 현대의 저작물들까지 수많은 책들을 접하며 살았다. 그리고 내가 필요한 공부를 위해서 여러 대학과 사이버강좌에 가서 과정을 익히기도 하였다.그래서 나는 하브루타가 가능한 사람이 되었다.

오늘의 주제는 [하라와 하지 말라] 이다.

『論語』 「顏淵」 仲弓問仁章
仲弓問仁,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仲弓曰: “雍雖不敏, 請事斯語矣.”
중궁문인. 자왈: "출문여견 대빈 사민여승대체, 기소불욕 물시어인, 재방무원, 재가무원,." 중궁왈: "옹수불민, 청사사어의"

중궁(仲弓)이 인(仁)을 묻자,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문을 나가서는 큰 손님을 뵙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하며,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나라에 있어도 원망함이 없고 집안에 있어도 원망함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중궁이 말하기를 “제가 비록 불민(不敏)하오나 청컨대 이 말씀에 종사하겠습니다.” 하였다.

힐렐에게 로마인이,
"내가 한 발로 서 있는 동안, 유태인의 학문을 모두 말해 보라."고 하자
힐렐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요구하지 말라."

성서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하지만, 공자의 논어나 힐렐의 탈무드예화에 나오는 수사학은 다르다. 사랑하라는 것도 적극적 행동을 요구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오히려 적극적 행동을 자제하라는 것이다.

공자나 힐렐은 하지 말라는 것으로 유학과 유대학의 근본적 가르침을 논하였다.
그런데 예수와 사도들은 하라는 것으로 기독교의 근본적 가르침을 논하였다.
물론 예수와 그 사도들도 모두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유대.기독교는 서로 공유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방향성이다.

성서 십계명에 보면, [하라와 하지 마라] 로 나누어져 있다.
이 십계명만 잘 준수하고 지켜도 엄청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데 탈무드를 공부하다보니 우스개 소리로 이 십계명외에 십일계명이 있다.
바로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셨는데, 이 주신 목적이 "제멋대로 살기에 주신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저명한 랍지가 탈무드에 "이 계명을 주어도 인간은 이 계명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라고 부연설명을 달았다. 과연 십계명을 잘 준수하고 사는 사람이 몇 %나 될까? 지키는 척만 하는 사람이 절반도 넘을 것이다.
인간은 상당수가 [척하는 삶 - GESTURE LIFE]을 살고 있다.

사람들은 하라는 것은 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려는 심리가 있다.
하라는 것이나 하지 말라는 것이나 실천을 요구한다.
하나는 적극적이고, 다른 하나도 적극적이다.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라, 이 말을 듣는 이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공부하라와 놀지 마라"는 같은 것일까?
공부하라는 것은 놀거나 게으른 아이들이나 학생들에게 부모와 선생이 말하는 것이다. 일종의 행동을 유발하기에 필요한 말 같지만 정작 아이들이나 학생들은 잠시 행동에 옮기는 것 같다가도 지속적이지 않게 된다.
그런데 반대로 "놀지 마라"라고 하면 이것도 일종의 부지런하고 성실한 아이가 되라는 주문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은 이처럼 [하라와 하지 말라] 라는 계명이나 규칙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말학고,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서서히 찾게 된다.

일에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잘 하는 일이 있고, 하기 싫은 일이 있고, 못하는 일이 있다. 그런데 탈무드는 말한다.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삼아라" 참 대단한 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반드시 명심할 것이 있다.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아야 한다] 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체 유교와 유대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나는 상당수의 사람들에게서 자기가 하기 싫다고 남에게 시키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전형적인 물질주의자들의 수법이다.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것이지 목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시대가 달라졌다. 높은 지위나 자리 재화와 자본으로 다른 사람들의 머리위해 군림하려는 갑질이나 악질적 사고방식이 이제는 그리 통하지 않는다. 21세기형 리더는 소통형 리더다. 오케스트라형 리더기도 하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곧 반대로 소극적 의미의 이웃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거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도 남에게 시켜서도 안된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도, 심지어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남에게 시켜서는 안된다.
상대방이 정말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서로 동의나 타협이 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다른 말로 바꿀 수 있다. 힐렐의 말을 인용하여
"당신 자신이 당신을 위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당신을 위한 일을 해 주겠는가?" 사람이 따르는 지도자는 먼저 모범과 솔선수범을 보인다. 그리고 남과 대화를 하고 타협을 하는 것이다. 상대와 함께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이 그래서 평화를 만들고, 친목을 만들고, 우정을 만드는 것이다.
무엇인가 더 나은 것을 창조하고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을 통해 주위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서 힘을 키워야 한다."

이것이 과거의 선인들에게 배우는 방법이다. 그리고 온고지신이다.
근본적인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불확실하고 복잡다단한 현대인의 삶에 나침반이 되고 이정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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