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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미학, 인문학적 가치추구

노벨상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읽거나 말거나]

by 코리안랍비 2022.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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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읽거나 말거나]

 

할머니 시인 심보르스카 여사 / 구글 출처 이미지 / 한국일보 취재



몇해전 어느날, 광화문 교보빌딩에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라는 시인의
[두번은 없다] 라는 거대한 시 캘리그라피가 걸린적이 있었다.
그 몇줄의 싯구를 보는 순간, 나의 눈은 거기에 꽂혀 버리고,
이 시인이 갑자기 좋아졌다.
그리고 작업실에 와서 그녀의 싯구중 일부를 타일에 옮겨 적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집을 사서 숨도 거의 쉬지 못할 정도로 읽은 기억이 난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라는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시인의 일대기를 보면서,
시인은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 <<임어당>>이 말한 시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단상이 있었다.

"시인은 분석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또한 이론적인 설명도 하지 않는다.
시인은 다행히도 이론적인 정연한 문구나
논쟁해야 할 학리도 모른다.
그는 단지 결단하고 말해 버린다.
그가 말하는 것은 인간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인간의 고통, 상심, 동경을 이야기한다.
다시 말하면 마음속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플라톤>>의 말도 떠오른다.
"인간은 사랑을 할 때 누구나 시인이 된다."


그리고 <<바이런>>의 말도 떠오른다.
"시인이 되려면 사랑에 빠져 있든가 신세가 처참해야 한다."

밤하늘에 별이 없을 수 없듯이, 사람 사는 세계에 시인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인 시인을 두고,
이헨도르프는 "시인은 세계의 눈이다" 라고 하였다.

그녀는 정말 세계의 눈이 되었다.

1996년 스웨덴 한림원은 폴란드 크라쿠프에 사는 국제 시단에 거의 알려진 적이 없는 부끄러움 많고 조용한 그녀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며 이런 말을 했다. “실존 철학과 시를 접목시킨 이 시대의 진정한 거장이다.” 심보르스카는 지극히 쉬운 일상적인 언어로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비범한 시를 썼다. 삶이란 무엇이고 존재란 무엇인가?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해야 하나? 인생의 유일성(唯一性)과 유한성(有限性)을 두고 쓸데없이 길고 어려운 설교를 해야 하나?(문정희 시인. 교수)

시에 대한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을 듯 하다.
그래서 본론으로 들어와서,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시인중에 하나인 심보르스카가 쓴 서평집을
소개하려고 한다.

심보르스카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인류가 고안해 낸 가장 멋진 유희" 라고 하였다. 이는 [에세, 수상록]의 저자인 몽테뉴가 주장하는 것처럼 "독서는 어떤 놀이도 제공하지 못하는 자유, 즉 남의 말을 마음껏 엿들을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해 준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1967년부터 무려 35년간 폴란드 신문에 연재한 서평을 모은 책이다. 독서광으로서 그의 독서 편력은 전방위적이다.
반드시 필독을 강요하는게 아니라, 재치와 웃음이 넘치는 독서 칼럼이기도 하고
때로는 책의 문제점이나 결함도 제시해 나간다. 그래서 독자가 읽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둔다.

춘향전을 폴란드어로 번역한 ‘열녀 중의 열녀 춘향 이야기’에 관한 서평이 먼저 눈길을 끈다. 한국 고전문학의 하나로 꼽히는 춘향전이 찬사를 받는 여러 이유를 열거하며, 이야기의 단점도 빼놓지 않는다.

“틀림없이 춘향은 잘생긴 배우자 옆에서 절뚝거리며 걷지도 않았을 테고, 첫날밤에 원앙이 수놓인 이불을 덮어 자신의 뒤틀린 두 발을 애써 가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매우 강렬한 해피엔딩을 맞고 있지만, 사실 거기에 춘향의 으깨어진 두 발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다. 변사또의 첩이 되는 걸 거부하다 쇠가 박힌 대나무 몽둥이에 맞아 부서진 작고 여린 그 발, 과연 춘향의 발꿈치뼈는 아무런 흉터도 남기지 않고 잘 붙었을까. 안심해도 좋다. 완벽하게 잘 아물었을 것이다. 동화는 결코 현실의 삶에 완전히 항복하는 법이 없으니까.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이다. 틈만 나면 훨씬 나은 동화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현실을 난처하게 만든다.”

199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춘향의 으깨진 발을 걱정하는 이색적인 서평을 낸 첫 독자이자 마지막 독자일 것이다.

"뭔, 이상한 시인도 다 있군" 할 수 있지만, 그녀의 책을 붙들지 않으면 안되는
묘한 반전매력이 있다.

찰스 디킨스 전기에 대해선 이렇게 썼다. “내가 그를 행운아라고 이야기하는 건, 인생의 전반기에 겪은 수모와 고통도, 그리고 후반기에 획득한 눈부신 성공도 결코 그를 타락시키거나 망가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편에 서 있었다. 그의 언어는 바로 이런 불행한 사람들을 옹호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양심의 가책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었다.”

그의 서평은 독특하다. 당대 유명한 문학작품, 평전 등에 대한 박식한 해석이 망라되어 있다. 문학, 출판 주류들이 입 모아 추천할 만한 책은 일부러 피했다. 수필에 가깝다. 소박하고 유쾌하다.(정승욱 기자)

마지막으로 그녀의 위대한 시를 여기에 남긴다.

두 번이란 없다. 한 번만 있다. - 광화문 글판앞을 지나는 사람들




두 번이란 없다.

두 번 일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연습 없이 태어나서
실습 없이 죽는다.

인생의 학교에서는
꼴찌라 하더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같은 공부를 할 수 없다.

어떤 하루도 되풀이되지 않고
서로 닮은 두 밤도 없다.
같은 두 번의 입맞춤도 없고
하나 같은 두 눈맞춤도 없다.

어제, 누군각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불렀을 때,
내겐 열린 창으로
던져진 장미처럼 느껴졌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난 얼굴을 벽 쪽으로 돌렸네.
장미? 장미는 어떻게 보이지?
꽃인가? 혹 돌은 아닐까?

악의에 찬 시간, 너는 왜
쓸데없는 불안에 휩싸이니?
그래서 넌 - 흘러가야만 해
흐러간 것은 - 아름다우니까.

미소하며, 포옹하며,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방울의
영롱한 물처럼 서로 다르더라도.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두 번이란 없다>

 

권하고 싶은 책중에 하나 - 끝과 시작

 

 

이혼에 대해서 이렇게 잘 쓴 시가 있을까? 구글 출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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