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의 꿈 그리고 호연지기<2020년 겨울 작성 글>
"높은 곳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어떤 한계선도 보이지 않는다"
리차드 바크('갈매기의 꿈'의 저자)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철부지요 개구쟁이로만 지내던 나에게
아버지는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읽어보라고 권하셨다.
제목부터가 너무 맘에 들었던터라, 한달음에 읽게 되었다.
내 고향이 충남 보령이며, 대천해수욕장이 집에서 멀지 않다.
그래서 늘상 갈매기나 바다새들을 보는 것은 일상사이다.
그런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보며 나도 저 새들처럼 자유로이 날고 싶어졌고
바다위로 날으는 새들이 없다면 바다도 외로울 것이며,
바다라는 넓은 곳에 사는 물고기들을 먹고 사는 새들의 평범함
또한 날개가 있어 날아갈 수 있는 자유로움을 나도 갖고 싶었다.
대체적으로 갈매기들은 높이 날지 않는다.
바다 가까이에서 날아다닌다.
그들의 습성은 그저 바닷가나 개펄에 앉아 있거나,
작은 물고기들을 사냥해서 먹고 산다.
물론 갈매기들이 죽은 어류들이나 다른 동물의 사체도 먹기도 한다.
갈매기들은 천성이 바닷가에 사람들과 가까이 산다.
그런데 높이 나는 갈매기는 거의 없다.
리처드 바크는 그런 생물학적인 특성을 가진 갈매기보다는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날아드는 갈매기를 상정하였다.
한마리 높이 나는 갈매기인 조나단 리빙스턴 시절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갈매기의 꿈]을 쓴 것이다. 그 꿈으로 인하여서, [거위의 꿈], [나비의 꿈], [민들레의 꿈] 등 많은 꿈의 시리즈들이 탄생하였다.
꿈꾸고, 그 꿈을 향하여 달리며, 그 꿈이 이루어질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그 꿈으로 인하여 사는 존재들이 얼마나 많아진지 모른다.
꿈은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다.
꿈은 높은 곳에 오르는 것과 같은 험난한 과정, 시련의 과정이 있다.
꿈은 혼자가 꾸지만, 그러나 그 꿈을 이루는데는 많은 사람들, 많은 소중한 것들이 관련된다. 그 꿈은 혼자만의 꿈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꿈이 된다.
중턱에 오를때까지는 정말 힘들고 긴 시간이 요구된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높은 곳에 오르면 오를수록 더 쉬워지고,
편해지지도 않는다. 더욱 어려운 일들도 발생한다.
꿈을 향해 오르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꿈을 포기한다.
그리고 결국 꿈의 정상을 오르느데는 소수만 올라가게 된다.
중도하차를 하는 이들이 많다. 꿈의 반대는 꿈을 꾸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포기다. 즉 중도포기다. 포기하는 것은 꿈을 무력화한다.
높은 곳으로 오르면 공기는 희박해지나 중력의 영향을 덜 받는다.
드높이 나는 새중에 하나는 독수리이다. 이들은 날개짓을 되도록 하지 않는다.
바람의 힘이나 떠오르는 공기의 힘으로 하늘에 뜬다. 그리하여 하늘의 왕자로 군림하는 것이다.
이 독수리들은 눈이 어찌나 밝고 예리한지, [이글 아이] 라고 하면 정밀하고 멀리에 있는 사물도 제대로 본다는 말의 대명사가 되었다. 독수리들은 자신들이 하늘의 왕자가 되기까지 무수한 훈련과 연습을 거친다. 독수리들은 부모새들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약한 독수리새끼는 버티지 못하고 강하고 튼튼한 독수리새끼들만 창공을 나르는 존재가 된다.
높이 나는 갈매기나 독수리를 통해서 우리는 꿈과 비전을 갖는다.
갈수록 강해져야 하며, 고독해져야 한다. 그러면서 군림하는게 아니라, 자유해지는 것이다. 높이 난다는 것은 그만큼 중력을 거부하고, 고독해지는 것이며, 그러면서 우뚝 서는 것이다. 군계일학이 바로 그것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면 아래의 사물들은 참으로 작게 보인다.
어떤 한계선도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끝모를 지평선만 아득하게 보인다.
자신은 커지고, 자신 외에 다른 사물들은 작게 보인다.
여기서 포부가 커지고, 두려움이 변하여 자신감이 생긴다.
갈매기의 꿈은 맹자의 [호연지기]를 너무나 닮았다.
높은 곳에 오르면서 호연지기를 배운다.
호연지기라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의외로 단순한 말이 아니다.
얼마전에 [호연지기]에 대한 노유학자의 특강을 들었다.
그 말의 연유는 맹자로부터 시작이 되지만,
대스승인 공자님도 그와 비슷한 말을 하였고,
율곡 이이 선생님도 자신의 [성학집요]에서 그런 말을 하였고,
심지어 다산 정약용 선생도 [목민심서]에서 그런 말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다각도로 [꿈과 호연지기]를 살펴보았다.
율곡 이이 선생은 [성학집요]에서 맹자의 글을 인용하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 호연지기 됨됨이는 지극히 크고 굳세니, 이것을 자신의 정직함으로 기르고 해치지 않으면 천지 사이에 가득 차게 된다."
나는 이 호연지기야말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정신이라고 부르겠다.
원래 이 말은 맹자가 제나라에서 제자 공손추와 나눈 대화에서 유래한다.
"선생님이 제의 대신이 되어서 도를 행하신다면 제를 틀림없이 천하 의 패권국가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도 아마 동심(마음의 움직임)을 느끼실 것입니다."
"나는 40이 넘어서부터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없네"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법(부동심)은 무엇입니까?"
맹자는 그것을 용이라고 불렀다. 심중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어떠한 것이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대용이라고 한다.
"선생님의 부동심과 고자(맹자의 논적이며 성선설을 거부하고 성무선악설 주장)의 부동심과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고자는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은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는 소극적이다. 나는 알고 있다.(지언). 거기에다 호연지기를 기리고 있다. 지언이란 피사(편협한 말), 음사(음담패설), 사사(간사한 말), 둔사(어리석어 피하는 말)를 가려낼 수 있는 명(밝음)을 갖는 것이다. 또 호연지기는 평온하고 너그러운 화기(화목한 기운)을 말한다. 기는 매우 광대하고 강건하며, 올바르고 솔직한 것으로서, 이것을 해치지 않도록 하려면, 천지간에 넘치는 우주 자연과 합일하는 경지다. 기는 의와 도를 따라 길러지며 이것을 잃으면 시들고 만다. 이것은 자신 속에 올바른 것을 쌓아 올림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
호연지기란 곧 인간의 도리이며 이러한 인격의 아름다움(인격미)에서 출발한 것으로 자신의 선한 모습을 찾도록 수련하며 언제나 두려움없는 도덕적 용기를 갖는 것이다.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는 "아이들에게 법의식보다 정의감을 먼저 가르쳐라. . 법의식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배우는 것이지만, 정의감은 어려서 기르지 않으면 않된다" 라고 하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호연지기라는 말을 쓰셨다.
다산 선생께서는 "호연지기란 도의에 근거를 두고 굽히지 않으며 흔들리지 않는 정기요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럼 없는 용기"라고 풀이한다.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으면 몸이 평안해져서 호연지기가 절로 있게 된다." 참으로 전율이 느껴지는 말이 아닌가!!
재차 말하지만, "호연이란 넓고 깨끗함을 허용하는 것이며, 호연지기는 크고 넓게 뻗어가는 깨끗하고 힘찬 기운이다"
이러한 글을 쓰면서
오늘날의 사회가 물질적으로도 오염이 많이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도 오염이 되거나, 심지어 황폐화되었음을 발견한다.
요즘의 청소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호연지기]이다.
신라의 화랑들을 보면 그렇다. 그들에게 있어서 [호연지기]야 말로
그들을 미래의 지도자로 이끄는 정신적 버팀목이 되었다.
[도덕적 용기]를 갖춘 청년지도자들이 현대에 와서도 더욱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사회를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헬 조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자격을 갖추지 않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헬 조선에 같이 살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탓이며 운명주의이다. 가슴속에 고래 한마리를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다. 호연지기가 없으면 참된 청년이 아니다.
갈매기처럼 꿈꾸고 높은 기상의 [호연지기]를
갖는 것은 나이들어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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