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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강연 이야기

고 김진영 철학자 - 아침의 피아노를 읽고서

by 코리안랍비 2022.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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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배우며
아침의 피아노 - 고(故) 김진영 철학자


"아침의 피아노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피아노에 응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들렸다. 피아노는 사랑이다. 피아노에게 응답해야 하는 것, 그것도 사랑이다"

요즘은 축복속에서 기억하는 이들을 주려고 캘리그라피를 그리고 있다. 그것도 일종의 사랑의 행위일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나도 나름대로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작은 소원이 있어서다. 오늘은 [아침이 피아노]에서 나온 대목을 쓴 어느 작가의 작품을 보고서 잠시 그려보기로 하였다. 대전에서 사역하는 캘리그라피의 그림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옮겨 적으면서 내가 읽었던 김진영 철학자의 책도 같이 다루어보기로 하였다. 

캘리그라피는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글씨다. 이전에는 테크닉적으로 그린 것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테크닉이라는 것이 과연 필요할까? 일정부분 필요하지만 그 이상은 다른 감성적인 부분으로 채워야 한다. 사람의 감성이라는 것은 참 미묘하다. 계절의 변화나 날씨의 변화보다 더 미묘한 게 인간의 감성이다. 그 감성 덕분인지 시를 보면 감동을 느끼고, 슬프면 눈물이 나고, 외로우면 외로운 이들을 생각하게 한다. 

요즘은 나는 내 감성에 더 충실한 것이 좋다. 그래서 감성에 충실한 책들이 더 좋아진다. 어렵고 현란한 책들은 멀리하고 사람다운 냄새가 나는 책들이 좋아진다. 오늘은 비가 온다. 비가 오면서 세상이 맑고 더욱 투명해지기를 기대한다. 그러면서 그러한 감성으로 손에 잡힌 책이 있다.

그러한 책중에 고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 라는 책이 있다. 그 작가는 이거 하나 제대로 남기고 얼마전에 세상을 떠난 이다. 떠난 이를 생각하는 것도 눈물을 흘리게 한다. 하늘에 떠 있다가 없어지는 구름 조각같은 인생이며, 부평초 같은 인생이라고 하지만, 일찍 떠난 이들에게서 느끼는 것은 ‘회한의 감정’이 크게 든다. 암이라는 것이 무섭지만 누구나 겪을 일이다.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이 아니다. 어느 날 어느 순간에 찾아온 불청객이다. 그 불청객은 잠시 있다 떠나는 나그네가 아니다. 오랫동안 머물다가 괴롭히고 괴롭히고 결국은 그 사람을 못쓰게 만든다.


얼마전부터 故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를 읽는 일은 어렵고도 힘든 일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읽을 수 있는 분량인데도 그랬다. 메모 하나하나를 따라 읽는다는 건 김진영의 마지막을 향해 나가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그가 베란다에서 듣는 피아노 소리, 바라보는 바깥의 풍경, 소란스러운 삶의 움직임, 가만히 벤치에 앉아 마음을 다스렸을 시간, 내리는 비를 보면서 든 생각. 그 모든 것이 요란하지 않았고 단정했고 명확했다. 죽기 3일전까지 섬망이 오기까지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메모와 메모로 이어지는 그의 생각들은 모두 진실이고 사실이다.

살 만큼 살았다는 건 어떤 것일까. 살 만큼이란 시간은 얼마를 의미하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내게 죽음은 저 멀리 있는 불확실한 명제가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를 또렷하게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나는 자주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고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앞에 생은 유한하다.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산다는 것 슬프기도 하고, 안위가 되기도 한다. 언제 내게 도래할지 모르는 그 마지막에 대해 종종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바람인 것이다.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 234개의 짧은 글은 삶의 순간에 충실한 태도였고 의지였다. 분명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을 텐데, 그 어떤 징후도 찾을 수 없고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슬픔이 몰려왔다. 그 글속에서는 평온함이 깃들여져 있었다. 고 김진영 작가의 [아침의 피아노]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암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비 오는 날 세상은 깊은 사색에 젖는다. 그럴 때 나는 세상이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가득하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세상을 사랑하는지도 안다. (75. 92쪽)”

“나는 나를 꼭 안아준다. 괜찮아, 괜찮아…… (122. 145쪽)”

어떤 시간은 아주 천천히 오고 어떤 시간은 너무 빨리 온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이어지는 의사와의 면담, 가족과 지인들의 연락. 그 모든 것이 특정한 시간에 다 도착했을 것이다. 김진영은 그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삶의 균형을 잡은 것 같다.
그런 평정심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는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도 칼럼을 연재하고 책을 읽고 철학자의 시선을 놓지 않았다. 롤랑 바르트, 마르셀 프루스트, 니체, 그들을 언급하며 사유하는 시간을 잊지 않았다. 읽다 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가끔씩 펼쳐보는『애도 일기』와 나는 조금 더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아침의 피아노』도 그러할 것이다.

“모든 것이 꿈같다. 그런데 현실이다. 현실이란 깨지 않는 꿈인 걸까. 그 사이에 지금 나는 있다. (24. 34쪽)”

“때와 시간은 네가 알 바 아니다. 무엇이 기다리는지, 무엇이 다가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것은 열려 있다. 그 열림 앞에서 네가 할 일은 단 하나, 사랑하는 일이다. (105. 125쪽)”

“내가 사랑했던 것들. 그 모든 것들을 여전히 나는 사랑하고 있다. 이전보다 더 많이 더 많이 …… 이것만이 사실이다. (203. 243쪽)”


읽는 내내 눈물샘이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죽어가는 사람의 살아있는 글을 읽는다는 것은 나를 떨리게 한다. ​
삶은 유한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그것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삶을 지속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해 깊은 사유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것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묻는다. 생의 마지막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무엇에 감사하고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

고 김진영 님의 말처럼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수많은 말과 글들이 떠다녔지만 선택된 말은 사랑이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은 사랑에 포위됐다. 사랑한다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진부하고 평범한 말, 우리가 만든 거룩하고 고귀한 말. 아픔이 있고 위로가 필요한 곳에 사랑을 전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조용한 손길에 담긴 사랑.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말고 잡고 있어야 하는 사랑.

우리에겐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생, 사랑했으니 후회 없는 생을 살라고 그는 말하는 듯하다.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하는 일은 너무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사랑을 기억하고 살아간다면 조금씩 회복될 것이다. 김진영의 바람처럼 이 책은 그 사랑을 기억하고 어루만지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분명한 일이다. 삶을 사랑하는 일,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는 사랑, 그 모든 걸 껴앉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애도의 시작이며 끝은 아닐까.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해진다. 이제 주어진 삶도 선물임을 알아 더 우아하게 살 일이다.

고인은 그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저 삶으로, 죽음으로 [아침의 피아노]라는 글을 남긴 것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남아야 하는가, 사랑으로 남아야 한다. 그래야 잘 산 것이다.

고인의 책 중에 있는 아포리즘을 캘리그라피로 담아 보았다.
“삶은 향연이다.
너는 초대받은 손님이다.
귀한 손님답게
우아하게 살아라”

드문 드문 이 책이 생각나면
이제 아침마다 피아노 소곡들을 열심히 들을 참이다.
비가 온다. 이쯤에서 사랑하는 이도 왔으면 좋겠다.

  • 다음 출처 이미지
  • 어느 캘리그라피스트의 작품을 그려보다. 아침의 피아노의 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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