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너무나 힘들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집 근처에 에덴 교회라는 곳을 찾아서 늦은 밤 기도를 하게 되었다.
나의 기억은 힘든 상황에서 불평과 불만으로 일관했던 모습이었다.
집안은 재판중이었고, 어머니는 많은 상실감과 고통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셨다.
집안의 장남으로서 무력감을 가졌던 나로서는 기도라는 창구를 통해서
나 자신을 하나님께 아뢰고 싶었다.
그래서 에덴 교회의 예배당에서 그저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그곳에 어느 문구가 나의 가슴을 때렸다.
"감사할 수 있는 조건에서만 감사하지 말고
감사할 수 없는 조건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 순간 극한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나 자신이 너무나 힘든 시간에 주어지는 감사는 나의 기도가 되었다.
기도하면서 감사하고, 감사하면서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다.
감사,
참으로 많이 쓰는 말이지만
식상한 단어처럼 되어버린 말
감사는 단순히 말로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님을 그때 발견하였다.
그래서 수시로 나의 입에서는 '감사합니다. 주님' 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감사는 보석이다.
슬프고 힘들때도
감사할수만 있다면
삶은 어느 순간
보석으로 빛이 나게 된다.
이혜인 수녀의 [감사예찬]이라는 시에 나오는 싯구이다.
다시 감사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내가 받은 복을 세어본다.
받은 복을 세어보자.
우선 나에게는 살아있는 보석처럼 빛나는 3 딸들이 있다.
이 딸들은 언제나 사랑의 대상이고, 나의 섬김과 돌봄의 대상이다.
이제는 많이 장성하여 대학도 다니고, 고등학교도 다니고, 아직은 어리지만
초등학교에 다디는 막내도 있다.
두번째로 아직은 건강한 몸을 주셔서 감사하다.
아직 건강하기에 일할 수 있고, 그리고 건강하게 아내도 일하는 모습에 감사하다.
건강은 원래 '부'와 관련이 있다. 히브리어로 '부자'는 아쉬르라고 한다.
이는 눈, 이, 손, 발이 합쳐진 단어라고 한다.
놀랍다. 신체가 건강한 사람을 유대인들은 '부자'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나도 부자이다.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을 세어본다.
아직도 내게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감사하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섬겨주고, 자신이 받은 은혜를 나누어 주는 분들이다.
이들은 사실 나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나와 동행하는 사람들은 나의 스승이다.
또한 자연에게도 감사하다.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때는 잠시 산에 오른다.
나의 건강을 위한 행보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추스리고 다시 기도하면서 힘을 얻는 공간이 산이다.
산에 책도 들고 간다. 산에 책을 들고 다니면서 산책을 하면
저절로 마음속에 천국이 그려진다.
자연의 맑은 공기, 그리고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인사도 나누고,
건강과 안부도 묻는다.
교회 사람들에게도 감사하다.
같이 식사교제를 나누는 시간도 감사하다.
나의 연구소 옆에 있는 식당분들에게도 감사하다.
늘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주시고 공궤해 주시니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친절한 말과 다정한 어투로 대해주는 모습도 감사하다.
세월이 흐르는 것도 감사하다.
눈가에 잔주름이 생기고 이마에 주름이 생기지만
그래도 웃는 시간이 있고, 그리고 웃어주는 대상이 있어서 감사하다.
가끔은 두통도 감사하다.
머리가 아프면 맑은 물을 마시고, 깊은 숙면을 취하게 해준다.
그러면 두통도 사라지고 어느새 말끔한 정신으로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비교하지 않아서 감사하다.
나는 나 자신과 비교하려고 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비교한다.
남과 비교하는 것은 바보들이 하는 것이다.
참으로 감사할 '꺼리'들은 너무나 많다.
감사의 '제목들'도 너무나 많다.
살다보면 감사할 일만 가득한 것 같다.
불평하면 그만큼 나의 자아는 신장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불평하면 문제가 해결되기보다 문제가 꼬이는 경우가 더 많다.
불평을 하는 것은 사실 불신에서 나온다고 한다.
불신하고 불평하는 것은 감사를 멀어지게 하여
삶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대인관계도 복잡하게 만든다.
감사하자, 감사하자, 감사하자, 이 명령에 순종하려고 노력한다.
성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다. 그러므로 감사는 명령이다.
보석처럼 빛나는 삶을 위한 주춧돌이 바로 '감사'인 것이다.
오늘 주어진 이 시간에 감사한다.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자주 '감사하다' 라는 말을 사용하려고 한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마운 자연에게,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천지와 만물을 주관하시는 만유의 주재께도 감사를 드린다.
감사합니다. 주님 !
'시와 칼럼과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남은 자의 슬픔, 베르톨트 브레히트. (0) | 2023.01.23 |
---|---|
T. 제프란, 그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 시랑 살래 ! (0) | 2023.01.23 |
불멸의 가수 김광석으로 인문학하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4) | 2022.12.28 |
김종길 시인, 성탄제, 붉은 산수유 열매 (0) | 2022.12.19 |
이룸과 희생 - 제임스 앨런의 책중에서 (1) | 2022.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