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류근과 가수 김광석의 만남
그리고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오늘의 날씨는 가수 김광석을 닮았다.
이렇게 표현하면 맞으려나 싶다.
비가 하루 종일 내려서, 대지를 적시고, 산천초목이 모두 빗물에 씻겨나가는 날씨다. 마음이 약간 센치해지고 아드레날린이 분비가 더 일어나려는 찰나에, 불현듯 가수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싶었다. 특히, 4집을 듣고 싶었다. 김광석은 5집을 준비하다가 자살을 하였다.
그래서 사실상 그의 마지막 음반은 4집이다. 이 4집에 불후의 명곡들이 담겨 있다. 나는 골고루 듣고 싶어서 김광석의 노래를 부른 후배 가수들을 일일이 검색하면서 한곡 한곡 애정을 갖고 들었다.
가수 에일리는 그의 노래를 애절하고 풍부한 성량으로 불렀다. 이 곡은 가수 김광석의 애타는 심정을 너무나 잘 나타내고 있었다. 또한 [불후의 명곡]에 출연한, 이 세준 버전도 들었다. 에일리의 곡을 들을 때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는데, 이세준 가수가 부를 때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 사이에 내가 마신 커피는 3잔이 되어 가고, 한 손에는 코엘류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성서 아담과 하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읽어볼만 하다.]를 읽게 되었다.
김광석 4집 '네 번째'는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일어나',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아니었음을',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 국내 대중음악사를 빛냈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으로 선정되었다.
나는 고 김광석 가수를 두번이나 실제로 본 기억이 난다.
항시 의자에 앉아서, 기타 하나 들고, 하모니카를 차고서 마이크를 입까지 가까이 대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우울한 소리를 자주 연발하였다. "여기까지만 살고 싶어요" 우울한 얼굴에 우울한 목소리로 부르는 그에게서 이상한 연민을 느꼈다. 지금 그가 살아 있으면 만 53살이 된다. 나보다 몇년 선배이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저항가수의 모습이 눈에 아련하다. 나중에 들었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먹먹해 왔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였던가?" 가객 김광석은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났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인데 그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젊은날 떠난 거장 김광석은 [우리 형] 같았다.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김광석의 노래를 자주 불렀다. 오늘 다시 그의 노래를 들으니, 별별 생각이 난다. 그러면서 가슴속에 별이 차올랐다.
세월이 흘러서, 김광석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퍼지고,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4집에 나온 곡들이 히트를 쳤고, 후배 가수들로부터 불리워지고, 영화화되고, 심지어 [김광석 거리]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김광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한 독일 밴드는 김광석 추모곡을 만들며 그를 '한국의 밥딜런'이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그의 목소리는 듣는이의 가슴을 파고드는 목소리인 게 분명하다.
오늘은 4집중에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에 대한 글을 나누고 싶다. 이 곡은 실은 류근 이라는 시인이 작사한 것이다. 문예창작과를 나오고 사업으로 대박을 쳤던 류근 시인을 가수 김광석은 무척 좋아하였다. 그래서 그를 위하여 4집 앨범에 몇곡을 시로 써주었다. [바람이 불어 오는 곳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을 김광석 가수에게 주었고, 이것이 당대만 아니라, 후대에 공전의 히트를 쳤다.
사람들은 김광석은 잘 알아도, 류근 시인은 잘 모른다. 그래서 살짝 뒷조사를 하였다. 류근 시인은 은근 대단한 분인 것이 나의 검증이다.
류근 시인은 1966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충북 충주에서 자랐고, 중학교 때 서울에 올라온다. 중학교 때 그의 집은 풍비박산이 났다고 한다. 공무원이었던, 성정의 결이 부드러웠던 아버지가 사람의 말을 덥썩 믿고 횡령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고. 특히 경제적인 고통과 비참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시기에 문학이 그를 찾아왔다고 하니, 이것은 어쩌면 운명이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누님과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혼자 남겨진 시간 동안 수많은 책을 읽고 혼자 백지 위에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고. 그렇게 쓴 글이 흠모하던 국어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백일장에 나가 툭하면 장원을 먹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나중 그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으나 이후 작품 발표를 하지 않다가 등단 18년 만인 2010년, 시단의 관행을 깨면서 전작시집 『상처적 체질』(문학과지성사)을 첫 시집으로 출간했다. 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 등에서 일하다가 홀연 인도 여행을 하고 돌아와 강원도 횡성에서 고추 농사를 짓기도 했다. 대학 재학 중 쓴 노랫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김광석에 의해 불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류근 시인은 역사저널 KBS [그날]의 고정 패널이기도 하다.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이를 문학적으로 풀어내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시인이 류근이다.
류근 시인의 시를 다시 읽어본다.
그리고 가사를 음미해 본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은 아니다.
사랑은 완벽하지 않아야 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부족해야 한다.
부족해야 서로 채우면서 사는 것이 아닌가
부족한 사랑도 아프다.
또한 사랑은 아프기도 하다.
아픈 사랑을 해 본 사람은 그 사랑의 아픔을 몸으로 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멈추지 않는 몸살감기같이 아프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이 있을 듯 하다.
류근 시인의 언어의 유희에 우리가 농락당한 것 아닌가 싶다.
유학시절에도 가끔 김광석의 이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노래를 몇번이나 인터넷으로 들었다. 일단 제목이 주는 여운이 강렬했고, 몇번이나 들었는데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는 그랬다. 김광석과 친해지는 것도 쉽지 않은 바쁜 시절이어서, 불행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바쁘게 지낸 것 같다.
세월이 흘러, 40이 넘어가고 인생사의 절반을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다. 바쁜 일상과 더불어서 여러가지 세상소식들이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살면서 기쁘고 좋은 날만 있지 않다.
슬프고 좋지 않는 날도 있다.
기쁘고 즐거운 날에는 행복감이 배가 된다.
그런데 슬픈 소식을 듣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떠나게 되면 불행감이 커진다. 그럴 때도 나는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여간 김광석은 살며, 생각하며, 사랑하며 헤아릴 철학적 인간이다.
이상하게 오늘은 [김광석과 노래하기, 김광석과 철학하기, 김광석과 대화하기]로 한 날 같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 담긴 류근과 김광석의 만남, 그리고 나와의 만남 ㅡ 터치가 되고 여운이 남는다.
나는 그들의 그림자에 빚지고 있다.
두 사람의 합작품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은 불후의 명곡이다.
집의 구석지에 버려져 있는 기타를 다시 꺼내어서, 그 노래를 몇번이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잠들고 싶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 내리는
못 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랑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하루 바람이 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버리기
못 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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