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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이야기

1948 노벨문학상, 미국 T.S 엘리어트의 위대한 지혜 21

by 코리안랍비 2022.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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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시문학에 끼친 지대한 공로와 선구적인 업적을 인정받아 194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구글 출처 이미지

 

[진리는 천국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1. 장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백만 송이의 장미를 얻기 위해서는 천만 그루의 장미나무를 심어야 한다.

 

2. 진리는 천국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진리의 씨앗은 일찍이 천국의 담 밖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 일이 없다. 

 

3. 일상의 거대한 압박은 마치 빙하와 같아서 정체된 듯하지만 그렇다고 가로막을 수도 없다. 그것은 가장 격분한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가장 격앙된 혁명을 진압할 수 있다.

 

4. 우리가 시작이라 부르는 것은 종종 끝을 의미하며, 끝의 선언은 또 다른 시작에 착수한다는 의미이다. 

종점은 우리가 새로운 출발을 하는 곳이다. 

 

5. 모험은 언제나 새로운 출발점이며, 아직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존재에대한 공격이다. 

 

6. 시란 감정의 해방이 아니라 감정을 뚫고 나오는 것이며, 인격의 표현이 아니라 인격으로부터 초월하는 것이다. 

 

7. 가장 쉽게 읽히는 문학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그리고 강하게 독자들을 감화시킨다.

 

8. 역사는 시작과 끝이 없는 순간적인 형식이다. 

 

9. 세상은 거대한 울림의 소리로 끝나지 않고 처량한 흐느낌으로 끝난다.

 

10. 우리 느낌을 생생하게 표현한 후에야 이해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시를 판가름하는 기준이다.

 

11. 역사 의식이란 역사의 과거사적 의미를 인식해야 할 뿐 아니라 역사의 현실성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12. 시란 감정의 해방이 아니라 감정을 뚫고 나오는 것이며, 인격의 표현이 아니라 인격으로부터 초월하는 것이다. 

 

엘리엇의 명시선 - 황무지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추억과 욕정이 뒤섞고…”

 

13. 진정으로 위대한 시인의 시는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시인은 백 년이 지난 후에도새로운 시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그들의 시는 살아 있는 언어로 지속적인 작용을 한다. 

 

14. 소위 역사의 눈이라는 것은 시간을 투시하는 능력을 가르킨다. 즉, 과거 시대에 대해 그것이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그 영향력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15. 너무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구글 출처 이미지 - 엘리엇의 명언중에 명언

 

   <잠시  T.S.  엘리엇의 시를 여기에 옮깁니다.> - 월간 조선 발췌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이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슈타른버거 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이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 태공(太公)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 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인자여, 너는 말하기는커녕 짐작도 못 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 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르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
  〈바람은 상쾌하게
  고향으로 불어요
  아일랜드의 님아
  어디서 날 기다려 주나?〉
  “일 년 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아신스를 줬지요.
  다들 저를 히아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하지만 히아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한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께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 보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적을 들여다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황령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
 
  - 엘리엇 ‘황무지’ 전체 5부 중 1부 전문
 
 
  THE WASTE LAND
  T. S. ELIOT
 
  1. The Burial of the Dead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Summer suprised us, coming over the Starnbergersee
  With a shower of rain; we stopped in the colonnade,
  And went on in sunlight, into the Hofgarten,
  And drank coffee, and talked for an hour.
  Bin gar keine Russin, stamm’aus Litauen, echt deutsch.
  And when we were children, staying at the arch-duke's
  My cousin's, he took me out on a sled,
  And I was frightened. He said, Marie,
  Marie, hold on tight. And down we went.
  In the mountains, there you feel free.
  I read, much of the night, and go south in the winter.
 
  What are the roots that clutch, what branches grow
  Out of this stony rubbish? Son of man,
  You cannot say, or guess, for you know only
  A heap of broken images, where the sun beats,
  And the dead tree gives no shelter, the cricket no relief,
  And the dry stone no sound of water. only
  There is shadow under this red rock,
  (Come in under the shadow of this red rock),
  And I will show you something different from either
  Your shadow at morning striding behind you
  Or your shadow at evening rising to meet you;
  I will show you fear in a handful of dust.
  〈Frisch weht der wind
  Der Heimat zu
  Mein Irisch Kind,
  Wo weilest du?〉
  “You gave me hyacinths first a year ago
  “They called me the hyacinth girl.”
  ‐Yet when we came back, late, from the Hyacinth garden,
  Your arms full, and your hair wet, I could not
  Speak, and my eyes failed, I was neither
  Living nor dead, and I knew nothing,
  Looking into the heart of light, the silence.
  〈Oed’ und leer das Meer.〉

 

계절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뭘 세우고 있는지 살펴야 할 시점이다. 즉, 지금이 시인 엘리엇의 시 ‘바위(The Rock)’에서 언급하듯이 “당신은 잘 지어지고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자신에게 질문하기에 가장 적절한 계절이라 할 수 있다.

1934년, 엘리엇은 런던 근교의 45개 교회 건물 건축 기금 마련을 위해 시 ‘바위’를 저작했다. 적절하게도, 그는 건물이라는 주제를 자주 다뤘는데, 여기서 건물은 비단 교회 건물들만이 아니라, 친밀한 공동체, 기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찾는 사람들, 소외와 허무로부터 구별된 공간을 찾는 사람들의 진정한 교회를 포함한 개념이었다.

엘리엇은 “진정한 교회는 마땅히 영원한 건물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끊임없는 내적인 쇠퇴와 밖으로부터의 공격 때문”이라 지적하면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건물을 제대로 지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교회가 기반을 둔, 공동체와 기관들을 생각해 보면, 기껏해야 우리의 손길이 조금 닿았다고 할 수 있다. 엘리엇 시대 이후 전반적인 면을 볼 때, 서구 교회가 쇠락의 여러 징후를 보일 때, 사회도 혼란과 소외, 허무함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종교로부터의 이탈이 급속히 증가했고, 신앙을 지키고 있는 우리조차 자주 현대 생활의 무관심하고, 해체적 경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식 민주주의’에서 분석하고, 로버트 풋남의 책 ‘혼자서 볼링하기(Bowling Alone)’에서 칭송했던, 지역 관계, 비즈니스, 그리고 민간 사회의 붕괴 속에 우리 역시 둘러싸여 있다. 엘리엇이 자신의 사회에서 봤듯이, 우리 역시 “어디에도 정착할 곳이 없는 것”처럼 공동체 의식이 너무 약해져 있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그의 이웃이 누군지 알거나 신경 쓰려 하지 않네
그의 이웃이 너무 심하게 소란을 피우지 않는 한

공동체의 황폐화를 지적하면서 엘리엇은 “선한 것을 건축하고 있으면, 그 선한 사람이 건축가”라고 조언하였다. 그의 이 말은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26)는 구절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행위 없이도, 바른 신념을 가질 수 있다는 야고보의 논쟁적 주장을 반영하고 있다. 엘리엇은 과거 세대의 유산에만 의존하고,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현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엇은 “지금 행해지고 있는 것들 / 오래전에 행해졌던 것들 가운데 몇 가지” 그리고 “겸손한 사람들의 사역”을 통해서 제대로 짓는 법을 잘 배울 수 있다고 조언한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지음에 대한 아이디어를 위해, 우리는 가까운 곳과 먼 곳에 있는 교회 모두를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예를 들면, 나는 공동 소유를 유지하면서, 멤버들이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아나뱁티스트(재셰례파)의 한 지부인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매료되어 있다.

브루더호프 웹사이트가 언급하듯이, 재정까지 포함한 일상에 있어서,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그들 특유의 모델이 꼭 예수를 신실하게 따라야 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그 공동체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으며, 내 삶이 어떻게 빚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놀라운 간증이며, 내 개인의 신앙적 삶에 대한 건강한 도전이다.

“오래전에 행해졌던” 것들에 대해 말하자면, 교회 역사 자체가 풍성한 지혜와 경고라 할 수 있다. 복음주의 계열 교회의 최근 한 가지 희망적인 경향은 교회력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다. 내가 대학 입학 전에 출석했던 6개의 복음주의 교회 어디에서도 사순절이나 성탄절과 부활절 후속 절기를 지키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복음주의자들이 일상의 소음을 깨고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의 한 부분을 통해, 하나님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하나님 나라를 상기시키기 위해 교회력을 활용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의 건축에 도움이 될만한 이전의 것들을 언급하자면, 공적인 교리문답 학습, 성경 암송, 그리고 주일 성수 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여러 세상의 다른 주장들과 함께, 사회적 삼투 작용으로 인해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는”(에베소서 4:23) 일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새롭게 되기 위해, 이런 의도적이고 세상적인 제자도의 틀을 털어낼 필요가 있다.

역사 가운데의 경고들은 나를 ‘겸손의 사역’으로 이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의 권력, 부, 영광을 증진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선한 것을 건축할’ 수 없다. 우리의 임무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섬김으로,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적합하게 준비되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고전 15:58)가 되도록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다.

건축에 있어서 겸손이 빠지면, 우리는 바벨성에서 벌어진 죄의 위험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겸손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면, 올 한해 우리는 선한 것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엘리엇이 “지을 것이 많고, 회복할 것이 많구나”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사역은 지체되지 않아야 하고, 시간과 노력은 낭비되지 않아야 한다.“

Bonnie Kristian은 The Week의 부편집장이며, A Flexible Faith: Rethinking What It Means to Follow Jesus Today.(유연한 믿음: 오늘 예수를 따르는 것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생각)의 저자이다. - 크리차니티 투데이 / T.S.  엘리엇은 독실한 기독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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