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비이드 소로의 [소로우의 노래] - 강은교 시인 작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작품은 [월든] [시민불복종] 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작품들이 여러가기가 있다. 우리는 독서하는 사람들이다. 독서하는 사람들은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들의 모든 작품을 다 사서 읽어보아야 한다. 물론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도 무방하다. 좋은 책은 어디에 가나 있으니까 말이다.
다만 우리는 부분적으로 읽고 그 저자나 글쓴이를 안다고 생각하는 근시안(마이오피아)적인 생각과 시각을 버려야 한다. 그것도 일종의 지적 교만이기도 하다.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범하는 큰 우려는 [책 한권 읽고서 마치 다른 저작들을 다 읽은 것처럼 구는 저속한 태도] 라고 할 수 있다. 소로우의 다른 저작들도 읽기를 권한다.
그의 작품들을 연구하여 만든 명작이 있는데 바로 [소로우의 노래]이다.
물론 [소로우의 노래]는 동아대 명예교수로 있는 [강은교] 시인이 오랫동안 소로우의 작품을 읽고 엄선한 글들을 중심으로 사색한 결과물이다. 나는 작년에 그 책을 사고도 다시 읽지를 않았다. 다시 읽으면서 나의 감동을 나눈다.
소로우 예찬론자가 대한민국에는 상당히 많다. 소로우처럼 살지는 못하지만 소로우의 단순하면서 소박한 그러면서 깊이가 있는 라이프를 동경한다는 것이다.
자연주의의 삶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삶을 추구한
소로우의 라이프가 주는 깊은 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도시인으로 살면서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어머니의 가슴같은 고향, 산과 강, 그리고 풀과 돌들이 주는 아름다움을 외면하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소로우는 우리에게 자연의 소중함, 고향의 중요성을 일각시켜주는 사람이다.
그는 하버드대학을 나왔지만, 도시의 화려한 삶을 버리고 월든 숲으로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단 한개의 침대와 3개의 의자만을 만들어서 최대한 간소한 삶을 추구하였다. 그는 현대의 [미니멀리즘]의 원조라고 불러도 좋다.
그는 의자에 앉아서 일출과 일몰을 보며 사색하고, 봄과 가을의 숲과 구름과 새와 나무 그런 것들을 깊은 관찰력을 가지고 보았을 것이다.
그의 눈은 우리와 같은 구조를 가진 눈이었지만, 그의 눈은 특별하고 다른 눈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그가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오늘 나는 [소로우의 렌즈]를 착용하기를 권한다.
그의 중요한 사색의 언어들을 다룬 [소로우의 노래]를 권하면서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구절을 여기에 남겨 본다.
<<이 세상에는 두 개의 시각이 있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두 개의 시각, 성장으로 보는가, 아니면 쇠퇴로 보는가!
시인의 눈으로 보면 신의 눈으로 보듯이 삼라만상은 활기차고 아름다워 보이리라. 그러나 역사의 눈으로 본다면, 혹은 과거의 눈으로 본다면 모든 것은 활기없고 공격적으로만 보여지리라>>
참 멋진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이래서 독서하는 재미와 즐거움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남이 모르는 즐거움, 이 즐거움을 먼저 맛보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 즐거움의 조각을 떼어서 공유한다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이다.
세상에는 매일 보면서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것은 마치 진리를 찾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인생이 진리를 추구하고, 의미를 추구하고,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재고할 가치가 없는 인생이다. 우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며 그저 흘낏 그 일부만을 바라볼 뿐이다.
며칠전에는 아주 근사한 호숫가 카페를 가 보았다.
시설이 너무나 훌륭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다.
그런데 나는 그곳을 두번 다시는 가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커피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아무런 정취나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오기에 사람들의 잡음도 정말 싫었다.
그런 멋진 카페이지만 아무도 책을 들거나, 시를 쓰거나, 신문을 보거나, 교양적인 면도 전혀 없는 곳이었다. 그저 먹고 마시는 1차원적인 질서만 있는 곳이었고, 이제는 출입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마시고서 곧바로 나와 버렸고, 호숫가를 3-4킬로 걸었더니 이상하게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내 속에는 다시 기쁨이 차오르고 새힘도 생겨났다. 걸었더니 나의 자아도 신장되는 것이다.
이제는 그저 집에서 직접 원두커피를 내려서 보온병에 담고
소로우의 책이나 바이블을 들고서 호숫가에서 읽어 보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아산에는 아주 근사한 신정호라는 호수가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남산이 있다. 그래서 남산을 오르고, 그 호숫가에서 낙엽을 밟으며, 날아가는 물새들을 바라보고, 석양이 지는 것을 보는 것이 나의 낙중에 하나이다.
소로우급은 아니지만, 적어도 소로우의 삶의 발자취는 따라가는 정도는 되리라. 우리는 우리의 시각을 사람편에서 보다, 과거편에서 보다, 하늘편에서 시인의 눈으로 혹은 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소로우는 월든 숲에서 세상을 보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우리는 독서의 숲에서 세상을 보는 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숲으로 가서, 자연으로 가서 세상을 보는 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삶을 부정적으로 보는가,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삶을 생명의 눈으로 보는가, 아니면 죽음의 눈으로 보는가,
소로우는 월든 숲에서 그러한 시각의 차이를 선명하게 구별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는 매우 젊은 나이인 47세에 작고하였다. 그의 짤고 그러나 강렬한 삶은
삶의 의미와 목적이 왜이리 중요한지를 알게 해준다.
오래전부터 소로우의 책을 모으며
그의 책을 읽으며
그의 사상을 읽으면서
느끼는 삶의 가치관이 있다.
키케로의 말처럼 "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옳게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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