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스승 모리와
유대인 제자 미치 엘봄의 대화
여기서 배우는 진정한 우정에 대하여
미치 엘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매일 아침이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잠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일입니다. 하루를 여는 기도를 하고, 그리고 마음에 ‘주어진 선물 같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를 잠시 생각해 봅니다. 그 잠시의 생각을 위해서 커피 한 잔을 준비하기도 하고, 차 한잔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베네트라는 학자는 ‘아침의 차 한 잔이 인생을 결정 한다’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을 보면 ‘아침의 5분을 반드시 차와 함께 기도하면서 보내라’ 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이 그냥 허무하게 보내기에는 너무나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어느 것보다 귀하고 소중한 자신을 위해서 잠시 5분의 시간을 가지고 하루를 준비하는 것은 ‘영원의 한 순간’이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 영혼의 도약’을 위한 것입니다. ‘영혼의 도약’을 간절히 바라면서 만나게 된 책이 바로 ‘미치 엘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영혼의 도약]이 필요합니다.
2010년에 읽은 책이지만, 가끔씩 서재에서 ‘모리 선생님’을 찾아뵙습니다. 그 선생님과 만남에서 건진 명문장들을 여기에 소개하고 싶습니다.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건진 최고의 명문장
어떻게 할지 모르는 사람을 위하여<동아일보에 나온 기사를 잠시 인용>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일들을 하라구,
그런 일들을 하게 되면 절대 실망하지 않아.
우리의 문화는 우리 인간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네.
우린 거짓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구,
그러니 제대로 된 문화라고 생각이 들지 않으면
굳이 그것을 따르려고 애쓰지는 말게,
그것보단 문화를 창조하게"
세상에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없는 인생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문제가 있는 곳에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이 있다고 믿습니다.(Where there is a problem, there is a solution)
그렇게 우리는 자라면서 문제와의 싸움을 합니다. 그 사이에 갈등하고 걱정하고 고민합니다. 생노병사의 인생사에서 문제없기를 바라서는 절대 안 됩니다. 문제없기를 바라는 것은 희망사항도 아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그 문제라는 것을 통해서 ‘인생의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완벽한 인생은 없습니다. 부족한 인생을 우리는 개선하고 고쳐가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生)의 과정에서 문제를 적게 하려고
좋은 대학을 갈려고 하고, 좋은 직업을 가질려고 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고 합니다. 좋은 곳에서 살면서 편안하게 즐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쉽지 않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 어느 상황에 Yes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No라고 하나 선택적 갈등에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적 갈등’은 자주 일어납니다. 물론 사르트르가 말한대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삶과 죽음 사이에 C(CHOICE 선택]이 있습니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선택입니다.
안정이 될 법한 기성세대의 나이가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더 벌어야 하나' , '사람을 더 만나야 하나' , '직업을 더 가져야 하나' 여전히 갈등과 선택의 문턱에 늘 놓이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책임감의 짐도 늘어나고, 인생고에 더욱 시달리게 됩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서 인생의 방향과 나침반을 찾아보고자 아기죽거리지만? 실상은 답을 구하기 힘듭니다. 다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많고 적음, 높음과 낮음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자기편향적인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기에, 어떤 도움을 받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집안 식구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랄 때는 서로 사랑하고 돕는 것 같은데,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면 각자 제 갈길로 다니기 바쁩니다.
이럴 때 나는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지?' 하며 갈등이 될 때, 책장에 꽂힌 '모리 선생님'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모리 선생님은 그저 ‘미치 엘봄의 선생님’만이 아니라, 인문고전 속에, 소설문학 속에, 성경과 탈무드 속에 있는 ‘선생님’들도 포함합니다.(어느 교수님의 글 잠시 인용)
다만 나는 그 아이디어를 ‘모리 선생님’에게서 얻습니다.
이 책속에서 "모리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웬지 편안해지고, 든든해 질 것만 같다." 라는 기분으로 말입니다.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선하고 좋은 쪽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분별력에서 나옵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중심적’으로 선택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서 행복을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도리어 행복을 되찾거나 지킬 수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배워야 하는 학생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모리 선생님 같은 분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다 알 것 같고, 인생의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도 우리는 배워야 할 수많은 숙제들을 안고 있는 학생입니다. 지혜롭고 어진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이런 스승이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정 없다면 책속에서 만나길 바랍니다.
"모리 선생님, 그립습니다. 어떻게 할지를 알려 주세요"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을 다시 소개하며
이 작품은 미국 작가 미치 앨봄(Mitch Albom)이 쓴 비소설입니다.
1997년에 출간된 이후 2020년 1월 현재 전 세계 50개국 1,700만부판매되었으며 205주 동안 《뉴욕 타임스》 비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정말 번역의 귀재인 공경희가 1998년에 번역하고 세종서적에서 출간되었습니다. 1999년 12월 5일에는 미국에서 TV 영화로 제작되어 방영되었는데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 제작하고 믹 잭슨(Mick Jackson)이 감독을 맡았습니다.
실화를 책으로 옮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주인공은 브랜다이스 대학교에서 사회학과 교수로 근무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던 모리 슈워츠(Morrie Schwartz) 교수와 그의 제자인 ‘미치 앨봄’입니다. 저자인 미치 앨봄이 브랜다이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모리 슈워츠 교수를 재회했을 때 당시 78세였던 모리 슈워츠 교수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으로 인한 죽음을 앞두고 있었는데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은 흔히 루게릭병으로 알려져 있다. 미치 앨봄이 14번 동안 매주 화요일마다 만난 모리 슈워츠 교수로부터 들은 인생 경험, 회상,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피겨의 여왕 김 연아 선수는 ‘자기 생애 최고의 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냥 읽으면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치유가 되는 책입니다.
■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책을 읽으면서 이제 시한부로서 3-4개월의 시간밖에 허락되지 않았던 모리 선생님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에 눈물짓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는 아직 젊어서 그런지 ‘죽음’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이 강합니다. 나이든 노인들을 만나보면 ‘어서 죽어야지’하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그 말 속에서 이 세상의 삶에 대한 강한 허무감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인생의 덧없음이라고나 할까 그러한 것들이 강하게 풍겨져 나옵니다. 하지만 모리 선생님은 달랐습니다.
아마도 유대인으로서 가치관이나 인생관 혹은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우리 인생을 마치 ‘영적인 여행’을 하러 온 ‘여행자’라고 보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책들을 소장하고 있지만 사실 ‘죽음은 모든 것이 끝’이라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리 선생님에게 그의 [죽음관]을 잠시 물어봅니다.
“모리 선생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죽는 것이 두려웠을까?”
이 책은 ‘14번의 화요일 미팅’을 다루면서 제자의 스승에 대한 사랑과, 마지막 가르침을 받고 싶어하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마지막 논문]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말은 은유적이지만 이제 모리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의 가르침을 담은 글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의 [강한 우정과 사제동행]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질문과 더불어서 [역지사지]의 모습으로 “내가 만약 모리 선생님처럼 3-4개월의 시한부 생명만 남았다는 가정을 해보면 어떨까?”입니다. 그러면 미치 같은 제자가 매주 화요일 날 14번씩이나 찾아올까요? 그리고 와서 녹음을 하고, 메모를 하고, 그리고 위로를 합니다. 나중 에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한국판 책으로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과연 나에게 그런 제자는 있을까요? 아마도 내 3명의 자식들 중에서 1명만 그렇게 와도 다행일 것입니다. 이를 생각하면서 나 자신도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존재에 대한 무관심과 그저 지나가는 정거장 같은 순간들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족, 우리의 친구, 우리의 이웃,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 속에서 과연 내 자신이 모리의 순간이 온다면 해 줄 수 있는 말과 교훈은 있을까? 하는 사색까지 하게 됩니다.
정말 마른 수건도 짜는 심정으로 온 힘을 다해서 말해줄 것은 있는가? 유언이 아니라 진정으로 삶의 철학과 정신이 담겨 있는 함축되고 진지한 그런 말들입니다. 이 책이 던져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부분에서는 ‘돈과 성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공의 정상을 향하여 달려가는 미치에게 모리 선생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미치, 마치 저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뽐내려고 애쓰는 중이라면 관두게. 어쨌든 그들은 자네를 멸시할거야. 그리고 자네보다 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뽐내는 것도 관두게. 그들은 자네를 질투하기만 할 테니까. 어느 계층(CLASS)에 속하느냐 하는 것으로 해결 되지 않아. 열린 마음만이 자네를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동등하게 만들어 줄거야”
여기서 모리 선생님은 미치에게 ‘살면서 중요한 것은 겸손과 열린 마음이라는 것’을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많이 가졌다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남보다 처지나 환경이 좋다고 해서 으스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나친 소유욕에 병들어서 많이 가지게 되면 덜 가진 사람들을 멸시하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과시욕’까지 갖습니다.
어느 스카이 출신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어려운 가정 형편을 가졌습니다.
일찍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었습니다. ‘공부만이 능사다’ 라고 여겨서 열심히 공부하여 명문대학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과외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나중에는 ‘사립교육기관’ 을 세웠습니다. 그렇지만 이때부터 겸손함보다는 교만함을 드러냈고, 다니던 교회에서도 마찰을 일으키고, 친구들은 모두 비교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친구는 손을 대는 일마다 ‘승승장구’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록 친구들은 그 친구를 부담스러워하고, 멀리하였습니다. 나중에는 그와 친한 친구들이 모두 떠났습니다. 가난한 사람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면서, 교만에 대해서도 부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겸손에 대한 오랜 수업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인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죽음에 대한 모리 선생님의 생각을 수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어간다는 것은 그저 슬픔거리에 불과하다네. 불행하게 사는 것과는 달라.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불행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모리 선생님은 죽음은 잠시 슬프고 힘든 시간이라고 여기면서, 다만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담아냅니다. 살아가면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도 짧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모리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이 불행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메멘토 모리’라는 니체의 말처럼 ‘죽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며 진지한 삶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진지한 삶의 자세’를 제대로 가져본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하루 루 바쁘게 살아가면서 ‘진지한 순간’은 과연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人間關係)입니다.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선택도 하지만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유대 철학자인 ‘마르틴 부버’는 ‘인간의 다른 이름은 관계다’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의 전반적인 부분들은 ‘관계’로 이루어집니다.
나의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작은 파도 이야기]로 대체합니다.
넓고 넓은 바다에 작은 파도가 있었다. 바람을 맞고 신성한 공기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자기 앞에 있는 해변에 있는 다른 파도들이 해변에 닿아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 맙소사, 이렇게 끔찍할 데가 있나, 내가 무슨 일을 당할지 저것들 보라구!’ 작은 파도는 말했다. 그때 다른 파도가 뒤따라왔다. 그는 작은 파도의 우울한 기분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짓고 있어?” 작은 파도가 대답했다. “넌 모를 거야 우리 모두 부서질 것이라고, 우리 파도들은 부서져 다 없어진 단 말이야. 정말 끔찍하지 않아!” 그러자 다른 파도가 말했다. “아냐, 넌 잘 모르는구나. 우리는 그냥 파도가 아니야 우리는 바다의 일부지”
우리는 여기서 “
우리는 그냥 파도가 아니라 바다의 일부다”라는 말에서 크게 공감을 합니다. 영국의 위대한 시인 존 던의 시처럼 “우리가 섬이 아니라 대륙의 일부라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지만 모두 ‘인간은 한번 죽는 운명’임을 직시한다면 우리는 그리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리 선생님은 미치에게 더욱 중요한 말을 해줍니다.
“삶은 ‘경험’과 ‘내려놓기’라는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모든 경험이 자신을 온전히 꿰뚫고 지나가고 온몸이 거기에 빠져들게 하라. 그래야 그것이 뭔지 알게 되고 비로소 집착과 미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죽음은 모든 경험에서 편안히 벗어나는 순간이 되어야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온전히 경험을 해야만 벗어나기도 가능하다’는 그의 말은, 무슨 일이든 그것을 충분히 경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새로운 일을 경험하지 못해서, 확실하지 않아서 겁내는 모든 일들 앞에서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 스승 없음을 슬퍼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내가 미치가 되었다고 여겨봅니다.
처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으면서 여러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죽음이 슬퍼서가 아닙니다. 내가 혹은 우리가 모리와 같은 스승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 자신도 다른 이의 스승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할 수 있는 스승, 내가 자신 있게 나의 사표(師表)라고 말할 수 있는 스승이 없다는 것이 가슴 시리게 합니다.
잠시 그 서늘한 장면을 여기 지면에 그려 넣습니다.
“마음을 나눌 사랑을 찾았나?”
교수님이 물었다.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나?”
다시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마음은 평화로운가?”
나는 점점 얼굴이 빨개졌다.
“최대한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고 있나?”
이 대목을 읽을 땐 모리 선생님이 나의 가상의 스승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모리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모리는 소변을 볼 때 양손을 짚고 서 있어야 했기 때문에 소변을 보는 동안 누군가가 소변기를 들어주어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 몹시 당황할 것입니다. 그런데 모리는 가까운 동료가 찾아오면 “여보게, 나 소변 좀 봐야겠는데 자네가 좀 도와주려나? 괜찮겠어?” 손님들은 그가 소변을 보는 동안 소변기를 들어주고는 그 일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에 오히려 놀라곤 했습니다.
모리 선생님은 죽음을 일상화했고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어간다’는 말이 ‘쓸모없다’ 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사람의 욕구중에 제일 강한 욕구는 바로 [생명의 욕구]입니다. 태어난 본능은 생존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능을 이기는 자는 위대합니다.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리는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이 안으로 들어오게 내버려 두고 그것을 늘 입는 셔츠처럼 입어버리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좋아, 이건 그냥 두려움일 뿐이야. 요놈이 나를 좌우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자고.”
모리 선생님은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젊어지고 싶어할 때 모리 선생님은 자신의 나이를 담담하게 즐겼습니다. 카르페 디엠(현재에 충실하라)를 늘상 실천한 것입니다.
죽음을 담담하게 대하듯이.
“... 지금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이가 다 내 안에 있다네. 이해가 되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내가 다 거쳐 온 시절인데 자네가 있는 그 자리가 어떻게 부러울 수 있겠나?”
나는 여기서 너무나 담담한 그의 말에서 생의 포기가 아닌 애정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어설픈 애정에 대해 눈물이 났습니다. 죽음 앞에서 어떻게 저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모리 선생님은 이 책의 저자이자 제자인 ‘미치’에게 뭐든지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치는 사회심리학자인 스승에게 매주 화요일 물어볼 말을 리스트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죽음, 두려움, 나이가 든다는 것, 탐욕, 결혼, 가족, 사회, 용서, 의미있는 삶이었다. 이 무거운 주제를 모리 선생님은 매주 화요일 죽어가면서 제자에게 담담히 말했던 것입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내 자신이 대채롭게 다루는 분야를 모리 선생님은 거의다 보여준 것입니다.
나는 이런 영감과 가르침을 전해줄 스승이 주위에 없다는 사실에 슬펐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모리 선생님 같은 스승이나 어른들을 점점 찾기 어렵다는 사실에 더더욱 슬펐습니다.
살면서 여러 스승을 두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스승 다운 스승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인복(人福)’ 많은 사람이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매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는 많은 생각들이 교차합니다. 내 인생에 스승님들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스승님들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읽고 읽으며서 “나도 모리 선생님처럼 좋은 스승으로 남고 싶다” 는 다짐을 해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지도자가 없으면 너가 지도자가 되라” 며 제자인 월남 이상재 선생을 민족의 지도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스승이 없다면 내가 스승이 되면 된다“는 일념을 갖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의 꿈을 물었습니다.
“좋은 아빠, 좋은 선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좋은’이라는 의미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정말 좋은 아빠, 좋은 선생이 되는 것은 바로 모리 선생님 같은 가치관과 인생관을 갖고 삶을 즐기고 사랑할 줄 아는 자세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까지도 사랑할 줄 아는 용기에서 나옵니다.
삶이 힘들고 버거우면 매주 화요일 ‘모리 선생님’을 찾아 뵙기를 바랍니다. 미치의 모리 선생님은 이제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으로 흠모하고 따를 수많은 모리 선생님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눈물을 흘리며 ‘좋은 스승’으로 남아보기를 다짐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모리 선생님의 격려와 응원을 남깁니다.
“위엄 있게,
용기 있게,
유머러스하게,
침착하게 살아라.”
<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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