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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원 교수의 홀로 외로운 이에게 - 중앙시평

by 코리안랍비 2024.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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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외로운 이에게
중앙일보
입력 2024.06.21 00:40

홀로 외로운 이에게 - 구글출처 이미지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외로움의 심리학적 정의는 ‘사람들과 단절된 듯한 압도적이고 불편한 주관적인 느낌’입니다. 이러한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여러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외로움은 매일 담배 열다섯 개비를 피는 것과 같다는 미 공중보건서비스단(PHSCC)의 보고서, 중년 남성의 외로움이 암 발병을 10% 증가시킨다는 2021년 핀란드 연구, 50대 암 환자 중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 사망 위험이 67% 높아진다는 지난 4월의 미 암학회 연구. 이런 연구결과에 누구든 겁이 나곤 합니다. ‘나도 매일 외로운데.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어. 나이가 들면서, 은퇴를 앞두고, 이사를 하여서, 구직 과정 중에, 나는 점점 더 섬처럼 고립되고 외로워지고 있어.’

일시적 외로움은 당연한 경험
미국 성인 10% 매일 고독감
외로움을 병리화하는 게 문제
자신의 다정한 마음을 믿어야


일러스트=김회룡

외로움에 대한 권위 있는 기관의 설명은 아마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모든 외로움’이 유독한 것은 아닙니다. 저희를 포함해 많은 연구팀이 현재 세계에서 제일 널리 사용하는 외로움 척도를 사용해 연구해 보면, 심리적 문제가 있는 임상군과 일반대조군의 외로움이 때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고, 외로움이 실제 임상 증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기도 합니다.

언젠가부터 우리가 느끼는 모든 외로움을 병리화하고 낙인 찍는 동안, 많은 이야기들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외로움에 대한 오해,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왜곡된 믿음, 그리고 결국 외롭게 여생을 보낼 것이라는 파국적인 생각이 우리의 외로움을 지저분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절감은 우리 생의 의미 있는 시간을 탈취해 가 버립니다.

누구든 외로워집니다. 또 삶의 어떤 순간엔 더 자주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1월 미국정신의학회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성인 10%가, 특히 18~34세의 30%는 거의 매일 외로워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심리치료를 필히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를 설치한 영국의 심리학자들 역시 수년 전부터 이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모든 외로움을 문제 삼지 말 것. 일시적인 외로움과, 곁에 분명 사람들이 있음에도 홀로 자꾸만 파고들게 되는 만성적이고 병리적 외로움을 구분할 것.

내 마음에 순간순간 오가는, 일시적이며 당연한 외로움들이 있습니다. 이것에 부정적인 이름을 붙이고 나의 외로움을 나의 결함이라 여기면서 스스로를 외롭게 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때로 고독해 하고 쓸쓸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외로움을 마주하고 음미할 때 역설적으로 경험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나를 가만히 들여다볼 시간이 내게 다가옵니다. 관계와 사람들에게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들이 수면 위로 드러납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또렷하게 판단하고 자신을 위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나보다 더욱 오랜 시간 홀로 있고 약해져 있는 이들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외로움은, 우울이 그러하듯, 불안이 그러하듯, 우리 지혜의 바탕이 됩니다.

만성적인 외로움에 빠진 분들께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일상 중에 틈틈이 외로워하며 지혜를 찾다가 또 틈틈이 서로의 안위를 걱정해주세요. 그거면 됩니다. 단 몇 초 몇 분이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이들과, 심지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혹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마음을 다해 다정하게 서로를 염려하는 그런 경험들을 하고 있다면, 이런저런 의미 있는 접촉은 계속해서 마음에 새겨집니다. 이 관계가 지속될 필요도 없고,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누군가에게 세상에 마음을 쓰는 순간순간 우리는 계속해서 어떻게든 이어져 있습니다. 외로움은 ‘주관적 느낌’으로 정의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자신이 누군가를 신경 쓰고 염려했던 마음들을 잘 기억해두세요. 그것들이 연결의 증거입니다.

무엇보다 자기 외로움의 틀에 갇혀, 실제로는 갈 수 있는 곳, 실제로는 할 수 있는 일들의 목록을 극도로 줄이는 것은 당신의 진짜 세계를 좁힙니다. 때때로 외로워질 수도 있겠지만, 당신 자신의 다정한 마음을,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 마음들을 이제 다시 믿기로 결심하고 다시 항해를 시작하세요. 당신의 발 닿는 곳, 눈길이 닿고 마음이 닿는 모든 곳이 당신의 세계입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7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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