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신학의 대가 마르틴 부버의
명문장들을 자주 만난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유대철학자이다.
아마도 스피노자 이후 가장 저명한 철학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는 교육학자로서도 훌륭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가 가르친 히브리대학에서 잠시 그의 철학과 교육사상을
공부한 적이 있다. 그는 매우 개성적이고,대화하기를 좋아하였으며,
학생들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보고, 그리고 가장 지혜롭게 이야기해주기를 즐겼다.,
마르틴 부버의 제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아직도 역역하다.
그의 저작이나 글을 만나면 괜스레 호기심이 넘쳐나고
그리고 그의 글을 나의 영감의 소재로 삼는다.
오늘은 그의 글 중에 '자라나는 나무'에 대해서 옮겨 적어본다.
자라나는 나무
인간은 나무와 같다.
나무가 어떻게 자라고 얼마나 자랐는지를 알기 위해
나무 앞에 서서 나무를 끊임없이 지켜본다면,
인간은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항상 나무를 손질해주고, 줄기를 쳐주며,
딱정벌레와 벌레들이 없게 해준다면,
때가 되면, 나무는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그가 장애물을 극복하는것이며,
그러면 그는 잘 자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더 성장하였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매시간 점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잠시 그의 글로 사색을 해보자.
나무가 언제 어떻게 자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들의 자녀들의 육신의 키가 아니라 정신의 키나, 두뇌의 발달도 잘 알지를 못한다.
우리는 그저 외적인 부분에서 많이 자랐구나 라고면 여기지, 그 속을 제대로 알길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마치 잘 아는 것처럼 치부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은 철저히 신적인 설계와 계획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마르틴 부버는 심고 물을 주되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밝힌 것이다.
성서에도 바울은 말한다.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며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라고 고린고서에서 밝힌다. 유대인들의 사상과 철학을 오랫동안 공부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사상과 철학에 매료되어진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성서와 탈무드를 늘 옆에 두고 연구하고 읽어본다. 그리고 영어로, 그리스어로, 히브리어로, 독일어로도 읽을 수있다. 여러 언어의 탁월성을 익혀서 성서와 탈무드를 바라볼 때 나는 스스로 희열감과 환희를 경험한다.
나도 나무인 것이다. 아직도 자라는 나무이다. 그런데 높게 자라려면 여전히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묀다. 샘이 깊은 말에 그 뿌리를 두고 살기 때문이다.
시편 1편에 나온 말이 정말 진리이고 추구할 가치이다. 참으로 토라를 연구하는 기쁨을 나는 자주 경험한다.
2023년 01월 03일 화요일 저녁에 폴 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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