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바로 '카이로스(kairos)', '기회(Opportunity)의 시간' 이니라!"
다르게 생각하고 호시탐탐 결정적인 기회를 노리는 기회주의자가 되라.
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에는 희한하게 생긴 조각작품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이로스라는 '기회의 神'이다. 앞머리에는 머리카락이 풍성하고 반면 뒷머리에는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대머리이다. 커다란 날개도 모자라 발에 작은 날개가 달려있고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다. 그 조각상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나는 눈이 보이지 않아 누구에게나 다가가며 양손에는 칼과 저울이 들려 있어 기회라고 생각될 때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냉철한 결단을 내리도록 한다. 나의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만일 나를 발견하였다면 누구든 나를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만일 우물쭈물 망설임이 길어지면 가차없이 내 어깨와 발에 달린 날개를 이용하여 날아가 버릴 것이며,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하기 위함이다. 나의 이름은 바로 '카이로스(kairos)', '기회(Opportunity)의 시간' 이니라!"
완벽한 기회는 없다. 우리는 완벽한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삶을 헛되이 보내는 사람들을 잘 알고 있다. 그 사람들이란, 완벽한 여인을 기다리다가 사랑이 모두 지나갔음을 뒤늦게 깨닫는 머리 희끗한 노총각일 수도 있고, 항상 창업할 시기만 찾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야심 많은 직장 동료일 수도 있다.
두려움 때문에 더 좋은 시기를 기다리거나 몸을 사리지 마라. 당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최대한 이용하라. 그것이야말로 부정적인 모든 여건을 이점과 힘으로 변모시키는 궁극의 연금술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라!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사실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다. 인생의 사건들은 100퍼센트 중립적이다. 우주는 당신의 운명에 아무 관심이 없다. 당신이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사태에 휘말려도, 또 그 때문에 목숨을 잃어도 우주는 아무 상관도 하지 않는다. 인생에서는 그저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일 뿐이다. 그런 사건들을 당신의 마음이 부정적 혹은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당신 내면의 깊숙한 곳에는 두려움이 켜켜이 쌓여 있다. 따라서 인생길을 걸으며 만나는 일시적인 장애물들을 실제보다 거창한 무언가, 즉 인생의 퇴보나 중대 고비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이 그런 식으로 작동하면 당신은 위험을 과장한다. 사실 어떤 면에서 젊은이에게 다가오는 많은 이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난과 역경이다. 모든 부정적인 상황은 긍정적인 무언가로 변모할 가능성, 즉 기회를 내포한다. 당신이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가난은 불편하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는 것처럼 젊은이에게 일어나는 가장 좋은 일에서 열 번 중 아홉 번은 배 밖으로 던져지고 가라앉거나, 또는 수영하도록 강요당하는 것이다. 가난은 실제 이점이 될 수도 있다. 가진 것이 적은 만큼 창의성을 더 발휘하게 되기 마련이다.
현재 우리는 비교적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점이 우리 정신에는 여러 가지로 해를 끼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좋은 일이나 어느 정도의 특권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뭔가 절망스러운 일이 일어나면 자신이 수치를 당하거나 벌을 받는다고까지 여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라며 의아해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절망스런 상황을 두고 다른 사람이나 스스로를 탓한다. 하지만 누굴 탓하든 소중한 시간을 버리면서 쓸데없이 감정만 허비하는 셈이다.
역사 속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발휘한 사람들은 모두들 나름의 방식을 통해 두려움을 모르는 태도로 역경을 대했다.
위대한 군사적, 정치적 승리는 거의 언제나 어느 정도 위기를 겪고 나서야 찾아온다. 결정적인 승리라는 것은 위험한 공격의 순간에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간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리더에게는 도전에 응해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할 기회가 전혀 없다. 너무 순탄한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거만해져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릇을 재 볼 수 있는 역경이 필요하다. 암울한 순간을 만나 한껏 긴장하면 창의성과 민첩성을 발휘하여 주어진 상황에 당당히 맞선다. 그리하여 운의 흐름을 돌려 패배를 위대한 승리로 이끈다.
당신은 반드시 대다수의 생각 및 행동과는 정반대로 나아가야 한다.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그때야말로 주의를 집중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런 순간이 언제까지고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 미처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적에게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편 상황이 나쁘게 돌아갈 때에는 그 어느 때보다 용기를 갖고 대담해져야 한다. 기막힌 반전을 펼치고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해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마침내 찾아온 것이니 말이다. 위험과 난관을 헤쳐야만 비로소 날아오를 수 있다. 그 순간을 긍정적이고 꼭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 만으로도 당신은 벌써 위기의 순간을 황금의 기회로 만든 것이다.
마구 쏘고 대담하게 밀어 붙여라!
지구 구석구석은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신이 마냥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은 모르며, 그 기다림이 헛수고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다. 간혹 이들이 미망에서 깨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을 실제로 행동에 나서도록 해주는 사건은 너무 뒤늦게 찾아온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다가 왕성하던 젊음과 기운이 다 사라져 버린 뒤에 말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뛰어올라야 하는’ 그 순간 팔다리는 감각을 잃고 영혼은 너무 둔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 영영 쓸모 없는 존재가 돼 버린 그들은 혼자 중얼거린다. “너무 늦어 버렸어.”
우리 마음은 우리가 미처 이용해 보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힘은 장애물을 만나서 고도의 집중력, 에너지, 창의력을 한데 뒤섞을 때 발휘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러한 힘을 계발할 능력이 있지만 그러려면 우리에게 이러한 힘이 있다는 사실부터 인식해야 한다. 물론 물질적인 수단이 강조되는 문화 속에서 이는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일을 기술, 돈, 연줄로 해결하려 하니 말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이 해낼 수 있는 일에 불필요한 한계를 긋고 결국은 이것이 현실을 결정짓는다. 우리가 기회란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살펴보라. 그러면 이 점이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일반적 통념에서는 보통 기회를 외부 세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외부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낚아채면 부와 힘을 거머쥐게 된다는 식이다. 우리에게 딱 맞는 특정한 일자리를 얻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 그런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적절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런 절호의 기회를 이용하려면 무엇보다 시기와 장소를 잘 만나고 적절한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는 보통 인생에서 그런 기회는 거의 찾아오지 않는다 생각하며, 그것이 우리 앞을 지나가기만을 마냥 기다린다.
하지만 이는 기회를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본 것이다. 우리를 외부적인 힘들에 의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인생에 대한 두려움과 소극적인 태도에서 비롯되며 결코 생산적이지 않다. 이런 개념을 택하면 우리 마음은 협소한 가능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사실 인간의 마음은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을 도구로 삼아 거기서 힘을 얻고 발전할 수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긴박하고 곤란한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있다. 턱없이 짧은 시간 안에 어떤 일을 해내야 한다거나, 도움을 주리라 믿었던 사람과 연락이 안 된다거나, 타지에 나가 갑자기 모든 일을 혼자 꾸려나가야 하는 처지가 그런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필요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때 필요한 일들을 해내고 문제점을 재빨리 찾아내지 못하면 당장 곤란을 겪는다. 보통 이럴 때 우리는 잽싸게 주의를 집중한다. 또 필요한 에너지도 찾아낸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또 평상시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세세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인다. 거기에 성패 혹은 생사가 걸려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창의성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바로 이런 순간 평상시 잠자코 있던 우리 내면의 정신적 힘을 살짝이나마 엿보는 셈이다. 매일의 삶에서도 우리가 그런 정신력과 태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태도를 우리는 긍정적 의미의 ‘기회주의’라 불러야 할 것이다. 기회주의자들은 꼭 긴박하고 바싹 긴장하게 되는 상황에서만 기민함과 창의성을 발휘하지 않는다. 매일매일의 일상에서도 그런 방식을 쓴다. 이들은 지극히 하찮고 사소한 일에도 공격적인 에너지를 쏟아 부어 발전의 가능성을 잡아낸다. 그들 손에 들어오면 모든 게 일종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이 광의의 기회주의를 활용해 삶에서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내 대단한 힘을 손에 쥔다.
하지만 이런 힘은 우리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이용하고, 모든 장애물을 절호의 기회로 탈바꿈시키고, 국면이 뒤바꾸는 전환점을 찾아서 끈질기게 노력한다만 한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행동에 돌입하지 못하고 너무 오래 기다린다. 자금이 더 넉넉해지고 상황이 더 호전되기를 바란다. 이와는 정반대로 나아가야 한다. 준비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행동에 나서라. 사서 고생이라도 하겠다는 듯, 자기 앞길에 손수 장애물이라도 놓겠다는 듯 말이다.
힘의 법칙에 따르면 당신의 에너지는 언제나 필요한 만큼 차오르게 되어 있다. 당신의 목표를 꼭 이루어야 하는데 미처 준비가 안 되었다면 당신은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느껴 집중력과 창의성을 더욱 크게 발휘한다. 이번 일을 반드시 성공시킬 각오라면 그 일은 성공하게 되어 있다.
학교에서 논문이나 에세이를 쓰는 법을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서론을 잘 잡고 짜임새 있는 본론을 갖춘 뒤 결론을 맺어야 한다는 식으로, 그리고 불행히도 우리는 인생에도 그와 똑 같은 논리를 적용해 인생 자체를 논문처럼 생각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서론은 제대로 된 사람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유년 시절이며 본론은 성인으로서의 삶이다. 이것은 정돈되고 계획된 삶으로 은퇴해 행복한 말년을 보내는 결론을 내기 위한 준비다.
이런 생각들은 현재 순간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게 한다. 이렇게 계획에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틀림없이 모든 것이 언제까지나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최종 설계인 안전은 죽음을 위한 것이다. 안전이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있는 것이며 자극, 위험, 도전이 없다는 것이다. 안전은 성장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성장하지 않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 게다가 안전은 그릇된 통념이다. 이 세상에 사는 한, 이 세상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설령 안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끔찍한 삶의 방식이다. 확실성은 흥미와 성장의 싹을 잘라내기 마련이니까.
여기서 안전이란 외면적인 보장, 즉 금전이나 집이나 자동차 등의 재산,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 등의 보루를 말한다. 물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또 다른 종류의 안전이 있다. 그것은 미래에 어떤 일이 닥쳐도 의연하게 감당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즉 내면적인 안전이다. 그것이야말로 유일무이한 영속적인 안전이요, 진정한 안전이라 할 수 있다. 일은 어긋날 수 있다. 불황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쪽박을 찰 수도 있다. 주택 융자금을 못 갚아 집이 경매로 넘어갈 수도 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나와 내 안의 내적인 힘에 대한 굳은 믿음만 있다면 물질적인 것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무방한 인생의 부속품일 따름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외적인 안전의 덫에 빠지지 말라. 그것은 내가 살아가고 성장하며 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는 능력을 앗아갈지도 모른다. 가진 것이 많지 않은, 다시 말해 외적인 안전이 없는 사람들을 보라. 어쩌면 그들이 나보다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들은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항상 안전한 것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올가미를 피할 수 있지 않은가.
기회주의는 위대한 기술이다.
현대에 들어 ‘기회주의자’라 하면 자신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경멸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들은 자기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말고는 어떤 가치도 중시하지 않아 시회에 아무 기여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상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며, 기회를 계속 극소수 권력자들의 특권으로 만들려는 엘리트 의식에서 비롯된 음모다. 갖은 수를 동원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사람들은 교활한 마키아벨리주의자로 몰리는 반면, 애초부터 꼭대기에서 똑 같은 전략을 구사하는 자들은 똑똑하고 재간 있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이런 견해에는 두려움이 반영되어 있다.
기회주의는 사실 여러 고대 문화에서 연구하고 실천한 위대한 기술이었다. 그 중 그리스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손꼽히는 오디세우스야말로 최고의 기회주의자였다. 그는 인생의 위험한 고비 때마다 무방비로 노출된 적의 약점을 가지고 그들을 농락해 판세를 뒤집었다. 그리스인들이 그를 칭송한 것도 돌고 도는 인생사를 다루는 솜씨가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치 체계에서는 상황 적응이란 걸 모른 채 이념만 지향하며 모든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경직된 사람들의 경멸의 대상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발전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기회주의와 맥을 같이하는 긍정적이고도 강력한 신념 체계가 하나 있는데, 바로 운명에 대한 사랑이란 뜻을 가진 고대 로마 스토아 철학자들의 ‘아모르파티’다. 이 철학에 따르면 모든 사건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있다. 따라서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불평하고 비관하는 것은 세상만사의 자연스런 이치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상황이 다른 식으로 돌아갔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긍정적인 이유를 만드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믿어야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것을 모든 걸 집어삼키는 불길에 비유하기도 했다. 자기 정신 속의 불길을 이용하면 모든 상황을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남자든 여자든 이러한 믿음을 가진다면 그 어느 것에도, 그 누구에게서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며 끊임없이 기회를 추구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것과 위험을 동일시한다. 삶의 방향은 뭐든지 확실해야 하고, 내가 향하고 있는 목표를 항상 잘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무모한 바보멍청이나 하는 짓거리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유토피아의 안락한 삶만을 생각하는 이데올로기에 아직도 집착하고 있다면 이제 그 길에서 벗어날 때다.
불가능은 없다. 여기는 자유주의 국가이다. 일단 확실하지 않은 영역에 용기 있게 발을 내디뎌보겠다고 마음 먹으면 우리는 인간에게 허용된 경험을 모조리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호시탐탐 결정적인 기회를 노리는 기회주의자가 되라.
<여러 문헌들 참조; 그리스 신화 그리스 철학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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