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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와 코칭 & 멘토링

지식은 말하려 하지만, 지혜는 들으려 합니다. - 탈무드의 지혜

by 코리안랍비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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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말하려 하지만, 지혜는 들으려 합니다.]
- 탈무드속 어느 현자의 금언


오늘 읽은 글중에 가장 단순하면서 명쾌한 문장입니다.

사람은 말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면서 말을 듣는 존재입니다.
말하고 듣기가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자신이 말하는 것을 경청한 적은 있으신지요?
남의 말에 경청한다는 것은 들어 보았어도, 자신의 말에 경청하는 것은 들어본적이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말하는 것이 정말 듣기에 좋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이 듣기에 정말 좋다면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말하는 것이 듣기에 거북하다면 그는 말을 정말 못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말을 하여도 들을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이면 다 말인줄 알아" 하면서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천마디 의미없는 말보다
한마디 마음을 고요케 하는 말이 좋습니다.


자신의 말을 잘 들어보면 자신의 말이 얼마나 잘못되고, 부족한지를 발견합니다.
물론 여기서 경청의 본질적 의미는 다릅니다.
자신의 말보다는 남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경청의 한자는 [기울일 경, 들을 청]입니다.
그만큼 고개를 숙이고,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방에 따라서 다르지만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 해서도 안되지만, 진심과 열정을 가지고 말을 하는 사람의 말은 들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래서 신은 인간에게 하나의 입과 두개의 귀를 주신 것이라고 탈무드는 말합니다. 말하기는 반으로, 듣기는 두배로 하라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듣는자로만 전락하면 안됩니다. 듣고 말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바로 대화입니다. 대화가 되려면 상대방이 준만큼 받고, 자신도 받은 만큼 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Give and Take 는
대화의 기본입니다.


어느 현명한 철하자의 말대로,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나는 그 정도는 다 안다" 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만한 틈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들어갈 틈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틈]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새로운 것이 들어갈 틈 바로
-여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계속 발전하고 성장합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은
"나는 아직 모른다" 라는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물론 그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항상 염두해 둡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니
더 크고 좋은 지혜가 쌓이는 것입니다.

사실 지식도 축적이요
지혜도 축적입니다.
다만 다른 것은 지혜는 그 지식을 잘 이용할 줄 아는 힘입니다.

지식의 축적은 현대인을 만들고 지식인을 만듭니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자신도 지식인입니다.
지식이나 정보의 축적은 곧 현대인으로서 필수불가결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사실 많은 지식과 정보로 무장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지식과 정보가 바른 사람을 만들고, 바른 인생을 걸어가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지식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잘못되었습니다.

인간의 길을 [도 tao] 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 도는 노자의 말대로 도라고 말하면 더 이상 도가 아닙니다. 그 도가 고정되어 있거나, 발전을 멈춘다면 그 도는 우스개소리로 도로아미타불과 같습니다. 그 도는 변하고, 움직이고, 활동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도는 곧 배움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으려면 호기심과 질문이
죽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호기심과 질문만으로도
그 사람의 전체상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많은 인생의 경험과 연륜이 쌓이게 되면
이제는 지식을 멈출 줄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그칠 지, 배울 학 - 지학]이라고 부릅니다.

내 안을 가끔 들여다 봅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것을 성찰이라고 부릅니다.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고, 내 목소리를 경청해주고 공감해준다면 그는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입니다.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기울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를 몰라주는 사람]에게는 절대 기울어지지 않고, 오히려 튀어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과연 그러한 대인배적 그릇이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그릇(용기, container)를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용기 container를 넓히려면 작지만 구체적인 용기 courage 가 필요합니다. 잠시 글의 방향을 경청에서 그릇넓히기로 가봅니다.

  • 구글출처 이미지



선불교의 어느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어느 고통이 심하고 문제가 많은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하여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 영혼은 늘 불안하고 무엇인가에 늘 쫓기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승을 찾아갑니다.
스승에게 자신의 자초지종을 말하자,
스승은 과제를 줍니다. "가서 소금 한 수저를 물잔에 넣어보아라"
그러자 그 스승의 말대로 곧 시행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소금물을 마셔 보아라"
그래서 그 물잔속의 소금물을 마셨습니다.
당연히 무척 짜고 마실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샘가에 데리고 갔습니다.
절안에 작은 옹달샘에서는 연신 물이 흘러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럼 저 옹달샘에 소금 한 수저를 부어 보아라"

그는 소금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말대로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물은 전혀 짜지가 않았습니다.
그 때 스승이 말합니다.

"바로 너의 문제는 소금이 아니라,
너의 그릇의 크기의 문제이니라"

"이제 너의 그릇을 넓히도록 하여라"

이 말에 그 제자는 이제는 자신의 내면과 속마음을 넓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쳤고, 사소한 문제에 매이지 않는 넓은 그릇이 되었습니다.

[경청과 그릇 넓히기]는 정말 우리가 부지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경청과 그릇 넓히기가 되면 정말 다른 이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사랑을 받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사실 지도자는 이래야 합니다.
지식을 앞세우기보다 지식을 뒤로 세우고,
지혜를 앞세울줄 아는 큰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글을 읽고 자신의 말하기 습관이나
말하는 태도를 점검해 보십시오.
말을 많이 하면 실수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릇이 큰 사람은 말을 아낍니다.
그리고 충분히 들어줍니다.
충분히 듣고, 더 나은 방향에서 말해줍니다.
진정한 소통은 거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그릇을 넓히지 않으면
경청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속좁은 자신의 문제에 매여서 다른 사람의 문제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서 남을 이해하려면 곧 자신의 그릇을 넓히는데서 옵니다. 두서없는 글입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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