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말하려 하지만, 지혜는 들으려 합니다.]
- 탈무드속 어느 현자의 금언
오늘 읽은 글중에 가장 단순하면서 명쾌한 문장입니다.
사람은 말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면서 말을 듣는 존재입니다.
말하고 듣기가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자신이 말하는 것을 경청한 적은 있으신지요?
남의 말에 경청한다는 것은 들어 보았어도, 자신의 말에 경청하는 것은 들어본적이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말하는 것이 정말 듣기에 좋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이 듣기에 정말 좋다면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말하는 것이 듣기에 거북하다면 그는 말을 정말 못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말을 하여도 들을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이면 다 말인줄 알아" 하면서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천마디 의미없는 말보다
한마디 마음을 고요케 하는 말이 좋습니다.
자신의 말을 잘 들어보면 자신의 말이 얼마나 잘못되고, 부족한지를 발견합니다.
물론 여기서 경청의 본질적 의미는 다릅니다.
자신의 말보다는 남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경청의 한자는 [기울일 경, 들을 청]입니다.
그만큼 고개를 숙이고,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방에 따라서 다르지만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 해서도 안되지만, 진심과 열정을 가지고 말을 하는 사람의 말은 들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래서 신은 인간에게 하나의 입과 두개의 귀를 주신 것이라고 탈무드는 말합니다. 말하기는 반으로, 듣기는 두배로 하라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듣는자로만 전락하면 안됩니다. 듣고 말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바로 대화입니다. 대화가 되려면 상대방이 준만큼 받고, 자신도 받은 만큼 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Give and Take 는
대화의 기본입니다.
어느 현명한 철하자의 말대로,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나는 그 정도는 다 안다" 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만한 틈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들어갈 틈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틈]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새로운 것이 들어갈 틈 바로
-여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계속 발전하고 성장합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은
"나는 아직 모른다" 라는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물론 그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항상 염두해 둡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니
더 크고 좋은 지혜가 쌓이는 것입니다.
사실 지식도 축적이요
지혜도 축적입니다.
다만 다른 것은 지혜는 그 지식을 잘 이용할 줄 아는 힘입니다.
지식의 축적은 현대인을 만들고 지식인을 만듭니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자신도 지식인입니다.
지식이나 정보의 축적은 곧 현대인으로서 필수불가결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사실 많은 지식과 정보로 무장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지식과 정보가 바른 사람을 만들고, 바른 인생을 걸어가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지식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잘못되었습니다.
인간의 길을 [도 tao] 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 도는 노자의 말대로 도라고 말하면 더 이상 도가 아닙니다. 그 도가 고정되어 있거나, 발전을 멈춘다면 그 도는 우스개소리로 도로아미타불과 같습니다. 그 도는 변하고, 움직이고, 활동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도는 곧 배움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으려면 호기심과 질문이
죽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호기심과 질문만으로도
그 사람의 전체상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많은 인생의 경험과 연륜이 쌓이게 되면
이제는 지식을 멈출 줄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그칠 지, 배울 학 - 지학]이라고 부릅니다.
내 안을 가끔 들여다 봅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것을 성찰이라고 부릅니다.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고, 내 목소리를 경청해주고 공감해준다면 그는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입니다.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기울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를 몰라주는 사람]에게는 절대 기울어지지 않고, 오히려 튀어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과연 그러한 대인배적 그릇이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그릇(용기, container)를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용기 container를 넓히려면 작지만 구체적인 용기 courage 가 필요합니다. 잠시 글의 방향을 경청에서 그릇넓히기로 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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