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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강연 이야기

정지용 시인, 대학 1학년 새내기의 향수와 지금의 향수

by 코리안랍비 2022.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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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새내기의 향수와 지금의 향수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향수의 이름은?
샤넬 No. 5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가장 좋아하는 향수는 정지용의 향수다.

이 향수는 1927년에 제작된 향수로서 지금도 그 향이 그윽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샤넬 No.5의 향수가 아니어도 나는 정지용의 향수가 무한히 좋다.
언제 들어도 좋은 그의 시와 노래는 나를 고향으로 데려간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자신을 키워준 정서와 정신의 어머니 이다.
세계화 시대에 어느 곳에 살더라도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의 시구(詩句)처럼 가슴속을울리는 그리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먼 바다에 살아온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역류하여 있는 힘을 다해 돌아와 산란을 마친 다음, 일생을 마치는 모습을 본다. 모천회귀(母川 回歸) 의 본성을 보여준다.

인간에게 고향은마음의 어머니다. 그 품에 안겨서 어릴 적의 비밀 얘기를 나누고, 소년기를 추억하고 싶어 한다. ‘고향 상실 은 마음의 어머니를 잃는 일이나 다름없다. 나는 어머니를 잃으면 고향을 잃는다. 비비고 누릴 고향을 잃는다. 고향을 기억한다는 것은 고향에 대한 애수이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이 구절이 없었다면 나는 이 시를 기억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나름 '문학소년'이었던 나는 내가 쓰는 언어가 남과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품고 지냈다. 대학 1학년 늦가을에 나는 [월북시인들의 시들]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그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나 등장하는 인물들이었지만 그중에 백석과 정지용 시인의 시를 구체적으로 접하게 된 것은 그 시기였다. 워낙 시인들을 알고 싶어서 호기심에 보았던 월북시인들의 시들이었다. 남한의 시인들도 유명하지만 월북 시인들에게 끌렸던 것은 그들의 정말 사상적으로나 이념적으로도 [시]를 잘 짓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 구글출처 이미지


정지용은 원래 종교적인 구도의 세계를 그려내던 카톨릭 신자였다. 그의 시는 종교적인 면도 강하고, 그리고 동양적인 면도 강하였다. 대학 1학년 시절 정지용의 시 몇편을 보면서 기독학생인 나로서도 그의 시에서 흐르는 정서와 감정에 어느 정도 이끌렸던 것 같다. 백열등 아래서 읽는 시집이란 낭만도 있어보이지만 차갑고 추운 늦가을, 방은 춥지만 여전히 내 눈은 따뜻하였다.

정지용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그의 언어들은 너무나 예리하고 섬세하였다. 시의 언어에 대한 자각과 열정이 그 당시의 김소월이나 김영랑처럼 그 중요성이 시에서 녹아나 있었다.

우리는 겨우 정지용의 [향수]나 기억될 뿐이지만
그의 다른 시들을 만나보면 정지용 시인의 진면목을 여실히 볼 수 있다.

오늘 늦은 밤 어느 여인과 통화를 하면서
정지용의 [호수]에 나오는 싯구를 알려 주었다.
물론 가끔씩 붓으로 캘리그라피를 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제가 보고 싶으세요?"
그 말에 나는 정지용의 [호수]로 답을 하였다.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하니
눈 감을 밖에"


湖水(호수) 1


얼골 하나 야
손바닥 둘 로
폭 가리지 만,

보고 싶은 마음
湖水(호수) 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시집 : 정지용전집 1 시/민음사

누군가 보고 싶다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립기도 하지만 가까이 있어도 보고 싶은 것은 매한가지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움도 곧 사랑이다. 정지용은 그 보고 싶은 마음을 '호수'만하다고 하였다.

정지용의 고향은 옥천이다. 옥천은 금강의 지류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작고 큰 수가 있는 곳이다. 나는 대학교 1,2학년 시절에 옥천에 가 보았다. 물론 정지용의 생가를 구경하러 가려고 한 곳이고, 그의 시작인 [향수]가 맞는지 틀린지 보려고 간 것이다. 정말 그곳은 정지용의 묘사에 어긋남이 없었다.

대학교 1,2학년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청춘이었다. 남들은 무척 조숙하고 고상한 사람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사실 '애늙은이' 같은 모습이었다. 늘 책을 끼고 살고, 책을 벗삼아 살면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수놓으려는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좋아한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같은 또래의 여학생들이 나를 좋아하였다. 가난한 남학생이지만 문학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나여서 그랬다. 그런데 이를 가능하게 해 준 것은 역시 시였다. 시를 읽으면 이상하게 좋았다. 그래서 한 때는 [시인이 되자]고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다. 나중에 와이프에게 프로포즈도 시집으로 하였다.

"나에게 시집을 왔으면 좋을 것 같아서 이 시집을 드립니다."

시집을 오는 여인에게 주는 한 권의 시집에
아마도 지금의 아내는 감동을 먹었던 것 같다.
사실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중에 하나는 단연 시집이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시집을 사서 다른 이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던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와이프에게도 여러 권의 시집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시를 읽어주고 같이 시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 시집중에 하나도 바로 [정지용]이 나온다.

다시 정지용 시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참 '자연을 닮은 시인'이라는 생각이 크게 든다.
그의 시들은 자연을 통해서 자신의 주관적인 정서와 감정의 세계를 토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면서 자연에 대한 자신의 감각적인 인식 그 자체를 언어를 통해 새롭게 질서화하려고 하였다.

아직도 그의 [향수]라는 시는 나의 심금을 울린다.
테너 박인수와 이동원의 노래가 어우러지는 그의 [향수]는 여전히 향기롭다.

시간은 가고 기억은 쌓인다.
잃어버린 시간의 기억을 우리는 추억이라고 부른다.
나에게도 고향이 있다.
중학교 시절까지 지냈던 내 고향 바다는
아직도 내 눈에 출렁거린다.

나는 내 고향을 사랑한다.
그 고향에 대한 향수를 아직 잃어버리지 않았다.
나는 내 고향이 좋아서 수시로 그 고향으로 달려간다.
옥천처럼 실개천도 있고,
옥천처럼 호수가 있다.
옥천처럼 맑은 하늘이 있다.


요즘 현대인들은 [고향]이 없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정서나 감정이 없으니
고향을 불러내고 소환할 일들도 없다.

정지용은 오래 살지 못했다.
1902년에 태어나 1950년에 단명을 하였다
그의 시 [향수]는 그가 이십태 초반의 나이로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전
고향인 충북 옥천을 다니러가면서 쓴 시이다.
이제 곧 떠나야 할 고향이기에 더욱 간절하고 사무쳤을 것이다.
[빼앗긴 들 같은 고향]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흙에서 자란 마음]을 갖고
고향사랑을 [향수]로 달랬던 것이다.

그가 감정 두루마기를 즐겨 입고 정종을 좋아하였다고 하며 그는 몇 순배의 술잔이 돌고 나면 낭랑한 목소리로 이 [향수]와 더불어서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로 시작하는 '고향'을 즐겨 낭송하였다.

신석정 시인은 "지용같이 시를 잘 읇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라고 회고하였다.

정지용은 "시의 신비는 언어의 신비"라고 하였다.
정지용의 시는 '신비'하지는 않다. 도리어 '신비'를 넘어서는 풍요, 마음의 풍요를 누리게 한다. 신비로운 시어를 쓰지만, 이 시를 읽는 이들에게 마음이 풍요,
식민지 시대에 젊은 사람이 느꼈을 삭막함 현실은 온데간데없고
도리어 풍요롭고 질퍽한 감수성과 팍팍하지 않는 무성한 자연스러움이 돋아난다.
그의 시 [향수]와 [고향]을 여기에 남긴다.
그저 소리를 내어 읽어 보시라.


그리고 삭막한 현대인의 삶, 고단하고 지친 현대인의 삶을
훌훌 벗어버리라. 시를 읽자. 시를 읽고 거듭나자. 시를 읽고 마음의 여유와 풍요를 찾자. 시가 화려하지만 초라하고, 풍족하지만 빈곤해진 우리의 정서를 보듬어 주는 촉매제가 된다. 고향만이 줄 수 있는 풍요를 정지용은 선사하였다.

루소가 자신의 작품 [에밀]에서 말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자연에 답이 있다.


향 수 - 정 지 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박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게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겉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밭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아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고향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더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75) 향수-정지용시-김희갑곡-이동원박인수노래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PsaFoC88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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