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의 시대에
위풍당당(威風堂堂),
호연지기(浩然之氣)
그리고
응변창신(應辯創新)의 스피릿을 갖자
코리아나의 손에 손 잡고 Hand in Hand를 들으며
오늘 아침은 어느 때보다 기운차게 일어났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게 다가오는 아침이었다. 일찍 나의 회사에 들어와서 2-3편의 신문을 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나로서는 신문기사에서 풍기는 세월의‘무기력함’과 ‘허장성세(빈수레가 요란한 격)’에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뉴스기사는 언제나 사실을 말하려고 하지만, 갈수록 읽을 거리가 없어진다. 좋은 소식(good news)는 찾아보기 힘든 신문을 지난 40여년간 읽었다는 것에 스스로의 인내심(忍耐心)에 감탄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제는 신문을 멀리해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나만의 글’을 써야 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나이가 50이 넘어가면서 이제는 ‘나만의 글’을 쓰고 ‘나의 생각과 정념’을 담아야 하겠다는 사유의식이 강해진다. 그동안 남의 생각에 젖어서 살아왔고, 남의 삶을 사느라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살아가면서 진정 나의 삶, 나의 나됨의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상당히 적어 보인다. 지나온 길을 잠시 돌아보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데, 나는 나 자신을 과연 얼마나 찾고, 얼마나 알고, 얼마나 나의 나됨을 누리고 살았는지는 의문이다.
아침 일찍 막내 딸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는 막내 딸은 몇번이나 손을 흔든다. 그리고 나도 몇 번이나 손을 흔들면서 '오늘도 화이팅해' 라고 말을 한다. 그러자 막내는 '아빠도 화이팅해요" 그말에 웬지 눈물이 핑돈다. 어린아이의 말이 웬지 하나님의 말씀처럼 다가온다. 성경에서도 보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화이팅해" 라고 말씀하신다. '두려워말라'가 성경에는 365번이나 나온다고 한다. 매일 매일 두려워하지 말고 살라는 생명의 메세지가 성경속에 들어 있다.
그리고 일찍 나의 회사로 와 보았다. 아침 신문을 잠시보다가 코리아나의 맴버 4명중에 한명인 이용규씨가 지난 달 소천했다는 소식을 보았다. 향년 67세의 나이로 멋지게 세상을 살다가 멋지게 떠났다. 그의 기사를 읽으면서 ‘나도 멋지고 우아한 삶을 살리라 다짐했던 젊은 시절’이 크게 떠올랐고, 남보다 더 멋지고 우아해지고자 수많은 독서를 하고,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술도 가까이하고, 음악과 미술도 가까이하였다. 여러 고생스런 직업도 해보고, 대학도 몇군데를 다녔으니 나름 괜찮게 살아온 것 같지만, 여전히 나의 가슴속에는 이루지 못한 정서가 크게 남아 있다.
먼저, 나는 위풍당당(威風堂堂)하게 살아왔는가? 고민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위풍당당함은 어디로 사라지고 삽살개 같은 자신만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싶은 기분이다. 말과 행동에서 나는 거침이 없고, 당당한 사람으로 남은 인생 후반전을 보내고 싶다. 가끔씩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교향곡]을 듣는다. 원래 셰익스피어의 작품 [오델로] 3막 3장에 등장하는 말인데, 이를 엘가가 [희망과 영광의 나라]라는 제목으로 가사를 붙인 불후의 명곡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장 틀어보시라. 이 곡의 매력속으로 빠져들면서 이제는 인생을 [위풍당당, 정정당당]하게 살리라 다짐해 보는 시간을 갖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여전히 가지며 살아왔는가? 고민되었다. 호연지기라 함은 맹자가 처음 쓴 말이지만, 그 말의 의미가 너무나 대단하고 높아서 나는 감히 범접치 못하는 성어이다. ‘더 없이 크고 강하며 곧은 기운으로 의(義)와 도(道)를 통하여 키워지는 것이다. 높은 산에 오르면 세상이 작아 보이듯이, 높은 뜻을 가진 사람은 세상의 사사로운 것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 존경하는 율곡 이이 선생이 평생을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정신으로 살려고 했으니, 혼돈하고 복잡한 세상에서도 바른 길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나는 얼마나 경주하였나 고민이 들었다. 언제 호연지기(浩然之氣)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다루어보고 싶다. 의(義)에 근거하여 두고 흔들리지 않는 큰 마음,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용기, 사소한 일에 목숨걸지 않고 잡다한 일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마음이 호연지기이다. 이 호연지기가 없으면 우리는 죽은 인생과 다름이 없다. 맹자도 이 말을 하고서도 함부로 정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호연지는 넓고도 큰 마음이다. 그리고 정의(正義)롭고 도의(道義)에 가득찬 말이다.
그리고 세 번째 성어는 ‘응변창신’이다. 응변창신은 '온고지신이나 법고창신’과 견주어 볼만한 말이다. 응변은 변화에 대응하고 대처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창신은 날마다 새롭게 정신을 무장한다는 것을 말한다. 글자 꽤나 안다는 사람들은 수시로 [응변창신]이라는 말을 앞세운다. 이 말은 그리 쉬운 말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에 민감하고, 그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상당히 떨어진다. 나의 경우도 10대 20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다루는 디지털 기기를 따라가는데 역부족이다. 그래서 도리어 배우려고 애를 쓴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고 하였으니, 아랫사람에게 배우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인생의 후배들이 도리어 변화에 민감하고 빠르다. 그리고 새롭게 한다는 것도 무척 쉽지 않다. 고정관념이 늘어가고, 싫든 좋든 [꼰대]라는 소리를 가끔씩 듣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성서와 탈무드 그리고 동서의 고전들과 삼국지]를 즐겨 읽는다.
성서나 탈무드를 읽으면서 푸르른 진리를 향한 열정과 기백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고전을 읽으면서 현대로 흐르는 옛 시절의 지혜를 더욱 터득하려고 한다. 또한 여전히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으려고 애를 쓴다.
그런 의미에서 [이어령 노교수님]의 열정을 배우려고 애를 쓴다. 이어령 교수는 내가 생활하는 곳의 아산출신이다. 지금은 암투병을 하시지만 [응변창신]의 선구자로서 존경해 마지않는다. [사람은 배워야 젊어진다. ] 탈무드는 말한다. ‘배우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맥아더 원수는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라고 하였다.
오늘은 마음에 감격스러워서 코리아나의 [손에 손 잡고]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달리는 차에서도 4인조 가수그룹의 위대한 올림픽 찬가를 들으면서 ‘코로나 시대에 코리아의 나아갈 길’을 생각해 보았다. 김연아 선수가 자신의 피겨곡으로도 선정된 이 곡을 보다가 그만 눈물을 콱 쏟고야 말았다. 최고가 되고자 하는 노력, 정상에 오르려고 하는 그 노력, 역경과 아픔을 딛고 피어난 위대한 꽃을 보는 것 같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별명이 [인동초(忍冬草)]이다. 나는 그 분을 통해서 위풍당당, 호연지기, 응변창신의 자세를 배운다. 김연아 선수를 통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 시대는 지나가고 코리아의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다시 애국하는 마음이 생겨나기를 소망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요즘들어 한국인들의 마음에 [애국애족]의 정신이 많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이해타산과 이전투구에 몰돌하고 있고,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좋게 변화시키려는 [티쿤 올람 - 유대인들의 세상을 바꾸려는 정신]의 정신이 많이 상쇄된 것도 사실이다.
오늘은 코리아나를 통해서 다시 힘을 내어본다. 그리고 그들이 가졌던 위풍당당함과 호연지기 응변창신의 자세도 새롭게 하며 나 자신을 많이 성찰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코로나 위기로 힘이 안나고, 고통스럽고, 지치고 상한 마음을 누구나 갖고 있다. 나 자신도 작년과 올해 초 그렇게 보내었다. 다시 IMF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도 [나의 갈길을 달려가야 한다] 그래도 [삶의 방향과 목적을 분명히 하고 의의 길로 힘차게 걸어가야 한다.] 그리고 기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한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죄(罪)가 된다.
코리아나에 대한 글을 여기에 다소 장엄하게 남겨본다.
[손에 손 잡고]
《손에 손 잡고》(Hand in Hand)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조르조 모로더 (Giorgio Moroder)가 작곡하고, 코리아나가 부른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의 공식 주제곡이다. 이 싱글 앨범은 비공식적으로 동양인 최초 1,700만 장이 판매되었다고 추측된다. 1988년 9월 18일부터 6주 연속 1위에 올랐다.
제목은 띄어쓰기를 적용한 "손에 손 잡고"가 정확하다. "손에 손잡고"로 적혀 있는 경우가 많지만, 문법적으로도 틀렸고, 음반에도 "손에 손 잡고"로 적혀 있으므로 시적 허용으로도 볼 수 없다.
<<역사>>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식 주제가인 손에 손 잡고가 탄생하기까지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먼저 1986년 MBC 방송이 공모한 올림픽 노래 당선작인 길옥윤 작곡 ⦁박건호 작사⦁ 김연자 노래의 <아침의 나라에서>가 1986년부터 인기를 끌면서[6]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공식 주제가로 선정이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고 일부에서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주제가로 기정사실(旣定事實)화 시키기도 하였다.
이런 당시 상황에서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올림픽은 한국인만의 축제가 아니고 세계인의 축제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감각의 주제가가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전세계 유명 음악인을 상대로 1987년 주제가 공모를 결심하였고 입찰 결과 스위스의 폴리그램사를 선택하여, 이탈리아의 조르조 모로더 작곡에, 미국의 톰 윗록(Tom Whitlock)과 한국의 김문환 교수의 공동작사로, 외국에서 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한 한국인으로 구성된 보컬 그룹 코리아나가 노래한 "손에 손 잡고"를 주제가로 탄생시켰다.
<<발표>>
발표는 내·외신 기자 100여 명을 초청하여 1988년 6월 21일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100여 국이 넘는 각국 언론과 방송 매체를 통한 홍보와 음반, 카세트, 비디오 등을 통해 올림픽 공식 주제가로서 보급되었다.
당시 유럽 차트에 몇 주간 1위를 해내는 기염을 토했고 올림픽 기간 중 미국의 라디오 방송 리퀘스트 1위를 달리는 등 대단한 기록과 명성을 날렸었다. 덕분에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은 유럽에 한국을 널리 알리는 성과를 거두었고 미국도 이 노래의 힘에 가세하면서 한국과 서울 올림픽이 더욱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의의>>
서울 올림픽은 오랜 기간 인류를 핵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냉전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 간의 첨예한 대립을 마무리 짓는 중요한 행사였다. 서울 올림픽의 공식 주제곡인 <손에 손 잡고>는 가사 속에서 그러한 점이 잘 녹아들어 있으며, 특히 대회 도중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의 마스코트인 발디, 보이콧으로 얼룩졌던 직전 3개 대회 마스코트인 아미크, 미샤, 샘 그리고 이번 대회 마스코트인 호돌이가 함께 어울리는 모습으로 마무리했는데, 이는 모든 인류가 염원하는 소망인 전세계의 화합을 잘 표현해낸, 그야말로 최고의 퍼포먼스 그 자체였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온 노래였다.
<<작곡>>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영상을 보고 분위기 등을 참고하여 곡을 완성하였다. 원래 연주 시간은 5분 15초였으나, 조직위 전문위원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4분 10초까지 줄이고 믹싱을 끝냈다.원곡 데모는 조 피줄로(Joe Pizzulo)가 불렀다.
<<조 피즐로>>
히 프로듀서 조르조 모로더는, 70~80년대에 신시사이저를 통한 혁신적인 연주로 전자 음악, 뉴웨이브, 하우스, 테크노 등의 음악 장르에 큰 영향을 주었고 각종 할리우드 영화 음악에도 참여하여 《플래시 댄스》, 《탑건》 등의 OST 타이틀곡[11]을 작곡하며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3회나 수상한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전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의 주제곡을 작곡하기에 검증되고 신뢰성이 높은 작곡가였다. 하지만 단순히 작곡가의 명성만 가지고 밀어붙인 것은 아니었으며 모로더는 '손에 손 잡고' 의 작곡을 위해 우리나라 노래를 3000곡씩이나 들었다고 할 정도로, 쏟아붓는 열정이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가사수록>>
<한국어>
하늘 높이 솟는 불
우리들 가슴 고동치게 하네
이제 모두 다 일어나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길
나서자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어디서나 언제나
우리의 가슴 불타게 하자
하늘 향해 팔 벌려
고요한 아침 밝혀주는 평화
누리자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손에 손
(서로서로 사랑하는)
손잡고 (한마음 되자)
<영문>
See the fire in the sky
We feel the beating of our hearts together
This is our time to rise above
We know the chance is here to live forever
for all time
Hand in hand we stand all across the land
We can make this world a better place in which to live
Hand in hand we can start to understand
Breaking down the walls that come between us for all time
Arirang[16]
Everytime we give it all
We feel the flame eternally inside us
Lift out hands up to the sky
The morning calm helps us to live in harmony
for all time
Hand in hand we stand all across the land
We can make this world a better place in which to live
Hand in hand we can start to understand
Breaking down the walls that come between us for all time
Arirang
Hand in hand we stand all across the land
We can make this world a better place in which to live
Hand in hand we can start to understand
Breaking down the walls that come between us for all time
Hand in hand, Hand in hand
(Breaking down the walls between us)
Hand in hand
(Breaking down the walls)
<<2016년 한국방문한 조르조 모로데르의 신문기사>>
세계적 거장 伊조르조 모로데르 방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암로 ‘2016 뮤콘’ 행사장에서 만난 이탈리아 작곡가 조르조 모로데르. ‘손에 손잡고’로 유명한 그는 “K팝,K패션이 세계로 뻗어가는 지금 상황이 놀랍고 반갑다”고 했다.
《이탈리아는 20세기 인류 문명에 두 명의 조르조를 선물했다. 조르조 아르마니(82), 그리고 조르조 모로데르(76). 5일 오후 서울에서 만난 백발의 거장, 모로데르는 “하긴 저와 아르마니는 인연이 깊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1980년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리처드 기어의 옷을 그가 디자인했고 전 음악을 맡았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그는 그룹 코리아나의 의상을 만들었고 전 ‘손에 손잡고’를 작곡했고요. 허허.” 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는 2016 뮤콘(서울국제뮤직페어·6∼8일) 참석을 위해 방한해 한국 걸그룹 씨스타를 위해 작곡한 ‘One More Day’ 를 발표한다. 6일엔 이 노래 뮤직비디오 촬영에도 임한다.》
1988년 이후 28년 만의 공식 방한. 그와의 만남은 자연스레 ‘손에 손잡고’의 작곡 과정을 직접 듣는 첫 인터뷰가 됐다. “미국 음반사에서 (서울 올림픽 주제가 작곡) 제안을 받은 뒤 한국 전통음악을 파고들었어요. 1987년에 서울에 와 전통 타악기 학원을 방문한 게 기억나요. 커다란 북에서 나오는 음향은 처음 들어보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소리였죠. ‘이걸 반드시 넣어야겠다!’ 독일 뮌헨, 미국 로스앤젤레스, 서울에서 동시에 녹음을 진행한 크고 복잡한 프로젝트였어요.”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모로데르는 한국 전통 북과 ‘손에 손잡고’의 어우러짐을 현장에서 보고 형언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그가 가장 먼저 지은 멜로디는 ‘손에 손잡고/벽을 넘어서’ 부분. “로스앤젤레스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 벼락처럼 그 멜로디가 생각났어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죠. 제 음악 인생에서 유일하게 피아노 앞이 아닌 데서 만든 선율이거든요. 아무 종잇조각이나 꺼내 악보를 그린 다음 미친놈처럼 녹음실로 달려갔죠. 잊어버릴까 두려워서요.”
뮌헨에서 녹음을 마친 코리아나 멤버들을 이탈리아 밀라노의 아르마니에게 데려간 것도 모로데르였다. “아르마니는 저와 함께 1986 서울 아시아경기 영상을 본 뒤 ‘영상 속 서울은 색채가 넘치니 역으로 흑백(의상)을 택하고 싶다’고 했죠.”
그에게 한국 문화는 ‘손에 손잡고’ 때문에 파고든 국악이 전부였다. 적어도 몇 년 전까지는. “한국 올림픽조직위원회의 특별한 부탁으로 노래 말미의 ‘Hand in Hand’를 막판에 ‘Arirang’으로 바꿨던 게 기억나는데, 글쎄, 제가 요즘 일주일에 두세 번은 이탈리아 집에서 아리랑TV를 시청해요. K스타일, K패션, K팝이 너무 재밌어서요. 아티스트인 27세의 아들도 K팝 팬이고요.”
[손에 손 잡고] 간다면 아무리 먼 길도 갈 수 있고,
아무리 높은 곳도 오를 수 있고, 아무리 험한 길도 능히 갈 수 있다.
요즘 스트레스가 극도로 많을 것이다.
[스트레스학]에 보면, 가장 스트레스가 잘 풀리는 것에 대해서 소개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바닷가 해변에서
신발을 서로 벗고
서로의 손을 잡고
햇살에 부딪치는 푸른 파도를 바라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멀리 해송숲을 바라보고
사랑의 밀어를 나누면
가장 잘 풀린다고 한다.
가끔은 그리 해보라.
위풍당당해지고
더욱 힘차게 살아가리가
더욱 뜨겁게 사랑하면서 살아가리라
다짐하지 않을까?
[손에 손 잡고]를 작곡한 조르조와 4분의 코리아나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이 글을 마치고 한번 더 들어 보면 12번을 듣는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경험한다. 이 글을 읽고 코리아나의 노래를 몇 번 들어보라. 정말 감격과 위로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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