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 김삿갓의 삶과 문학
히브리 민족과 여행의 기록
2002년도에 이문영 작가는 [김삿갓의 지혜]에 대해서 썼는데 2005년 참 재미있게 그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2020년 마침 내 서재(library)에는 마침 그의 책이 있었다.
세도가문인 안동 김씨의 후손이지만 명예와 권력, 재물과 부에 대한 이상을 버리고 전국 8도를 유람하며 나그네로 살았던 김삿갓의 일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김삿갓은 시인이었다. 그것도 [유랑시인]이라는 별호를 갖고 있었다. 그에 대한 글을 쓰려니까 자주 읽는 히브리서 11장 믿음장이 떠오른다. 그래서 잠시 성서 히브리서 11장을 펼쳐서 읽다가 이 땅보다 천국을 사모하는 사람에게는 [외국인과 나그네]와 같다는 표현에 눈길이 갔다. 나도 젊어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여기 저기 떠돌며 지냈다. 아직도 정착하지 못하는 영혼이다.
유대민족의 조상들은 모두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았다. 이들은 ‘히브리 민족’이라고 불리웠는데, 성서학을 잠시 전공한 내 입장에서는 히브리 민족은 유랑하는 민족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때부터 제대로 정착을 해본 역사가 거의 없다. 원래 히브리(Hebrew)라는 뜻은 '건너온 자’ 뜻이다.
그래서 이들은 ‘건너온 사고’가 강하다. ‘건너온 자들의 사고’를 가진 민족인데, 이들은 요단강을 건너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간 사람들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장례식에는 자주 부르는 찬송가가 있다. 바로 ‘저 요단강 건너가서’이다. 물 건너온 사람들을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성서는 부른 것이다. 히브리 민족들은 성서에 자신들의 방랑과 유랑의 기록을 남겼다. 창세기를 필두로 하여, 시편, 이사야, 예레미야, 느헤미야, 에스라서를 보면 여실히 그것이 보인다. 이들은 건너온 민족 답게 건너가는 것도 자유한 민족이었다. 지금도 이들은 ‘건너온 사고’로 살아간다. 이 땅은 잠시 여행온 것이기에 언젠가는 다 놓고 떠나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시와 노래를 좋아하고, 유머를 좋아한다.
(요단강)
그 성서와 김삿갓이 무슨 상관이 있어서 그럴까? 그런데 인간사가 서로 비슷하다. 인간은 구조가 같다. 그래서 나는 인문학이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이다.
이런 글쓰기는 내가 생각해도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김삿갓만 운운하면 되었지, 왜 히브리 민족도 나오고, 요단강도 나오는 걸까? 왜 사람들은 김삿갓의 삶에 대해서 즐거워하고 한편으로 부러워할까? 자신들은 어딘가에 묶여 있고, 매여 있고, 속박되어 있는데 반대로 김삿갓이라는 양반은 제멋대로 이고, 그러면서 해학적이고, 그러면서 지혜롭고, 그러면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았을까? 그것은 바로 ‘영혼의 자유’라는 것 때문이다.
[영혼의 자유]란 어떻게 얻는 걸까? 나는 과연 자유한가? 아니면 어딘가에 발목 잡히고 속박되어 있지 않은가? 잠시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 성서에서는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표현이 나오지는 않지만 자유는 죄와 어둠의 권세에서 속박된 자가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사람이 된 것을 말한다. 그런데 과연 이 땅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지낼 수 있을까? 교회를 다니고 종교적인 의식이나 행동을 하면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져본다. 이 영혼의 자유는 어디서 오는 걸까?
그 답은 바로 ‘여행’이라는 것에서 찾았다.
유대인들은 우리는 이 땅에 ‘영적인 여행’을 하러 온 사람이라고 말한다.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말한다. 단지 성서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만 아니다. 다른 동서고금의 고전들을 보면 이러한 ‘자유를 얻으려면 여행을 하라’는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많은 고전의 저자들은 여행을 즐겼다. 철학자들과 시인들은 여행을 즐겼다. 이들은 방황도 하고, 방랑도 하고, 온갖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겪어가면서 여행을 하였다. 그러면서 세상에 실망하고, 사람에 실망하면서 본인의 자아의 자유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여행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설레이는 관광으로 시작한다. 여기 저기 둘러보고 맛있는 것도 먹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관광은 지겨운 일이 되고, 귀찮은 일이 된다. 몇번을 다녀도 설레임은 없어지고 도리어 피곤해진다. 거기서부터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생이 광야라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광야에서 피어난 꽃이 아름답다고 여기게 된다. 인생이 항해라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어디론가 흘러와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인생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 저것 일을 하고 고생을 하여도 인간은 일탈을 꿈꾼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 그래서 광고에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고 한다. 꼭 여행가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것이다. 바로 자유의 날개를 달고 날고 싶은 것이다. 순수해지고 싶고,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고 최인호 작가의 책을 잠시 본적이 있다.[나는 바람처럼 자유롭다] 인데 그 작가의 여행기였다. 그 책의 제목처럼 보이지 않지만 있는 바람을 보라. 바람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어디론가 와서 어디론가 간다. 사람들은 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사람답다’라고 여기는 것이다. 바람처럼 자유하고 싶고, 구름처럼 있다가 없는, 없다가도 있는 존재의 자유를 얻고 싶은 것이다. 외국인과 나그네를 한단어로 하면 [여행자]이다. 그런데 단순 여행자가 아니다. 그 여행자는 ‘시인이며, 철학자이며, 노래하는 가수이며, 사랑자요 행복자’이다.
나는 나 자신을 ‘책읽는 여행자’라고 단정했다. 책을 읽으면 어디론가 나를 먼데로 데려다 준다. 타임머신은 없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현재로, 미래로 날아다닌다. 이것도 하루 하루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나를 ‘자유케 하는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은 [자유민주주의]의 국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자유라는 것이 헌법에 보면,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이다. 이것은 과연 진정한 자유인가? 이것은 형식자유요, 껍데기 자유이다. 진정한 자유는 영혼의 자유에 있고, 영혼의 평화에 있다.
김삿갓과 히브리 민족을 말하면서 멀리 왔다.이제는 김삿갓에 집중해본다.
그는 홍경래의 난에 자신이 조부 김익순이 반군에게 항복했다고 멸문지화를 겪게 된다. 6살에 강원도 영월에 오게 된다. 그렇지만 그는 20대에 괴나리봇짐을 지고 삿갓을 쓰며 평생동안 계속된 방랑의 길을 걷는다. 그 이유를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경계인’의 삶을 산 것이다.
다시 김삿갓의 방황에 대한 구체적인 단서를 밝혀본다.
김삿갓은 원래 10살 때 사서삼경을 통달할 정도로 수재였다고 한다. 그가 20살에 되어서 백일장에 나가가 되었는데, 그날 백일장의 시제는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해보라] 라는 것이었다. 그는 평소 정가산을 존경하고, 김익순을 경멸하였다. 그래서 정가산을 [천고의 빛나는 충신]으로 묘사하고, 김익순을 [백번 죽어도 아깝지 않은 만고의 비겁자] 라고 묘사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장원이었다. 그는 어머니께 이를 자랑하였지만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 김익순이 바로 김삿갓 김병연의 할아버지라라는 것을 고백하였다. 그는 그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으로 자결하려고 하였고,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이를 두고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허무한 인생사 방랑으로 여행으로 보낸 것이다.
김삿갓은 자신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차마 볼 수 없다고 여겨 삿갓을 쓰고 다니게 된 것이다.김삿갓은 경계인이었다. 그는 안동 김씨였지만 관직에 나갈 수도 없고, 아주 뛰어난 머리를 가진 사람으로서 시문에 능통한 인물이었다. 과거는 사실 시문만 잘 쓰면 급제하는 것이 조선의 과거시험이었다. 그런 그는 자신의 재주를 펼칠 길이 없었고, 자신은 어디에도 머물데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는 처자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의식과 죄인의 후예라는 꼬리표를 달고 아웃사이더로 살기로 작정한다. 그는 ‘방황하는 영혼’이 되어서 전국으로 나돌아 다니는 사람이 된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기독도가 자신의 집을 나와서 천국으로 가는 여정을 다룬다. 온갖 고생을 하면서 구원의 길을 찾아서 자아의 회복을 찾아서 방황한다. 그는 관광객이 아니라 여행자였다. 그것을 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영혼의 방황의 연속임’을 발견한다. 인생은 천국에 가기까지 계속되는 방황이며,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비슷하다.
김삿갓은 그냥 떠돌아 다니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시를 남기는 시인이 되었다. 어려서 집에는 김삿갓의 시집이 있었다. 학교 선생이셨던 아버지는 책을 너무나 좋아하셨고, 어린 나의 눈에도 무엇인가 불안한 눈빛을 가지셨던 분이셨다. 그것은 마치 어른이 되어서도 ‘방황’하는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현재의 삶에 만족을 하지 못하셨다. 그 위안을 늘 책과 술에서 찾으려고 하셨다. 그런데 시서화에 능통하신 아버지는 늘 붓으로 서예를 하고, 시문을 옮기고,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낙을 삼으신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어머니는 싫어하셨다. 가정을 잘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김삿갓 콤플렉스’를 갖고 계신 것 같았다. 일종의 ‘방랑벽’이나 ‘구르는 돌’과 같은 컴플랙스를 갖고 계신 것이었다.
김삿갓의 자유한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일찍 발견한 것이다. 이 세상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일 뿐이라는 발견이다. 더구나 김삿갓은 시인이 아닌가, 시인이라면 세속의 부귀와 권력, 명예에 집착하는 것은 안될 일이다. 어디든 머무르고 싶으면 머물렀다가 떠나고 싶으면 아무 미련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는 삶이 시인에게는 가장 어울리는 삶의 모습이다.
예수의 제자들도 그러하였다. 예수 사후에 전도인과 선교자의 길을 걸을 때 자신들을 영접해 주는 이들에게는 복음과 평화의 축복을 선물하였고, 자신들을 박해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에게는 손발을 털고 나왔다. 이들은 모두 [나사렛 시인]의 제자여서 시처럼 살았던 것이다.
이처럼 김삿갓은 시인으로서 그 본래의 생의 명령에 가장 충실하게 살았던 인물이다. 그러고보면 동서고금의 문학사에서 훌륭한 시인들이나 문인들은 대개가 가난하였다. 그리고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떠돌이로 살았다. 당나라의 이백이 그리하였고, 두보가 그리하였다. 신라의 최치원은 골품제의 희생양으로 살았다. 당나라 유학파 출신이지만 신라의 골품제의 벽에 눌려 전국을 방랑하였다. 최치원은 해동 제일의 천재였지만 그 천재를 시기한 사람들은 그를 멀리하고 차별하였다. 부산의 해운대가 그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전국의 여러 곳에 최치원의 흔적(stigma)가 있다. 그가 방랑하고 유랑하지 않았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또한 다산 정약용 선생이 그리하였고, 완당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그러하였다.
다산은 포항으로 강진으로 유배를 다녔고, 추사는 제주도로 함경도로 유배를 다녔다. 그 세월이 20년이나 되었으니 그 세월동안 이들은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책은 아마 원없이 읽었을 것이다. 또한 금오신화의 저자인 [김시습]도 마찬가지였다.
김삿갓의 시를 하나 올려본다. 제목이 무엇인지 아는가?
허름한 송반에 죽 한 그릇
그곳에 하늘과 구름 그림자가 비쳐있다
주인은 아무 말없이 무안해 하지만
멀 건 죽에 거꾸로 비쳐오는
청산을 나는 사랑한다오
그는 이곳 저곳 정처없이 다니다가 가난한 농촌 마을에 한 집에서 구걸을 한다. 달리 먹을 것이 없었던 집 주인은 손님 대접을 제대로 못해 무안해 한다. 그 멀 건 죽에 비친 하늘과 구름을 그는 사랑의 마음으로 극복한다. 그런데 이 시의 제목은 [무제(無題)]이다. 차마 제목을 달 수 없었던 것은 김삿갓의 [미안함]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는 당대에 거들먹거리는 못난 양반들을 풍자하고 조롱하였지만, 가난하고 착한 민초들에게는 한없는 애정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의 아들의 이름은 [김익균]이었는데 그 아들도 아버지를 찾아 다니며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하였지만 그는 결국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만 전남 화순의 절에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는 아마도 유교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조선의 유학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허세의 유학이라는 것을 보면서 도리어 불교사찰로 가서 자신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김삿갓을 만나려면 강원도 영월과 전남 화순으로 가면 된다. 지금 김삿갓은 한국의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죽어서 기억하는 인물들... 그 인물들이 나에게 스승이 된다.
이 글을 막 쓰다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 무엇인가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글 쓰는 감각이 높아지면 다른 이들의 글에 대해서 선별하는 능력이 높아진다. 내가 선별한 그의 최고의 시문을 여기에 밝혀본다. 참 글이 자유롭고, 이리 저리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그러나 쓰러지거나 부러지지 않는다.
[화거죽(化去竹), 되는 대로] 라는 시이다.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 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이대로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붙이는 저대로
손님 접대는 가세대로
시정 매매는 세월대로
만사가 안 되네 내 마음 대로
그렇고 그런 세상 지나가는 대로
그런데 김삿갓을 생각하니 고산자 김정호 지리학자가 떠오른다. 이들은 서로 동시대를 살다가 간 인물들이다. 이둘은 서로 방랑자의 아이콘들이다. 한 사람은 시를 사랑하고, 한 사람은 이 땅을 사랑하였다. 자연인도 이런 자연인은 없다. 아마 이들은 서로 만나지 않았을까? 만났으면 금강산에서 만났을 것이다. 왜 금강산이냐고? 고산자 김정호 선생도 자주 금강산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김삿갓도 봄, 가을마다 금강산을 찾아 그 절경에 흠뻑 빠져 지냈다고 한다.
그의 [금강산]이라는 시를 보자.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를 돌아가니
물에 물, 산에 산, 곳곳이 절경이로다.
우리는 그저 김삿갓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이 운명적이고 기구하다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그의 스토리는 그만의 스토리이다. 우리는 그 스토리를 똑같이 따를 수 없다. 다만 그는 방랑시인으로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했다는 것은 알아주어야 한다.
삶의 고난과 아픔, 한과 눈물이 많은 사람들은 시인이 되고 철인이 된다. 그러면서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초월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주어진 일주일은 최선을 다해서 일해야 한다.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인은 회사일을 깔끔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일주일에 하루는 시를 읽고, 여행하고, 글도 쓰고, 음악도 나누고, 술 한잔을 해도 좋다. 그러나 허세를 부리고, 눈이 높으며, 교만하고, 허탄한 소리를 지껄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잠시 왔다가 잠시 후면 요단강 건너서 떠나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택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관대해야 한다. 그리고 남이 뭐라하든
내 인생을 사랑하고 상처받지 말라. 자유하라.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김삿갓의 삶의 운명과 기구함에 잠시 눈시울이 적셔진다. 그러나 그의 지혜와 재치, 자유함과 떳떳함에는 웃음을 짓는다. 그는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한다.
나도 그렇게 남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남에게 교훈도 주고 감동도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나도 어느새 자유를 찾아 떠나는 시인이 되고,
자존을 찾아 떠나는 철인이 되어가나 보다.
책도, 만남도, 인생도 모두 여행(Journe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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