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신뢰
날마다 여러 책을 읽습니다.
여러 책을 읽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읽어야 할 책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날마다 글을 씁니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도 단순합니다.
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에서 맴돌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들을 차근 차근 정리하려면 글을 쓰는 것이 제격입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라는 것은
사실 작가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 행위는 사실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나의 발전을 위해서 책과 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과 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중요한 일은 무언고하니,
바로 [자기로 살기] 라는 것입니다.
자기로 산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이 주관성과 주체성이 강하다는 것이며
자존감을 갖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로 살기]의 밑바탕은 바로 [자기 신뢰]가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자신이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망설이는 것이며,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자의식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반대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다면
모든 것에 대한 자신감이 생깁니다. - (라 로슈코프)
오늘은 자주 가는 북카페 지기랑
자신감과 자존감에 대한 토론을 하였습니다.
토론은 늘 즐겁습니다. 그 토론중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나 자존감은 일종의 신뢰TRUST 라는 것입니다.
자신감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자존감은 상당히 보편적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실 자신을 믿지 않으면 다른 것이나 대상을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든 믿음의 기초는 자기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래서 종교서를 잠시 찾아 보았습니다.
법구경을 보았습니다. 법구경은 불교의 주요 가르침들을 쉽게 잠언형식으로
묶은 책입니다. 그런데 길지는 않지만 정말 긴 여운과 생각거리를 줍니다.
[자기 신뢰] 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기에 이 부분에 대한 법구경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요즘은 그리 책을 찾지 않아도 휴대폰에는 상당히 많은 좋은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읽는 책만 책입니다. 아무리 디지털 세대라고 하여도 아날로그적인 독서를 하지 않으면 그냥 멍청합니다.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생각하는 시간은 상당히 이기적일 수 있지만, 여기서 이기성이라는 것은
자신만 지독하게 생각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이기주의가 문제이지, 바른 이기성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의 대부분은 경제와 밀접합니다. 그런데 이 경제의 주요 목적이 바로 [이기성의 추구] 라는 것입니다. 물론 욕망이라는 분모를 최소하는 것이 중요한 거라는 것입니다.
법구경의 글을 쓰려다가 사족이 생겼습니다.
"나야말로 내가 의지할 곳이다.
나를 제쳐 놓고서 내가 의지할 곳은 없다.
착실한 나의 힘보다 나은 것은 없다"
이 말을 보면서 법구경이라는 훌륭한 불교의 잠언도
자신의 소중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곧 [자기 신뢰 SELF - RELIANCE]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란 존재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데 익숙해서 그렇습니다.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나란 존재에 대해서 비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나 잠재력을 무시해서 그렇습니다.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나란 존재에 대해서 남에게 의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의존증이 심해지면서 곧 자기 독립성을 잃거나,
자립적이거나, 책임감있게 행동해 나갈 확률이 적습니다.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자신을 믿는 다는 것은 어쩌면 신을 믿는 것만큼이나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믿으라 해서 믿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내 속에 신뢰요소가 적어서 그렇습니다.
우리속에 [신뢰요소]가 너무 적다면
곧 자신을 작게 보거나, 스스로 제한을 두거나, 낮추는 것입니다.
이를 [벼룩의식]이라고 부릅니다.
벼룩은 자신보다 무려 300배를 높이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능력을 제한하면 그 제한한 높이만큼만 오르다가
나중에는 그 높이도 못오르고 낙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벼룩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높이 점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신뢰를 높이면 바로 높이 점프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감의 날개를 달면 높이 날 수 있습니다.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을 보니
"날자, 높이 날자꾸나" 라는 명구가 있었습니다.
이상의 [날개]는 사실 이상의 [날개]입니다.
높이 나는 새가 되는 것은 갈매기의 꿈만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꿈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만큼 우리는 높이 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는 만큼 되고, 말하는 대로 되고, 생각하는 만큼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실 믿기 어렵습니다. 믿음대로 된다고 하면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다만 믿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
될 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믿음은 믿을 수 있는 인간적인 믿음과 더불어서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한다면 정녕 일어날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착실한 나 자신이 되어서, 그 힘으로 더 큰일도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믿어 보십시오.
정녕 믿음의 신뢰요소가 부족하더라도
믿어 주십시오.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십시오.
사람이 난다, 난다 하면 납니다.
사람이 된다. 된다 하면 됩니다.
자신을 믿으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자신을 믿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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