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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진정으로 무엇을 배워야 할까?
'
오늘의 주제는 공부는 방향일까, 속도일까?에 대한 것이다.
공부라는 말처럼 지겹고 고통스런 말도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전부터 지긋지긋하게 듣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한국인에게 공부는 무엇일까? 그것은 시험과 성적으로 귀착되는 '학습'에 불과하다.
교과서라는 말보다 학습서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우리는 과연 지금까지 무엇을 공부해 왔는가? 공부다운 공부는 한 적이 있는가?
우리 사회의 공부는 읽고, 외우고, 그리고 시험보고, 까먹는 순서를 거친다.
그러다보니 사유의 시간이나 생각의 시간, 질문과 탐색, 탐구의 시간이 별로 없다.
한국을 그래서 '교육강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교육만이 살 길이다' 라는 구호도 맞지 않는다.
다른 부존자원이 없어서 인적자원의 신장이 없이는 나아길 길이 없어서 시킨 것이다.
고전을 오랫동안 익히다보면, 공부는 사실 방향의 예술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속도의 기술이다. 고전도 학습의 대상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경우 25살 정도까지는 공부하는 시기라고 여기고,
25세를 깃점으로 공부는 끝났다고 여긴다.
25세 이후의 사람들이 무슨 공부를 한다는 것은 대학원이나
아니면 특별한 취미로서 책을 읽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30전에 공부를 끝낸다는 것은 지성의 문을 닫는 행위이다.
공부에 대해서 직업상의 이유가 아니거나, 미래준비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려 몸을 움직이는 일도 별로 없게 된다. 그저 주어진 삶의 속도에 따라서 표류하게 된다. 안정된 인간관계나 직업적인 관계속에서 안전패턴을 유지하는 삶의 궤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인생의 블랙홀 30, 40대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블랙홀을 경험하고 산다. 3-40대를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보면 결혼하고, 일하고, 자녀들을 키우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다른 특별할 것도, 특이할 것도 없는 삶을 지내온 것이다. 경제적 안정추구와 부동산을 매입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었다. 그런데 그러면서 많은 빚도 생겨났다. 물론 나의 경우 30 대 초반까지 대학원을 다녔다. 유학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책과는 당연히 친숙하게 되었지만 대다수의 나의 친구들과 지인들을 보면 일찍 공부를 마치고 늙기 시작했다. 세파에 찌든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철학자 이진경은 말한다. "한국은 젊은 노인의 사회다" 이 말은 그동안 읽고, 외우며, 지식을 습득하는 이런 식의 공부는 근대 교육의 산물이다.
한국은 사실 19세기 사고방식으로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청소년기를 마치면 바로 노년기?에 접어든다는 것이다. 학생이란 평생 배움을 지속하는 삶의 과정이다. 그런데 학생의 시기를 마치면 공부를 끝낸 노년기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탈무드는 말한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노년도 추수의 계절이다." 노년은 겨울에 비유하지만, 탈무드는 노년을 가을에 비유한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4계절이 없다. 3계절만 있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봄이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우는 자로 평생의 정체성을 삼아야 할 일이다.
공부는 장인의 삶이다.
공부라는 한자를 보면 말 그대로 [장인 - 마이스터]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농기구나 무기 등을 만드는 숙련된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이 말속에는 솜씨나 재주가 좋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이런 재주를 갈고 닦는 노력이나 직업이 그를 위한 삶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한다는 것은 이런 저런 실용적인 물건을 잘 만들기도 하고, 그림이나 음악, 그리고 무예나 무술을 익히는 것 또한 포함된다.
공부의 중국음은 '쿵푸'이다. 그러므로 쿵푸라 함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솜씨, 재주,역량, 노력, 고민하는 힘도 포함된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는 책을 읽고 단순히 암기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이 다름을 학교나 기업, 그리고 교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심어 주어야 한다.
공부는 학습보더 무척 어려운 개념이다. 알아도 아는 게 아니니 말이다. 항상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고,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감각과 생각으로 이치를 따져보고 몸에 체화하여 그 것을 자신의 일부와 자기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학습은 속도를 내는 것이지만 공부는 방향인 것이다.
항상심과 향상심을 동시에 가져라.
공부를 하다보면 항시 기본이 중요하다. 기본을 유지하는 것을 '항상심'이라고한다. 이 항상심이 있어야만 공부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다 말다 하다 말다 하다보면 항상심이 성립되지 않는다. 기본에 충실한 것을 [본립도생]이라고 한다. 베토벤의 스승인 네페 선생님은 "너는 의욕은 강하나 기본이 없다."라는 말을 하여 베토벤으로 하여금 기본에 충실하고 탄탄해야 함을 강조하고 강조했다. 이 기본은 항상 멈추지 않고 배움의 정렬을 유지하는 데서 온다.
항상심이 나중에 기본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으면 그 이후에는 향상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항상 기본을 유지하는 사람이 향상이 되지 않는다면 어불성설이다. 나는 이를 [마음이 연마나 마음의 연단]이라고 부른다. 연단이나 단련이 되지 않으면 강하고 담대한 사람을 만들 수 없다. 공부는 그냥 단순히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심을 가지고 향상이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그 공부는 나중 [수행]으로 나타난다. 사실 종교적인 것이 심오하고 탁월해 보이기도 하지만, 종교도 공부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도를 닦는 일이나 수행의 의미까지로 확장된다.
공부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항상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학생과 학인이 넘어야 할 고개는 여전히 남아 있는데, 그 고개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다.
자신이 자신의 고개를 넘는 일이 탁월성을 보장하는 것이며, 공부의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곧 공부이고, 자기를 극복하고 예와 겸손을 갖추는 것이 공부이고, 나의 나됨을 추구하고 발견하는 것이 공부인 것이다. 공부에 대한 생각을 여기까지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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