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은퇴한 노교수와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은퇴를 해보니 처음 몇 달은 정말 날아갈듯이 신나고 즐거웠다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없어진 것이 제일 나를 힘들게 하고, 시간이 남으니 나에게 찾아온 것은 외로움과 무료함이라네.”
늘 강의하고 가르쳐오다가 그 일을 종료하니 은퇴라는 것이 때로는 무섭게 느껴질 만도 합니다.
며칠 전에 은퇴(隱退)라는 단어를 살펴보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보험사의 통계를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려한 은퇴를 꿈꾸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맞이한 은퇴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고 합니다. 은퇴준비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겨우 2-3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는 [노인복지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갈수록 세상은 노령화를 넘어서, 노령사회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 사는 것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사회입니다.
하지만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의 말대로
[오래 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옳게 사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현명한 은퇴의 철학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은퇴란 단어를 보면,
왜 은퇴가 쓸쓸해서는 안 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은(隱)은 ‘벗어나다 또는 숨다’ 라는 뜻입니다.
퇴(退)는 ‘물러나다 또는 그만두다’ 라는 뜻입니다.
은퇴는 지금까지 하던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현직을 물러나는 것입니다.영어로는 RETIREMENT입니다. 이는 어떤 교수의 말에는 ‘다시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일’이라고 합니다.
서양은 은퇴를 발전과 재도전의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한국은 아직 그와 반대의 입장인것 같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노령사회]로 돌입하였습니다. 그 사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령인구에 대한 대비를 잘하였습니다. 한국은 아직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책이 그리 신통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온고지신]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현들로부터 배우는 [은퇴의 기술이나 은퇴의 철학]을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기술은 테크닉이 아니라 아트입니다.
한국인들이 자주 쓰는 말이 있습니다. “돈만 많으면 한국사회가 살기 좋은 곳이야” 물론 틀리지 않습니다. 자본주의(Capitalism)가 강화되는 시대에서 머니 money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사랑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이 저 하늘에 멀리 있는 신보다 더 가까이하는 세상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돈이 만물의 척도처럼 여기는 것 또한 크게, 그것도 아주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몇 백년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한국 분들이 너무나 잘 아는 분들로부터 노후와 은퇴의 철학을 배우고자 합니다. 이상한 개똥철학자들이나 소피스트들을 등장시키는 수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들 제 멋대로 사는 것을 낙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글은 필요가 없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의술)은 길다” 그렇다면 오래 살아도 짧은 게 우리 인생이요, 짧게 살아도 긴게 예술이라고 하니, 우리는 결국 예술가가 되어야 합니다.
인생 예술가가 되어야 합니다. ‘라이프 아티스트’가 되는 것을 노후의 목표요 은퇴후의 낙으로 삼아야 합니다.노후의 삶은 물질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삶의 본질적인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고, 즐거움을 만끽하는 시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현(聖賢)들에게 배울 은퇴나 노후의 지혜가 뭐가 있을까요?
물론 책속이나 기록에서 이러한 지혜를 찾아야 하겠지요.
논어를 공부할 때 공자는 군자삼락(君子三樂)이라 하여, 배우고 실천하기, 친구를 사귀기, 그리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난초와 같은 마음의 여유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노후에도 배우기, 인간관계,그리고 자기수양입니다
그러나 공자의 유학맥을 따른 맹자는 다른 군자삼락(君子三樂)을 말하였습니다. 보통 우리가 잘 아는 군자삼락(君子三樂)입니다. “부모 형제가 살아계시고 무고한 것, 하늘을 우러러 보고 사람을 굽어 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것,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을 삼락(三樂)으로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낙이 없어’라고 말할 때, 공자와 맹자의 삼락(三樂)중에서 어느 것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여길 때 그런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삼락중에서 두락만 빠져도 낙이 없어지는 것은 맞습니다. 공자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강조하다보니 행복은 바로 자신의 수양과 관련된 것으로 본 것이요, 맹자는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인간관계에 행복을 많이 둔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도 이런 군자삼락(君子三樂)을 말한 선인들이 있을까요? 그중에 대표적으로 조선후기의 다산 정약용 선생과 추사 김정희 선생을 소개해 볼 수 있습니다.
다산과 추사의 책들은 워낙 많이 출간이 되어서 쉽게 [군자삼락(君子三樂)]에 대한 글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다산(茶山)은 정말 다산(多産)을 한 분입니다.
“그 하나는 어렸을 때 노닐던 곳에 어른이 되어 다시 가기, 다른 하나는 곤궁했을 때 지나온 곳을 성공하여 찾기, 그리고 마지막 즐거움은 홀로 외롭게 지내던 곳을 좋은 손님들과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이끌고 함께 보기” 라고 보았습니다.
다산의 군자삼락(君子三樂)은 어려서부터 늙어질 때까지 친구나 고향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낙을 누리고자 했던 소박함이 보입니다. 아마도 포항과 강진에 20년 정도를 유배했던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완당 김정희 선생은 인생삼락을 일(一)독(讀)이(二)색(色)삼(三)주(酒)로 표현했습니다.[일독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항상 배우는 선비 정신을 간직하는 것이요, 이색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변함없는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고락을 같이 하는 것이요, 그리고 삼주는 벗을 청해 술잔을 기울이면서 인생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풍류를 즐긴다] 라고 해석하면 좋겠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책과 시와 글로 자신을 다스리고
함께 있을 때는 벗과 더불어서 술 한잔 기울이며 인생사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은퇴가 즐겁고 설렐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러한 것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라는 정호승 시인의 싯구처럼 자기를 수양하고, 다른 이들과 잘 지내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우리는 과연 인생의 즐거움을 무엇으로 삼습니까? 일단 앞서 말한 돈(money)를 1순위로 잡을 수 있습니다. 여러 선현들은 돈 걱정이 별로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민초들은 날마다 쌀 걱정과 더불어서 살 걱정을 같이 하였습니다. 지금도 현대인들은 먹거리 걱정보다 앞으로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을 합니다.
충분한 경제적인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지난날 힘들고 어렵게 살았던 것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친구들과 잘 어울려 술 한잔 기울이며 이제 곧 우리의 날들이 온다고 인생사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은퇴생활도 모연해집니다. 반드시 돈이 행복의 척도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앞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삶의 어려운 시기를 함께 지낸 사람들과 인생을 반추하며 즐기기 위해서는 인내하면서 재정적인면의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등바등 살려고 하는 것도 답은 아닐지 모릅니다. 다만 평균수명의 증가로 인하여서 노후를 보다 편하게 보내려면 적어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또한 은퇴시기에 원하는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을 누리려면 건강이 필수입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려고 해도 건강해야 합니다. 지금은 한국인들이 건강에 대한 가치가 거의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이후 노인들이 가장 취약한 위험군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별히 6,70대에는 건강에 신경써서 주의하여야 합니다. 젊었을 때 열심히 살고 건강은 해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은퇴시기에도 그렇게 지낼 수는 없습니다. [돈을 저축하듯, 건강도 저축하라] 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성현들이 말한 [자기 수양 또는 수신(修身)]을 말하고 싶습니다. 공자,맹자, 다산, 추사의 삼락중에서 공통적인 면은 ‘수양’이나 ‘수신’에 있습니다.
예산의 [추사고택]을 가보니, ‘천하의 즐거운 일을 책을 읽고, 밭을 가는 일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책을 보는 것이든, 밭을 가는 일이든 즐거움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감합니다.
어찌보면 노후와 은퇴의 시기에 사람을 외롭지 않게 만드는 것은 자기 수양이며 수신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돈과 건강은 외적인 부분에 해당한다면 자기 수양은 내적인 부분에 해당합니다. 안으로 자기를 다스리고, 밖으로 다른 자연과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가진다면 이는 필경 즐거움이요 낙(樂)일 것입니다. 자기 수양은 저마다의 삶의 이유나 목적, 열정과 꿈이 나이가 들어서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에게, 혹은 당신에게 인생의 삼락(三樂)은 무엇입니까? 21세기 자본주의시대에 걸맞는 삼락을 잘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배우기나 고전으로부터 배우기(온고지신과 법고창신의 자세)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유학과 한문학을 하셨던 나의 작은 숙부께서는 학교장으로 은퇴하셨는데, 늘 ‘책, 벗, 술’을 삼락(三樂)으로 정하고 사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손으로 하는 즐거움과 같습니다. 책도 손으로 잡아야 하고, 벗도 손을 잡아야 하고, 술도 손으로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도 삶의 상당부분 [손으로 하는 즐거움을 낙으로 삼고 삽니다.]
성서 요엘서 2장과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멋진 구절이 있습니다.
강단에 서면 꼭 설교하고 싶은 명구절입니다.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21세기에 여성의 시대, 서비스의 시대가 왔지만, 나는 [노인의 시대]가 왔다고 봅니다. 노후와 은퇴의 시기에 제 2의 삶을 꿈꾸며, 경험과 지혜를 후대에 나누어 주는 [사랑의 서비스]를 한다면 남은 인생을 아주 의미있게 보낼 것으로 봅니다.
나이가 들어도 꿈꾸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더욱 빛이 날 것입니다. 성현들의 군자삼락(君子三樂)이라는 지혜와 더불어서, 나의 인생의 삼락(三樂)도 생각해보고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두서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군자삼락중에 일락을 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보너스로
너무 멋진 구절을 소개합니다.
시서화에 능했던 조선 중기의 영의정까지 지냈던
신흠 선생이 정한 인생 삼락을 소개합니다.
[문을 닫으면 마음에 드는 책을 읽고
문을 열면 마음에 드는 손님을 맞이하고
문을 나서면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이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
'명작과 고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길묻80, 정약전의 [자산어보]와 인문학의 발자취 (3) | 2022.10.08 |
---|---|
명길묻 79, 리윈탕, 자연스런 인생의 흐름 (0) | 2022.10.08 |
음악인문학,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를 들으며(2021년 글) (0) | 2022.10.07 |
명길묻78, 장용학의 [요한시집] 인문학적 읽기 (3) | 2022.10.07 |
세한도의 비밀과 추사의 편지 (5) | 2022.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