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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브루클린 태생의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1950년대 인본주의 심리학을 주도한 후기 인간관계학파에 속한다. 그는 인간의 욕구와 본성에 대한 수많은 논문과 책을저술하여 현대 심리학의 양대주류인 행동주의적 실험심리학과 프로이트식 정신분석학의 단편적 분석방법을 비판하였다. 또한 보다 종합적이고 긍정적인 차원에서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동기유발과 개인의 성격>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인간의 욕구단계를 5단계로 상정한다.
매슬로우는 인간이 고차원의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는 인간의 욕구를 결핍욕구와 성장욕구라는 두가지 욕구로 나누었다.
결핍욕구 - 생리적(생존) 욕구 / 안전의 욕구 / 소속 및 애정의 욕구로 보았다.
성장욕구 - 자기존중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로 나누었다.
인본주의 심리학을 열다.
매슬로우는 과학자들의 연구활동도 그들이 지닌 욕구, 즉 호기심에서 시작되며, 이성적 에너지와 본능과 감성적 에너지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작용을 하므로 반드시 이 두가지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가 개인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바로 '가치 value' 라는 점도 강조하였다.
그가 생각한 것은 지식습득과 진리 추구의 길은 과학자들이 주로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예술가나 철학자와 같이
인문과학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진리 발견을 위한 과학자로 보았다.
매슬로우는 인간이 동기유발 문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열여섯 가지의 논지를 제시하였다. 하지만 지금도 그의 주장은 논라의 여지가 있다. 여기서는 그 16가지에 대해서는 논하는 것을 피하겠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
매슬로우는 자신의 욕구단계설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저명한 학자들의 이론을 결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는 인생의 말년에 2가지의 욕구를 더 추가한다.
여섯번째 욕구는 지식과 이해를 위한 욕구이며 이를 '인식의 지배를 통한 욕구'라고 불렀다. 이는 일하고자 하는 욕구와 더불어서 사람들이 무엇인가 배우고 이해하는 능동적인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인 욕구 만큼이나 강하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일곱번째 욕구는, '심미적인 욕구'이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적 욕구가 있으며, 미적 충동은 고대의 동굴벽화나 암각화에도 나타나는데 일반적으로 건강한 어린이들에게 잘 나타난다. 한때 원시인들도 무덤에 꽃을 놓았다고 하는 매장풍습이 있다. 이는 심미적인 욕구가 인간의 삶 속에 여실히 흐르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는 맥클리시의 시를 인용해 "인간은 의미가 아니라 존재다 ( A person doesn't maen; a person is)" 라고 역설했다.
그래서 욕구에 대한 불만은 정신병적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결핍과 위협에 대한 것을 자신의 책에서 나열하였다. 또한 갈등과 위협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자아실현으로 심리적 건강이 완결되어진다.
매슬로우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무척 중요한 것임을 밝힌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로움이다. 신비로움은 모든 예술의 과학적 근원이다" 라고 하였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은 하위욕구가 충족되어야 상위욕구도 충족된다는 진설아닌 가설을 밝혔지만 다소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본주의적 접근방법은 높이 평가되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의 이론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욕구에도 일관되게 흐르는 욕구가 있고, 필요에 의한 선택적인 욕구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삶 속에 면면히 흐르는 가장 큰 욕구는 생존의 역구이며, 이것이 일관되게 심미적 욕구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주장을 한다. 욕구는 서로 상호보완성이기도 하지만, 일관성을 갖고 줄기차게 흐르는 것임을 보여준다.
성경에도 인간은 심리적인 존재이면서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들이 많다.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교만, 시기, 질투' 등 무척 많은 인간의 욕구에 대한 내용이 일부 소개된다. 그리하여 기독교 자체에서도 심리학의 발달이 크게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칼 융이다. 칼 융에 대한 글은 다음에 펼쳐보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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