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가 인정한 최고의 철학자,
유물론을 개창한 웃음의 철학자(헬, 겔라시노스),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아리스토텔레스가 생전에 가장 존경하던 철학자는 자신의 스승 플라톤이 아니었다. 바로 소크라테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데모크리토스였다. 당대에는 워낙 걸출한 철학자들이나 현인들이 많았던 시대였다. 여기서도 가장 돋보인 인물은 데모크리토스였다.
어떤 세계적인 건축가의 강연을 잠시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 강연에서 그는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철학자는 누구입니까?” 그 질문에서 사람들은 여러명의 이름을 거론하였다. 하지만 그 건축가는 ‘데모크리토스’를 선정하였다. 그가 그렇게 말을 하자 사람들은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그 건축가는 청년시절에 수많은 철학서들을 읽었다고 한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철학에 매료되어서 여러 많은 철학자들을 만나보고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데모크리스토에 대해서 다시 여러 각도로 살펴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동조현상]의 노예로 살아간다. 어떤 저명한 사람이나 권위자가 말하면 바로 믿어주고 동조하는 현상 말이다. 정작 동조하는 사람은 그의 말을 믿고 그가 말하는데로 따라가려는 성향을 보인다. [동조현상]은 군대나 종교기관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따라가는 식의 동조현상은 위험하다. 21세기가 되어도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들의 스승을 두고 추종하거나 무조건 동조하려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그만큼 [나 자신의 지적 통찰력의 기반이 부족하거나 빈약해서 생기는 일]이다. [의심과 방법적 회의를 통한 진리추구]에 대해서 무지몽매하기 때문이다.
일단 [자신의 빈약함을 다른 이로부터 채워보고자 하는 숨은 욕구]가 사람들에게 늘 있다. 즉 상자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지적 노예]라고 부른다.
상당수의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저서를 남기고, 스토리나 전설을 남긴다. 또한 학파를 형성하고 제자들을 남긴다. 그리고 구전과 기록을 통해서 후대에 알리게 된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3대 철학자에 들어간 것도 후대에 기독교권에서 그들을 거의 신봉수준으로 끌어 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모크리토스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데모크리토스야말로 최고의 철학자다” 라는 평가를 내린다. 잠시 데모크리스토스의 이야기로 가보자.
“만물의 근원에는 원자가 있다.”
그는 고대 원자론을 완성하였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많은 원자(atom)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계는 이 원자와 빈 공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원자가 합쳐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면서 자연의 모든 변화가 일어난다” 라고도 하였다. 이 같은 입장에서 사물의 발달과 문화의 발달을 설명하였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유물론을 개창]한 인물이 된다.
물론 유물론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떠올리겠지만, 비교적 현대에 와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이 정치적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아마 이는 데모크리토스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는 자신의 스승 [포이에르바하]로부터 유물론적인 철학에 깊이 몰두하면서 이를 기초로 경제와 문화에 접근하였다. 그의 [자본론]도 바로 유물론적인 철학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다시 데모크리토스로 가본다.
그가 히포크라테스를 만난 이야기가 있다.
후대에 전해진 이야기이지만 신빙성 여부는 따질 필요가 없으나 생각해 볼 스토리여서 토론주제로도 좋다.
데모크리토스는 외부인을 만나는 것을 꺼려했다. 항상 집 안에 처박혀 지내며 하루 종일 정자에 앉아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아주 작은 것들을 관찰하고 그것에 대해서 심미안적인 눈으로 기록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고 한다.
너무나 열중하다보니 옆에 어떤 동물이 지나가도 그가 알아차라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에게도 가끔 사람들이 찾아와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세상사를 전해 주기도 하였다. 그는 부유한 시민인 헤게시스트라토스라의 아들로 태어나서 부족함이 전혀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을 학교로 만들고 연구와 강연에 힘을 기울였던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그를 강제로 병원으로 데려갔다. 데모크리토스는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계속해서 웃는 버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의 이런 웃음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데모크리토스는 현대 [웃음치료의 원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는 병원으로 끌려가면서도 계속 웃었고, 마침내 아테네에서 명성을 떨치는 명의 히포크라테스를 만난다. 히포크라테스는 줄곧 웃기만 하는 데모크리토스에게 [충격요법]을 가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얼이 빠진 사람이나 기절한 동물에게 행하는 치료법이었는데, 데모크라테스는 그 요법을 당하고도 내동 웃기만 하였다.
“이보시오 의사양반, 그렇게 원시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환자를 치료한다는 말이요?”
적반하장격으로 환자가 의사를 상대하자 히포크라테스는 당황하면서 물어본다.
“저의 방법이 원시적입니까?”
“그렇소”
“그렇다면 선생님이 의사라면 어떤 방법으로 얼이 빠진 사람을 치료하시겠습니까?”
이 때 데모크리스토스는 히포크라테스에게 큰 깨우침을 준다.
“만물은 그것을 이루고 있는 근본 물질이 있기 마련이오. 나는 그것을 원자라고 합니다. 사람도 역시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요. 그리고 영혼도 마찬가지랍니다. 얼이 빠진 것은 영혼의 원자에 문제가 발생한 것인데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충격을 주면 어떻게 합니까? 오히려 원자가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안정을 취해주고, 그렇게 해서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연구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니겠소”
히포크라테스는 그의 논리 정연한 말에 감탄하였다.
“데모크리토스 선생님, 당신은 진정한 현자시군요”
그러면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말을 하였다.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은 여기 계신 데모크리토스가 아니라 바로 웃음을 잃어버린 압데라의 시민들입니다.(*그 당시에 데모크리토스는 압데라라는 지역에 거주하였다.) 따라서 약을 먹을 사람은 이 선생님이 아니로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히포크라테스는 그렇게 호통을 치면서 사람들을 병원에서 몰아냈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와 진지하고도 대단한 토론에 몰입한다.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은 그리 의미가 없다. 다만 데모크리토스가 웃음 때문에 당대의 최고의 의학자인 히포크라테스에게 진찰을 받았다는 것이 알려져 있고,
“약을 먹어야 되는 사람들은 데모크리토스가 아니라 압데라의 시민들이다” 라고 진찰한 것은 사실로서 기록되어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그가 웃는 것은 병들어서가 아니라 지혜로와져서 그런 것이다] 라고 본 것이다.
다수가 옳다라고 여기는 것에서 한 사람이 옳고 다수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데모크리스토는 물질을 이루고 있는 작은 입자를 atom 원자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는 원자를 ‘더 이상 쪼갤 수 없으며, 무게가 있고, 아무것도 그것을 꿰뚫고 나갈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원자의 수는 무한하고, 허공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결코 파괴될 수 없기에 영원하다’라고 하였다.
원자에 대한 이런 견해는 20세기의 과학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는 원자들이 제각기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모두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현대 과학에서는 이미 90종 이상의 원소를 발견하고, 그것들이 각기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와 20세기 이후의 원자는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다. 데모크리토는 [원자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고 하였고 어느 것도 그것을 관통할 수 없다] 라고 보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로 나눠진다. 그리고 그 원자도 계속 나누어지고 나누어졌다. 그래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는 20세기 과학에 비추어서는 ‘원자핵’으로 불리워야 옳다.
그는 자신이 원자론을 영혼의 영역까지 확대하여, 영혼도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의 사고도 원자의 운동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유물론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에는 물질적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영혼과 정신도 독자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원자와 원자의 운동에 불과하다”
이 말에 깊이 동조한 이가 바로 포이에르바하와 마르크스였다. 예전에 중국 북경대학을 가보았더니, [유물론] 강좌가 있고, 마르크스 신봉주의자들이 대학에도 많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크리스찬인 나로서는 영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다. “영혼도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그 말에 그럼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억도 물질입니까?”라고 하자, “그건 물질이 아닙니다.”
데모크리토스가 평생에 여권의 책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그의 저작들은 아네테 도서관에 소장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리스 내란 중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저작들을 여러군데에 나누어서 남겨 놓았다면 오늘날도 그의 저작들을 볼 터인데 인쇄술이나 출판기술의 미비가 아쉽기만 하다.
데모크리토스에게 원자론의 기초를 가르친 스승은 [레우키포스]였다. 하지만 그에게 학문을 가르친 레우키포스는 데모크리토스가 유명해진 뒤에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당신의 스승이지만, 지금 나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의 청출어람이다.
데모크리토스는 너무나 학문에 열중하여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바로 스승 레우키포스의 딸 크세나이였다. 레우카포스는 그가 자신의 딸을 연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두 사람을 혼인시키고자 하였다. 그 당시 데모크리토스는 30살의 청년이었고, 크세나이는 18살의 꽃다운 소녀였다. 하지만 이들이 혼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운명의 장난인가, 크세나이가 그만 열병으로 세상을 뜨고 만다. 이 일에 충격받은 데모크리토스는 평생 그녀를 연모하며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유명해지고 바쁘게 살기보다는
스스로 독서하고, 학문에 매진하며, 자연현상에 몰입하고 살았다. 아마 정원도 가꾸면서 속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철저히 무관심하고자 하였던 사람이었다. 그가 쓴 60여권의 저작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아리스토텔레스나 데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기록에 따르면 정말 놀랍기만 하다.
잠시 여기에 열거해 본다.
<대우주론>,<소우주론>, <행성에 관하여>, <자연에 관하여>,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 <지성에 관하여>, <감각에 관하여>, <영혼에 관하여>, <맛에 관하여>, <대기 현상의 원인들>, <자석에 관하여>,<천문학>, <리듬과 하모니에 관하여>,<기하학적 실재들>,<화음과 불협화음에 관하여>,<농업에 관하여>, <그림에 관하여>, <역사에 관하여>, <피타고라스>, <행복에 관하여>, <호메로스에 관하여>, <씨앗과 식물과 열매의 원인들>, <질병으로 인한 열과 감기에 대하여>, <지리학> ...
그가 이런 저작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믿기 어렵지만 그가 정말 100세가 넘게 장수하였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그가 만약 현대에 살아 있었다면 노벨상 10개는 받았을 것이다.
일신교(Monotheism)이 지배하던 중세에는 그의 이성적이면서 유물론적인 자연주의는 허락되지 않았고, 철저히 배척당하였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기독교 교리에 철저히 어긋난 서적들과 문헌들은 모두 사라지고, 학교들마저도 폐쇄되었다. 다만 영혼의 불멸을 주장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채택되어져 기독교 사상의 근간을 형성하게 되었다.
2500년이 흐른 지금도 그의 학설은 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학이 발달할수록 [데모크리토스]의 학설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원자론과 유물론적 관점]은 중세를 넘어서 현대에 와서 그 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2000년간 잊혀진 데모크리토스를 부활시킨 사람은 데카르트, 베이컨, 갈릴레오였다.
어떤 인문학자가 말한 명구가 생각난다.
“사고에 의한 추상은 언제나 과학보다 앞선다”
데모크리스토가 남긴 명언들도 몇 가지 소개한다.
누가 데모크리토스에게 물었다.
그대에게 페르시아의 왕의 자리를 준다면 어떻게 하겠소? 그가 태연하게 대답한다.“나는 페르시아의 왕의 되느니 차라리 1개의 기하학에 필요한 과학 사실을 찾아 내겠다”
“사람들은 행복과 불행에 대해 인간의 본성이나 운명 탓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실수와 약함의 메아리일 뿐입니다.”
“청년기의 자존심은 혈기와 아름다움에 있지만 노년기의 자존심은 분별력에 있다”
“인간의 행복한 것은 육체에 의해서도 아니며 금전에 의해서도 아니다. 마음의 바름과 지혜의 풍부함에 의한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 대한 쓸데없는 호기심, 그것이 철학이다"
데모크리스토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도록 어느 인문학자에게 감사를 표한다.
'명작과 고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문고전, 퇴계와 율곡의 사제동행을 발견하다. (1) | 2022.10.15 |
---|---|
에세이, 그리스 고전, 그 현대적 의미 (1) | 2022.10.12 |
축의 시대 지혜자들,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지식관 (3) | 2022.10.10 |
명길묻82, <축의 시대> 칼 야스퍼스와 케렌 암스트롱 (1) | 2022.10.10 |
명길묻81, <1984>외 조지 오웰 다시 읽기 (1) | 2022.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