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선생의 글을 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면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으시죠"
<<박완서, 기나긴 하루 중>>
"누구나 외롭다
누구나 힘들다
다들 아닌 척 살아갈 뿐이다"
- 신준모의 <어떤 하루> 중에서
<2019년 글>
책을 많이 읽은 날은 참 허전한 마음이
무엇인가 그득하게 차는 것 같아서
무엇을 그리 먹지 않아도 배부릅니다.
특히 산문집이나 수필집을 읽으면 이상하게도
'나'란 존재의 사색을 글쓴이로부터 강하게 도전받습니다.
그만큼 산문집이나 수필집은 우리의 '인생살이'를 그저
대변하는 역할을 하기에 좋습니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나 자신도 이상한 사람으로
전락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문재인 정권을 많이 탓합니다.
부동산 문제나 코로나 문제, 경제문제, 각종 수많은 문제들에
이 정권이 직면해서 그렇습니다.
이 정권도 그럭 저럭 잘 해 나갈려고 하다가
사태를 많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그들을 탓하고 감정소비를 할 정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 앞에 있는 생활의 문제도 해결하기 바쁜 서민들은 어림도 없습니다.
그저 주어진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달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뛰어야 하기에 오늘도 걷는 것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탓하는 사람들은 그 전 정권도 탓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덩달아서 자신도 탓하는 사람이 됩니다.
"만일 ~ 였더라면, ~ 일텐데... "하면서 후회하고 유감스러운
가정법주의자들이 많습니다.
남을 탓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가정법에 사로잡혀 삽니다.
정말 남을 탓하지 않고 살수는 없으나,
지나치게 남을 탓하는 사람은
자신을 정말로 모르는 사람입니다.
법정스님의 '제 탓이요 하면서 남 덕분' 이라고 여기면서
살 수 있는 때는 언제나 올까요?
그러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시간낭비요 에너지 낭비입니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산책을 가고, 책을 읽고, 자기계발에 더 힘을 써야 합니다.
이상하게 어떤 물건이든 사 놓고 쓰지 않아도 그 물건은 남습니다.
하지만 감정소비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또한 누구하나 그것을 보상해줄 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감정소비에 시간낭비를 하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달리 말하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느라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고, 자기에 대한 [자기투자]가 빈약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남을 탓하는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볼 줄 아는 눈이 없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대로,
남을 탓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이요, 희망보다 절망을 주는 사람이요,
무조건 피해야 할 사람입니다. 탓을 하는 사람은 같이 있으면 '탓 바이러스'에 걸려버립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그래도 만나야 합니다
사람의 문제는 사람에게서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위의 사람이 아닌, 그래도 열심히 세상을 살려는 사람,
부정한 말보다 긍정의 말로서 위로와 격려를 줄 줄 아는 사람
죽이는 말보다 살리는 말을 쓰는 희망의 사람,
푸르른 봄의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누구나 외롭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힘듭니다.
그런데 이를 대 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무척 적습니다.
그만큼 자존심만은 지키고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나 자신도 [지식인의 고뇌]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아플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지식이 나를 어지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심하면 나를 미치게 만들 것 같기도 합니다.
주어진 현실은 여전히 좋지 않고,
나 자신도 가끔 외로움의 기운이 차오를때면,
그 외로움과 지식인의 고뇌가 같이 울어 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의 좋은 생각이나 관념도 일어납니다.
남의 외로움, 남의 힘듬을 어느 순간 그러면서 이해를 하게 됩니다.
어느새 나 자신도 남을 이해하고, 남의 입장을 헤아릴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외로움으로 남의 외로움을 이해합니다.
나의 힘듬으로 남의 힘듬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럴때 나의 가진 지식으로, 경험으로 그들에게 나누고 도울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 이래서 책을 읽고, 공부하라고 한 성현들의 말이 맞다는 것도 발견합니다.
사람은 근본 괴로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 괴로움을 이기려고 노력합니다.
남들에게는 자신의 괴로움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그러한 척만 하고 살수는 없습니다.
[척하는 삶 Gesture Life] 를 우리는 너무나 자주 접합니다.
척하며 살지만, 그럴수록 더욱 외로움은 커져갑니다.
척하며 살지만, 그럴수록 힘든 것에 더욱 지쳐갑니다.
외롭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한 외로움 사람끼리 가슴을 부대끼며 살아야 합니다.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할수록 힘을 더 써야 합니다.
힘을 더 써야 힘이 생기는 역설을 배웁니다.
외로운 사람은 곧 그리움이 많은 사람입니다.
힘들지만 지치고 괴롭지만 그러한 사람은 곧 힘을 주는 사람이요,
긍정의 사람입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기나긴 하루>
라는 글로 나의 글을 갈무리합니다.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면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으시죠"
이제는 남생각을 많이 하십시오.
그리하여 나의 외로움도 친구처럼 여기십시오.
이제는 나의 힘들어 하는 모습도 나누십시오.
그리하여 나의 힘듬으로 인하여
다른 이들이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하십시오.
힘들고 우울한 시대의 자화상을 날마다 대면합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힘차고 건강한 반대의 자화상도 만들어 봅니다.
아직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합니다. 아직 우리는 갈 길이 많습니다.
위로합니다. 응원합니다. 힘을 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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