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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칼럼과 에세이

에세이, 낭독의 힘 바이블과 클라식을 낭독하자 !!

by 코리안랍비 2022.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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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의 힘
바이블과 클라식을 낭독하자 !!
<<클라식으로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을 강력 추천>>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 온다.
이런 바람이 불어 오는 가을 날에는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다.
그 기억이라는 것이 초등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나는 4학년까지 구구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말을 더듬거나 버버거리는 학생이었다. 이 문제를 나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수업시간이면 가장 싫은 것이 [책을 소리내어 읽는 것] 이었다. 그런데 나는 제대로 읽어내지를 못하였다. 학교의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분들이 많아서 나는 쉽게 주눅이 들고, 기가 죽기 시작하였다. 그러다보니 학교성적은 거의 바닥을 기는 수준이 되었고, 학교생활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초등학교 4학년 가을에 갑자기 정글짐과 머리가 부딪치더니 귀가 들리지 않았다. 충격을 받은 탓으로 귀가 들리지 않으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큰 아들로 인하여 노심초사를 하게 되었고, 나는 무려 15번 이상을 귀를 치료하느라 병원을 오갔다. 그렇게 해서 귀가 거의 회복이 되었지만, 아직도 왼쪽 귀는 가는 귀를 먹은 것처럼 잘 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일종의 컴플렉스가 되어서 더욱 책을 읽는 것을 무섭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 나는 거의 책을 읽지 않고 책과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도움으로 나는 책을 잘 읽게 되었다. 바로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었다. 특히 동화책과 역사책을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많은 아이들에게 창피를 당하고 선생님이 무서워서 제대로 읽지를 못했지만, 인자하신 아버지 덕분으로 소리를 내어 읽는 [낭독훈련]을 받았다. 소리를 적게 내다가 크게 내어보면서 어느새 더듬 더듬 읽는 것이 없어졌고,학교수업에서도 책을 잘 읽는 학생이 되었다. 물론 책을 잘 읽으면 공부는 저절로 잘 되게 되어 있다. 책속에 길이 있고, 답이 있기 때문에 책을 소리내서 읽어보면 그 소리에 집중하게 되어 있어서 2-3배 학습이 쉬워진다.

세월이 지나서 나는 소리를 내서 읽는 훈련을 통해서 중고등학교에서는 곧잘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되었다. 학교의 선생님들은 계속 소리를 내면서 수업을 한다. 그런데 그 소리를 내면서 수업하시는 선생님들은 자신의 수업을 잘 기억한다. 그런데 소리를 내지 않는 학생들은 그 수업이 정말 고역이다. 그런데 나는 교과서를 소리를 내어 읽으면서 많은 학습효과를 맛보았다. 조용히 공부하는 것은 나의 취향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혼자 공부를 하여도 소리를 내면서 하다보면 교과서의 내용이 이상하게도 쉽게 다가오고, 이해가 된다. 마치 학생인 내가 선생이 된 기분이다.

대학시절, 선교교회를 다니면서 성서 바이블을 소리를 내어 외우고, 암송하는 훈련을 받았다. 여러 사람들이 같이 훈련을 받으면서 소리를 내서 읽다보면 신비한 감정이 다가온다. 인간의 목소리라는 것은 다름 사람을 공명하게 하는 울림이 있다. 책을 읽어 내려가는 사람의 호흡과 감정이 듣는 자신에게나,듣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며 엄청난 교감을 불러 일으킨다. 혼잣말을 하거나, 혼자 책을 읽을 때보다 느낌이 훨씬 깊어진다. 그 교감은 평생 갈 수도 있고, 그 교감의 경험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개인적 자산으로 남게 된다.

책을 읽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일단 소리를 내지 않고 읽는 것이다.
그런데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도 귀가 있어서 그 눈으로 읽어나가는 부분이 마치 소리처럼 다가온다.
주인공이나 저자의 말하는 소리가 어느 때는 충고로 다가오기도 하고,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때론 칸타빌레 형식처럼 노래하는 음악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다음으로 소리를 내서 읽는 것이다.
이는 소리를 내지 않는 독서보다 몇배의 효과가 있다.
우리는 자칫 독서는 조용히 하는 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고정관념이다.

한번 시를 읽어보라. 유명한 명시를 읽어보면 그 소리에 우리는 집중하게 되고,
시인의 감정에 나에게 이입되고, 교차된다. 시는 그냥 눈으로 읽으면 아무런 마쇼이 없다. 세상에 이렇게 맛없는 글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소리를 내고, 감정을 이입을 하면 신기하게도 시가 살아서 꿈틀거린다. 시의 이론이나 형식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 시에 담겨 있는 일종의 [시의 정신]이 살아난다.

4년전 나는 어느 [낭독모임]에서 소로와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가지고 낭독한 적이 있다. 책을 소리내어 읽으면 그 만큼 속도가 느리다. 돌아가면서 읽다보면 더욱 느리다. 마치 소처럼 느린 걸음으로 만리를 가는 느낌이다. 어떤 경우에는 거북이 처럼 정말 느리기도 하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느린 것이 가장 빠른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2-3번을 읽다가 정말 남모를 감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는 소로의 글이나 쇼펜하우의 글을 잘 이해하지는 못해도 일정 부분 읽어나가며 경청하는 순간 마치 그 소로나 쇼펜하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였다. 이런 감정은 전에는 못느끼는 것이었다.

낭독을 하면 구성원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러명의 낭독자들중에는 세련되고 자신감이 있는 목소리도 있고, 진지하고 조용한 목소리도 있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카랑 카랑한 감정이 실린 목소리도 있다. 느리고 깊으면서 설득력이 느껴지는 목소리, 느릿하고 매력적인 마성도 있다. 심지어 변론하듯 또박또박 논리적인 어조도 있다. 어떤 이는 이야기하듯 다정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도 있다. 이 낭독모임을 통해서 혼자서도 읽는 연습을 하였다.

어느 날 밤에는, 혼자서 소리를 내서 읽다가 남몰래 울컥하기도 하였다.
초등시절 말을 더듬고, 발표도 제대로 못하던 사람이었지만 소리를 내서 읽는 훈련을 받고나서는 소리내어 공부하는 것의 중요성도 발견하였고, 무엇보다 좋은 책들은 소리를 내어 읽으면 좋은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아이들은 소리를 내서 읽는다.
언제부턴가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아이들은 책에서 멀어진다.
그러한 멀어진 상태나 행위가 오래가면 어른이 되어서도 책을 멀리한다.
책은 철저히 중립이다. 그래서 내가 다가가 펼치고 읽지 않아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소리를 내어 책을 읽기를 권한다.
특히 성서를 읽기를 권한다. 그런데 이 성서가 어려운 사람들은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을 소리를 내어서 읽기를 권한다. 아니면 쇼펜하우어의 [세상을 사는 지혜] 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소리를 내어 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시집들]도 소리를 내어 잃어보라.

낭독의 힘은 직접 경험해보아야 안다.
그리스어 어원에 [소리와 집중력은 동의어] 라고 한다.
소리를 내면 집중하게 된다.
나는 [월든]을 읽다가 소로처럼 손수 토나무 집을 짓고 살고 싶은 이상한 계획도 세우게 되었다. [세상을 사는 지혜]를 소리를 내어 읽다가 쇼펜하우어처럼 자유롭게 나의 지식과 사상을 펼치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

나는 히브리어 선생이다.그래서 히브리어 성서를 소리를 내서 읽으면
마치 천상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 기분은 아무도 모른다. 오직 경험하고 경험하는 사람만 안다. 그것은 바로 몸으로 익히는 지식이며, 귀로 익히는 지식이며, 마음으로 이해하는 우아함이며 감동이다.

이 글을 읽고 낭독의 힘을 발견하기를 정말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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