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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칼럼과 에세이

얼어버린 귤나무와 '내탓이오'의 심정, 2018년 난상수필

by 코리안랍비 202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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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버린 귤나무와
내 탓이오의 심정

요 며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나의 정상 아카데미 건물에 있는
귤나무가 얼어 버렸다.
작년 봄에 산 것인데 향기가 너무 좋고
꽃이 야무지게 예뻐 보여서 구입을 한 나무이다.
그런데 아직은 푸른 잎이 있지만
가늘고 여린 귤나무가 추위에 견디기
어려워서 동사한 것 같다.

겨울에 약한 나무가 귤나무이다.따뜻한 남쪽 나라의 귤나무를 방치한 것은 아니지만 적시에 들여 놓지 못한 내 탓이다. 그 화분에 정성을 드려서 키웠는데도 버티지를 못하였다.

안에 들여다 놔야 하는데,
아카데미의 추운 로비에 그냥 놔두었으니
그도 그럴 것이다.
전적으로 내 탓이다.
가슴을 잠시 치면서 자신을 탓해본다.
미리 들여 놓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였던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겨울에 강한 식물들은 여전히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남방나무인 귤나무는 북방의 날씨의 그대로 얼어 버린 것이다.

다른 식물들은 잘 버티고 있고, 그런데로 추위에 강한 식물들이다.귤나무 한 그루지만 갑자기 불쌍한 생각이 든다. 사람이 식물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보면,
어린왕자의 할 일이 그저 '장미 한송이 키우기'로 보여진다. 어린왕자는 그 '장미 한송이에 온갖 마음과 정성을 담는다'

그래서 그 장미는 항시 잘 피었고,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 하나를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이다.
그래서 난 ㅡ 어린왕자를 최고의 책중에 하나로 본다.

그런데 나는 그 귤나무 하나를 위하여
별로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한 사람' 을 향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어린 소자들에게 향하지 못한 것이다.

귤나무가 사람이라고 한다면,
필경 연약하고 어린 사람일 것이다.
조금만 추워지면 견디지 못하고,
조금만 더워져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귤나무 같은 사람이
내 주위에 아직도 많이 있는데도 말이다.


갑자기 스스로에 대하여 슬픈 연민이 들었다.

"저 귤나무 하나도 소홀히 하는 자신"

"나에게 있는 단 하나의 사람에게도
제대로 향하지 않는 자신"

아직도 나는 사랑이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평화의 반대는 전쟁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생명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노벨문학가인 이스라엘의 엘리에젤의
이 말을 생각해 보면, 나는 철저히 무관심한 존재이다.
작은 소자에게 향하는 사랑의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나는 아직도 가식덩어리이다. 사랑하는 척, 관심있는 척을 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위장해 온 것이다.

작은 귤나무의 동사를 보면서,
결국 아직도 나는 신의 뜻에 멀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는 것은
작년 겨울에는 5개의 화분의 식물이 죽었는데,
올해는 1개의 귤나무가 죽은 것이다.
얼것 같은 식물은 안에 들여 놓고, 심지어 히터를 틀어 주었다.그렇지 않고 강한 식물은 로비에 놓고서 강하게 키웠다.

그런데 귤나무의 특성을 잘 몰랐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다시 3-4월 봄이 오면 귤나무를 다시 사려고 한다.
아니면 천혜향 나무도 다시 사려고 한다.
그리고 열대작물인 커피 나무도 사려고 한다.
거기에 단백질이 풍부한 아보카도 나무도 심어 보려고 한다.작은 식물에게 작은 정성을 쏟아 보려고 한다.

햇빛이 부족하면 햇빛을 주고,
그늘이 필요하면 그늘을 만들어 주고,
빗물이 필요하면 비오는 날 밖에 내 놓아도 보고
그렇게 할 것이다.

어린왕자가 한 송이 장미에게 정성을 쏟았듯이...
그리고 한 사람을 향하려고 한다.
어린 영혼들에게 향하려고 한다.
나에게 온 사람들만이라도 잘 케어하고,
관심가져 주는 것이 나의 할 일이다.

사랑이 알고 보고 쉬운 것이다.
그저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다.
관심을 놓치지 않으면
반드시 죽어가는 것도 살아나게 되어 있다.
관심을 결국 '마음으로 본다'라는 의미이다.
곁의 눈으로 보기 보다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눈이 있어서 못보는 사람을 눈뜬 소경이라고 한다.
가끔은 눈을 안으로 떠야 한다.

오늘은 왠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는 민족시인 윤동주 시인의 슬픈 외로운 싯구가
왜이리 귓전을 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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