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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경영학7, 조조와 관우의 인정과 의리

by 코리안랍비 2022.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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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우의 이미지 - 구글출처 이미지


조조이야기 2번째 시간

조조와 관우의 인정과 의리
- 목숨을 버릴지언정 의리는 버리지 않는다.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는 '감정의 균형이론'에서 , "누군가가 자신을 대단히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마음이 들면, 그 감정에 보답하겠다 마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라고 하였다.

또한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는 [설득의 심리학[에서 설득의 한 원칙으로 '상호성의 원칙'을 내세운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호의를 입게 되면 반드시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저명한 문화인류학자인 [리키 Leakey ] 교수는 "상호성의 법칙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세 학자의 말처럼, 감정의 균형이나, 상호성의 원칙은 바로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거나, 후한 대접을 받거나, 초대를 받았을 경우 공짜나 무료가 아니라 은혜이며, 빚이라는 말이다. 은혜는 곧 빚이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선물은 불가해한 것이다.' 즉, 선물을 주면 반드시 그 선물에 대한 응답을 해 주어야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보은하고 싶어하는 인간심리를 말해준다.


한국에서는 이를 '인정' 이라고 한다. 누군가가 인정이나 호의를 베풀면 반드시 갚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한다. 줄여서 인정이 된 것이다. 한국의 전래동화나 세계의 전래동화를 보아도, 이러한 [보은의 심정]이 많이 담겨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라는 말이나,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등의 말들이 그렇다.

세상일은 수시로 변하고,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 . 그러므로 인정을 베풀고 관용을 나누는데도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타인과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 중에는 진실로 마음이 통하는 상대도 있지만, 상당수는 형식상의 교제에 그치는 지인수준도 많다. 때로는 인정머리없이 상처만 주는 사람들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가까운 자신의 집안식구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오늘은 삼국지에 나온 이 호의의 위력에 대해서 나누고자 한다.

어찌보면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삼국지의 아름다운? 대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기사가 있다. 난 이 두 영웅들의 미담이, "그저 존재만으로 선물이 되는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이들이 선물은 넘어서 진짜 좋은 뇌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영웅의 이야기는 삼국지가 주는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이 두영웅들인, 조조와 관우의 인정과 의리라고 할 수 있다. 연의의 저자 [나관중]은 삼국지의 감칠맛을 더하기 위함인지 모르지만, '상호성의 원칙'이 잘 드러내는 기사를 쓴다.

풍운아 조조와 삼국지 최고의 무장 관우, 두 사람은 동탁을 무찌르기 위해 전국의 17제후들이 모여 결성한 연합군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조조는 맹주(盟主) 원소와 함께 연합군을 지휘하는 입장에 있었고, 관우는 의형제인 유비와 함께 17제후의 한사람인 북평태수 공손찬의 막하에서 마궁수(馬弓手)로 있었다. 마궁수라는 것은 높은 자리가 아니다.

동탁의 선봉대장 화웅이 연합군의 선봉인 손견군을 크게 제압하고 다시 싸움을 걸어왔다. 연합군 진영의 장수들이 차례로 나가 맞섰으나 화웅의 칼에 모두 목숨을 잃어 연합군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화웅은 당시의 명장이었고, 어느 누구도 겨루어 이기기가 힘든 장수였다.

이때 관우가 출전을 자원했다. 말단 병졸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고 꾸짖는 제후들도 있었지만 조조는 출전시켜 보자고 했다. 조조는 그를 적진으로 내보내면서 따뜻하게 데운 술 한 잔을 권했다. 당시 명문가였던 원소는 엘리트주의자였다. 자신의 휘하에 장수들을 중용하였지만, 다른 제후들의 장수들이나 군졸에 대해서는 박대하던 사람이었다. 반대로 조조는 호걸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그는 기회를 주고, 그 기회를 살릴 줄 아는 인물이었다. 조조의 환대에 관우는 위풍당당하게 말한다.

“술은 그대로 두십시오. 얼른 갔다 와서 마시겠습니다.”

관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청룡언월도를 들고 적진을 향해 말을 달려갔다. 한 바탕 소란스런 접전이 있고 얼마 안 있어 관우가 화웅의 목을 들고 돌아왔다.

“자, 여기 화웅의 목이 있소이다.”

적장 화웅의 목을 땅에다 던지며 관우는 아까 조조가 따라준 술을 마셨다.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어 따뜻했다. 조조의 관우에 대한 연정(?)은 아마 이 순간부터 시작되었으리라. 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나이의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두 사람은 헤어져 조조는 황제를 모시고 각지의 제후들을 호령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고, 관우는 유비를 따라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조조가 여포를 평정하고 허도로 개선했을 때, 관우도 유비와 함께 조조를 따라 허도로 갔다.

조정의 실권자인 조조가 황제를 모신 사냥터에서 황제를 업신여기는 행동을 하자, 의분을 참지 못한 관우는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조조를 베려고 했다. 이를 눈치 챈 유비가 재빠르게 눈짓으로 제지했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지만….

조조를 제거하는 모의에 가담한 유비는, 가까스로 조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서주에서 군마를 단련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조조는 격노하며 군사를 일으켜 서주로 쳐들어왔다. 유비는 패퇴하여 가족도 버려둔 채 기주의 원소에게로 도망가고, 관우는 어느 조그만 토산에서 조조군에게 겹겹이 포위되고 말았다.

관우의 충의와 뛰어난 무용을 흠모해 온 조조는 휘하의 절친한 장료를 보내어 관우에게 정중하게 항복을 권했다. 관우는 장렬하게 옥쇄하려다가, 함께 죽기로 한 도원결의를 생각하며 마음을 바꾸고 세 가지의 항복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조조가 아닌 한의 천자에게 항복하는 것임을 인정할 것.

둘째, 유비의 가족들을 잘 보살펴주고 문전출입을 삼가할 것.

셋째, 유비가 있는 곳을 알게 되면 지체 없이 떠남을 양해할 것.

장료에게서 보고를 받은 조조는 세 번째 조건이 좀 꺼림칙했지만, 정성을 다하면 관우의 마음을 돌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세 조건을 모두 수락했다.

장료는 옛날의 사례를 들으면서 조조를 설득한다.
"극진히 대접해주면 관우라 할지라도 마음이 바뀌지 않겠습니까?" 라고 간곡히 진언했다.
(*장료는 원래 여포의 부장이었지만, 여포패후에 조조의 수하가 된다. 위나라의 오호장군에 속하며, 아무리 적이라도 끝까지 예와 의를 다하는 명장이었다.)

조조는 친히 진문 앞까지 나와 관우를 맞으며 극진히 대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흘마다 잔치를 열어주고 비단옷에다 미인들을 뽑아주기도 하고, 또 황제에게 인사를 시키며 벼슬까지 내려주었다. 나중에는 여포가 타던 희대의 명마인 적토마까지 관우에게 주었다. 적토마는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명마로서, 관우라는 사람을 알아보고 끝까지 충성을 다한 명마이다. 관우의 허도생활은 항복한 장수가 겪는 서러움이 아니라 국빈대접을 받는 비단방석이었다.

실로 끝없는 짝사랑이었다. 결국 관우는 유비가 있는 곳을 알게 되자 원소진영의 맹장 안량과 문추를 목 베어 조조의 은혜에 보답한 후 조조의 곁을 떠난다.
(*안량과 문추는 둘다 한말의 하북의 명장들이며, 원소휘하의 1등급 장수들이었다. 조조의 수하장수들이 대거 그들의 무예에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최고의 장수인 서황도 밀렸으나, 그러나 관우의 칼에 희생양들이 되고 만다.)

이때 조조는,
"관 장군은 참으로 신인이시오" 라고 극찬을 한다.
관우는 이러한 절대무공을 가진 장수들을 죽였으니, 여포이후 강호 최고의 킬러로 등극한다.

당시 강호에는 "사람중에는 여포, 말 중에는 적토마"라는 말이 있었지만, "사람 중에는 관우, 말 중에는 적토마"라는 말로 회자가 된다. 그는 나중 '무성' 즉 무공의 성인으로 통한다.

보장된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한 뼘 땅도 없는 떠돌이 객장인 유비 곁으로 가는 것이다. 저 유명한 오관돌파의 신화를 남긴 채로 말이다.(오관돌파에 대해서는 관우에 대한 글을 쓰면서 밝혀둔다.) 조조는 그의 신의를 보면서 배반과 배신이 시대에 거듭 탄식한다.

"주인을 섬기되 그 근본을 잊지 않으니 관우야말로 천하의 의사로다"

다시 두 사람이 대면하는 것은 적벽대전에서 참패한 조조가 겨우 수십 기를 이끌고 화용도로 도망치고 있을 때였다. 이 때 관우는 조조가 패주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으니 이제 조조는 꼼짝없이 사로잡힐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조조가 가련한 몰골로 인정에 호소하자, 관우는 전에 입었던 은혜를 생각하여 차마 잡지 못하고 그냥 보내주고 말았다. 무장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실책이었지만, 인정과 의리의 사나이 관우였기에 조조를 놓아주게 된다. 이렇게 관우는 조조의 은혜를 보답한다.


나는 잠시 생각해본다. 충성과 의리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먼저 충성을 생각하고, 의리는 다음에 생각할 수 있다. 충성은 대국적인 것이요, 의리는 대인배적인 것이다. 관우는 여기서 의리를 선택한다. 관우는 군사인 제갈량에게 군령장을 써놓고 전투에 출전했기에 은혜를 갚기 위해 조조를 놓아주면군법에 의해서 참수형감이었다. 그러나 관우는 목숨을 버릴지언정 결코 의리와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 화용도 사건 때문에 관제신앙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는 이도 있다.


그 후 관우는 형주를 지키면서 위나라의 후방을 공략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배후의 허점을 노린 오나라의 명장 여몽의 침공을 받아 사로잡혀 참수되고 만다.


그때 관우의 나이 쉰여덟 살이었다. 그의 한평생이야말로 진실로 주군 유비를 위해 바쳐진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점이 바로 후세사가들이 관우를 최고의 장수로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이리라.

지금도 그는 중국에서 문신(文神) 공자와 나란히 무신(武神)으로 추앙받고 있다.

관우를 사로잡은 여몽은 얼마 후 관우의 혼이 씐 듯 미쳐 날뛰다가 죽고 만다. 촉의 보복을 두려워한 오주 손권은 화(禍)를 떠넘기기 위해 관우의 수급(首級)을 위의 조조에게 보냈다. 조조는 관우의 수급이 든 나무상자를 받고 뚜껑을 열어보았다. 잠든 듯 안온한 관우의 얼굴…. 문득 조조는 옛 생각이 나서 관우에게 말을 걸었다.

“관공, 그간 별 일 없으셨소?”

그 순간, 관우의 머리가 마치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눈을 번쩍 뜨고 입을 벌리는 것이었다. 목 아래까지 드리워져있던 수염까지 곤두서서 금방 조조에게로 뛰어오를 듯 했다. 조조는 너무 놀라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다시 정신을 차린 조조는 침향목(沈香木)을 깎아 관우의 몸통을 만들어 수급에다 붙이게 했다. 관우에게는 형왕(荊王)의 시호가 내려져 왕후의 예로 낙양 남문 밖에 장사지냈으며, 조조는 몸소 영구에 절하며 장례 일을 도맡아했다.

그 후, 조조는 관우의 환상이 자꾸만 나타나고 평소의 지병인 두통까지 겹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관우가 죽은 지 석 달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다정다감했던 삼국지 최고의 영웅 조조도 죽음 앞에서는 여느 필부와 다를 바 없었다.

여기서, 앞에 나오는 귀신얘기를 다시 한 번 짚어보자. 오나라의 명장 여몽이 관우의 귀신에 씌어 목숨을 잃은 것이나, 죽은 관우의 수급이 조조에게 눈을 부릅떴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얘기이다. 아마도 관우의 빛나는 충혼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나관중이 일부러 꾸며낸 얘기가 아닌가 한다.

나관중은 천재 이야기꾼이다.
어쨌거나, 조조와 관우가 보여준 피아(彼我)를 초월한 정은 군웅들의 살벌한 전쟁이야기인 삼국지에서 한 폭의 훈훈한 삽화가 아닐 수 없다. (*수필가 최용현글 인용)

  • 조조와 관우 - 구글출처 이미지



삼국지연구의 대가들인 마인춘과 우쇠강은 [삼국지 인생전략]에서 "남을 너그럽게 대하는 것은 곧 자기를 너그럽게 대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다. 또한 "남을 즐겨 돕고 인정을 많이 모으면 자연히 도의가 있어 나를 돕는 자가 많이 생기는 법이다"라고 말한다.

조조는 인심을 다루는데 능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조는 관우가 5관문을 돌파하며 자신의 용장 다섯을 죽였지만 그 죄를 따지지 않았으니 관우에게 큰 인정을 베푼 셈이다. 나중 화용도에서 관우는 이 은혜와 인정을 의리로서 저버리지 않았다.

  • 구글출처 이미지 - 관우와 장비



인정으로 맺어진 사나이들의 의리는 심지어 삼국지의 역사판도를 바꾸기도 하였다. 인정이란 주고 받는 것이다. 경영학자로서 보는 인간관계는 주고 받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 사고 파는 관계로 전락하였다. 그것은 바람직한 인정에 기반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돈이나 물질에 기초한 거래관계라고 할 수 있다. 거래관계에서의 대화는 기술적인 대화이며, 물질적인 대화이다. 영혼은 없는 것이다.

우리도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좀처럼 잊기 어렵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바위에 새긴다"라고 하지만, 그래도 인정을 베풀며 사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나는 이것을 '인정투자', '호의투자'라고 부르고 싶다. 인정을 베푸는 것은 투자이지 과소비가 아니다.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만큼 인생을 보람되게 하는 것은아니다. 사업에 대한 투자는 주식을 사는 것이고, 인간에 ㅐ한 투자는 충성심(로열티)를 사들이는 것이다. 주식으로 사는 자산은 부동산이며 유한하고, 때론 폭삭 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충성심과 의리로 얻어진 자산은 언제까지나 변치않는 무형의 자산이다. 부동산이 부족하다고 슬퍼말라. 살아있는 동산을 넘치게 하면 된다.

영웅호걸로서 상호성의 법칙을 보여준 조조와 관우의 의리는 오늘날에도 큰 귀감이 된다. 타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선을 쌓아두는 인정투자이며, 이에 보답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인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화죽명지]라는 시 한편을 소개한다. 몸은 조조의 군영에 두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유비를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 관우가 대나무 그림에 예리한 칼날 같은 잎들을 그려넣듯 오언시로 표현한 것이다.

동쪽 왕의 후의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

세월이 흘러도 명분은 변치 않겠나.

고독한 잎이 되었다고 쓸쓸하다 하지 마라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터이니까


조조의 호의와 관우의 신의는 살벌한 전쟁이야기의 삼국지를 더 멋지게 만드는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삼국지를 사서 읽어보라. 소비가 아니라 투자다.

  • 구글출처 이미지 - 의리와 신의의 관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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