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에 대한 이야기 1편 (총 5편중)
조조 - 위대한 CEO - 관용의 리더
조조에 대한 글을 쓰려니 겁이 덜컥난다.
조조는 삼국지의 팬이라면 다 아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미지는 너무나 좋지 않다. 한국인들은 높은 도덕성과 관념이 있기 때문에, 소위 간웅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조조를 그리 달가와하지 않는다. 나도 어려서부터 도덕관념이 있어서인지, 조조라는 인물을 대할 때 '나쁜 놈'이라는 의식이 저층에 깔려있다. 그러나 사람은 살아보고 볼 일이다. 세월이 지나서, 불혹의 나이를 넘어, 지천명에 다다르다보니, 유비나 손권보다 조조라는 인물이 [가장 현대인답다] 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다.
물론, 삼국지를 읽는 사람들에게 삼국지의 최대 맹점은 바로 이것이다.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가 촉나라 사람이기도 하고, [촉한정통론]이 우세한 입김으로 작용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조조는 불리한 평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그래서 나는 삼국지가 [불편한 책]이기도 하다.
조조에 대한 글을 다 쓰는 것은 무리이다. 조조 한 사람만 가지고도 1000페이지가 넘는 글이 나온다. 그중에서 본 필자는 조조를 '관용의 리더'라고 상정하고, 그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를 중심으로 논지를 밝히려고 한다.
조조가 안좋은 이미지로 드러낸 것은 다음과 같은 사연때문이다.
허소라는 유명한 점쟁이가 있었는데, 젊은 시절 그 점장이를 조조가 찾아간다.
"나는 어떤 사람이요?"
그러자 허소는 그냥 입을 꾹 다문 채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조조는 답답하여 재차 물었다. 그러자 허소는 무겁게 입을 연다.
"그대는 처세에는 능신일 테지만 , 난세에는 간웅이 될 것이요"
그 이후로 조조는 간웅이라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분명 그에게는 간웅과 같은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삼국지 여러 곳을 보아도, 과연 조조의 모습은 '간웅' 그 이상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그런 임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경영학적 사고방식으로 바라보면, 조조는 아주 탁월한 CEO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 사람에게서 여러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조조만이 가지고 있는 멋이다.
빈손으로 시작하다
인생의 전반기의 조조는 드물게 보이는 뛰어난 관리였는데, 그는 22살의 나이로 '낭'이라는 궁중의 시종관을 맡게 되었는데, 이는 젊은 엘리트가 관료생활을 시작할 때 반드시 거치는 필수 코스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조조는 젊은 시절부터 인재로 지목되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수도 낙양북부의 '위'가 되었다. 이는 지금의 경찰서장급인데, 조조는 법을 제대로 적용하여 낙양성안의 벼슬아치들이나 일반 백성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그후 조조는 승진하여 '의랑'이라는 벼슬에 임명되어 낙양으로 돌아온다. '의랑'이란, 학식이 뛰어난 사람에게 주어지는 직책이다.
그런 가운데 그의 나이 30살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 조조는 기도위에 올라 황건적 토벌에 나선다. 토벌한후, 그는 '전군교위'라는 높은 군사직을 얻게 되고, 나중에는 승상인 동탁의 수하가 된다. 동탁은 그를 '효기교위'에 임명한다. 조조는 동탁의 신하가 되기 싫어서 나중에는 수도를 탈출한다.
그의 나이 35살에 그는 빈손으로 재출발을 한다. 그는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용기백배하여 새로운 인생에 도전해갔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의지할 데가 없었다.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도 쓸 만한 부하나 자금도 없었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위자라는 사람이 그에게 군자금을 주었다. 난세의 시기에 위자라는 사람은 조조의 능력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그에게 거액의 군자금을 지원했다. 위자는 얼마후 동탁군과 싸우다 전사하고 만다. 후일 조조는 그의 아들을 중용하여 그 은혜를 갚는다.
조조는 그 돈으로 3000의 군사를 모아 반동탁 연합군에 가담한다. 다른 '군웅'들이나 '제후'들이 일만 이상의 병력을 거느리는 튼튼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조조는 거의 빈손으로 출발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벤처를 창업하는데, 벤처창업자금을 빌려서 몇명의 사람으로 소규모 사업을 일으킨 모습이다. 아니면 책상 하나에 자동응답 전화기 한대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조는 빈손으로 시작하였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큰 손을 가진 인물이었다. 빈손으로 시작한 사람이 일국의 제왕까지 오른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천하의 강자가 되다.
그렇다면 빈손으로 출발한 조조가 어떻게 하여 천하의 최강자로 성장할 수 있었을 까? 몇가지 이유를 삼국지를 두루 살펴보면서 근거를 잡아본다.
첫째, 강한 전투력이다. 그는 군대의 최고 지휘관으로서 거의 현대인에 가까운 경영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승산이 된다는 판단을 서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과감하게 공격을 하지만, 형세가 불리하다는 판단이 서면 미련없이 도망을 쳤다. 난세를 살아가는데 이 이상의 지혜는 없을 것이다.
둘째, 초월적인 자신감이다.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확신한다면 정말로 산을 옮길 수 있다" 란느 말은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즐거움과 성공을 반드시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떤 시인은 "인생의 가장 큰 손실은 자신감을 읽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강적 원소와의 관도전투에서 조조의 자신감은 빛났다.
모사 순욱은 조조가 원소보다 네가지 점에서 우수하다고 이길 수 있다고 한다. 용인술이 뛰어나며, 원소보다 임기응변에 뛰어나고 과감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상벌을 분명하게 하고, 기율이 엄하므로 병사의 수는 적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싸울 각오가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는 조조는 허영심이 없음으로 기용한 부하들도 실력으로 중무장되어 있다. 여기에 모사 곽가는 조조가 원소바다 뛰어난 점을 10가지 넘게 열거하자 조조는 자신감이 넘쳐 1만의 군사로 열배의 원소군을 격퇴한다.
눈앞에 닥친 위기와 도전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자신감으로 무장해야 한다. 자기 능력을 믿으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해 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불평하고 불안하여 한탄만 하게 된다. 평범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대단한 일을 할 수 없다꼬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로 큰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자신감이 성공의 주요 요소중의 하나다. 자신감을 가지려면 자기 생각을 바꾸고, 정확하게 다른 사람들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적극적인 사고를 늘 주입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부정적인 상황이라고 긍정적인 사고로 일관하다보면 쉽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성공했던 일을 머리에 떠올려본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현재의 일도 잘 해결될 것 이라고 자기암시를 하면 된다.
세번째로, 조조는 널리 인재를 모았다. 맹자가 말한데로, 성공한 리더가 되려면 반드시 천하의 인재를 모아야 한다. 조조는 유능한 인재를 모으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였다. [인재제일경영]을 모토로 삼아서, 많은 유능한 사람들을 자신의 참모로 만들었다. 그의 인재를 판별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인간성은 둘째로, 오로지 능력]이었다고 한다. 조조는 "천하는 얻으려면 먼저 사람을 얻으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품행이 바른 사람만이 실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품행행이 바른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데, 이는 바로 "인재를 등용하는데 그 사람의 도덕에만 얽매여 평가하지 말라"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아침을 알리지 못한 닭도 지난 잘못을 메우고 다시 한 번 울고 싶은 법'이라는 속담을 인용했다. 과거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중시하는 조조의 태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으로 구름떼같이 물려 들었다. 요즘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는데, 조조의 인재선발의 지혜를 십분 응용했으면 한다. 너무 도덕적이고 결백한 인물을 뽑으려니 여야가 대치국면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솔직히 인적자원관리론에서 밝히는 것은 [도덕보다 능력이 더 중요하다] 라는 측면이다. 인성검진에만 빠지면, 인재를 버리게 된다.
삼성의 경우 [인재제일경영]을 하고 있는데, 필자도 잠시 논문상을 타고 제일기획에 입사허락을 받았다. 나를 뽑은 대표자의 말은, '너의 획일화된 생각보다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하는 면이 훌륭하다" 인재를 알아보는 사람은 보는 눈이 다르다.
네번째로, 선견지명이다. 조조는 미리 앞을 읽고 중요한 곳에 미리 포석을 해두었다. 항복한 적의 병사들 가운데 무술이 뛰어난 병사를 선발하여 핵심 전투원으로 삼았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둔전을 일으켜 식량비축에 만전을 기했으며,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 내에 교육제도를 완비하고, 치안유지에도 힘을 기울였다. 또한 이름만 있는 황제를 자신의 진영으로 맞이하여 천하에 자신의 명분을 내세운다.그래서 황제의 이름으로 다른 '군웅들이나 제후들'을 위에서 호령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필자의 견해지만, 조조는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대국적이고 거시적인 시각으로 미래를 위한 모든 정치적, 경제적 수단을 강구하여 실천에 옮겼다. 오늘날 대통령이 되거나 수상이 되는 사람은 이러한 미래지향적 안목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현재에만 머물러, 눈앞에 닥친 현실만을 해결하고 타개하는 사람은 훌륭한 문제해결자는 될지라도, 위대한 리더의 축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 인물로 나는 '윈스턴 처칠'을 뽑고 싶다. 오늘날 성공한 창업가들이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도 바로 '선견지명'이며, 이를 '실천'해 나가는 능력이다.
특히 조조의 뛰어난 점은 '학문적인 교양'을 갖추었다는 데에 있다. 조조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조조는 특히 젊은시절에는 [손자병법]을 비롯한 여러가지 병법서를 연구하였다. 그의 관심사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고전경서는 물론, 역사서와 문학서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교양을 갖추었다. 조조의 수하에는 조조보다 많은 학식과 견문을 갖춘 인물들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이들과 토론하고, 대화하며, 정책을 구상할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실력이 바로 '학문적 교양'이다. 그는 또한 진지에 머물러도 틈만 생기면 책을 읽었다고 한다. 만년에도 결코 손에서 책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하루 일과를 마치면, 계속되는 독서와 영어명문장 암송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게이츠는 한달 20여권의 독서를 했다고 한다. 그의 차안에는 책들이 많았으며, 출퇴근시에 책을 읽으면서 움직였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들을 "역사창조자 ( History Maker)"라고 부른다.
게다가 조조는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아직도 그의 뛰어난 시문이 몇 수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 중에 한 수를 남긴다.
준마는 늙어 마굿간에 묶여 있어도
그 뜻은 천리를 달리네
내 비록 늙어도
사나이 뜨거운 마음 식지 않네
아마도 조조는 늙어서도 결코 장부의 큰 뜻을 잃지 않겠다고 자신의 결의를 이렇게 필혁하였을 것이다. 조조는 나라를 세우는 일이나, 인재를 발구하는 일이나, 전쟁에 대처하는 일이나 , 학문에서나 타오르는 도전 정신(challenge spirit)으로 살아간 사람이다. 그는 향년 60세의 나이에 병사한다. 하지만 조조가 남긴 '위대성 Greatness'는 탁월한다.
현대 중국인들이 뽑은 가장 위대한 리더중 하나는 바로 '조조'이다. 한국의 삼국지 팬들에게는 '조조'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대해서 꺼려한다. 하지만 조조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 조조라는 사람에게 푹 빠져들게 되어 있다.
위의 조조에 대한 개괄적인 고찰도 합당하지만, 필자의 생각에 조조는 '관용적 리더쉽의 대가'라고 부르고 싶다. 그의 인간적인 위대성은 나중에 다른 글에서 만나겠지만, 여기서 잠시 조조의 인간됨을 평가할 때, "소인배의 모습을 한 진정한 군자다" 라고 할 수 있다.(삼국지 인간력, 과화) 삼국지에 나오는 여러 사례를 여기서는 지면관계상 생략한다.다만 인간관계력에서 관용의 중요성을 잘 파악한 인물이 조조임을 밝힌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해와 관용이다. 일을 하다보면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상대방의 약점을 틀어쥐고 추궁이나 비난만 하다가는 그 어떤 일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없다. 조조는 인간관계의 중요한 이 측면을 제대로 펼쳐나간 사람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관용을 베풀었다. 적도 친구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관용이다.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큼 인간관계를 윤택하게 하는 것은 없다. 설사 실수를 하더라도 상대방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해주고 관용을 베풀면 아무리 도량이 좁은 사람이도 당신의 친구가 될 수 있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조조는 싸움에 임해서도 서두름이 없었으나 변화가 무쌍하여 기회를 놓침이 없고, 재주 있는 자를 발탁해 일을 맡겼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냉정한 계산에 따랐으며 재능이 있으면 사소한 일에 염두를 두지 않았다. 조조가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릇이 크고 지략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조조는 비범한 인물로서 시대를 초월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라고 그의 인물됨을 높이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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