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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고전 이야기

명길묻29, 빈센트 반 고흐 [고흐의 영혼의 편지]와 [해바라기]

by 코리안랍비 2022.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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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불후의 명작은 불우한 시절에 나온다.”


하나의 화가로 인하여 울어본 적이 있나요?
나는 울어 보았습니다.
고통과 눈물의 화가, 바로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나는 일사천리(一瀉千里)로 그의 평전을 읽으면서
작품보다 그의 삶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았습니다.
이미 나의 서재에는 고흐에 관련된 책이 많기 때문입니다.
고흐에 푹 빠져보기로 작정하여 본지 오래되었습니다. 

고흐가 좋아서 나는 고흐의 그림, 이야기를 수집하여 살펴보기를 즐겼습니다. 

나의 이야기는 소년 시절로 돌아갑니다. 어려서 나의 집에는 고흐의 그림이 몇 편 걸려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고흐라는 인물을 좋아하였습니다. 초등학생의 눈에는 그 그림이 무슨 그림인지는 몰랐습니다. [해바라기] 라는 작품이 두 편이 집에 걸려 있었는데, 이 그림을 자세히 보니 보니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5학년 소년의 눈에는 해바라기가 참 좋았습니다. 해를 향하여 바라보다가 결국 해 아래로 고개를 숙이는 해바라기... 그것은 필경 빛나는 태양에 대한 부끄러움과 수줍음 때문일 것입니다.

5학년 사생대회가 있었습니다. 방학을 마치고 얼마후 치룬 사생대회인데, 나는 그림을 그리고자 큰 도화지에 노란색과 파란색 크레용만 가지고 해바라기를 그렸습니다. 바로 고흐의 해바라기를 몇 년 바라보니 어느새 그 그림을 닮게 그렸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두 얼굴의 해바라기를 그렸습니다. 나는 그 도화지에 해바라기를 큼지막하게 그려 넣었습니다. 잠시후 정밀묘사가 부족한 나에게 어떤 여학생이 그림을 완성시켜 주었습니다. 그 그림으로 전교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고흐’님의 그림에 매료되어 갔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이 정말로 너무나 많았는데, 인생의 단계별로 그려진 연대기적인 그림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감격이요 감사였습니다.

한번은 중학교 수업을 듣는데, 미술선생님이 어느 작가의 이름을 맞추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익숙한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선생님,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들입니다.” 그러자 그 홍익대를 나온 여선생님의 표정이 너무나 천국처럼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 어떻게 고흐를 알았니?”
“네 어려서부터 고흐를 좋아했습니다.”

시골 중학교 학생인 나에게 그 미술 선생님은 미술반에 들어와서 그림을 그리면 어떻겠냐고 하였지만 당시 작은 사업을 실패한 아버지와 야채행상을 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차마 그림을 그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부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대학에 와서 나는 자주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만났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학생이었지만 ‘낭만’에 대해서 생각한 청년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노래도 만났고, 그의 영화도 만났습니다. 노래라면 바로 가왕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었습니다. 그의 이 길고 긴 노래가 나는 그저 좋았습니다. 짐승의 썩은 고기가 먹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눈덮힌 산중에 올라 죽더라도 표범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멋있었습니다. 그 노래속의 고흐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이었어요.

‘멋있다는 것’은 때론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고흐는 별을 사랑했습니다.
고통중에서도 죽어가면서도 그는 별을 사랑했습니다.
별을 사랑한 윤동주라는 청년처럼, 청년 고흐는 별을 사랑했습니다.
고흐가 동생 테호에게 보낸 편지를 기억합니다.

“나는 별을 보면 항상 꿈을 꾼단다.
왜 우리는 별에 더 가까이 갈 수 없을까,
살아서는 별들에 가까이 갈 수 없다”

고흐에게 밤하늘은 무한함과 더불어서 자신의 어둡고 상한 심정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하늘은 소용돌이치면서 두터운 붓놀림으로 사이프러스 나무와 연결되고, 그 아래 조그만 마을의 집들과 교회는 대조적으로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말해줍니다.



고흐의 말입니다.
Picture speaks by itself.
그림은 그 자체로 많은 말을 합니다.

그리고 돈 맥클린이 1972년에 발표한 ‘빈센트’입니다.
어쿠스틱 반주에 따라서 별빛처럼 흐르는 감미로운 선율을 선사합니다. 그는 아마도 시대를 앞서간 고독한 비운의 천재 화가 고흐를 회상하면서 그에게 헌정했을 것입니다. 그 곡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르는 이들을 위하여 남겨봅니다.

빈센트 VINCENT

별이 빛나는 밤
파랑, 회색으로 팔레트를 물들이고
여름 날, 내 영혼의 어두운 면을
꿰뚫는 눈으로 밖을 바라봐요.
언덕에 드리운 그림자
나무와 수선화를 스케치하고
눈처럼 하얀 린넨 캔버스에
미풍과 겨울의 싸늘함을 색깔로 그려내요.
당신은 뭘 말하려 했는지
난 이제 알 것 같아요
온전한 정신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 하고
사람들을 깨우치려 얼마나 노력했는지요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죠.
어떻게 듣는지도 몰랐죠
아마도 지금은 귀 기울일 거예요.

별이 빛나는 밤
밝게 타오르는 듯 활짝 피어나는 꽃과
보랏빛 안개 속에 소용돌이치는 구름이
빈센트의 파아란 눈망울에 비쳐요
곡식이 익는 황금빛의
아침들판으로 색은 바뀌고
고통으로 주름진 지친 얼굴은
예술가의 사랑스런 솜씨로 위로받아요
당신은 뭘 말하려 하는지
아마도 지금은 귀 기울일 거예요.
그들은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지만
당신의 사랑은 여전히 진실했죠
그리고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은

별이 빛나는 밤
연인들이 그러듯이
당신도 목숨을 끊어버렸어요
하지만 난 당신께 이렇게 말했어요 했어요
이 세상은 당신 같은 아름다운 사람에게
절대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는 걸요.
별이 빛나는 밤
텅빈 홀에 걸린 초상
이름 모를 벽에 걸린 채 세상을
바라보는 액자로 없는 초상들
난 잊을 수가 없어요.
당신이 만난 누더기 옷에
초췌한 이방인처럼 말이에요.
아무도 밟지 않는 눈 위에
짓이겨 뭉개진 빠아갈 장미의 은빛 가시도
당신이 내게 뭘 말하려 했는지
아마도 지금은 귀 기울일 거예요.


1972년 맥클린 싱어-송-라이터의 고백처럼
사람들은 이제 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의 작품에 눈 기울이고,
그의 슬픔과 고통에 마을을 기울이고 동감합니다.
이제와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고흐는 죽어서 복받은 분입니다.



나는 수시로 고흐와 관련된 전시회나 강연회를 가보고 시청하였습니다.
몇 해전 그의 작품을 오랫동안 연구한 어떤 분의 강연에 참석했다가, 또다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환생한 빈센트가 자신이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며 감격하는 영화였는데 그만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한 번도 자신의 삶을 부정한 적이 없는 고흐,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섭리(攝理)가 작용하고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평론가가 말한대로, 그는 운명론자였어요.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조건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시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예감하였습니다. 그의 생애는 고통과 슬픔의 연속이었습니다.

[고흐의 영혼의 편지]라는 두터운 책을 몇 해전에 보았습니다.
동생 테호와의 편지글 대화인데, 나는 이 편지글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글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지상에 내려온 천사’라고 하였습니다. 한때 아버지가 목사였듯이, 본인도 목사로도 살았던 고흐였습니다.

한국 사람이 저 멀리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활동한 고독하고 우울한 작가 고흐를 좋아한다는 것, 이것은 바로 인간의 공통의 언어인 고통과 슬픔을 즐길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는 밤에도 나에게는 어둠속의 빛을 봅니다. 어둠은 나쁘고, 빛은 선하다는 생각을 지웁니다. 어둡기 때문에 빛이 더욱 빛나듯이, 어둡게 살아온 고흐에게서 나는 더 밝은 빛을 봅니다. 고흐는 나에게 빛이었습니다.



고흐는 사람의 외로움이 사람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외로움을 이기고 감싸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 없는 믿음을 강조하지만 그는 사랑의 힘을 믿었습니다. 한때 목사였던 고흐는 사랑이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종교적 신념을 강하게 가졌지만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그 첩경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이상과 그가 부딪친 현실은 언제나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상의 [날개]는 이상의 날개일 뿐, 현실의 [고통]은 그를 화가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 길을 운명으로 여기고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그림은 다른 화가들의 그림과는 다릅니다. 나는 그래서 피카소보다 고흐를 좋아합니다. 그의 그림은 영적(SPIRITUAL)이고 겸손합니다.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심성을 가진 사람만이 읽어낼 것 같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 고흐는 당대의 패배자 처럼 보이나 죽어서 승리한 사람입니다.

오늘은 그의 두 작품만 선보입니다. 다른 작품들은 나중에 소개합니다.

어린 시절 집에 걸려 있던 <열네 송이 해바라기꽃, 1888>입니다.
해바라기 꽃을 희망과 기쁨의 상징으로 그렸습니다.


고흐는 이 그림을 어떤 비평가는 자서전적으로 말했습니다.

“일곱 송이는 저를 향하여 기쁨의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다른 일곱 송이는 사방으로 손을 뻗치고 얼굴을 흔들며 흥에 겨우 춤추는 듯합니다. .... 그 모든 것이 더욱 빛나도록 뒷배경을 온통 노란 색의 환희, 태양의 축복으로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저의 인생의 목적을 상징하며 기쁨에 겨운 합창입니다. 이제 저를 찾아올 그 존귀한 친구, 아니 위대한 시민 - 전에도 이곳에 있었고 앞으로도 있어야 할 그 존귀한 시민 - 그의 이름은 고갱입니다. 이 그림은 그 귀한 분, 그분을 맞이하는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그림 이후 일곱 번에 걸쳐 거의 똑같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중에 슬픔과 고통을 이기지 못해 그린 것도 있습니다. 꽃들이 바닥을 향하고 있는 그림은 희망차게 솟아오르는 기운이 실망으로 변했을 때 그린 것입니다.”
그에게 희망은 절망에서 피어난 꽃이었습니다.



다음에 작품은 고흐가 생레미에 와서 그린 저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 1889, 뉴욕 현대미술관>입니다.

그에게 생레미에서 정신을 송두리째 훔쳐간 나무는 사이프러스와 올리브였습니다. 특히 올리브 나무는 고흐에게 예수의 고통을 상징으로 여기게 하였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시어 그 잘난 인간들이 멸시와 학대 속에서 고통받는 예수님의 슬픔이 얼룩져 있다고 믿었습니다. 해바라기가 희망과 기쁨을 상징한다면, 사이프러스와 올리브 나무는 고통과 슬픔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그에 대한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을 진동하는 휘황찬란한 빛 아래 생레미 마을의 밤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하늘의 진동에는 관심없는 듯, 노란 불빛만 무심하게 창문으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 마을 한 가운데의 교회 탑이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시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하늘을 찌를 듯한 욕심과 위선만이 있습니다. .... 마을 왼편에 커다란 사이프러스 나무 한 그루가 그 하늘의 진동에 미친 듯 손짓하며 하늘을 치솟고 있습니다. 피를 토하며 절규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 검은 절규는 거의 하늘 끝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흰 빛무리를 이루고 있는 큰 별 하나가 절규하는 사이프러스 나무 옆으로 다가오며 밝은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 흰빛은 사이프러스 나무의 애절한 외침에 안타까워 흘리는 큰 별의 눈물인지도 모릅니다. 6월의 밤하늘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의 화합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저의 절규만이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얻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름 name'입니다. 이 이름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분은 부모님입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찌하든지 자신의 이름을 내고자 노력하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명(有名)한 자 같으나 무명(無名)한 자로 생(生)을 마칩니다. 그런데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정말 지금은 전 세계인이 아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피카소와 더불어서, 이제는 이 사람보다 유명한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세상 어느 곳엔가 그에 대한 뉴스나 신문기사, 그리고 수업과 방송, 인터넷과 sns에서 그의 이름이 거론 될 것입니다. 그는 살아생전에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무명(無名)한 자 같으나 이제는 가장 유명(有名)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즉 그림을 통해서 이를 극복하였습니다. 그는 아마도 하나님을 알려고 애썼던 인물이면서 그러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하나님을 보려고 한 인물이라고 평가합니다.

슬프게도 얼마 전 개그우먼 박지선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남들은 고려대를 나온 수재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못생겼다고 하면서 지탄을 하였습니다. 나는 그녀에게서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 같은 우아함을 보았습니다. 개그우먼으로서 자신의 주어진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비난 하는 사람이 정말 못나고 못생긴 사람입니다. 이런 악독하고 천박한 사람들이 많은 대한민국이 때로는 싫습니다.

그동안 받은 무수한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고 그녀는 안타까운 3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다시 고흐가 생각나서 울었습니다. 나는 고흐가 고통 받는 자의 성자로 다가옵니다.

고흐의 이름 중 ‘빈센트’는 네덜란드 말로 ‘성자 Saint'를 말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생각하면서 많은 믿는자들이 자신의 고통을 참듯이, 많은 사람들이 고흐를 생각하면 자신의 고통을 참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책만 읽어도 우리는 ‘상한 감정의 치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밤 고흐의 두 작품을 보면서 내일은 이 현실을 더 참아보리라 다짐합니다. 그리고 고 박지선 양을 생각하면서 다른 이들을 더 미소 짓게 하고 웃게 만드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합니다. 그녀는 많은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하고 갔습니다. 아마도 고흐처럼 하나님을 먼저 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2021 작년도 고희의 글을 쓰다가, 지선양도 같이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다가왔습니다.)

내 슬픔이 변하여 나와 다른 이의 기쁨이 되고, 내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된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합니다. 그림이 너무나 많은 말을 하는 밤입니다.

단테는 자신의 불후의 명작 신곡(神曲, Las Comedia)에서 말했습니다.
“가장 큰 비극은 희극이다”

고흐도 테스형처럼 나의 형, 우리들의 형입니다.
고흐 형, 세상이 왜이리 힘들어요,
사는게 왜이래요,
천국에 가 있다면 천국이 어떤지 말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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