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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고전 이야기

명길묻24, 에른스트 피셔 [밤을 가로질러] 인문학적 읽어내기

by 코리안랍비 2022.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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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 출처 이미지 - 피셔의 밤을 가로질러



밤을 가로질러 Durch Die Nacht
<밤, 잠, 꿈, 욕망, 그리고 어둠에 대하여>

“통찰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다.” - 에른스트 페터 피셔


가끔씩 신문에 올라오는 [신간안내]를 볼 때가 있다. 여러 신문들을 아침에 보는데 그 신문들을 보면 신간을 소개하는 내용들이 서로 비슷하다. 일주일에 한번씩 올라오는 신간중에서 반드시 사야할 목록이 생긴다. 그러면 그 목록에 대한 서평이나 리뷰들도 같이 올라온다. 나도 물론 서평쓰기에 동참하여서 여러 번 책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조선일보에서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책 [밤을 가로질러]에 대한 소개를 보았다. 물론 이전부터 피셔의 책은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는 과학사가(Science Historian)이다. 그는 과학자이면서 역사가이다. 한국에도 그의 책은 10권 정도가 번역이 되어 있다. 나도 물론 그의 책 3권 정도는 소장하고 있다. <아인슈타인> <막스프랑크> 평전 2권은 정말 압권이다. 그런데 그의 책중에 그래도 가장 쉽게 읽히는 책이 하나 있다.

바로 [내 인생을 바꾼 선생님]이 그것이다. 그의 인생을 바꾼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60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본 책이다. 내가 소개하는 피셔의 [밤을 가로질러]가 어려운 사람은 차라리 [내 인생을 바꾼 선생님]을 읽어보면 상당히 좋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피셔의 책은 대부분의 명작이라 어느 책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의 책을 읽으면 '밥이 나와, 떡이 나와' 하면서 고민하지 말기를 바란다. 밤과 떡 그 이상의 것들이 튀어나온다.

  • 다음 출처 이미지 - 선생님을 생각하게 하는 책




[과학혁명의 구조]를 쓴 토마스 쿤이이라는 걸출한 과학사가가 있다. 그는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든 인물이다. 나는 그의 책을 대학교 2학년 시절에 읽고서 무엇인가 가슴이 뭉클한 순간이 왔다. “과학과 역사”에서 무엇인가 아르키메데스같은 ‘유레카의 순간’이 온 것이다. 유레카는 그리스어로 ‘찾았다’ 라는 뜻이다.

그 당시 나의 중구난방(衆口難防)한 독서를 버리고 무엇인가 독서의 창문이 크게 열린 감격을 누렸다. 많은 수의 인문학자들은 ‘과학’에 대한 지식이나 열기가 약하다. 그런데 그 이유는 인문학자들은 과학에 대한 공부가 너무 되어 있지 않아서 그렇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반대로 인문학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인문학이 쉽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물리학이나 화학보다는 접근하기는 나은 분야라고 보여 진다. 물론 인문학도 깊이 들어가면 범접치 못하는 분야도 있다. 대표적으로 고전철학이나 고전언어학이 그렇다. 언어야 말로 가장 어려운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과학과 역사의 만남을 다룬 책을 만날 때마다 나는 흥분이 일어났다. 그래서 당장 [밤을 가로질러]를 구입하였다. 그런데 두달간 읽지 않다가 명작에 대한 글을 써보려는 심산(心算)에 피셔의 책을 다시 끄집어서 본 것이다.

피셔 박사는 독일에서 태어나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독일 하이델베르그에서 [과학사]를 강의한다. 과학사는 과학을 인문학쪽 사이드에 겨냥하여 밝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책에서 말하는 것은, [밤과 어둠의 역사], [꿈과 욕망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라면 나는 단연 스피노자의 [에티카]을 접하라고 말하고 싶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나 꿈의 해석]을 접하라고 말하고 싶다.

피셔의 책은 읽기가 그리 어렵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기초적인 과학의 역사나 인문학적 배경이라는 독서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읽어내기 힘든 내용이다. 전반적으로 독일인들이 쓰는 책들은 ‘지적이기는 하지만 유머러스하지 않다’ 라는 것이다. 하지만 피셔의 책은 아주 유익하면서도 유머러스하다.

  • 에른스트 피셔 - 참 글을 잘쓰는 -독일인
    구글출처 이미지 -에른스트 피셔 교수의 모습



그는 [밤]이라는 대주제를 정하여서 사람들에게 밤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바꾸어 준다. 나는 이 책을 한달음에 읽었다. 여기서 한달음에 읽는다는 것은 [밤을 세워서 읽은 것]을 말한다. 그 만큼 이 책은 강렬하고 인상깊은 책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구절은 바로 이것이다. 베르베르 베르나라의 [잠]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대목이다.

“잠은 휴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수면 중인 뇌는 비록 ‘무의식’이지만낮의 ‘의식’을 복기하며 낮이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깨닫게 된다. 때문에 ‘밤의 시간’, 즉 수면이 없다면 깨달음의 기회는 없다”

밤은 중요한 순간이다. 그리고 잠은 그 밤의 선물이다.
밤에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자. 밤이 오려면 어둠이 있어야 한다. 어둠은 사람들에게 잠을 자야 한다는 신호를 준다. 그리고 지구와 달은 서로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낮과 밤을 서로 교환한다. 하루의 3분의 1은 일하고, 3분의 1은 쉬고 식사를 하고, 3분의 1은 자게 만든다. 그리고 잠을 자면 순간 순간 꿈(夢)을 꾸곤 한다. 그리고 무엇인가 낮에 욕망한 것을 밤에 잠재의식 속으로 보낸다.(프로이트와 융의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에 대한 심리학서도 아울러 보면 좋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낮이 아니라 ‘밤’이다. 악이나 욕망같이 인간에게 ‘어둠으로 인식되는 것’까지도 포괄적으로 다룬다. ‘밤’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저 먼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현대 도시에 나타난 ‘밤의 종말’까지 다루고, 문학·과학·역사·철학을 종횡무진하면서 밤의 흔적, 밤의 욕망, 밤의 아름다움, 밤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저자의 빼어나고 수려한 글 솜씨는 가히 놀라울 정도다. 그래서 나는 그의 책의 멋진 부분?을 몇번이고 곱씹어 보는 시간도 가졌다.

  • 다음 출처 이미지


그는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로부터 책을 전개한다. 보통 밤이나 어둠에 대한 것이라면 창세기 1장 2절(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히, 토후 바 보후)를 먼저 등장시켜야 하는데, 그는 시(詩)를 먼저 등장시킨다.

릴케의 시는 [나의 기원인 너, 어둠이여]라는 제목인데, 그 시의 마지막은 ‘나는 밤을 믿습니다’이다. 릴케는 신을 믿는다고 표현하지 않고 밤을 신앙하였다. 릴케의 시적 통찰력은 사실 어둠속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잠시 책에도 등장하지 않는 그의 시를 소개한다.

나를 낳아준 어둠이여,

나는 불꽃보다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
불꽃은 제 주위로 둥그렇게
찬란히 빛나면서
세계를 구별짓지만,
그 바깥에 있는 어떤 존재도 불꽃을 모릅니다.
그러나 어둠은 모든 것을 제 품에 품고 있습니다,
형상들과 불꽃, 짐승들과 나를.
인간과 모든 세력까지도
잡아챕니다.

어쩌면 바로 내 곁에서 어떤 위대한 힘이
꿈틀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밤을 믿습니다.

릴케의 시집이 마침 나의 서가에 있다. 내 서가에는 없는 책이 더 많은데, 있어야 할 책들이 있어서 좋다. 과학자와 시집은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상당히 어울린다. 난해하면서 함축된 시를 보면서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미쳐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한다고 한다. 내가 아는 한국의 어느 화학교수는 ‘시인들은 과학자들의 문학자’라고 하였다.

이 말은 시가 과학자들에게 ‘영감inspiration과 통찰력insight’를 주기 때문이다.

저자 피셔 교수도 상당히 릴케처럼 시적인 사람이다.

“낮의 반대인 어둠은 모든 것의 출처이며, 따라서 모든 것을 품을뿐더러 모든 것을 남몰래 간직한다. ”

책은 밤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밤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한다. ‘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과학적으로 답한 뒤, 우주의 먼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철학자의 정의와 많은 작가가 바라본 밤의 모습을 살핀 뒤, 현대 도시인이라면 누구라도 동의하는 밤의 실종까지 다룬다. 과학, 문학, 역사, 철학에 걸친 지식을 자유롭게 풀어내며 사유를 이어간다. ‘밤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사실 오늘날에도 풀기 쉽지 않은 문제다.

고려대 고 황현산 교수는 “밤은 나의 스승이다” 라고 하였다.
무려 100여권의 책을 쓴 그 교수는 그의 상당수의 작업들은 ‘밤이 만든 생산물’이라고 표현하였다. 나는 그분의 책을 일찍 접했으나, 나중에 가면 갈수록 그분의 산문집에서 그분의 위대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임마누엘 칸트도 밤하늘을 보면서 ‘숭고한 감정에 압도되었다’고 토로하였다. [순수이성비판]을 보면, “저 하늘에는 별이 있고 내 마음속에는 양심(도덕법칙)이 있다”라고 하였다. 마음속 어둠에서 빛나는 양심이라는 별은, 저 하늘의 별처럼 여전히 빛나는 어둠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어둠이 없는 빛은 없다.

  • 구글출처 이미지 - 밤은 스승이다. 황현산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한 밤하늘의 어둠은 과연 무엇 때문에 생긴 현상인가. 단순하게 보면, 밤은 지구의 그림자 때문에 생긴다. 하지만 밤하늘이 어두운 것은 우주의 기원과 우주의 비밀로 이어진다. 바로 이 자체가 저자가 말한대로, 우리에게 우주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밤의 예찬론자]가 된다. 나는 낮보다 밤에 상당수 작업을 한다. 많은 글을 쓰기도 하고, 못다 읽은 책을 읽기도 하고, 밤은 나에게 심지어 [창조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나에게 밤은 창조적인 밤이며, 삶의 기쁨과 풍요로움은 밤의 어둠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저자의 말중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들은 어둠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밤을 통해 비로소 생겨나며 그런 다음에 밤을 통과해야 한다.한편으로 밤에 익숙해져야 하고,밤의 실종에 대하여 방관하지 말아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밤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

저자의 책속에 보면, “별빛이든 등불이든, 인간에게 모든 빛은 오직 배경의 어둠과 함께할 때만 눈에 띈다. 또한 모든 통찰은 어둠 속에서 내딛는 첫걸음을 요구한다. 세상이 고요해야 비로소 소리가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찰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생각들이 나의 내면의 밤 속에 있지 않다면 달리 어디에 있을 것이며, 그 생각들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단어들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저자는 “어둠, 곧 밤이 없고 밝음과 어둠의 상호작용이 없다면 생명은 존재할 수 없음을 늘 되새기라”고 한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낮을 맞이하기 위해 항상 다시 밤을 통과해야 하고, 새로운 낮도 다시 다음 밤으로 이어질 따름”이라는 삶과 세상의 원리를 잊지 말라고 한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낮만큼이나 밤이, 빛만큼이나 어둠이 필요하며, 피할 수 없다는 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삶은 밤을 통해 가치를 얻는다.”


아울러 이 책에 대한 독일 현지의 추천사도 보는 것이 좋다.
이 추천사의 마지막에 나의 추천사도 넣는다.

<추천사>
“이제 잠자리에서 뒤척이는 대신에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책을 읽으며 즐겁게 밤을 가로지를 수 있다.” _쥐트도이체 차이퉁(독일 일간지)

“피셔가 밤에 관한 책을 썼다. 단지 천문학만 다루는 책이 아니다. 신비로운 어둠을 위한 변론이다.” _베르너 차이퉁(스위스 일간지)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박식하고 우아하게 문학과 철학을 넘나들며 밤과 어둠의 다양한 면모들을 보여준다.” _무젠블레터(독일 잡지)

“이 작품에서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자연과학적 사실들을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필요한 만큼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_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독일 일간지)

“그의 ‘어둠의 자연사’는 밤의 가치를 강조하는 탄탄한 글이다.” _타게스차이퉁(독일 일간지)

"어둠은 빛을 만들고, 사람을 만들고, 역사를 만들었다." - 필자의 추천사

  • 피셔의 책은 다 좋다.- 그래서 나는 자주 그의 책을 읽는다. 밤을 새워서 읽어도 좋다.
    개인 서재에서 찍은 사진
  • 구글출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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