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윌버의 [신]
오늘은 심리학과 종교를 아우르는 놀라운 책을 가지고 나왔다.
나의 서재에 꽂아 놓고서, 아직도 안읽고 있다가 소개하고 싶은 책을 고르면서 "아, 저 책" 하면서 끄집어 내었다.
책이라는 것은 읽지 않으면 책이 아니다. 그냥 블록과 같다. 블록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누군가가, 언젠가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잠시 그의 책속으로 들어가보자.
[의식 연구분야의 아인슈타인]으로 평가받는 인물
의학과 생화학을 공부하였지만,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아
심리학, 종교학, 영성에 대한 동서양 사상에 심취하여 세계적인 철학자의 반열에 오른 인물.
그는 [무경계] 라는 책으로 유명하지만, 최근에 [신 A Sociable God] 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한국에는 아마 그의 저서가 15권 정도 된다고 한다.
짐 게리슨은, "플라톤 이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라고 극찬했다.
그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아인슈타인과 같은 위대한 인물들과 비견하는 것은 과장되고 억지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그의 저서를 읽어보면 정말 이토록 극찬하게 된 이유를 수긍하게 될 것이다.
그는 현재 70을 바라보는 노학자이지만, 이 책은 이미 1982년에 단 3박 4일만에 쓰여졌다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3박 4일만에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손으로 이 책을 저술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의 책내용을 읽으면 자칫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근본주의나 아니면 영지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흔들릴 수 있다.
흔들린다면 자신감이 없는 것이고, 종교의 근본 정신보다는 경전과 성경, 아니면 교회와 사찰, 성직자의 설교나 인도에 빠진 사람들이다. 아니면 지독한 환상에 빠진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구제불능이다.
켄 윌버의 책은 이런 종교간의 문제를 건들면서, "나와 사회의 성장 수준이 곧 신의 정체성을 결정한다"고 과감하게 말한다. 즉 나의 성장이 신의 진보라고 보는 것이다. 그의 신의 개념은 지극히 사회적이고 통합적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믿는 신은 우리 머리속에 존재하는 상징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을 상징적 존재로 믿는 사람들에 일침을 가한다. 그는 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우치기를 강조한다.
즉 신의 뜻이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에 대한 참여를 말한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말한다.
그리고 참된 자신으로서 신과 하나가 되는 연합을 말한다.
성서를 잘 보면, 하느님이 제일 먼저 종교적인 집단인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
먼저 가정을 세웠다. 가정은 사회의 가장 낮은 기초단위이다. 그런 가정의 중심은 사랑과 용서, 화목과 우애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가정보다 교회나 사찰을 우선시하면 그것이 바로 신의 뜻에 위배되는 것이다.
절대 속지말라. 신의 뜻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사회적이라는 것이다.
켄 윌버는 엄청난 학술적 용어를 들이대면서 사람들을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종교학적 용어나 심리학적 용어를 사용하여서, 사람들에게 이해와 깨우침을 주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의식이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영성이 성숙하면서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지침서로 손색이 없다.
내가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은 내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의 어떤 학생 형제들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인성도 훌륭하고, 독서도 잘하고, 공부도 곧잘 하는 학생들이다. 그래서 늘 칭찬해주고, 챙겨주는 학생들이다. 그런데 이 학생들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위기에 놓여 있다. 그리고 두 아들과 어머니는 자주 싸운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아버지는 그 아들들을 둘다 집에서 빼서 모텔에서 지금 생활하게 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바로 근본주의나 잘못된 영지주의적 신앙에 빠진 어머니가 있다. 매주일 아산에서 1호선을 타고, 3시간 반을 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 교회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교회는 이단이며, 하느님보다 목사의 말이 우선이었다. 그 어머니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거룩한 척을 하면서 부패하고 타락한 거짓 선지자를 따르고 있었다.
그 어머니는 [종교중독자]가 된 것이다.
그 중독은 마약이나 알콜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나는 두 형제와 상담을 하면서 조속히 그 가정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도했다. 종교적인 문제는 종교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 안에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아편이다.] 라고 하였다. 종교에 너무 빠지게 되면 사람대신에 경전만 떠받들게 된다. 심지어 하느님보다 인간이 우선에 둔다. 우상숭배를 멀리하라는 종교가 도리어 우상숭배를 더 조장하는 것이 된다. 심지어 가정을 멀리하고 자녀들은 불행해진다.
나는 히브리대학에서 성서를 연구한 사람이다. 물론 기독교 현실주의자이다.
말 그대로 성서라는 텍스트를 연구하지만 여기에는 언어와 역사, 고고학과 지리학, 해석학과 철학이 요구된다. 그래서 종교적인 입장보다는 성서 그 자체의 권위를 인정하고 연구하는 학문을 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교인들은 성경의 문자적 집착을 너무나 많이 하여서 가정과 주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한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면 "교회를 떠나라"라고 강력하게 권고한다. 그러한 교회는 에클레시아스적 교회가 아니다. 가짜교회다. 지나친 열심은 반드시 병폐를 낳게 되어 있다. 엉터리 신비주의다. 타종교도 그런 신비한 일이 많다. 반드시 교회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이 우선이다. 소승적 기독교로 가야 한다.
교회에서 제일 피해야 할 말은 "성경대로 살아라" 이다. 그것이 바로 근본주의이다. 이는 불가능한 명령이다.
"우리는 절대 성경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십계명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산상수훈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지킬 수 없는 말에 우리는 속아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종교의 핵심이나 정신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지닌 사람들이며,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근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근본주의는 숨막히는 것이며 사람의 자유를 억압한다.
진정한 신앙은 마음의 평화와 안식이 되어야 한다. 일이나 물질 잘못된 희생이 아니다. 진정한 신앙은 지성을 좇아야 하며 사람과 사회를 섬기는데 있다. 성서왜곡은 절대 금물이다. 성서는 교과서이다. 절대 이를 넘어서면 안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동서양의 철학과 현대 심리학과 사회학 그리고 과학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놀라운 통합적 비전을 가진 켄 윌버의 책을 권장한다.
나는 감히 이 분의 책을 "현대의 고전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 보고 싶다.
마음이 무겁고
갈등이 많을 때 두 마음을 갖기 쉽다.
이런 마음문제를 적절히 다루며 터치하는 책이
바로 켄 윌버의 저작들이다. 꼭 한 두권이라도 읽기를 권한다.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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