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님의 시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정현종님의 시는 리얼하다. 자극적이다. 생생하다. 생동감있다. 버팀목이 된다.
희망적이다. 견고하다. 짱짱하다. 그냥 읽힌다.
오늘 제자 중에 하나가 정현종 시인의 시를 가져왔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름대로의 심상과 느낀 점을 말해 달라는 말에...
"무슨 말이 필요하니?"
"이 시는 그냥 심상과 느낌도 필요없어, 그냥 읽히는 시야"
이 시에서 공의 다양한 특성이 인간의 모습을 너무나 닮았다.
공은 일단 둥글다. 그리고 둥글기 때문에 떼굴 떼굴 구를 지언정쓰러지는 법이 없다. 공은 또한 가볍다. 그래서 지상에 떨어져도 다시 튀는 속성이 있다.
공은 또한 탄력성이 있다. 그 탄력성으로 사람들은 공을 사랑한다. 공으로 하는 운동종목이 구기 종목이다. 사람들은 구기 종목에 '환장하듯 좋아한다.'
공이 없다면 스포츠도 없다.
지구촌을 평화와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 것이
월드컵 아닌가, 이 때에는 사람들도 전쟁을 멈춘다고 한다.
지진이 일어나도 축구는 본다.
이란에 대지진이 일어났어도
사람들은 TV 수상기의 선을 연결하여
월드컵을 본다.
공은 멈춰있는 법이 없다.
계속 움직이는 특성도 갖고 있다.
공이 움직이면 곧 공은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다한다.
공이 움직이지 않으면 공은 자신의 본질을 외면하게 된다.
바다의 배는 정박해 놓지만 배의 본질은 먼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움직여야 산다.
움직여야 기적도 일어난다.
공은 튀어올라야 제 맛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은 존재감을 완전히 상실한다.
정현종님의 시는 그래서 '살아있는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살아봐야지'
그 말에서 나는 그만 숙였던 고개를 다시 번쩍 든다.
'살아봐야지'
살고 싶지 않고 죽고 싶은 심정이 들때도
내 입에서는 반드시 해야 할 말은
'살아봐야지'다.
그리고 '살아야겠다' 라는 말이다.
죽고 싶다 하면 죽는 것이다.
살고 싶다 하면 사는 것이다.
인생은 결국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삶과 죽음은 나의 선택을 초월한 일이지만
그러나 나의 삶을 있게 한 부모를 생각하면
나는 선택받은 것이다.
그리고 나의 죽음을 있게 한 신의 뜻을 생각하면
나는 또한 선택받은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선민으로 태어나 선민으로 죽는다.
영광스럽게 태어나 영광스럽게 죽는 것이다.
모든 삶과 죽음은 그래서 고귀하고 가치가 있다.
최근 이태원의 국가적 비극앞에
망연자실 하고 있는 부모, 친척, 친지, 지인, 친구 등의 표정에
눈물과 통곡만 남은 것이다.
살아도 죽은 것 같은 유가족의 모습에
나도 그만 오열을 금치 못했다.
그래도 이제는 '살아봐야지'
'최선의 꼴'을 만들어야지 하는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
사는 것이 힘들고 버겁고 죽을 맛이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이유를 발견하면 우리는 무슨 고통도 참을 수 있다.
니체의 말이다. 죽을 듯한 각오로 살았던 철학자 니체가 그런 말을 했다면
우리도 열심히 살아갈 일이다. 살아낼 일이다. 살아서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영광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아직은 초월하지 못해도 초월의 가치를 심어 나가면서
살아낼 일이다. 살아남아라 그러므로 당신은 아름답다. 살아남아라 사람의 가치는 살아서 증명하는 것이다.
공에게서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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