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슬픔의 봄, 모란의 세계사
<프롤로그>
나는 예산의 추사 김정희 고택에 피어난 모란을 잊을 수 없다.
어떤 서울에서 온 사람이 이게 무슨 꽃인지 잘 알지 못하여서, [모란]이라고 소개해주고, 자세히 이야기를 했다. 나는 문화해설사나 학예사가 아닌데 다만 모란에 대해서 몇자 아는 것으로 설명을 해주니 잘 들어주어서 그저 고마웠던 순간이다. 아는 것이 가끔은 힘이다.
모란에 대해서는 선덕여왕에 대한 글, “꽃은 화려하나, 허나 꽃에 벌이 없으니 향기가 없겠구나” 라는 대목이 있다고 해주었는데, 그 나이드신 분이 나를 신기하게 생각하였던 표정이 기억난다.
꽃도 한철이다. 한 뼘도 안 되는 시골집 마당 한구석에 수선화가 이른 봄을 알리고, 튤립이 뒤를 잇는다. 튤립 지면 모란이 4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물론 5월경까지 북부지방은 모란이 핀다. 이때까지가 가장 좋다. 모란의 낙화(落花)는 "찬란한 슬픔의 봄"(김영랑)의 절정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이 제목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지어 본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모란은 향기가 없다'고 오해를 한다. 선덕여왕 때문이다. "이 꽃이 몹시 아름답지만, 그림 속에 나비와 벌이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는 꽃일 것이다." 이후 선덕여왕의 지혜로움을 말할 때 모란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사실이 아니다.
<꽃 목단 - 모란>
모란의 한자음은 목단이다. 여기서 단자는 붉은 단자이다. 이는 꽃중의 꽃이라고 하였는데, 누가 제일 먼저 말했는지 궁금하여 찾아보니, 바로 이두를 만든 설총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책 <화왕계>에서 모란을 꽃중의 꽃이라고 의인화하였다. 일본인들은 모란을 ‘보탄’이라고 부른다.<위키백과참조>
청나라의 강희안은 그의 저서 <<양화소록>>에서 ‘화목 9등품론’이라고 하여 꽃을 9품으로 나누고, 그 품성을 논할 때, 모란은 부귀를 취하여 2품에 두었다. 그래서 신부의 예복에는 반드시 모란을 수로 놓고, 선비들의 소박한 소망을 담은 책거리 그림에도 모란꽃이 그려졌다.
속담중에 미인을 형용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 걸으면 백합] 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이리 봐도 아름답고, 저리 봐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모란은 가지가 나누어져서 낮게 옆으로 퍼지므로 온화하고 청초한 미인에 비유된다. 작약은 가지가 갈래로 나누어지지않고 똑바로 자라기 때문에 서 있는 모습이 단정한 아름다운 미인이고, 백합은 전체적인 자태가 우아한 미인이다.
<그리스 신화속의 파에온으로 불리운 모란>
영국의 식물학자 헨리 엔드류스라는사람에 의하여 1804년 Paeonia 파에오니아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모란은 중국 황하 유역이 원산지지만, 나중에는 중국전역과 아시아를 넘어서 유럽까지 퍼진 꽃이 되었다.
1737년 식물학자 린네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의사인 파에온(Paeon)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고 한다. 파에온은 의학과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제자였는데 그를 질투한 스승의 노여움을 사서 위기에 처하자 제우스가 그를 Peony피오니(모란)로 변하게 만들어 구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여기서 피오니는 물론 모란일수도 있고, 작약일수도 있다. 물론 둘다 작약과에 들어가서 혼용해서 서양사회는 부른다. 동양에서는 한중일이 모두 모란이라고 부르지만, 한국만 목단이라고 부른다. 유럽에서는 모란이나 작약을 ‘성모의 장미’ 라고 부르기도 하고, 스페인이나 이태리에서는 ‘산속의 장미’라고 불렀다.
<풍수에서 말하는 모란>
모란에 대해서는 김두규 교수가 제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책을 중심으로 모란에 대한 글을 전개하련다. 풍수에서 "모란은 하늘과 땅의 정기로서 뭇 꽃의 으뜸이며, 그야말로 부귀의 꽃이다(牡丹乃天地之精, 爲群花之首, 也是富貴之花)" 하여 최고로 여긴다. 건강과 장수도 가져다준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한 그루 모란을 심을 수 없으면 한 폭의 모란화를 걸어두었다.
산수화의 거장 허련(1809~1892)의 별명이 '허모란'이었던 것도 모란을 잘 그려서이기도 하지만 모란 그림을 원하는 이들이 많아서였다. 재야의 거장 김지하 시인도 즐겨 모란을 그리는데, 그 작품들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왜 모란이 부귀를 가져다준다고 할까?
두 가지 차원에서이다. 첫째는 모란이 당나라 궁궐에서만 소중히 재배되었다가 이후 귀족·사찰·도관을 거쳐 부잣집으로 분양된다. 가격이 천문학적 숫자였다. 당시 모란 한 포기가 비단 25필 값이었는데, 10가구 중인(中人) 1년 세금과 맞먹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모란 그 자체가 드러내는 품격 때문이다.
모란이 꽃 중의 왕[花中之王]이 된 것은 모란의 향과 색 덕분으로 국색천향(國色天香)이라 하였다. 분홍색·자주색·엷은 붉은색·흰색·황색 등 색상도 다양하다(우리나라 모란은 대개 자주색이 많다). 색도 그렇지만 향에 대해 형용하기는 더 어렵다. 모란이 꽃을 피우면 그 향이 마당을 묵직하게 맴도는데, 무어라 표현하기가 힘들다.
당나라 유명 시인들도 모란 향을 형용하려 애쓴 흔적들이 보인다. '하늘이 낸 향[天香]' '진기한 향[異香]' '기이한 향[奇香]' '사향노루향[麝香]' '꽃다운 향[馨香]' 등으로 표현하였지만 언뜻 와닿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무명씨가 모란의 향을 "사람의 심장과 비장에 스며들게 하는 것(沁人心脾)"으로 표현하였다. 이 글귀에 형광펜을 몇 번씩 그었다.
풍수의 핵심 이론이 동기(同氣)감응론이다. 같은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길흉화복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동기감응은 감각을 매개로 한다. 이때 결정적인 것은 시각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워하고 그 속에 살려는 것도 그 아름다운 자연을 유비적(類比的)으로 체화하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에서이다.
시각적인 것 말고도 청각적인 것도 동기감응의 수단이 된다. 아름다운 음악이 대표적인 수단이다. 그런데 모란은 색과 더불어 향, 즉 후각적인 것이 사람의 심장과 비장에 스며들어 사람을 감동시킨다. 그러한 까닭에 모란이 부귀·건강·장수를 가져다주는 꽃이 되었다.
<모란 화계 - 다산 정약용>
모란이 꽃망울을 터뜨려 그 화려함을 자랑하다가 질 때까지 대략 스무 날쯤 걸린다. 남쪽에서부터 북상하면서 모란이 피기에 한 달도 넘게 그 꽃의 향과 색을 즐길 수 있다. 굳이 집마당에 모란을 심지 않아도 경복궁·운현궁·남산한옥마을·동관왕묘 그리고 명문 고택을 찾으면 쉽게 접할 수 있다. 모란의 명소들을 대충 알겠다고 자부했으나 백운동정원(전남 강진 성전면)의 모란 화계(花階)는 모르고 있었다. 다산 선생이 이에 대해 시를 지었다는 것도 몰랐다. 올 초 조선일보 출신 한 중견 언론인이 이곳을 알려주어 처음으로 그곳 모란을 보았다. 모란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예산 추사 김정희 고택 안마당에 가면 흐드러지게 피어서 자태를 뽐내는 모란을 볼 수 있다.
<이백의 청평조사 淸平趙詞>
모란꽃을 이야기하면서 시성 이백(李白)의 명시를 빼놓을 수 없다.
어느 화창한 봄날에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침향정에 나와 활짝 핀 모란꽃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난간에 기대앉은 양귀비를 보다가 어느 것이 사람이고 어느 것이 꽃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현종은 양귀비라는 마초에 취한 모양이다.) 이에 당장 한림봉공의 직분을 가진 이백을 불러오라고 하였다. 이백은 술집에서 이미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물론 그의 별명이 [주태백]이었으니 창졸간에 끌려온 이백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였다.
한 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이백은 거침없이 붓을 놀리니 세 편의 시가 경각에 이뤄졌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청평조사> 3수다. 그중에 세 번째이다.
꽃과 절세미녀가 서로를 보고 즐거워하니
바라보는 군왕의 입가에 절로 웃음이 일도다.
향기로운 봄바람은 온갖 근심을 날리누나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어 서니
<모란과 작약, 함박꽃>
많은 사람들이 모란과 작약을 구분을 잘 못한다.서양에서는 그냥 둘다 peony(피오니)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묶어서 그저 ‘함박꽃’이라고 부르는데 엄연히 함박꽃은 서로 다른 꽃이다. 물론 작약을 함박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란은 엄연히 나무로 들어간다. 그러나 작약은 풀이다. 딱딱하게 목질 부분이 있으면 모란이요, 목질부분이 없으면 작약으로 보면 된다. 모란이 화왕으로서 만인지상(萬人之上 임금)이면, 화상인 작약이 일인지하(一人之下 신하)다. 모란이 먼저 피고 작약이 그 뒤를 따라 피기 때문에 그렇다.
또 신부들의 부케로 유명한 것은 작약이고, 모란이 지고 난 후에 작약이 피어서 꽃피는 시기가 서로 다르다는 것도 특징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이다.
<시속에 핀 모란>
모란의 피기까지는 - 김영랑(본명 김윤식)의
시도 같이 소리내어 암송해보면 좋을 것 같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느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져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서정주 시인의 모란에 관련된 시도 참 좋다.
미당 서정주의 <인연설화조 因緣說話調> 라는 시인데,
시를 설화처럼 쓰기를 좋아하는 서정주 시인이다.
인 연 설 화 조 / 서 정 주
언제든가 나는 한 송이의 모란꽃으로 피어있었다.
한 예쁜 처녀가 옆에서 나와 마주 보고 살았다.
그 뒤 어느날
모란 꽃잎은 떨어져 누워
메말라서 재가 되었다가
곧 흙하고 한 세상이 되었다
그게 이내 처녀도 죽어서
그 언저리의 흙 속에 묻혔다.
그것이 또 억수의 비가 와서
모란꽃이 사위어 된 흙 위의
재들을 강물로 쓸고 내려가던 때,
땅속에 괴어있던 처녀의 피도 따라서
강으로 흘렀다.
그래,그 모란꽃 사윈 재가 강물에서
어느 물고기의 배로 들어가
그 혈육에 자리했을 때,
처녀의 피가 흘러가서 된 물살은
그 고기 가까이서 출렁이게 되고,
그 고기를- 그 좋아서 뛰던 고기를
어느 하늘가의 물새가 와 채어 먹은 뒤엔
처녀도 이내 햇빛을 따라 하늘로 날아 올라서
그 새의 날개 곁을 스쳐 다니는 구름이 되었다.
그러나 그 새는 그 뒤 또 어느날
사냥꾼이 쏜 화살에 맞아서,
구름이 아무리 하늘에 머물게 할래야
머물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기에
어쩔 수 없이 구름은 또 소나기 마음을 내어 소나기로 쏟아져서
그 죽은 샐 사간 집 뜰에 퍼부었다,
그랬더니,
그 집 두 양주가 그 새 고길 저녁상에서 먹어 소화하고
이어 한 영아를 낳아 양육하고 있기에,
뜰에 내린 소나기도
거기 묻힌 모란씨를 불리어 움트게 하고
그 꽃대를 타고 또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 이 마당에
현생의 모란꽃이 제일 좋게 핀 날
처녀와 모란꽃은 또 한번 마주보고 있다만,
나 벌써 처녀는 모란꽃 속에 있고
전날의 모란꽃이 내가 되어 보고 있는 것이다.
<서정주 시집 ‘안 끝나는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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