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로 달리는 세상, 자전거의 세계사
어려서는 ‘일본에서 수입한 자전거’를 탄 기억이 난다. 시골동네에서 자전거를 구입할 정도면 제법 사는 집이 아니면 안되는데, 아버지는 거금을 들여서 내게 자전거를 사주셨다. 그 자전거를 놓고서 사촌들과 자주 싸운 기억도 난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자전거를 타고 여기 저기 다니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내게 자전거는 ‘자가용’이었다.
그 뒤로 항시 집에는 자전거가 있었다. 세월이 흘러서, 지금도 우리 집에는 3대의 자전거가 있다. 내가 수시로 운동용으로 사용하는 자전거와 활동용으로 돌아다니는 자전거가 있고, 아이들이 사용하는 자전거가 있다. 요즘은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어서 좋다. 자전거는 공해를 일으킬 일도 없고, 그리고 하체건강을 도와주는 귀중한 도구이다. 시내를 자전거로 돌아다니면 여기 저기 구경할 것도 많다. 사계절 거리마다 골목마다 피어있는 꽃들만 보아도 즐겁다.
<자전거 이야기를 열며>
자전거는 여러 측면에서 도움이 되는 교통수단이다. 가벼워서 조금만 힘을 쓰면
들고 이동할 수 있는 데다 평지에서는 16~20km/h의 속도가 나온다. 휘발유가 필요 없어서 환경오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운동을 할 때,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고 싶을 때도 자전거가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이 정도로 유명한 자전거, 매년 자동차보다 무려 세 배나 많은 1억 4000만 대가 생산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공해가 심해 정책적으로 자전거 이용을 장려하는 중국, 인력거 '릭샤'를 택시보다 더 많이 사용하는 동남아시아, 일반 도로 옆에 자전거 전용 도로를 따로 설치해 안심하고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한 네덜란드. 같은 자전거를 사용하지만 상황과 문화에 따라서 자전거의 모습이 제각기 다르다. 아이들이 국가 간의 문화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오늘 자전거의 세계사에도 쓸거리들이 참으로 많다. 시종여일, 읽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란다.
<자전거의 역사를 살펴보기>
자전거는 영어로 bicycle인데 bi가 둘이라는 뜻이고, cycle이 바퀴이다. 바퀴 두 개로 구성되어 사람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바퀴 두 개를 연결하는 구조 위에 안장을 두어 사람이 올라 탈 수 있고 발로 발판을 밟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자전차라는 낱말도 쓰이지만 대한민국 국어사전은 자전거의 잘못이라고 표기한다. 중국에서는 자행차(自行車) 또는 자유차(自由車)라고 부른다. 대만에서는 각답차(脚踏車)라고 부르며 거기는 전기자전거가 발달하였다.
인류는 오랜 옛날부터 이동의 편리를 위해 바퀴를 고안하게 됐다. 바퀴는 기원전 35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동물을 이용한 수레와 전차에 활용되면서 수천 년간 인간의 생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초의 자전거는 르네상스 시대 미술가, 과학자, 기술자, 사상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이탈리아)는 하늘을 나는 기계와 인간의 발로 움직이는 기계를 동시에 설계했다고 알려지고 있다.(코덱스 아틀란티쿠스>
하지만 정작 이러한 기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3세기가 지난 뒤였다. 바퀴와 인간의 동력을 결합해 보다 빨리, 보다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인간의 꿈을 실현시켜준 것이 바로 자전거다.
두 개의 바퀴를 연결해 움직이는 장치는 기원전부터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자전거와 같이 보행을 돕는 탈것이 나타난 것은 18세기 말이다.
자전거의 시조는 1790년 프랑스의 귀족 콩트 드 시브락(Cont de Sivrac) 백작이 만든 ‘셀레리페르(Celerifere)’다. ‘빨리 달릴 수 있는 기계’란 뜻의 셀레리페르는 두 개의 나무 바퀴를 나무로 연결하고 안장을 얹은 형태였다. 하지만 이 기계는 페달이 달려 있지 않아 발로 땅을 구르면서 앞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또한 핸들이 없어 방향을 바꾸려면 자전거를 일단 세운 후 앞바퀴를 들어 돌려야 했다.
<최고 속도 시속 15km, 방향 조절 가능한 자전거 등장>
1817년 독일의 카를 폰 드라이스는 앞바퀴를 움직일 수 있는 핸들이 달린 자전거 ‘드라이지네(Draisine)’를 선보였다. 현재의 자전거와는 거리가 멀었고 최고 속도도 시속 15㎞였다. 드라이지네는 영국으로 건너가 개량돼 호비호스, 댄디호스라는 이름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 자전거 역시 발로 땅을 차서 움직이는 것으로 실용성이 없어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못했다.
<대장장이가 페달 달아 대중에게 판매 시작>
오늘처럼 페달로 바퀴를 돌리는 자전거는 1861년 파리에서 대장간 일을 하면서 마차도 만들었던 피에르 미쇼와 그의 아들 에르네스트 미쇼가 만들었다. 앞바퀴에 페달을 단 미쇼의 나무 자전거 ‘벨로시페드(Velociped)’는 현대 자전거의 효시로 달리기 쉬운 탈것으로 크게 환영받았다. 1861년 2대, 1862년 142대에 이어 1865년에는 400대가 팔려 대량 생산한 첫 번째 자전거로 기록되기도 했다. 영국으로 건너간 벨로시페드는 나무 바퀴 둘레에 철판이 씌워졌지만 노면의 진동과 충격이 운전자에게 그대로 전달돼 ‘본 셰이커(Bone shaker)’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엄복동 자전거
<스피드 빨라진 ‘빅휠’ 등장>
1868년 마르세유의 루소가 자전거 바퀴살을 발명했고 사람들은 점점 스피드를 추구하게 됐다. 1871년 영국의 제임스 스탈리는 앞바퀴가 유난히 크고 뒷바퀴는 작은 ‘빅휠(Big wheel)’ 또는 ‘오디너리(Ordinary)’로 불리는 자전거를 발명했다. 이 자전거는 페달이 앞바퀴에 직접 붙어 있어 바퀴가 클수록 더 멀리 나갈 수 있고 스피드도 달라지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페달이 한번 왕복할 동안 약 3.556m를 진행할 수 있었다.
<체인 장착 ‘안전 자전거’>
1874년 영국의 해리 로손은 같은 사이즈의 크지 않은 바퀴를 달고 앞바퀴 페달 대신 두 바퀴 중간에 있는 페달을 밟아 체인으로 뒷바퀴를 굴리는, 요즘의 자전거와 비슷한 ‘세이프티(Safety)’를 처음 내놓았다. 안장에 오르내리기도 쉽고, 달리기도 수월하며 위험하지 않고 안전한 자전거라는 뜻이다. 1885년 오디너리를 만든 제임스 스탈리의 조카인 존 스탈리는 세이프티 프레임을 다이아몬드형에 가깝게 하는 등 구조와 메커니즘에서 지금 자전거의 기본 요소를 모두 갖춘 ‘방랑자’라고 이름 붙여진 ‘로버(Rover)’를 선보였다. 그 후로 지금까지 변속 기어, 경량 구조, 브레이크 장치, 공기압 타이어 등이 계속 발전돼 왔지만 자전거의 기본적 모양은 스탈리가 만든 자전거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여성들 파리서 경주 … 19세기 여권운동 시초>
로버 자전거는 1888년 영국의 존 던롭이 발명한 공기 타이어로 한층 더 편안하고 빨라지면서 개인 이동수단으로 각광을 받았다. 1880년대와 1890년대는 자전거의 황금시기였다. 여성들도 앞다퉈 자전거를 탔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데서 얻은 자유는 영국에서 여권운동이 크게 번지게 한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초의 여성 스포츠, 여성 최초의 스포츠 경기는 사이클 경기로 19세기 파리에서 개최됐다. 30여 명의 여성이 참가했으며 독립적인 이동 수단으로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줬다. 결국 이러한 정신은 여성해방, 인권운동의 시초가 됐다.
<자건거의 놀라운 발전>
소재와 기술 또한 과학의 발달과 함께 크게 발전했다. 알루미늄과 티타늄 등 새로운 경합금 소재를 이용하면서 프레임과 변속기, 림과 타이어 기술 등에서 신기술이 꾸준히 개발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 이전에 이미 알루미늄합금이 자전거에 쓰이기 시작했고 티타늄과 마그네슘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플라스틱을 활용하기도 했다. 80년대 들어서는 항공우주와 모터스포츠에서 사용하는 탄소섬유(carbon fiber)로 만든 프레임이 등장했다.
<한국의 자전거사>
한국에 자전거가 도입된 시기와 계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남아 있는 자료가 없다. 일설에 의하면 개화기 이후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며 1896년 고희성이 처음 탔다는 주장도 있고 1896년 서재필 박사가 독립문 신축 현장 때 처음 탔다는 설도 있다. 또한 미국에서 돌아온 윤치호 선생이 타고 다녔다는 설도 있다.
이때 한국 사람들은 자전거를 보고 ‘괴물차’ ‘나는 새’라는 별명이 붙였다고 한다. 20년대에는 엄복동씨가 국내 각종 대회에서 일본 선수들을 물리치고 많은 우승을 차지해 한민족의 의기를 북돋우는 주역이 됐다.
해방 후 4월 대한자전거경기연맹이 발족됐으며 47년에는 세계사이클연맹(UCI)에 가입해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최초로 한국이 세계대회에 참가한 것은 1948년 런던 올림픽이다. 한국은 아직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
나라를 잃은 민족의 울분을 표출했던 일제 강점기가 사이클 경기의 최고 인기 절정기였다면 해방과 정부 수립 이후에는 대통령의 스케줄에 맞춰 도로경기가 출발하고 행차 중에 사이클 행렬을 목격한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경기 행렬에 대해 박수를 보내던 시절도 있다. 특히 육영수 영부인의 저격사건으로 전국에 계엄령이 내려져 헌병들이 한강대교를 막고 모든 차량을 통제하던 상황에서도 사이클 경기 행렬에는 통제는커녕 바리케이드를 치우며 원활한 진행을 지원할 정도로 70년대까지 자전거는 어떤 종목보다도 인기였다.
21세기 인류 문명의 화두인 에너지와 환경에 가장 적합한 대안으로 전 세계적으로 자전거가 급부상하고 있다. 자전거는 오염물질이나 탄소가 거의 배출되지 않는 친환경 무탄소 교통수단이다. 또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동수단 가운데 가장 에너지 효율이 높다.
승용차와 비교하면 2% 미만의 에너지만을 가지고 같은 거리를 주행할 수 있다. 보행자가 걸을 때 소비되는 에너지의 3분의 1 수준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자전거는 대중교통과 비교해도 유지비가 10% 수준에 불과하다. 자전거는 올림픽에서 18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어 육상과 수영 다음으로 메달이 많은 종목이다.<자전거 이야기 출처 - 중앙데일리>
<자전거 전문가의 책>
자전거에 대한 책을 찾아보니 이 책은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권유하고 싶다.
<<재미있는 자전거 이야기>> 작가 장종수가 쓴 책이다.
'재미있는 자전거 이야기'는 지난 2백년 동안 자전거의 역사속에 있었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인 장종수 님이 자전거 잡지 월간 <자전거 생활>에 소개했던 자전거 이야기를 모아서 재구성한 책이다.
1부에서는 자전거라기 보다 목마에 가까운 드라이지네가 나타난 이후 현대의 자전거까지 자전거의 발명과 개발에 관련된 이야기와 자전거가 여성인권 신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외국의 자전거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자전거 영웅 엄복동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2부에서는 자전거의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전거 대회 이야기가 나온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사이클 대회가 인기가 없지만 해외에서는 굉장한 인기 종목이기에 많은 대회가 있고, 국내에서도 자전거 동호인이 늘어감에 따라 점점 해외에서 개최되는 대회의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 '재미있는 자전거 이야기'에서는 해외의 대회에서도 국내외에서 가장 유명한 대회를 소개하고 있으며, 대회의 역사와 유명한 일화 등을 소개하고 있다.
3부에서는 어느 스포츠에서건 반드시 필요한 싸이클의 영웅들 이야기가 나온다. 책에 소개되는 영웅들은 60년대부터 90년대의 싸이클 영웅들로 자전거, 특히 로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들어보았을 유명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랜스 암스트롱, 지노 바탈리, 에디 메르크스, 레몽 풀리도, 파우스토 코피, 자크 앙크틸, 베르나르 이노, 미겔 인두라인 등 유명한 싸이클 선수들의 업적과 그들의 삶의 굴곡 등을 이야기한다.
책의 출간 시점이 2011년이다 보니 랜스 암스트롱에 대한 약물 파동으로 인한 투르 드 프랑스 기록무효 같은 이야기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과거 선수들이 가혹한 대회를 견디기 위해 약물 복용은 공공연한 비밀 같은 것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4부에서는 다양한 자전거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로, 여러종류의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두사람이 타는 탠덤 바이시클, 가장 빠른 속도를 낼수 있지만 그렇기에 UCI에서 배척당한 리컴번트, 미니벨로, BMX, 자전거의 새로운 분야로 등장하고 자전거 부품과 기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된 산악자전거(MTB), 자전거의 원형에 가까운 고정기어 픽시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재미있는 자전거 이야기'는 자전거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어난 일들을 다양한 사진과 함께 에피소드를 곁들여 이야기 하고 있어, 자전거에 대한 여러가지 지식을 넓히고 싶은 분들이라면 한번쯤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 자전거가 나오는 영화>
<<자전거 도둑>> - 명작중의 명작 영화
전후 이탈리아의 궁핍한 시대를 살아가는 도시 빈민들의 분노와 절망, 암울한 미래를 현실감 있게 묘사한 걸작 중의 걸작이다. 세계 유수 영화 사이트, 저명한 감독들이 주저 없이 ‘위대한 영화’ 베스트 중의 하나로 반드시 꼽는 영화 ‘자전거 도둑’은 가족의 생계가 달린 자전거를 잃어버린 한 가장이 자전거를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좌절한 나머지 오히려 남의 자전거를 훔치게 되는 황당하면서도 씁쓸한 이야기를 담은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이다.
자전거 도둑을 쫓는 아버지와 아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탈리아 로마 시내는 실업자로 넘쳐난다. 주인공 안토니오(람베르토 마조라니)는 2년여의 실직 상태 끝에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그는 포스터 붙이는 일을 얻게 되지만 근무 조건에 따라 반드시 자전거가 있어야 하는 상황. 안토니오는 아내 마리아(리아넬라 카렐)의 도움으로 침대보 6장을 전당포에 맡기고 이미 저당 잡혀 있던 자전거를 찾아온다. 희망에 부푼 안토니오는 의욕적으로 일터로 향하지만 출근 첫 날 전 재산과 다름없는 자전거를 도둑맞고 만다. 충격과 실의에 빠진 안토니오는 어린 아들 브루노(엔조 스타이오라)와 함께 온 도시를 헤매며 도둑의 뒤를 쫓지만 자전거의 행방은 묘연하다. 하늘은 절망적인 빗줄기를 퍼 부으며 두 부자의 처진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들 뿐이다. 우여곡절 끝에 범인을 잡지만 간질 증세를 보이며 쓰러지는 범인과 그 이웃들의 거친 텃세로 두 부자는 쫓기듯 거리로 내몰린다. 더 이상 희망의 끈을 잡지 못하게 된 안토니오는 순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길가에 세워둔 남의 자전거를 훔쳐 달아나지만 이 어설픈 도둑은 얼마가지 못해 그를 쫓는 시민들에게 둘러싸인다. 아버지 곁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 브루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주인의 선처로 안토니오는 무사히 풀려난다. 어느덧 로마거리에는 해가 지고, 손을 꼭 잡은 아버지와 아들은 무심한 인파 속으로 묻혀들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낡고 초라함이 불러오는 향수
‘자전거 도둑’은 할리우드 영화가 보여주는 현란하고 화려한 기교, 복잡한 스토리 구조와 반전, 억지로 짜 맞추려는 의도된 감동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먼 영화다. 네오리얼리즘을 상징하는 영화답게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우리 주변의 소시민들이 겪는 사회적 문제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 용어 해설 : 네오리얼리즘 (Neorealism)
“고달픈 현실을 아무리 기교 넘치는 화면으로 표현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했던 비토리오 데 시카의 말은 네오리얼리즘이 지향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한다. 사실 ‘자전거 도둑’은 유럽에서는 공산주의 계열의 영화로 평가되는 영화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보수성향이 강한 미국에서 이 영화를 제22회 아카데미영화제(1950년) 최우수 외국어영화로 선정했다는 사실이다. 같은 영화라도 보는 시각에 따라 그 평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실감케 하는 케이스다.
어떻게 보면 매정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감독의 시선은 담담하기 이를 데 없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실업자들의 절규와 분노, 없이 사는 이의 등을 쳐 먹고사는 도둑 일당과 그를 감싸려는 이웃들의 악다구니, 전당포 앞에 늘어선 도시 빈민들의 무기력한 얼굴 등 도시는 온통 어둡고 암울한 모습뿐이지만 카메라는 일말의 동정이나 조롱도 없이 그저 담담하고 건조한 눈길로 세상을 바라본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일반인을 캐스팅하여 출연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애초 제작자는 그에게 남자 주인공 역으로 당대의 미남 배우 게리 그란트를 기용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이야기의 두 축을 이루는 아버지 안토니오 역에 일반 철공소 노동자 람베르토 마조라니(사진 왼쪽)를, 아들 브루노 역은 로마 시내에서 신문팔이를 하던 아홉 살 소년 엔조 스타이오라(사진 오른쪽)를 캐스팅하여 영화가 지닌 사실성에 무게를 더했다. 귀여우면서도 불쌍한 꼬마 브루노를 연기한 엔조 스타이오라는 1939년 생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수학교사로 활동했다고 한다.
‘자전거 도둑’은 따스하면서도 그리운 정이 묻어나는 영화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통이라고 여기는 사람, 관계와 관계 속에서 실존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감상해 볼 것을 권한다.
<자전거의 세계사를 마치면서 자존과 생존을 생각하다>
사람에게는 2개의 존(zone)이 있다. 하나는 자존이고 다른 나머지 하나는 생존이다. 자존은 사람들만이 가진 고유의 사람다움을 나타내준다.
이 자존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요소이며,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자신을 지켜나가게 만드는 것이다.그래서 누구나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이 상황을 잘 극복하고 이겨나가게 하는 힘이 바로 자존이다. 그러나 이 자존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생존과 같이 간다.
누군가 인생은 [서바이벌 게임 = 생존 게임]이라고 말을 한다. 물론 루소는 인생을
생존을 위하여, 그리고 생활을 위하여 두번 태어난다고 하였지만, 누구에게는 삶은 생존의 문제에 더 가깝다. 그래서 삶이 힘든 것이다. 삶이 쉽고 편안한 사람들도 물론 세상에 존재한다. 하지만 마음의 평화는 그리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인생은 이렇게 자존과 생존이라는 두개의 존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시소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물론 오르막도 아래서 보면 그렇지만, 위에서 보면 내리막이다.
그래서 소설가 김 훈은 [자전거여행]에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결국 같은 길이라고 표현한지도 모른다.
자전거의 세계사를 준비하면서, 자전거는 멈추면 넘어지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자꾸만 페달을 밟아야 한다. 밞으면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인생은 바로 이 자전거와 같다고 할 수 이다. 오늘은 휴일이어서 모처럼 자전거를 타고 약 20킬로미터를 달렸다. 오르막에서는 무척 힘들었지만 내리막에서는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은 황홀하기까지 하였다.
우리는 자존과 생존을 지키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인생의 오르막에 있다면 내리막이 있다. 밥벌이의 고단함도 있다.
자전거를 사랑한 아인슈타인의 명언이 있다.
“세상은 살아가기에 위험한 곳이다. 사악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악에 대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다.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계속해서 움직여야 한다. 인생의 비극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자기 자신의 가슴과 영혼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이 명언덕분에 자전거에 대한 글도 쓸 수 있었다.
김훈 작가의 [자전거여행]에 대한 책 덕분에 이 글도 쓸 수 있었다. 자전거를 사랑한 ‘자전거 예찬론자들’ 덕분에 자전거 이야기로 풍성해졌다. 읽어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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