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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칼럼과 에세이

답답함에 대하여 - 답답하다, 답하라 !!

by 코리안랍비 2023.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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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함에 대하여


인간은 의미를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빵으로만 살 수 없고 보람과 의미를 느껴야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어령)

의미란 무엇입니까?
아마도 우리는 가치 있는 것,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추구할 때
우리의 행위나 삶이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 반대로, ‘무의미한’ 삶이란 크든 작든 그러한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발견했다 해도 그것을 추구하지 못하는 삶일 것입니다.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모르는 삶,
나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 것을 아직 깨닫거나 발견하지 못한 삶, 그래서 그냥 살기 위해 사는 맹목적인 삶이 무의미한 삶일 것입니다. 그게 난 답답합니다.

가치란 추구할만한 대상, 욕망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목적을 뜻합니다. 가치는 곧 목적이 됩니다.
어떤 행위가 의미 있다는 말은 그것이 추구할만한 가치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지금 무엇을 추구하는지,
무슨 목적으로 행동하고 살고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일 것이며,
목적과 방향을 상실한 삶,
그래서 의욕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삶일 것입니다.

인간은 삶 속에서 끊임없이 어떤 의미, 가치, 목적,
그리고 이유 같은 것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얻기 위해 행동합니다.하나가 이루어지면 곧 다른 하나가 목적과 가치로 등장해서 삶의 의미를 제공하고 삶의 동력이 됩니다. 삶은 크고 작은 의미의 연속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사회가 인정하고 요구하는 의미의 틀 속에서
습관적이고 관습적인 의미를 추구하면서 삽니다.
사회가 주로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를 그어주고,
거기에 따라 ‘의미 있는’ 행동을 하며 사는 것이지요.


우리는 가끔 왜 내가 반드시 이렇게 행동해야 하며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문해보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대답이 곤혹스러워지며 당혹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라고 밖에는 대답이 안 나오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사회에서 배운 대로,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 기준과 의미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가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서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추구하면서 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튀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지요.
멋진 인생이지만 모험적 인생이며 흔히 고생을 자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용기 있게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다수 범인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의미의 기준과 체계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며칠 전 한 신문에서,
우리 한국 사회를 향해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일에 둘째라면 서러울 박노자 씨의 글,

“대한민국에서 인간답게 사는 길?”이란 칼럼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제가 가끔 가다가 국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출세를 위해 공부 아닌 공부에 매달리는 것부터 더 이상 참기 힘들지만,
제 주위에서 그 어떤 대안적인 삶의 방식도 볼 수 없어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아 왜 사는지 모르겠다”와 같은 질문을 받곤 합니다.

사람마다 질문하는 방식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략적인 골자는 거의 같습니다.

‘신분’과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싫은데, 가족 등 주변의 압력이 있어서
‘모두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비참하게 느껴진다,
대안이 무엇이냐, 이것입니다.

과연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육과 대학 교육이
이렇게 ‘공부 아닌 공부’를 하고 있는지는 더 생각해보아야 하겠지만,
거의 모든 학생들이 출세와 돈과 신분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며, 거기에는 학생들 자신의 의사보다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고 승리하기를 바라고
강요하는 부모들의 집착, 그리고 선생님들의 채찍질이 더 큰 몫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대안이 없어 보여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인간답게, 의미 있게 살고 싶은데,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지요.


한국 학생들, 젊은이들의 최대 고민이 아닐까 생각되며,
그것을 탈피하려면 여간한 용기가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나만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타인의 행위도 의미를 묻고 이해하며 살고 있으며,
어떤 뉴스를 접해도 우리는 사회적 맥락과 상식 속에서 해석하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이러한 일상적인 의미 이해의 틀과 기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도저히 나의 상식이나 경험, 사회적 통념이나 관습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무의미한 일, 무가치하고, 맹목적으로 보이는 일들이 일어나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작동해오던 의미 체계가
도전을 받고 무력해집니다.
이른바 ‘의미의 위기’라는 것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의미의 위기가 심각해지면, 곧 우리의 삶 자체를 위협하는 삶의 위기, 인생의 위기가 됩니다.

가령 갑자기 치유하기 어려운 병에 걸린다든지,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는 병에 걸리면,
이 고통 앞에서 다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을 우리는 느낍니다.
고통의 극복 외에는 다른 어떤 가치나 목적도 필요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극심한 고통은 모든 의미를 무력화시킵니다.
제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평상시에 보람, 의미, 가치가 있다고 여기던 일이나 숭고한 이념이나 사상이라도, 당장은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답답한 대한민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들도 답답함을 두고 살아갑니다.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지 못해 생기는 답답함
현실의 문제에만 집착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답답함
오늘날 물질주의의 팽배로 인한 정신적 피폐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답답함을 벗어나려면, 탈물질주의자가 되어가야 합니다.
물질주의에 집착하면 결국 물질주의의 노예가 되어서
도리어 정신적인 고양이나 덕성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신이 물질보다 앞서야 합니다.
물론 물질생활을 우리가 잘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대안없는 물질주의는 결국 삶의 의미와 목적을
망각하게 합니다. 그것이 더 무서운 일입니다.
그저 잘살고 성공하는 것 - 그것 위에 열심히 뛰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것은 더욱더 많은 답답함을 만듭니다.


끝모를 답답함이 내 속에 있습니다.
더욱 많은 지식을 얻고, 더 넓은 사고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사회현실을 이해해도
내 속에 답답함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 답답함들을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사는 것이 인생인가 싶습니다.


하루 하루를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가는 것
어딘가에 갇혀 있지만 자유를 주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것 결국 나의 나됨이 우선입니다.

하도 답답해서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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