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정한 여행자의 등급
하루키가 여행을 기록하는 방식
이 글에 T-TIMES가 많은 힌트와 도움을 주었다.
니체나 하루키의 책들을 읽어본 사람들은
이들의 공통점을 바로 찾아낼 수 있다.
바로 [여행기록자]라는 것이다.
니체는 여행산업계에서는 거의 사부격인 인물이다.
그는 반기독교적인 글과 저작으로 그 시대에 무쇠 도끼를 들고 나왔지만
한편으로 여행에 대해서는 아주 관조적이면서 철학적으로 접근한 사람이다.
프리드리히 나체는 심지어 여행자의 등급을 분류하기도 하였다.
1. 관광하는 여행자 - 이는 눈으로 명소들을 훓어볼 뿐 그 이상의 깊이가 없다.
2. 관찰하는 여행자 - 풍부한 식견과 감수성을 통해 주체적으로 보고 듣는다.
3. 체험하는 여행자 - 관찰한 결과로부터 새로운 경험을 한다.
4. 체득하는 여행자 - 여행지의 경험을 온전하게 자기 것으로 만든다.
5. 생활하는 여행자 - 여행지에서 체득한 것을 생활에 적용한다.
그러면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여행자가 어떻게 여행을 소화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질과 가치가 결정된다."
결국 여행자의 열정이 여행자의 결정이 되는 것이다.
니체는 역시 니체다.
니체의 말처럼 위대한 작가와 예술가들에겐 여행을 소화하기 위한
공통의 비법들이 있었다. 그것을 공개한다.
그것은 바로 흘러가는 생각들을 붙잡아 두는 것, 기록이다.
기억과 기록은 역사의 전유물이다. 역사적인 사람이 되려면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면에서 여행기를 기록한 사람들은 역사적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직 살아있는 역사적 인물이 있다. 바로 하루키이다.
하루키는 여행할 때 작은 수첩 하나만 들고 꼭 기억해야 할 단어 몇 개만 적었다.
여행기록이 그리 거창할 필요가 없다. 스케치 한 장이나, 단어 몇 개 때로는 점(point) 하나면 충분하다. 물론 지도(map)는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루키를 말하기 전에, 영국의 미술평론가이며 사상가인 존 러스킨이 있다.
그가 여행을 기록하는 방식은 스케치였다. 이는 내가 배우고 싶은 여행기록법이다.
"두명이 산책을 가는데 그 중 한명만 스케치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두 명이 풍경을 느끼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스케치를 하지 않은 한 명은 길과 도로를 보고 나무가 푸르다고 느낄 뿐이다."
"그러나 하지만 스케치를 하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파고드는데 익숙해진다.
사소한 어여쁨도 놓치지 않는다. 그는 빽빽한 나뭇잎 위로 반짝이는 햇살과 안쪽의 조용한 나뭇잎들이 만들어내는 어둠을 대비하여 관찰할 것이다."
<존 러스킨의 [존 러스킨 작품집 1903>
그 당시에는 사진기가 귀해서 사진을 찍지 못하여서 스케치로 대신할 수 있었지만 이 스케치로 기록을 하여서 유명해진 나의 대학 선배가 있었다. 그는 유럽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로 그림을 그려서 나중에 출판까지 하였다. 그는 삽화가인 [구스타프 도레]의 그림들을 보면서, 존 러스킨의 작품집을 보면서, 스케치를 6개월 배우고, 유럽으로 가서 그렸다고 한다. 그리 잘 그린 것이 아니라고 평가받지만 내가 보기엔 진심과 애정이 가득차 있는 스케치들이어서 대단하다며 엄지 척을 해 주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여행이 나를 키웠다" 라고 말할 정도로 여행 예찬론자이다.
그의 작품 <상실의 시대>는 리스에서 완성했다. <댄스 댄스 댄스>는 이탈리아에서 완성했다. 그리고 여행수필도 수십 편을 썼다.
하루키의 여행기록 비결은 [무조건 짧고 단순하게] 이다.
작은 수첩 하나만 들고 다니면서 주소, 이름, 동선 등 꼭 기억해야 하는 정보만 몇개 단어로 정리한다. 사진 촬영도 하지 않고, [글]도 쓰지 않는다.
그는 소위 칼 맑스 기록법을 따랐다고 한다. 칼 맑스도 노트 한권만 들고 다니면서 자신의 철학서와 사상서를 썼던 인물이다. 겨우 3페이지의 메모로, 역작 [자본론]을 썼다고 한다.
하루키는 터키와 이런 국경 마을에서 형형색색 보자기를 파는 여성을 보았다면 그의 생김새나 보자기의 형태를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그저 [보자기 아줌마] 라고 한마디만 적을 뿐이다.
그가 쓴 작품중에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1999> 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는 나 자신이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
내 경험으로 보건대 그렇게 하는 쪽이 나중에 글을 쓸 때 훨씬 도움이 된다.
사진을 일일이 보지 않으면 모습이나 형태가 생각나지 않을 경우
살아 있는 글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작가는 여행지에서 돌아오고 나서부터가 힘이 든다.
사진은 현상을 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작가는 그때부터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서 메모한 단어에 의지해서
머릿소에 여라가지 현장을 재현하는 것이다."
하루키는 역시 하루키다.
여행기록이 그리 거창할 필요가 없다.
노트를 빡빡하게 채울 수도 있지만,
때로는 단어 몇 개,
사람들의 몇마디,
스케치 한 두장으로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욕심이고 지나침이다.
여행을 기록하는 것은 기억의 물꼬를 틔어주는 단서( cues)를 기록하는 것,
여행을 다녀와서 부터가 시작이니까, 니체도 생활하는 여행자를 최고로 치지 않았을까?
이제는 관광이 아닌 여행을 가자.
생활하는 여행자가 되어서 내 여행을 기록하는 여행지도, 여행기를 남겨보자.
니체, 러스킨, 하루키가 그랫듯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역사와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양사, 분서갱유와 권력무상의 인문학 - 진시황의 사람 이사(李斯), 그의 영화와 추락 (1) | 2022.10.08 |
---|---|
요르단 페트라와 와디럼 광야투어, 겸손하게 걷고, 생각하고, 만나라. (0) | 2022.09.28 |
기로망양 岐路亡羊 - 갈림길이 많아 찾는 양을 잃었다. (0) | 2022.09.22 |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여행이다 !! (1) | 2022.09.22 |
수선화, 외로움이 외로움에게 (1) | 2022.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