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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이야기

노길묻6,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공감하는가, 오에 겐자브로

by 코리안랍비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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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에서 길을 묻다 1



오에 겐자부로
장애아들을 작곡가로 키운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그의 수상작 [개인적 체험]에 대한 단상

오늘은 일본 사람이지만 정말 존경스러운 세계적 문학가 오에 겐자부로를 만난다.
이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느 한국교수가 쓴 [노벨상 칼럼]이었다.
그 칼럼에서 한국에서 노벨상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을 했고,
그러면서 오에 겐자부로의 일생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강변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의 외딴섬 시코쿠에서 태어났다. 그는 7형제의 3남으로 태어났으며 할머니에게 예술을 배웠다. 그의 할머니는 1944년 사망하고, 그의 아버지도 태평양전쟁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나이 9살이었다.

대신 그의 어머니가 오에 겐자부로를 가르치면서 [탐험이나 모험]에 관련된 책들을 사 주었다. 나중에 그는 어머니에게 무덤까지 그 책들을 가져가야겠다고 말했다.

어린 겐자부로는 몸이 아주 유약하였으며, 그래서 운동보다는 할머니나 어머니가 들려주는 전설이야기등을 듣기를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는 소년이었다.

어린 겐자부로는 숲에 자기 나무 한 그루를 만들어서, 그 나무위에 작은 집을 짓고 곧잘 거기서 책을 읽곤 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자기독서운동은 지하철이든 어디든 책을 붙잡는 습관으로 이어진다.

오에 겐자부로는18세가 되어 동경으로 거쳐를 옮기고 열심히 공부하여 이듬해에 동경대학교 불문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의 스승은 가주오 와타나베로 프랑수아 바룰레에 대한 전문가였다. 당시 불문과하면 지성의 요람이었다. 일본의 경우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유학을 한 지성들이 많았고, 인문학부는 최고의 지성집단이었다. 겐자부로는 고교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여, 동경대 불문과 학생으로서 단편 소설 [사육]으로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후 겐자부로에게 일본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극찬을 받는다. "가장 촉망되는 신인" 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오에 겐자부로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유럽의 실존주의 작가인 [사르트르]와 [카뮈] 였고, 미국의 현대작품에도 영향을 받았다.

1960년 27살에 겐자부로는 친구의 여동생인 이케우치 유카라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였다. 두 예술가의 만남은 아름답고 행복했다. 그러나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이들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아들 하카리가 장애아로 태어났다. 1963년 지적 장애를 안은 오에 히카리의 탄생은 전후사회에서 희망이 없는 청년과 그 사회에 맞선 절망적 반항과 저저를 독자적으로 그려 온 작가에세 정신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1964년 아들의 탄생을 기점으로 쓴 자전적 소설 <개인적 체험>으로 제 11회 신초샤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지적 장애를 안고 태어난 자식의 죽음을 바라는 아버지 버드(BIRD)가 온갖 정신편력을 겪은 뒤에 상상력에 의해 현실로 돌아오기가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원래 사르트르의 영향으로 그 의식이 깊어진 상상력이라는 개념은 이후 오에 겐자부로에게 상당히 큰 주제나 수법중 하나가 되었다.

자신의 아들 덕분에 그는 나중 노벨상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잠시 아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히카리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의 뇌 일부는 크게 자라 머리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머리가 두개가 몸이 하나인 것처럼 보였다. 병명은 뇌탈장이었다. 의사들은 뇌수술을 해야 하지만 곧 죽게 될 것이고, 수술을 성공하더라도 인간으로서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오에 겐자부로의 어머니와 가족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아기를 포기하라고 할 정도였다.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아간다면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었기에, 이에 오에 겐자부로는 아버지로서 엄청난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었고, 그 때 그는 르포 작가로서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을 취재하고 있었다. 그는 히로시마를 수차례 방문하여 르포르타주(히로시마 노트)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겐자부로는 장애를 안은 아이를 중심으로 한 [개인적 체험]과 원폭피해로 인한 [인류 고유의 비극]을 대응시켜 자신의 주제로서 심화시켰다. 그는 곧 핵무기 감축 운동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런 그는 아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수술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결국 아들을 수술한다. 그의 생명에 대한 의지는 곧 어떤 생명이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단하게 된다. 마침내 히카리는 태어난지 10주가 되었을 때 머리에 난 큰 혹을 잘라는 수술을 하였다. 그 잘린 부분에 구멍이 나고, 그 구멍을 플라스틱으로 덮었다.

히카리라는 이름은 일본어로, '빛'이라는 뜻이다. 겐자부로는 아들의 수술후에 겪을 고통을 준비하며,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수술후 아들은 발달장애, 정신지체, 간질, 시각장애 등이 나타났다. 겐자부로는 자식을 보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아버지보다 더 강하였다.

소리에 반응한 히카리

1969년 히카리가 여섯살 때, 겐자부로는 놀라운 발견을 한다.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갔다가 숲길을 산책하던중 자신이 새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은 히카리가, "이것은 흰눈썹뜸부기 입니다." 라고 말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그 말에 처음에 환청이라고 여겼지만, 다시 새소리를 내자, "이것은 흰눈썹뜸부기입니다." 라고 하는 히카리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겐자부로는 집으로 돌아와 새소리 테이프를 주며 시험을 했고, 무려 히카리가 70종의 새소리와 종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겐자부로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말을 걸고, 음악과 새소시를 들려 주었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었다. 어린 히카리는 비록 남들보다 느렸지만 말도 조금씩 하게 되었다.

겐자부로는 그저 히카리가 살아만 있어도 감사하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들속에서 빛을 발견한 것이다. 아들이 8살이 되었을 해에 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교에 입학시키고, 음악에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보이는 히카리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타무라 쿠미코라는 여자 선생님이 그를 지도하였다. 그 여자 선생님은 히카리에게 피아노 연주법부터 시작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을 오선지에 옮겨 그리는 법도 가르쳤다.

히카리, 작곡가로 데뷔하다.
13살때, 1976년 그는 피아노 없이 머릿속으로 소곡들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동생을 위한 [생일 왈츠]도 작곡하였다.
겐자부로는 히카리가 작곡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그 아들의 작곡한 곡들인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오에 히카리의 곡] 이라는 악보집까지 출판한다. 사람들은 그의 음악이 듣는 사람의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평하였다.

이후 4개월후에 [오에 히카리의 음악]이 발매되고, 오에 겐자부로는 그 아들을 위한 음악발표회를 하였다. 순식간에 최고의 클라식 음반으로 올라서 1등 판매상을 받기도 하였다.

<개인적 체험> 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받다.
1994년 겐자부로는 할아버지의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앞에서 설명한데로 아들 히카리의 이야기와 소설의 내용이 매우 흡사하였고, 노벨상 위원회는 그의 책을 노벨상으로 선정하였다.

그는 인간의 실존주의의 경향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고발하는 책을 내었으며, 이 책은 자신의 장애아인 히카리를 키우면서 사회의 부조리, 인간의 이기심을 직접 체험하였으며, 결국 아들 히카리로 인하여 아버지 겐자부로의 문학 세계를 새롭게 하게 되었다. 겐자부로는 일약 일본의 최고 유명인사가 되었다.

아들 히카리의 음반은 일본만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 독일에서도 팔렸고, 1997년 세계적으로 3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 기록을 세운다. 아버지의 책보다 더 팔린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2000년 6월 미국의 하버드 대학으로 부터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시 <개인적인 체험> 에 대하여 나누며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소설의 주인공 버드는 아이를 포기하라는 의사와 간호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살릴 것인가? 혹은 죽일 것인가? 에 대한 결정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이 전 애인 히미코를 찾아간다. 그리고 술과 섹스에 빠진다. 그녀와의 아프리카 여행을 꿈꾸면서 아이의 수술을 거부하고 아이를 자연사하도록 방임힌다. 그러나 버드는 결국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용기를 내어 아들을 살리기 위한 결정을 내린다.

"난 도망다니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 뿐이야"

소설 204쪽을 보면, "분명히 이건 나 개인에게 한정된, 완전히 개인적인 체험이야" 라는 대목이 있다. 이 소설은 확실히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여주며, 주인공 버드의 심리적 갈등상황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

주인공 버드의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과 갈등을 통해서, 겐자부로는 또한 고통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것이며, 또한 이 고통을 오랫동안 감내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길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생각하는 일이라곤 그의 아기의 죽음에 관해서뿐이었다. 그는 명백히 지속적인 퇴행현상속에 있었다."(199P)

아무리 장애아라 하지만 자신의 아기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이성을 가진 부모로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겐자부로가 "일찍이 맛본 적이 없는 끔찍한 공포감이 버드를 사로잡았다."(273P) 고 묘사한 데에서도 버드의 고통을 읽어낼 수 있다.

버드의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과 일탈 이라는 체험은 정치적인 것에 무관심해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버드는 옛 애인인 히미코에게 "후르시초프가 핵실험을 재개했다고 한다면 충격을 받아 마땅한데, 나는 텔레비전을 줄곧 보고 있더라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네" (201P) "내 신경이 온통 아기 문제에 쏠려 있어서 다른 것에는 반응하지 않게 되어 버린 느낌이야"(201P)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버드는 본국으로 송환된 델체프 씨가 겉표지에 '희망' 이라는 말을 써서 선물해 준 발칸 반도의 작은 나라의 사전을 뒤져서 처음으로 '인내' 라는 말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오에 겐자부로의 이 소설의 백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희망과 인내를 갖고 있다면 삶은 살아진다는 것이다.
겐자부로의 삶을 보라. 그는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문제, 아들 히카리의 문제를 놓고도 극도로 개인적인 체험이라는 것에 매몰되지 않고, 공동체 문제, 정치적 문제, 생과 사의 문제, 전쟁반대와 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겐자부로의 소설이 오늘날 한국의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는 메세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도 이제 "개인주의의 시대"로 확실히 돌입하면서, 개인적인 삶과 나만의 문제해결에 매몰되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개의치도 않고, 관심도 없어지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개인적인 삶의 어려움]에 갇힐 때, 이 고통을 통해서 개인을 넘어서 사회적 약자에게로 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이 되며, 생명과 평화의 운동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가 늘 절박하지만, 그것만을 위해서 사회적 안전망이나 약자를 위한 배려, 어린이와 여성의 인권에 대한 관심,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가치들을 소홀히 한다면 이보다 큰 [아노미 현상]을 없을 것이다.
겐자부로의 체험이 일본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아직 한국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면 너무나 멀었다. 그래서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이나 [지성인들]이 적극적으로 읽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노벨 문학상 작품을 보면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야 한다.
결국 인문학에서 우리는 세상의 길을 찾는다. 문학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
괴테는 "문학이 세상을 구한다" 라고 하여, 문학을 붙잡을 것을 종용하였다.
앞으로 나는 노벨상에게 길을 묻다는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다.
첫번째로 쓴 사람이 [오에 겐자부로]다.
그의 노벨상 수상 소감속의 일부를 옮겨본다.

"저는 젊었을 때 발표한 소설에, 장애를 갖고
성장해가는 장남을 위해 세계의 모든 것을 정의해 주겠다는 덧없는 꿈'을 썼습니다.
그 꿈은 이룰 수 없었지만, 지금도 뭔가에 대해 그가 이해하고 또 웃어줄 것 같은 사물의 정의를 여러가지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삶의 근원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주는 인문학은 정서적으로 메말라 있는 현대인들의 삶의 희망을 찾아낼 수 있는 큰 하나의 대안이고, 정신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 책읽기에만 몰두해도 좋은 것이 인문학이다.

스스로 천박해지지 말아야 한다. 인문학적인 성찰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천박성을 벗고서, 새롭게 자아의 정체성을 찾아나가야 한다. 코엘료가 말한 [자아를 찾기 위한 여행]을 계속 해야한다. 머물러 있지 마라. 그깟 천박하고 어리석한 것들에... 이기심과 자기만 아는 소심한 개인주의에 머물러있지 마라.
우리는 이 사회와 국가를 향해야 한다. 휴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인류를 사랑하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 구글출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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