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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강연 이야기

고 황현산 교수님을 생각하면서,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

by 코리안랍비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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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

2019년글 

작년(2018년 소천)에 타개한 황현산 고려대 불문과 교수의
책을 잠시 들고 나왔다.
책 제목은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이다.
이 책은 정말 반드시 소장해야 할 책이다.
지금까지 내가 본 책중에 가장 [촌철살인]의 미학과 묘미를 보여준
최고의 책이 바로 이 평론집이다.

그는 트위터를 사랑하여,
짧고 강렬한 생의 메세지를 전달하였다.
길다고 좋은 것이 아니면, 짧다가 약한 것이 아니다.

황현산 교수가 누구인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불문학계의 위인이다.
평생을 읽고, 쓰고, 강연한 순박한 교수였다.
교수라는 말보다 선생이라는 말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와인보다는 막걸리를 즐겼던 교수였다.

살아서는 "밤이 선생이다"라고 힘주어 말했고,
이제 스스로 `밤(夜)`이 되어버린 선생이 되어버렸다.
1년전 타개하기 며칠전까지 글을 썼던 황현산 교수를 잠시 추모해본다.

작고 1주기를 맞아 고(故) 황현산 문학평론가(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1945~2018)의 신간 두 권이 서점가에 출간됐다.
절판된 두 번째 문학평론집을 복간한 `잘 표현된 불행`과
2014년부터 4년간 쓴 트윗 8554개를 가려 엮은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난다 펴냄)다.
황현산 평론가는 아직도 팔로워 36만명을 유지(아이디 `septuor1`) 중인데,
사후(死後)에도 따뜻하게 기억되며 독자와 소통 중이다.

살아서도 소통을 중시하고, 죽어서도 소통을 중시한 인물이다.
참 아깝고 귀한 분인데, 그는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트윗 모음집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에는 그만의 사유의 깊이가 깊다.
단문의 형식으로 폭넓은 통찰을 부지런히 세상에 실어나르던 문장은
매일 소화해야 할 잠언처럼 읽힌다.

"잔인함은 약한 자들에게서 나올 때가 많다.
세상에는 울면서 강하게 사는 자가 많다."(2016년 6월 22일)

"문학과 예술이 인간의 미개한 지혜로
하늘의 순결함과 전쟁을 벌이는 일이라면,
정치는 인간의 허약한 선의가
땅의 욕망과 협상하는 일인 것 같다."(2015년 12월 3일)

그의 책은 트위터라는 소통의 도구를 통해서 나온 것들이다.

명랑한 것도 윤리적 품성이 요구된다고 그는 말한다.
여기서 윤리적이라는 것은 인간적인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명랑하기는 성격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명랑하기는 윤리이기도 할 것이다.
늘 희망을 가지려고 애쓰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만
명랑할 수 있지 않을까.”


공감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트윗을 보자.

“남의 불행과 고통에 반드시 공감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공감하지 않는 것과 다른 사람의 공감을
위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서문을 쓴 아들 황일우 미국 마이애미대 교수는
“아버지는 늘 당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셨고,
모든 사람들에게 배울 준비가 되어 계셨다”며

“아버지의 트윗들은 당신의 평소 모습과 가장 닮아 있는 텍스트다.
평소의 농담, 비상식적인 많은 것들에 대한 한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애정 어린 인사가 담겼다”고 했다.

책의 편집을 맡은 김민정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살아 있는 누구나의 사전이었고
살아 있는 누구나의 선생이었으며
살아 있는 누구나의 아버지였고
살아 있는 누구나의 친구였던 이름 황현산”이라고.

그리고 이 트윗 모음은
“우리네 삶의 답답한 자물통에 열쇠가 된다”고 덧붙였다.
수많은 열쇠를 곁에 둔 셈이니 조금은 든든하다고 표현하였다.


나는 그 책의 말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정말이지 인문학은 무슨 말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될 말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인문학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밝힌다.

고등학교 시절로 거술러 올라간다.
문과냐 이과냐를 선택할 때
나는 무조건 문과를 선택하였다.
그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사랑하는 집안 식구들의 죽음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취업은 이과출신이 잘되고, 공대출신이 잘 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잘사는 것이 아니다.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지극히 인문학적이다.
인간과 인간의 근원 문제, 사상과 철학의 문제, 사회와 문화의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인데, 이 인문학의 매력에 빠진 것은 사실상 고 1부터이다.

요즘 인문학 공부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덤빈다.
인문학은 오랜 세월의 내공과 외공이 같이 필요하다.
속적속결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4차 혁명이 왔어도 여전히 인간은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적인 것을 익히고 배우지 않으면 그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뚜렷한 가치와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영혼 부재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영혼이 없는 말, 영혼이 없는 사상, 영혼이 없는 행동은
곧 죽은 것이다.

황현산 교수를 통해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발견한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것을 알기 위해서 한다는
그 말에 100배 공감한다. 천박해지지 않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으로 많다]
이는 겸손이면서 강력한 메세지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으로 많다]
라는 것은 늘 배우는 자세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나도 늘 배우는 마음을 가지려 애쓴다.
그것이 나의 인생의 개념을 형성해주고,
바른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배출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나만의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그러한 모임에서 나는 뼈저린 한계와 상처를 받았다.
나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나로서의 인문학이 필요하다.

황현산 선생님이 그 길을 가르쳐 준 것이다.
나는 이를 [자기 주체의 인문학] 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를 잘 아는 이도 나다.
나를 잘 가르칠 수 있는 이도 나다.
나를 외면하고서 나를 얻을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다 읽기전부터 황현산 교수의 주옥같은 글들을 잠시잠깐 사랑했다.
애독을 하였다.

그의 글에서 나는 이덕무 선생도 보이고, 다산 선생도 보이고, 추사 선생도 보이고, 이황과 이율곡 선생도 보인다. 괴테도 보이고, 단테도 보인다.
예수도 보이고, 석가도 보인다. 공자도 보이고 맹자도 보인다.

늘 배우는 마음이 있기에
늘 성찰과 깊이를 보인 황현산 선생님

신영복 선생도 기억해야 할 인물이지만
황현산 선생도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그 기억을 위해서 그분의 책을 모조리 사서 읽어보기를 기원한다.
나만의 인문학을 만들어가보자. !!

  • 다음 출처 이미지 - 황현산 교수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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