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향기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대한 몇 편의 기사
2025. 7. 28. 09:34ㆍ성경과 고대의 지혜 그리고 현대의 심리학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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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知논술/고전여행]‘명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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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유독 굵직한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타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시간을 뛰어넘어 영혼의 울림을 준다. 이런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로마 시대로 되돌아가 보자. 18세기 영국의 역사학자 기번은 이런 말을 남겼다. “만약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번영했던 시기를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하지 않고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죽음에서부터 코모두스 황제의 즉위 전까지라고 할 것이다.”
코모두스의 전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다섯 현제 중 마지막 황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 장군을 총애하던 인자한 성품의 황제가 바로 그다.
아우렐리우스의 삶은 신의 특별한 은총을 의심할 만큼 복스럽다. 그는 대제국 로마의 명망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앞서 네 명의 현제가 닦아 놓은 풍요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시작했다. 부드러운 성품에 자기 절제력도 뛰어나 인간적으로도 완벽한 자질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가 황제로 등극한 이후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 오던 로마제국은 사방에서 침략해 오는 이민족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다. 흑사병과 가뭄으로 사망자가 속출해 내치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면 자연 재해가 덮쳤고 이를 수습하고 나면 다시 전쟁이 터지는 식이었다. 황제라는 지위 때문에 정작 아우렐리우스 자신은 정신적 긴장과 격무로 일생을 보내야 했다. 그의 평생 벗은 만성 위장병이었다.
바로 그가 겪은 어려움 때문에 우리는 ‘명상록’이란 훌륭한 책을 얻었다. 아우렐리우스는 누구보다 평화를 사랑하고 사색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낮에는 사령관으로 밤에는 사상가로,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도 밤마다 막사에서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 책은 고매한 인격을 가졌으나 전쟁군주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던 한 철학자가 남긴 가슴 아픈 영혼의 일기장이다. ‘명상록’의 글들은 대부분 경구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의 주제를 담은 긴 논증이 아니라 순간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생각들을 압축시켜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 책의 밑바탕에 흐르는 그의 철학적 사유는 스토아 철학의 맥을 잇고 있다. 기원전 300년경 제논에 의해 시작된 스토아 철학은 후기 스토아학파로 분류되는 아우렐리우스에 이르기까지 400년 이상을 이어 온 철학이다.
“세계는 질서와 섭리의 통합체이다. 만물은 우주적 자연이 지시하는 대로 완성에 이른다.” 자연의 변화를 관통하는 섭리를 스토아 학자들은 ‘우주 이성(Logos)’이라 부른다. 그리고 거대한 대우주의 법칙 앞에 선 인간은 이성(logos)을 공유하는 덕분에 소우주가 되어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이 능력은 로마 제국의 시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
“사유능력이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라면 이성의 소유도 보편적이다. 우리 모두는 동료 시민이며 세계는 하나의 도시이다.” 스토아의 자연법사상은 만인이 공유하는 이성의 법인 로마법의 철학적 바탕이 되었다. 여러 민족 상호 간에 규칙으로 통용되던 만민법이 로마의 통치 철학을 담은 로마법으로 한 단계 승화될 수 있도록 추상적인 이론 틀을 제공한 것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학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 아첨하는 사람에 대한 혐오, 명예에 대한 욕심, 아무도 자신의 본심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의 절망 등 그가 느꼈던 인간적 갈등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철인왕’의 실현 사례로 꼽히는 그에게서 앎과 삶이 통일되는 경지를 배울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묘미 중 하나다.
권희정 상명대 부속여고 철학 논술 교사
삶에도 작전타임이 필요하다[내가 만난 名문장/안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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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철학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라. 그러면 너의 생활도 훨씬 견디기 쉬워질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철학 박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황제였다. 그는 바쁜 일과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일상의 작전타임을 가졌다. 홀로 생각하며 자기가 제대로 판단하고 처신하는지 스스로 되물었다는 뜻이다. 그 사색의 결과를 담은 책이 ‘명상록’이다.
연말연시는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에 마음을 다잡지 못하면, 새해도 뭉개지며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서양의 현자들은 바니타스(vanitas)를 가슴에 새기라고 충고하곤 했다. 이는 ‘헛되고 가치 없다’라는 의미다. 지난 한 해가 성공으로 빛났는가? 이제 잊어버려라. 이제 새로운 현실과 맞서야 한다. 옛 성취는 별 의미가 없다. 힘들고 궁상스러운 한 해였다고? 그래도 잊어버려라. 이미 과거일 따름이다. 고통도 결국 삶과 함께 사라질 터다. 예전에는 송년 모임을 망년회(忘年會)라고 했다. 지나간 해는 잊고 놓아버려야 한다. 이럴 때에야 비로소 새해가 질척임에서 놓여나 새로운 출발로 거듭나는 까닭이다.
나아가 연말연시는 ‘작전타임’이 되어야 한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속에서는 전체 판세를 읽기 어렵다. 눈앞의 절박함에서 놓여났을 때에야 자신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가늠되곤 한다. 유능한 지도자들이 작전타임으로 치열한 경기 흐름을 끊어주는 이유다. 연말연시는 긴 휴일들로 채워지곤 한다.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해로 바뀌는 때에는 자꾸만 틀어지는 삶의 바퀴를 조율(tuning)해야 하기 때문 아닐까?
“나는 지난해에 어떤 아픔과 성공을 겪었으며, 이를 통해 무엇을 느끼고 배워야 할까?” “나는 새해에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이는 지나온 날에서 의미를 찾고 나아갈 방향을 다잡는 중요한 물음이다. 살아지는 대로 살다 보면 절망과 좌절에 흔들리기 쉽다. 반면, 살아져야 하는 바대로 삶을 이끄는 생활은 성장과 보람으로 가득하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다잡는 좋은 연말연시가 되셨으면 좋겠다.
[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배신의 칼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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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최고의 권력은 고독합니다.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권력을 구걸하는 사람들만 바글거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에게 믿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는 그야말로 보옥입니다. ‘명상록’의 아우렐리우스, 아시지요? 대로마 제국의 황제이면서, 동시에 스토아학파의 대표적 철학자인 그 남자! 지중해가 로마의 호수였을 때 로마의 황제였으니 아침부터 밤까지 얼마나 많은 혀에 치이고, 얼마나 많은 사건들에 치였겠습니까?
그가 믿었던 친구 중에 장군 카시우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 카시우스를 형제라 믿고 이집트 근방의 국경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국경을 지키는 줄 알았던 카시우스가 거기서 ‘황제’임을 선언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가까운 친구가, 믿음을 줬던 친구가 배신을 한 거지요. 무엇보다도 모욕감이 컸을 것입니다. 주변에서도 난리였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작태에 대해서는 분명히 응징해야 한다고. 당신이라면 어찌할까요? 그날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절대로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망동을 삼가라.… 남이 나를 모욕하더라도 내가 거기에 의미를 두지 않으면 그만이다.”
말이 쉽지 의혹이 누룩처럼 부풀고, 배신의 칼을 맞아 쓰라림 속에서 분노가 솟구칠 때 차분해질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내공입니다. 실망으로 분노가 솟구치는 상황에서 분노를 성찰의 에너지로 바꿔 쓰는 그 지혜를 배우고 싶지 않습니까?
차분하게 가라앉힌 후에 그는 친구를 만나러 먼 길을 떠납니다. 왜 그랬느냐고 묻기 위하여.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본 후에, 친구의 얘기가 옳다면 권력을 양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당하는 쪽에서는 배신이지만, 하는 쪽에서는 홀로 자기 길을 가는 건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위에서 친구가 누군가의 칼에 맞고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아우렐리우스는 통곡합니다. 분수도 모르고 반역의 칼을 휘두른 친구의 배신이 아파서가 아니라 상처 난 우정을 화해하지 못하고 떠난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습니다. 현제(賢帝)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겠지요?
배신을 당했을 때, 당신은 어떤 타입이십니까? 어쩌면 그럴 수 있냐고 화를 내고 응징하는 타입이십니까? 아니면 왜 그랬냐고 묻는 타입이십니까? 신뢰하는 자만이, 진정으로 신뢰하는 자만이 물을 수 있습니다. 왜 그랬냐고.
속지 않기 위해 그 누구도 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누구도 믿음을 주며 일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실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자는 자꾸 권력 뒤에, 재물 뒤에 숨어 박약한 자존감을 감추려 합니다. 더더욱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그럴수록 그는 재물과 권력에 집착하면서 난폭해집니다. 악순환이지요.
아우렐리우스를 스토아 철학자라고 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스토아학파는 우리 안에 신적인 불꽃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신적인 불꽃을 발견해야 하는 곳은 경건한 성전도 아니고, 한가한 강의실도 아닙니다. 거기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배신과 음모가 춤을 추며, 간교한 혀와 무모한 용기가 판단을 흐리게 하는 중생의 땅이고, 무엇보다도 그 속에서 길을 찾고자 했던 깨어있는 마음에서입니다.
2000년을 내려오는 명상록은 언제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올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쓰였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타인의 마음을 꿰뚫어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을 주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자기가 자신에게 쓴 영혼의 일기입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표정훈의 호모부커스]군주의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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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출판평론가
군주가 본격적으로 저술을 하기는 어렵다. 지식과 필력을 갖췄더라도 국정을 돌보느라 시간이 없다. 철학자이기도 했던 로마 제국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돋보이는 이유다. 그의 ‘명상록’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군주가 저술한 사실상 유일한 철학 고전으로 오늘날까지 널리 읽힌다. 이 밖에 기원 후 1세기의 클라우디우스 1세가 에트루리아와 카르타고의 역사를 썼고, 4세기 중반 율리아누스 황제는 철학과 종교에 관한 글을 썼다.
동로마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7세는 외교에 관한 ‘제국의 운영’, 궁정 예법과 의식을 기록한 ‘비잔틴 궁정 의식’, 비잔티움의 지방 행정 제도인 테마에 관한 책 등을 집필했다. 중국에서는 아들 조비가 추존하여 사후에 위나라의 태조 무제(武帝)가 된 조조가, ‘손자병법’의 핵심을 정리하여 해설한 ‘위무주손자(魏武註孫子)’를 남겼다. 조비도 시와 문학론을 저술하여 중국 문학사에 이름을 올렸다.
청나라 강희제는 ‘성조인황제어제문집’이 있다. 그 뒤를 이은 옹정제는 만주족이 세운 청 제국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이 내린 명령을 포함시킨 ‘대의각미록(大義覺迷錄)’을 직접 편찬하다시피 하였다. 건륭제는 ‘청고종어제문집’ ‘청고종어제시집’ ‘낙선당전집’ 등을 남겼다. 건륭제는 평생 4만 수가 넘는 시를 지어 중국 역사상 최다작 시인이라는 말도 듣지만, 시의 수준은 그저 그런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선통제 푸이(溥儀)는 영욕의 삶을 회고한 ‘나의 전반 생’(1964년)을 남겼다.
근대 유럽에서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 한 해 전인 1739년 ‘반(反)마키아벨리론’을 저술했다. 정치에서 도덕을 배제하고 권모술수의 필요성을 강조한 마키아벨리에 반대하면서, 도덕적 군주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수정을 거쳐 1740년 익명으로 출간됐지만, 프리드리히 2세의 저술이라는 사실이 곧 알려졌다. 프리드리히 2세는 현실에서는 마키아벨리의 노선을 따랐다.
조선의 임금 중에는 정조가 유일하게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를 남겼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비롯한 많은 문헌의 사실상 저자로 여겨진다. 세종은 탁월한 출판기획자이기도 하였다. 역사상 명군들은 꼭 자신의 저술이 아니더라도 많은 기록을 남기고자 했다. 떳떳하며 자신감이 크다는 뜻이다. 기록에 대한 태도로 민주공화국 시대 지도자들을 평가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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