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메타버스 시대에
‘정답’ 찾기보다 ‘질문 찾기’
능력을 업그레이드하자
강의 : 김 재 훈
하브루타 문화협회 협회장
성지 이스라엘 교육연구소장
천안교육사회협의회 이사
강의신청 010 - 7534 - 0934
* 무단전재 절대금지
<교육계의 최대 관심사 - 질문력>
지금 21세기에 한국이나 세계 교육계의 최대 관심사는 ‘질문하는 힘 – 질문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하브루타의 열풍이 불어 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브루타라는 이름으로 ‘질문하는 공부법’이라고 붙인 것은 수정이 불가피합니다. 질문이라는 것은 ‘생각하는 힘 – 사고력’을 바탕으로 생성되는 것이기에 ‘하브루타’가 곧 ‘질문하는 힘’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브루타라는 말 대신에 그저 ‘질문력’이라는 이름으로 본 강연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지금 시대는 ‘정보기술의 시대’ ‘디지털 또는 디지로그 시대’ ‘ AI-인공지능의 시대’ ‘메타버스의 시대’ 등 다양한 이름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아날로그 세대인 강연자로서는 ‘불편’한 시대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물론 갈수록 편리해지는 문명의 이기 덕분에 좋아진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어느 통계를 보니 앞으로 2025년에 1000만개 이상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발표가 있습니다. 이제 3-4년 후면 우리는 그 시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불편함을 넘어서 불안함’으로 갈 우려가 있습니다.
인간지능과 인공지능의 대결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의 순간이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과 기계의 공존’ 시대에 기계가 갖추지 못한 인간의 역량(COMPETENCE)으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창의력(創意力 CREATIVITY)입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앞으로 우리 인간은 인공지능의 시대에 ‘호모 데우스 – 신적인 인간’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공염불일 수 있습니다. 학자들의 주장을 직설적으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건전한 비판정신을 가지고 교육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과 기계의 공존 시대에 정답찾기보다 질문찾기>
이제 정답은 AI가 찾으면 됩니다. 다음 카카오의 어느 이사랑 대화를 하다가 내린 결론이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이제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찾거나 질문을 찾아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지식 노동자’가 되어서 필요한 지식이나 상식을 갖추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여 수익을 올리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전환하려면 ‘신사고’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논제나 의제를 발견하려면 끊임없이 다각도로 질문하는 사고력이 요구됩니다.
아날로그 세대는 그런 사고력을 갖추지 못하며 성장하였습니다. 청년기에 처음 접한 디지털의 세계는 ‘신세계’이기도 하고 ‘문화충격’이기도 하였습니다. 교육은 철저히 주입식이었으며, 무조건 외우고 암기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고득점을 맞아야 의대를 가고, 법대를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전문대나 진학하여 취업이나 노려야 하는 현실에 놓여 살았던 세대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MZ(밀레니움)세대는 철저히 그전 세대와 선을 긋고 살아갑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앞으로의 세대는 그전 세대가 살아온 방식대로 살지 않는 첫 세대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아날로그 세대는 그전의 조상들이나 부모들이 물려준 전통이나 가치관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엇인가를 새롭게 창의적이고 융복합적으로 시대변화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무력한 세대로 지냈습니다.
그런 세대이지만 지금의 신세대들에게 그런 전통방식이나 가치관을 강요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시 교육계로 가보면 이제 정답찾기 시대는 분명히 없어질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학교의 시험이 평가하기 곤란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제시하는 자신만의 언어가 있는 시험’으로 대체 될 것입니다.
<PISA 학업성취도 평가와 학업흥미도 평가>
2018년도 PISA 학업성취도평가입니다. 한국이 세계 2-3위를 다투는 놀라운 교육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록이라는 것은 많은 평가오류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과도한 ‘학업경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학업성취도는 무척 높게 나옵니다. 하지만 학업의 흥미도를 보면 달라집니다.
필자가 여러 년도별 데이터를 가지고 보아도 한국은 성취도와 흥미도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학업을 흥미롭고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습니다. 이를 위해서 서울대학교에서는 교육 개혁 프로젝트를 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질문을 유도하는 강의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최선호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자기만의 언어가 없는 학생은 창의적 연구를 하기 어렵다. 질문.토론을 통해 스스로 생각을 전개하고 문제를 찾아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한국에서는 어떤 수입이든 질문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수업 내용을 이해했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간 내용이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기초지식에 대한 추가 설명이나 요청이 있어야 합니다. 보통 한국에서는 호기심이 많이 줄어드는 시기가 초등학교 4학년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호기심을 인터넷에서 검색만 하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질문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다만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시간만 더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마치 질문을 하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격’처럼 변했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쥐들이 움직이면서 살 수 있는데,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하는 경우가 한국의 교육현장에 비일비재합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강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궁금하면 못 참고 물어봅니다. 어려서는 아이들의 질문이 답변하기 쉬운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학교에 진학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학습량을 소화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나누어주는 과제가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으로 나누어서 해야 합니다. 학습량을 줄이고, 학습질을 올려야 하는데 도리어 더 늘어난 결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지치게 되고 피곤한 감정’을 갖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학업의 흥미는 서서히 사라져가고, 결국 호기심마져 죽어 버리는 결과가 일어납니다. 호기심이 죽으면 결국 질문도 죽습니다.
선행학습도 아이들의 입을 다물게 합니다. 사교육에서 미리 예습을 끝내고 온 다수 학생들은 문제를 푸는 기계로 바뀝니다. 문제를 푸는 요령에는 뛰어난 학생들이 됩니다. 물론 학교의 선생들도 이미 안다는 전제로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들이 문제를 잘 푸는 능력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대학입시에서도 높은 점수를 보장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경우 문제를 잘 풀지만 그 문제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하면 하지 못합니다.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다블 찾도록 가르치는 교육은 아이들이 사고(思考)를 하기에는 어렵게 합니다. 해결과정을 충분히 고민하면서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선행학습을 가르치기보다 선행(善行)을 먼저 가르쳐라’라고 하였습니다. 인성적으로 착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지성적으로 학업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문제는 ‘질문이 사라진 학생, 자기 언어로 표현하지 않은 학생’은 결국 학업흥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정해진 답’을 찾지 못하면 ‘틀렸다’ 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문제입니다. 객관식 시험의 최대 병폐는 이미 ‘정해진 답’ 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학업을 할 때 객관식 문제를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독서나 발표준비가 충분하지 않으면 시험을 치루기가 힘들었고, 다른 학업동기들과의 토론과 의견수렴이 없으면 안 되는 수업방식은 철저히 ‘논술, 구술, 서술’ 방식입니다. ‘생각하고 생각하는 사유의 과정’이 없으면 절대 풀지 못하는 문제들을 보면서 ‘사고의 방식이나 공부의 방식’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선생님들에게 질문하는 것이 일종의 무례한 행위’처럼 여겨집니다. 또한 선생님에게 말대꾸를 하게 되면 안되다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교육문화도 질문을 사라지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한국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전에 없는 새로운 것을 떠올리고 만들어가는 교육방식이 대세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지금 학교의 교실은 변해가고 있습니다.
<지식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생각이 지배하는 시대로>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사고방식이 팽배했습니다. 독서도 지식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수업도 지식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가정교육도 지식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을 자랑합니다. 한때 미국이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을 본받아라’할 정도로 한국의 교육열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그는 아마도 PISA의 지표를 보면서 한국의 겉모습만 본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세계 최장 시간의 학습량과 뜨거운 교육열심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부의 역사는 결국 학생들의 머릿속에 ‘많은 지식을 주입하는 것’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지식을 집어 넣을 수 있을까’라는 경쟁으로 내몰았습니다. ‘아는 것이 과연 힘일까요’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는 것은 힘입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알고 있는 것은 사실 ‘사회에 나오면 쓸모 없는 잡지식’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이제 ‘클릭만 하면 얼마든지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자신들의 머릿속에 ‘지식을 최대한 많이 입력’하는 것을 거부하는 세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노벨상과 유대인들을 다시 생각한다.>
자주 강연에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유대인들의 교육’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정평이 나 있는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많은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지구 전체 인구의 0.2% 정도에 불과하지만 노벨상의 23%를 차지하고, 하버드나 아이비리그의 30%의 학생들이 유대인들입니다. 교수 비율은 학생들 비율보다 더 대단합니다. 세계 500대 기업의 CEO를 조사한 포춘지를 보았더니 무려 40% 정도를 차지하였습니다. IMF 시절에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되자 한국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 삼은 제 1의 인물이 ‘투자의 신’이라 불리운 ‘조지 소로스’였습니다.
이들의 놀라운 결과와 성과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질문력과 토론력’에 있다고 하면 거의 명답에 가까울 것입니다. 물론 미국이 문호를 개방하여 많은 우수한 유대인들을 이민으로 받아들인 것도 큰 요인입니다. 미국이 부강해진 것도 사실 ‘유대인들의 이동’이 큽니다. 이런 환경적인 요인보다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저력과 비밀’이 가장 큰 요인입니다.
이들은 ‘남보다 뛰어 나도록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다른게 생각하도록 교육’하였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유대인 학생들 5명이 있으면 최소한 5가지의 생각과 질문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생각의 힘과 질문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교육합니다.
< 스티븐 잡스와 THINK DIFFERENT>
한 때 인문학 열풍이 불었습니다. 많은 위대한 철학자들, 사상각들, 역사학자들, 심리학자들이 인문학 열풍의 주인공들로 등장하였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인문학 열풍을 주도한 사람은 ‘스티븐 잡스’라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소크라테스와 저녁을 먹을 수 있다면 나의 전 재산을 다 드려도 좋다”
왜 그는 이렇게 말했을까요? 그는 기술만으로는 한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식만으로는 한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식과 인문학 그리고 예술이 같이 어우러지는 신세계를 기댛였습니다. 그는 컴퓨터 전공자가 아니었고 그저 리드대학에서 ‘캘리그라피’를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종교와 철학에 사로잡혀 지냈던 사람입니다.
그는 남과 다른 발상과 사고로 세상을 바꾼 위대한 인물입니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곧 남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동방의 등불]로 유명한 시성 타고르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아이의 배움을 당신이 아는 배움의 범위에 한정 짓지 말라 아이는 당신과는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
타고르의 이 명언은 기존의 익숙한 것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라, 남의 생각과 다름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답만을 구하는 세상’에 살다 보니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매우 좁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소시민적으로 변하거나 평범한 것을 더욱 추구하게 됩니다.
‘남과 다른 생각’을 추구하는 것이 이상하리만큼 어려운 나라가 한국입니다. 어떤 고등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질문지능이 높고, 매사에 호기심이 강한 ’ 친구였습니다. 학교에서는 너무나 많이 질문을 하여서 선생님으로부터 ‘제지’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 친구는 결국 ‘왕따’의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학교 성적은 높았지만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놈’으로 찍혔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질문을 많이 할 수 있는 대학으로 가고 싶었고, 결국 ‘미국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과 다른 생각’이 제대로 된 생각입니다. 남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결국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지식 쌓기 중심의 교육이나 사육에서 벗어나서 ‘생각열기’나 ‘생각을 발전시키기’ 중심의 교육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아직 한국의 교육은 여전히 지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교육의 개혁은 민주화 만큼 어려울지 모릅니다. 마치 쓰레기 통에서 장미를 피워 내는 일만큼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래도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시중의 학습법, 공부법 교재를 다 버려라>
내 서재를 보다가 약 50권 이상의 학습법이나 공부법 교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전교 1등, 상위 0.1%’를 위한 책들을 보다가 화가 났습니다. 1명을 위한 공부법이라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자 중에 한명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왜 이런 거지 같은 책을 썼냐’고 반박하였습니다. “1명의 양을 위하여 99마리의 남은 양들을 외면하는 공부법 책이 과연 온당하냐?” “진정한 공부법이라면 학업의 흥미를 잃거나, 학업을 포기하려는 아이들에게 적용해야 맞다” 라고 항변하였습니다. 사실 그런 류의 책들은 ‘유행’에 걸맞은 기획서입니다. ‘공부의 신(神)’으로 만들어 줄 것 같은 착각과 환상을 심어줍니다. 그런데 그 공부법이나 학습법으로 된 아이들을 별로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첫 째 딸아이에게 ‘공부법’ 책 5권을 읽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외로 그런 공부법 책들이 ‘진짜공부’나 ‘생각공부’를 하는데 방해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더 심한 것은 ‘하브루타 교재’들을 보면서 황당하였습니다. ‘인류 최고의 공부법’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판매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저자들을 보면 ‘이름’만 대면 익히 알 것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책들은 그저 ‘열심히 공부하면 최고가 될 것’이라든지, 아니면 ‘질문하고 토론만 잘하면 최고고 될 것’이라고 부추깁니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이론은 없고 그저 자신들의 상상이나 추측으로 글을 쓰거나, 여기 저기 것을 가져다가 베끼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면서 ‘창의성’과는 무관한 책들이 대부분입니다.
<공부하는 나는 누구인가>
다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부터 시작해서 ‘공부하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고민해야 합니다. ‘고민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어떻게 공부를 해야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존재가 될 것인가?’고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하브루타’에 대해서도 관심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하브루타의 최대 강점은 ‘생각하는 뇌’를 갖추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잠들어 있는 ‘생각하는 뇌’를 깨우게 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 흥미로운 일, 재미있는 일이라면 ‘목숨’까지도 걸고 합니다. 심지어 밤에 잠을 자다가고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꿈이고 비전입니다. 하브루타는 성경과 탈무드를 가지고 연구하는 일이기에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공부이면서 가장 경건한 공부’일 것입니다. 친구들과 같이 ‘생각하는 공부법, 질문하고 토론하는 공부법’이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으로 등장할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트랜드가 아닌 패러다임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생각을 위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생각공부’를 통해 자신속에 있는 ‘생각발전소’를 가동해야 합니다.
생각은 심리학자로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이스라엘 히브리대의 데이빗 커머만 교수가 말한‘ FAST THINKING’과 ‘SLOW THINKING’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답을 찾는 수업방식은 ‘빨리 답을 찾는 것’에 주안점을 둡니다. 제한된 시간안에 어려운 문제들을 빨리 맞추는 것은 교육이라기보다는 기술이나 요령입니다. 빨리 답을 구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문제들입니다. 그런 쉬운 문제들을 ‘푼다’고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찍는다’라고 말을 해야 가깝습니다.
그리고 생각은 ‘혼자 생각하기’와 ‘여럿이 생각하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혼자 생각하기는 자신이 맞았는지 틀렸는지에 대한 기준이나 객관성을 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럿이 생각하기는 기준과 객관성을 최대한 높이고, 가장 좋은 생각이나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의 하브루타의 강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SLOW THINKING과 더불어서 THINKING TOGETHER를 동시에 합니다. 이들은 쉬운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경우는 적습니다. 벅차고 풀기 어려운 ‘난제’를 가지고 토론을 합니다. 찬반 토론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주장을 하고, 설득을 하고, 타협을 하는 토론’이 강합니다. 노벨상은 혼자의 힘으로 탈 수 있는 상이 아닙니다. 복잡한 수학 문제나 과학문제를 푼다고 해서 받는 상이 아닙니다. 노벨상은 반드시 ‘인류복지공영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그리고 ‘창의력과 신사고를 갖춘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머릿속에 ‘생각발전소’를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속에 있는 ‘생각발전소’를 가동하려면 ‘넌 어떻게 생각하니?’마법의 말을 자주 던져야 합니다.
많은 훌륭한 스승들은 반드시 제자들에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는 말을 자주 던집니다. 물론 탈무드에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문제속에 답이 있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충분히 심사숙고한 문제는 그 답도 또한 현명하고 심사숙고하게 맞추어 나가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난제나 과제를 수행할 경우에는 반드시 혼자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협업지능이나 협력학습이 요구됩니다. 최근 한중일의 학습은 ‘블랜디드 러닝이나 협력학습’으로 가고 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동하며, 학급의 친구들과 같이 어려운 문제나 과제를 풀어나가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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