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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와 코칭 & 멘토링

하브루타, 호기심 그리고 질문하는 능력

by 코리안랍비 2022.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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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그리고 질문하는 능력

"작은 것이 큰 것을 만든다 " - 톰 피터스

경영의 구루중에 하나인 톰 피터스는
"작은 것을 무시하지 말고, 작은 것에 충성스럽고 책임감있게
감사함으로 감당하면 큰 것도 능히 해낼 수 있다" 고
자신의 저서[The Little Big Things] 에서 밝혔습니다.

작은 것이라는 사실 호기심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질문하는 능력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톰 피터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왜 나는 이 일을 하는가?" 에 대한 질문보다
"어떻게 나는 이 일을 해내는가?" 쪽으로 질문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브루타라고 하는 이스라엘 식의 공부법에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데,
사실 하브루타는 이스라엘식 학습법이라기 보다는 전인류가 가지고 있는
질문지능(Question Intelligence) 라고 보아야 합니다.
아니면 적어도 질문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좋습니다.

멜리 올리버라는 사람이 쓴 [휘파람 부는 사람]이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귀중한 경구가 있습니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을 우주가 주었는데
참 놀라운 발견입니다.

어려서 아이들은 많은 자신의 궁금증을 수시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그 아이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해주지 않습니다.
귀찮거나 무엇을 물을 때 얼굴을 찌푸립니다.
아이들의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거절과 무시는 곧 학교 현장에서
질문하지 않는 아이들로 나타납니다.
물론 교사 선생님들도 답답할 것입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우리는 [학생]이라고 부릅니다.
학생은 참 좋은 말이다. [배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교사도 참 좋은 말이다. [가르치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회가 발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바로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함께 해답을 모색하면서 사회는 발전해 왔습니다.
인류는 수많은 질문들을 만들고,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무수한 노력을 보여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보요, 발전이요, 성장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질문과 답변은 상호 수평관계를 상정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수직적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의하달식 구조(톱 다운) 방식의 수직적 리더쉽이 행사가 됩니다.
하의상달식 구조(바텀 업) 방식의 수평적 리더쉽의 행사를 기대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질문을 하여도 이 질문에 대해서 제대로 응답되지 못하는 사회 구조가 만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국가를 만들기 위해 물어보는 질문들이 허공에 떠다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답을 내지 못하는게 아니라
답이 거부당하는 사회에 우리는 봉착해 있다는 것입니다.

4차 혁명시대에 와서 인간의 삶이 더 고달파졌습니다.
벌써부터 피곤하고 피로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것은 바로 인공지능의 등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꺽을 때 충격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은 곧 인간에게는
초대형 비극적 세상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편리함은 늘었으나. 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과거의 유산으로 살기에는 힘든 순간이 왔습니다.ㅡ유발

하라리 [호모 사피엔스]

세월이 지나도 우리는 "어떻게 살것인가?" 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어령 박사의 책을 보면서, 나는 이러한 걱정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어령 노학자의 글을 보면서 고전적인 학습인 [하브루타]의 중요성을 다시금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말과 경주하면 인간이 바로 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과 직접 경주하는 게 아니라, 말에 올라타야 이기는 것입니다.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을 인간이 과연 올라탈 수 있느냐... 라고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인공지능을 만든 사람들에게 기대를 거는게 아니라, 인공지능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우리는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인간을 사랑하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아픔을 같이 느끼는 마음이 있는 사람일 거예요"

이 말을 보면서 큰 위로가 되기도 하고, 우리가 인공지능과 경쟁이나 경주를 할 것이 아니라, 이 인공지능말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어떻게 이 말을 타고 미래로 달려갈 것인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잘못된 질문을 던집니다.
제일 형편없는 학습조직은 질문을 하지 않는 조직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형편없는 조직은 해서는 안될 질문을 하거나,
아무런 영향력이나 해법(솔루션)을 제시하지 않는 조직입니다.

가령 인간은 왜 사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는 존재의 의미를 묻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나와 너]라는 존재를 삽입해서 "나는 왜 사는가?" 라는 질문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질문의 범위를 나와 너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왜라는 질문도 좋지만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그 패턴을 바꾸고, 삶의 풍성함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앞서서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다루는 사람에게 기대하고,
그리고 그 인공지능에 대한 통제능력을 갖추려면 바로 질문다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렇게 질문하는 것이 어색하고 둔감한 것이었습니다. 모두 집단적인 바보로 살았던 것입니다.


톰 피터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계속 질문을 던지라" 라고 말합니다.
그는 저서에서 바로 전설적인 투자자 [워렌 버핏]의 투자원칙에서 찾았습니다.
바로 나이가 들어서도 호기심이 죽지 않고, 이해력이 중요성을 강조한 노장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나는 내가 이해 못하는 것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이 말은 톰 피터스에게도 큰 자극이겠지만,
이 글을 쓰는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나는 크리스찬 신앙인입니다.신앙도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해하려고 믿지 않습니다. 믿기 위해 이해합니다.
그러려면 생각하는 사람,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를 보면 답답합니다.
[바로 질문하는 능력을 거세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워렌 버핏]의 이 명구를 기억하고
다음과 같은 자세를 갖기를 바랍니다.
사실 성공이라는 것은 능력은 20%이지만, 태도(자세)가 80%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 글을 읽고도 무반응이거나, 무신경하다면 배우는 자세가 없거나, 마인드의 손상이 온 것입니다. 아직도 자존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질문하고 질문하시오.

질문은 사실 멍청할 수록 좋습니다.
나는 묻기 대장이 되겠습니다.
나는 나의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반복해서 질문할 것입니다.
조금 무례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해가 될때까지 물을 것입니다.

바로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와 같이 악착같이 물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물어본다는 것이 바로 입으로 무엇인가 물어보는 것과 비슷한지도 모릅니다. 결국 승리는 질문자의 것입니다. 질문을 하지 않는 자가 이긴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사유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적극적으로 자기 생각과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이깁니다.

질문은 곧 행동입니다.
4차 혁명이 왔고, 인공지능 시대가 현실화되었습니다.
이제는 인공지능을 공부하는 것은 사실 20대의 젊은이들이 합니다.
나이가 든 기성세대는 지성세대로의 변모가 필요합니다.
즉 인공지능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그 말에 올라타서 4차 혁명에도
밀리지 않는 미래형 인간으로 살아가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로 달려야 할지, 어떤 속도로 달려야 할지, 어떻게 달려야 할지에 대한 것은 사실 답이 아닙니다.그것은

질문의 영역입니다.

아직도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리얼 하브루타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빨리 빨리 변모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질문, 솔루션이 있는 질문, 또한 자신을 낮춘 겸손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브루타 공부를 위해서는

우선 성서와 탈무드 혹은 인류의 고전들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만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질문들이 현대의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결이 되고
통용이 되고, 실용이 되고, 적용이 안된다면 정말 제대로된 하브루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중의 뜬구름 잡는 식의 하브루타 학습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더 낫습니다. 이제 우리가 필요한 것은 [리얼리티]를 살리는 것입니다.

내가 만약 CEO라면 .... 하면서 고민해 보십시오.
내가 만약 그룹의 Leader라면... 하면서 고민해 보십시오.
멍청하지만 대담한 질문 2-30 가지를 만들면서,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던져 보십시오. 그러면 그 중에 적어도 한,두가지는 소중한 가치를 안겨주는
전체의 맥락과 현실을 이해하는 원천(source)이 될 것입니다.

아카데미컬하게 이루어지는 하브루타보다는
우리의 삶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브루타가 진정 필요합니다.

오늘 글을 쓰면서 두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갈무리합니다.
히브리어로 '인간' 이란 원래 질문하는 존재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 엄마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너 오늘 학교에 가서 공부는 잘했니, 선생님 말씀은 잘 들었니?" 라고 묻는다고 하지만, 이스라엘 엄마들은 " 너, 오늘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무슨 질문을 했니?"
합니다. 물론 이 대사들은 다 아는 것이지만, 제대로 실천되지 않는 말들입니다.

성서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꼬치 꼬치 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받은 돌판이 십계명이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적 이름을 받은 것입니다.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고 던져서 위대한 답을 받은 것입니다.

딸을 셋을 키우는 필자로서 이런 질문을 몇번 던졌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의 반응이 재미가 있습니다.
"아빠, 오늘은 질문을 3개를 하였는데, 선생님이 제대로 답변해 주시지 못했어요"
"아빠, 오늘은 진짜 모르는 것을 물어 보았는데, 책속에 답이 있다고 책을 읽으라고 하셨어요"

아이들의 질문은 멍청하지만 호기심에서 비롯된 창의적 질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상세히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우리의 학교도 문제가 있습니다. 학생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문제입니다. 그만큼 한국의 학교들은 학생들의 질문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즉 배려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학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질문하는 풍토와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제는 고민하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물음표를 보십시오.
마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같지 않습니까?
생각하는 사람은 머리를 숙이지죠. 잠시 행동을 멈추고 머리를 숙이고,
머리를 만지거나 턱을 굅니다." - 이어령 교수

내가 아는 사람중에 하나의 멍청한 질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수질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에게 사사를 받았습니다.
그 선배교수는 지도교수에게 "교수님, 진정 물이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음, 그것을 자네의 박사 논문제목으로 해보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를 연결하여
물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의 소중한 질문은 인생을 바꾸고, 현실을 바꾸고, 상황을 바꿉니다.
하브루타는 생각을 자극하고, 혁신( INNOVATION)을 유도하는 질문입니다.

좋은 질문을 만들고,
메모하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최상의 답을 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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