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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지 않는 인생은 정녕 가치가 없다 !!
<벅찬 질문 - 신성한 호기심>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 이어령 박사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살아야 한다.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절대 답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답이 주어져 있는데, 질문을 만드는 방식은 어떨까?
이스라엘 유학시절에 어느 어린이 교실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 교실에서 단연 한국 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낸다. 수업이나 시험에는 무척 강하게 훈련되어져 있고, 주입식 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은 아들이어서 겉으로 보이기에 잘하는 것은 당연하게 보였다. 그렇지만 그 한국 학생들이 잘하는 것은 ‘하이브리드식 융합형 교육’을 받아서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식과 이스라엘식의 혼합이나 융합이 이루어진 ‘믹스 효과’ 라고 볼 수 있다.
거기서 숙제를 잠시 본 적이 있는데, 한국은 문제를 주고 답을 구하는 일방적인 하향식 교육을 받는 반면에, 이들은 반대로 답을 주고서 질문이나 문제를 만들어 오라는 것이 숙제였다. 당시 그 숙제 중에 하나가, root √2를 주고서, 루트 2가 나올 수 있는 질문을 만드는 것이었다. 일종의 역산하는 방식의 숙제인데, 이것은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들 학교에서 주는 숙제는 상향식 문제였다. 이런 식으로 한국에서 숙제를 준다면 아마 놀라운 학습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우리는 너무 배운데로만 행동하는 집단적 습관이 있다. 이를 타성이라고 나는 부른다.
한국에서 주는 숙제를 보면 지극히 베끼기가 좋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주는 숙제는 베끼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고 질문을 던져야만 하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 내는 질문=물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전을 찾아야 하고, 문헌을 찾아야 하고, 인터넷을 검색해야 하고, 지식인들이나 전문가들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모르는 것은 알면 된다. 하지만 검색을 해도 구하기 힘든 질문이나 문제들이 많다. 나는 이것을 ‘개인의 지적 한계를 넘어서는 벅찬 문제’라고 부른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생각에 관한 생각]을 쓴 이스라엘 히브리대 출신의 데이빗 커너만 교수는, “누구나 쉽게 풀 수 있는 질문은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창의력을 절대 키울 수 없다. 누구나 쉽게 풀 수 없는 질문이 질문인데, 이 질문도 가장 뛰어난 개인이나 혼자서는 풀 수 없는 벅찬 질문이어야 한다.(이 말의 의미는 집단지능이나 집단지성을 이용하여 풀어야 할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의미) ”
질문도 질문다워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은 보통의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들은 만들어 낼 수 없다.
여러 하브루타 모임을 가보면, [죽은 질문이나 상식적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러한 질문들도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러한 질문은 새롭지도 않고, 창의적이지도 않다. 사실 그러한 질문을 던지려고 그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시간낭비이며 쓸데없는 감정낭비이다. 질문없는 모임은 절대 참여하지 않는다. 질문없는 하브루타도 없어져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생각] [남이 생각하지 못한 생각]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 스스로 사색하는 사람’으로서 발전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스스로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 내는 잠재력있는 질문이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호기심을 가지되 우리는 벅차고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결력을 높이거나, 꼬인 실타래를 하나 하나 풀어 나가는 그런 질문에 부딪쳐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신성한 호기심]이라고 불렀다.
어떤 철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단 하나의 메시지나 질문이 당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의문이 없는 곳에서는 문제도 없다. 우리는 매일 앞에 놓인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과 부딪치면서 살아간다. 살면서 자신만의 노하우나 내공으로 그 문제들을 열심히 해결하고 풀어나가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사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다만 그 문제에 대한 의문과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틀린 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 자꾸만 틀린 답을 찾는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틀린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다.
“우리는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그러면서 우리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에게 꼭 던져야 하는 질문이 무엇인가?”가 고민해야 한다. 그런 ‘질문타임’을 우리는 가져보아야 한다.
여기에 도움을 주는 책을 하나 권하고 싶다.
제일기획의 카피라이터로 있었던 허병민 선생의 [최고의 석학들은 어떤 질문을 할까?]를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잠시 삼성제일기획에 근무한 적이 있다.
질문에도 종류가 있다.
사실적 질문, 가치적 질문, 개념적 질문이다.
한국의 경우 사실적 질문에 능숙하다. 하지만 가치적 질문이나 개념적 질문에 대해서는 상당히 어려워한다. 이런 사고나 논리성을 키우지 못해서 그런 것도 있고, 한국민이 가진 기질이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즉흥적이거나 감정적인 뇌가 지성적이거나 이성적인 뇌보다는 크고 강하다.
이런 질문을 하나 만들어보자. 최근 한국사회에 가장 큰 이슈중에 하나가, [사회주의화] 이다. 민주주의 국가라고 표방하는 한국인데, 이상하게도 사회주의권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사회주의는 전 세계에 퍼질 것인가?”
이는 사실적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정확한 답을 구하기는 쉽지 않지만, 정답을 알아내는데 필요한 사실만 충분히 알고 있으면 쉽게 답을 구할 수 있다. 즉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문헌을 통해서 쉽게 결론에 도달할수도 있다.
그런데 다음의 질문을 보자.
“사회주의는 바람직한 체제인가?”
이는 가치적 질문에 해당한다. 이는 사회주의가 나쁜지 좋은지, 옳은지 아니면 그른지에 대한 정치학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은 상당히 윤리학적인 질문이기도 하고, 가치적 질문이기에 상당히 높은 수준의 토론이나 논리성을 요구한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들의 머리가 같이 움직여져야 하고, 높은 해답율이나, 평가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다음의 세 번째 질문을 하나더 만들어보자.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무척이나 개념적인 질문이다. 여기서 사회주의는 무엇이며 그 정의를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또한 민주주의는 무엇이며 그 정의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고, 사회주의 진영과 민주주의 진영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생각교환]도 필요하다.
이런 질문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개념과 양립할 수 있는가?” 또는 “전체주의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가?” 라고 하여 질문의 확장(extension)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개념이라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는 그저 사전을 가지고 정확하게 개념파악만 하면 된다.
다만 이러한 단어나 용어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사용되어지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질문들은 리얼하고 사실적이며, 직설적이고, 도전적이어야 한다.
이 글을 정리해보자.
그럼 우리는 질문을 만드는데 있어서 벅찬 질문을 하고, 신성한 호기심을 갖고 접근을 해야 하는데, 바로 우리의 질문이 사실적, 가치적, 개념적 질문으로 이어지게 만들면 된다. 그리고 삶과 생활에 어플리케이션(적용)할 수 있는 [질문능력과 솔루션]을 갖추어야 한다.
결론적으로는 [솔루션이 있는 질문]을 만들고 던질 수 있어야 한다.
탈무드에 [문제가 있는 곳에 답이 있다 Where there is a way, there is a way] 는 말이 있다. 그런데 누구나 풀 수 있는 쉬운 문제를 문제로 부르지 말자. 누구나 풀 수 없는 문제, 혼자서는 도저히 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우리는 만들어야 한다.
의문은 지성을 낳는다.
의문이 없는 곳에서는 문제도 없다.
단 하나의 질문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질문하지 않으면 우리는 내적으로 절대 성장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답을 다른 이에게서 구하지 않으려고 해야 한다.
의존심(Reliance)을 버려야 한다.
“왜 우리는 자신에게서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서 답을 찾으려고 하는가?“ - 헨리 민츠버그(경영학자)
마지막으로 허병민 선생의 말로 갈무리한다.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키거나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질문을 하나만 던진다면,
당신은 어떤 질문을 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이스라엘식으로 자신만의 질문을 만들어보라.
단서는 다음과 같다. 절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같이 거시적인 측면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생활에서 실제로 접하고 일어나는 것을 다루어야 한다.
질문을 만들면서 구체적이여 하고, 예나 아니오 식의 형식적인 질문은 피해야 한다. 사유가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질문이 자신의 삶의 이야기나 경험이나 일화등으로 나와야 한다.
곧 우리는 스토리텔러와 스토리라이터로서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 벅찬 질문, 그렇지만 흥분하게 만드는 신성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럴려면 ‘유치원생같이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발휘해보자.
[나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 라고 여기고 마음 편하게 질문을 만들고, 던져보면 어떨까?
필자 - Paul Kim
크리스찬 인문학강사
이스라엘 히브리대 유학
성서와 탈무드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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