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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와 코칭 & 멘토링

하브루타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

by 코리안랍비 202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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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vruta or Mituta !!
하브루타 , 미투타
하브루타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



성서본문 먼저 읽기
룻기 1장 16~17절
(룻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사무엘상(네비 사무엘 알렙) 18장 1절
(삼상 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사무엘하 1장 26절
(삼하 1: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전도서(코헬레트) 4장 10~14절
(전 4: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전 4: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전 4: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전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성서본문을 읽었다면 하브루타의 기본개념과 원의미를 일정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브루타는 기본적으로 세가지 뜻이 있다. 1, 우정 2. 협력학습 3. 상호연결

 

  • 랍비와 학생들이 서로 모여 토론하는 시간 - 토론의 향연을 즐기는 유대인들 사진
    구글출처 이미지



이 세가지만 잘 명심하면 하브루타가 이루어진다.
먼저 미국의학협회의 보고서를 하나 인용한다.

JAMA<미국의학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울프 하우츠 박사와 줄리안 카메르 박사의 보고서이다.

한 의사의 진단과 두 의사의 진단을 비교한 연구가 있는데, 협력을 하면 오류를 수정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Collaboration may have helped correct errors, fill knowledge gaps, and counteract reasoning flaws."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협력을 할 경우에는 67.78 퍼센트의 정확성이 높아지고, 혼자 진단하는 경우에는 정확도가 50% 정도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짝을 이루어 협력(cooperation in pairs)할 경우에는 시간이 더 걸린다는 점은 있지만, 진단의 정확성을 높이는데는 개인의 힘보다는 더 우세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협력의 경험치가 늘어나면 도리어 개인의 진단시간보다 더 줄어든다는 것도 밝혀졌다.


하브루타는 고대 유대인들의 또래 친구들의 탈무드 학습을 위한 우정시스템이었다. 아람어인 하브라투는 우정이나 친교를 말하는 것인데, 이는 원래 하베르라는 말에서 기원하였다. 이것은 주로 두 사람이 유대인들의 경전을 가지고 토론하는 것에서 나온 말이다. 이것의 목적은 ‘올바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세워나가는 일’이었다. 이상적으로 말해서, 하브루타 러닝은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는 낫다는 ‘전도서’의 말씀에 따르는 것이다.


탈무드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두 학자가 서로를 날카롭게 한다. Two scholars sharpen one another”
(Talmud Ta'anit 7a)

1세기의 탈무드 학자인 호니 하마겔(Tannah Honi Hamagel)은 말하기를, “O, havruta O mituta"(바벨론 탈무드 Ta'anit 23a) 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페트릭 헨리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1775년 3월 23일 버지니아 세인트 존 처치의 연설에서)는 말이 있는데, 제이콥 뉴즈너(Jacob Neusner)는 이 호니 랍비의 구절을 다음과 같이 페트릭 헨리의 연설과 연결지었다. “나에게 하브루타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Give me havruta or give me death" 라고 하였다.
<이 글을 읽고 반드시 제이콥 뉴즈너의 책을 구입해서 보라. 한국판은 없고 원서로만 존재한다.>

“토라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서로의 말을 들을 때, 하나님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신다” 라고 <탈무드 샤밧 Talmud Shabbat 63a>에서 말하고 있다.

탈무드 마코트(Talmud Makkot 10절)에는 예레미야 50장 36절을 인용하여 말한다. “(렘 50:36) 칼이 자랑하는 자의 위에 떨어지리니 그들이 어리석게 될 것이며 칼이 용사의 위에 떨어지리니 그들이 놀랄 것이며

여기서 ‘자랑하는 자’는 바로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 어리석은 자라는 의미가 있다. 또한 ‘어리석다’라는 것은 교만한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유대인들은 “교만한 사람은 잘 배울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곧 저주라고 여긴다. 교만한 것은 곧 칼의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어리석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거나 협력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말한다. 하브루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리석다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어리석음이 바로 신을 경외하고 사람을 존중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고 본다. 시편에도 보면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라고 하기에" 그렇다.

하브루타는 PEER TEACHING ‘친구간 가르치기’라고 할 수 있다. . 랍비 ‘에쉬 Ashi'는 “공적으로 배우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그것이 그들에게 그 자체로 보상이 된다.”고 하였다.

물론 하브루타가 유대인들만의 소산은 아니다. 사실 하브루타는 그리스에서도 강조된 학습형태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친구간의 학습’을 강조하였다. 또한 세네카도 자신의 어린 학생들에게 ‘서로 가르치기에 힘쓰라’라고 자신의 편지에서 강조하였다.

학습은 선생이 일방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과 친구와 친구간에 서로 가르치는 방식으로 나눈다. 교육학적으로 전자를 single - loop learning 이라고 하고, 이를 ‘단선학습’이라고 부른다. 후자를 double - loop learning ‘복선학습’이라고 한다. 단선학습보다 복선학습이 학습효과가 무척 높은 것은 오래전에 증명된 사실이다. ‘서로 가르치는 일’은 스스로 자기 주도적 학습(self-driven learning)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르치는 행위는 일어나기 힘들다.


랍비이면서 경제학자요, 외교관출신인 저명한 아이삭 아브라베넬(1437~1508)은 미쉬나 아보트 1장 6절에 등장한, “너 스스로 랍비가 되려고 노력하며 너 스스로 친구를 얻어라” 라는 구절을 다음과 같은 의미로 설명한다. “학생은 반드시 좋은 선생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그리고 하브루타 친구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하브루타는 우정이라고 해석해도 좋지만 ‘같이 공적으로 학습하는 친구’라고 해석된다. 학생이라는 말은 ‘배우는 자’라는 의미가 있지만 이는 다른 말로 ‘같이 공적 학습을 하는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

유대인의 경전이나 텍스트를 연구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의심스러운 부분도 많고 혼란스러운 부분도 많다. 심지어 자신들의 스승인 랍비들에게 물어보아도 당황스럽게 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로 물어보는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 자신이 의심스럽고 혼란한 경우에 다른 친구가 이를 보충해주고 명확하게 해주는 경우가 많다. 또한 완벽한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고를 확장하고 높이는데 하브루타가 이루어져야 한다. 학생간 지식과 정보량을 늘리는 것은 어렵다. 다만 텍스트에 대한 관점이나 이해를 높인다는 것에서 그 교육효과가 상당한 것이다.

16세기 이태리의 랍비요 주석가인 오바디야 세포르노(Ovadiah Seforno)는 코헬레트 즉 전도서 4장 10절~11절에 나오는 구절을 ‘하브루타’로 언급한다.


전도서 4장 10~14절
(전 4: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전 4: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전 4: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전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여기서는 9절과 12절 추가)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라는 것은 바로 한 사람이 실수하면 다른 사람이 이를 바로잡아 주기 때문이다. 반면에 혼자 학습하는 경우에는 바로잡아 줄 다른 이가 없어서 실패하거나넘어질 가능성이 높다.

랍비 오바디아는 나중에 “이 하브루타가 단지 유대인들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브렌다이스 대학의 오리트 켄트 교수가 쓴 [A Theory of Havruta Learning]이나 이스라엘 바르일란 대학의 엘리 홀저 교수가 쓴 [A Philosophy of Havruta]을 보아도 그러한 내용이 나온다.

왜 혼자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에 대한 것은 이미 창세기 2장 18절에 언급되어 있다.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d; I will make him a helper fit for him"(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본질상 혼자 있는 것보다 둘이 있어야 만족을 얻고 보상을 얻는 존재이다. 둘이 짝을 이루어서 학습하거나 작은 그룹을 지어서 학습을 하는 것은 혼자 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하브루타의 장점이 바로 ‘동의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통해서 토론이 일어나는데 서로 동의를 하게 되면 객관화된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동의하지 않게 되면 왜 why? 라는 의문점을 제기하고 그리하여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설명하려고 애쓰게 된다. 또한 우리의 사유의 장단점을 서로 잘 파악할 수 있다. 함께 학습하는 것은 곧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는 첩경이 된다.

  • 한국의 어느 교회 - 하브루타의 시간 - 문제를 만들고 서로 토론하기 - 시우림 사진
    구글출처 이미지 - 성경하브루타 시간


하브루타는 또한 연결의 의미가 있다. 하브루타를 ‘히브루 Hivru'라고 발음을 하면 ‘교통이나 연결’의 의미가 된다. 인터넷 시대에는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We are connected" 지금 우리는 초연결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아날로그가 디지털과 서로 연결된 사회에 살고 있다. 이를 ‘디지로그’ 사회라고 부른다. 하브루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을 품고 있다.

하브루타는 협력하는 학습이기도 하지만, 서로 우리가 인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을 또한 품고 있다. 또한 초연결사회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우리는 하브루타를 하고 있다. 이 하브루타가 ‘친교’나 ‘우정’도 되지만 ‘상호연결’도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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