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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우의 세상 땜질 - SNS를 삭제하자 불행하다는 감정이 사라졌다.

시와 칼럼과 에세이

by 코리안랍비 2025. 7. 3.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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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삭제하자 불행하다는 감정이 사라졌다

 
일러스트=이철원

소셜미디어(SNS)는 사회악으로 자주 지목당한다. 실제 개인이나 사회에 끼치는 부작용이 크다.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광장의 풍경은 말처럼 아름답지 않다. 흐름은 너무나 빠르고 헛소리가 난무하며 나쁜 감정이 화장실 안 곰팡이처럼 퍼져나간다. 그 해악을 알면서도 SNS를 좀처럼 놓지 못했다. 어느덧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글로 먹고살게 해준 계기라는 점도 작용했다.

나는 SNS에 쓴 글로 시작해 정식 매체의 기고 제안을 받아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예전처럼 특정 매체가 정제한 발언만 전파력을 가졌다면 이런 기회를 잡지 못했으리라. 귀중한 만남 기회도 많이 얻었다. 여러 사람과 실제로 마주하는 동안, 내가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무슨 인간상을 선호하거나 불호하는지 알게 됐다. 만남을 지속하고픈 사람과 자연스레 친해지는 법, 끊어내야 할 사람과 무례하지 않게 멀어지는 법을 배웠다. 성인 이후 내 삶의 전부였던 공장과 집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한테 한 소리 들었다. “폰에서 SNS 잠깐 지워.”

여름에 바깥 현장 노동은 그 강도가 매우 살벌하다. 나만 힘들면 차라리 낫다. 진짜 문제는 일 대부분이 협업이란 점이고, 타인의 짜증 빈도가 급격히 올라간다는 점. 자연히 육체와 더불어 정신까지 극도로 피로해진다. 아홉 시간 일하고 귀가하면 씻을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다. 이토록 고된 노동을 주6일 한들 통장에 꽂히는 돈이라곤 고작 250만원 언저리. 이 불합리한 상황에 몇 주 맞닥뜨리고 나니 신세 한탄이 부쩍 늘었다. 돌이켜보니 전부 SNS에서 본 소식 때문이었다. 친구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단톡에 내가 한 말만 싹 정리해 봤다.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 “남들은 저렇게 잘나가는데 난 이게 뭐람” “대체 뭘 얻기 위해 이토록 힘겹게 일해야 하는 거지?”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드나들던 SNS가 나를 대단히 불행하게 만든 셈이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는 ‘너지’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썼다. 대학원생 시절 친구들을 식사 자리에 초대하면 식전 간식으로 캐슈넛을 낙낙히 접시에 담아주곤 했다. 친구들은 무의식적으로 캐슈넛에 자꾸 손을 댔고 그 결과 언제나 접시는 비었다. 덕분에 정작 본요리는 전혀 즐기지 못했다. 세일러는 고민 끝에 캐슈넛 접시를 중간에 치우기 시작했다. 콜럼버스의 달걀 얘기만큼 단순하지만 효과는 확실한 방식이었다. 불만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메인 디시만큼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고맙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의식하지 않은 습관이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면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는 것.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않는 마음은 단단하다. 다만 모두가 콘크리트 심장을 가질 순 없다. 마른 가지보다 간단히 마음이 꺾이는 사람들도 있다. 남과 자꾸 비교하며 불행해지고 자기 연민의 함정에 쉽게 빠진다. 정신이 한계까지 몰린 시기의 SNS는 맹독이다. 못난 마음을 그대로 전시하고 싶은 충동이 들곤 한다. 그때가 진짜 위기다. 내 지질한 모습은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나 잠깐 드러내고 말아야 한다. 그 외 사람들에겐 아무리 힘들어도 늘 올바른 척을 해야만 한다. 누군가는 가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들 어떠하리. 가식은 겉옷이 아니라 속옷이다. 눈에 훤히 뵈는 가식은 매우 얇은 속옷이다. 보기 썩 좋진 않더라도 어쨌든 입는 쪽이 훨씬 낫다. 물론 SNS에 가식을 벗어던진 내 모습을 드러낸다 한들 공연 음란죄로 처벌받진 않는다. 다만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로 인한 불이익 또한 감수해야만 한다. 굳이 날 안 좋게 볼 사람을 늘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 글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독자 중 힘겨운 시기를 지나는 분, 남보다 삶이 고통스럽다고 여기는 분이 있다면 SNS부터 삭제하길 권하고 싶다. 주변 상황에 관심 끄고 내 앞에 놓인 과제부터 집중해 보자. 약이나 주사처럼 확실한 변화를 느낄 순 없어도 마음 피로가 좀 덜어지는 체감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힘들다면, 믿어보자. 지금의 시련 끝엔 반드시 달콤한 과실을 베어 물 수 있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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