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지 않아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어"
독서의 힘을 발견하려면 글을 써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글과 남의 글을 서로 비교.대조하면서
균형점을 찾아가야 합니다.
소설가 김연수의 글을 읽다가, 참 인상깊은 대목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게 해피 앤딩이든, 새드 앤딩이든 앤딩이 찾아오면
이야기는 완성된다. 이야기는 등장인물이 원하는 걸 얻든지
원하지 않는 것을 얻든지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는다.
인생 역시 이야기나 스토리라면 마찬가지리라.
이 인생은 나의 성공과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에 얼마나 대단한 걸 원했는가?
그래서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
다만 그런 질문들이 중요할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직업이나 할 일을 갖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사업체를 운영하고, 여러가지 주변적인 일도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어느 직장을 다니든,
창업을 하든, 아니면 심지어 휴직이나 실직상태라고 하여도
이게 궁극적으로 잘 사는 것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각자마다 고민하는 정도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익숙한 삶에서 빠져나와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즉 상자안에서 말고, 상자밖으로 나와서 자신을 바라보고,
남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속두려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두려움을 이길 질문을 자주 던져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 질문을 던지는데 마음이 어두워지만 안됩니다. 마음이 더 밝아지는 쪽으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익숙함에 속아 그저 두려움 가운데 거하며
평안이 없는 삶의 연속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스스로에게 궁극적인 질문,
필자는 이를[인문학적인 질문]이라고 부르는데,
이 질문을 자주 던지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한 자기만의 여정(여행)과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것은 큰 바위를 아름답게 조각해내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조각가가 되어야 합니다.
오랫동안의 수고와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다듬어지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인간] 이라는 작품이 가장 우아하고 멋진 작품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은 죽고 싶은 대로 살아야 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죽고 싶은가?] 라는 질문은 결국 어떻게 살고 싶은가? 와
그 질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곧임마누엘 칸트가 말한대로
인과율적인 문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글을 쓰는 자신도 속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찬이지만, 자주 재정과 믿음 사이에서 오가는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사람은 모두 구조가 같습니다. 그렇지만 방향이 다른 것입니다.
두려움을 평안으로 바꿀수 있다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생의 귀중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서 나름 [솔루션]이 있는 명답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솔루션이 있는 질문을 던지십시오.
앞서 속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합당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혼자의 힘으로 잘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러다로 다른 사람들이 그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같이 해주지 않으면 결코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는 사람,
해 주려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잘 살아간다는 것은 나와 다른 남과 만나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이는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불어 잘 지내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나
남들에게서나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
그리고 남이 원하는 것에 대한 코드를 맞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여기에 필자가 나름대로 살며, 배우며, 생각하며 정리한
[단서들]을 남겨봅니다. 3가지 [하자]를 남겨봅니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질문을 하자.
적재적시라는 말이 있고, 적재적소라는 말이 있습니다.
때에 맞는 말은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습니다.
때에 맞는 질문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
좋은 질문은 곧 금사과(golden apple) 이라는 것입니다.
또 장소에 맞는 질문도 해야 합니다.
장소나 현실을 외면하는 질문도 잘못되었습니다.
장소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뜬구름 잡는 것입니다.
우리는 적절히 이상과 현실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행동을 성찰하고
남의 행동을 주의깊게 관찰하자.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이며 지능연구가인
하워드 가드너는[성찰능력지수]를 말하였습니다.
성찰능력을 갖게 되면 자기이해와 더불어 타인이해의 폭도 넓어집니다.
그러면서 마르틴 부버가 말한 [나와 너]의 인격적 관계성을 갖추게 됩니다.
시인 나태주님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라고 하였습니다.
자세히 보는 것 그리고 오래 보는 것이 바로 관찰력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관찰에 약합니다. 관찰과 관심은 사실 동의어입니다.
관찰에 약하면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원하고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큰 미스테이크요 오산입니다.
다음으로 내 속의 말만큼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자
너무나 식상한 말이어서 별 효과가 없어보이는 말입니다.
하지만 귀담아 듣지 않기 때문에,계속해서 일설을 하는 것입니다.
경청이라는 말이 중요하지만, 사실 자신의 말보다 더 남의 말을 더 들어주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이를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남도 자신만큼 사랑해주는 [이웃사랑의 정신]으로 우리는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속의 말과 남의 말을 서로 들으면서, 일치agreement를 이룬다면
정말 괜찮은 앙상블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럴 때 우리는 틀림없이 "저 사람은 자기보다 남을 높게 여기고, 먼저 이해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석학 이어령 박사는 명사보다 동사가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말은 '살자'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살아간다는 것, 잘 산다는 것은 곧 생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고민하는 것은 [나와 너] 라는 관계성과 움직임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임을
발견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의 속두려움을 극복하고, 평안가운데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고, 그리고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남을 잘 관찰하고 경청하는 생이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럴려면 먼저 나로부터 출발하는 [질문,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을 던져보는 것입니다. 그 질문속에 답이 있습니다. 솔루션이 있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보아야 합니다.
필자는 이 말을 믿습니다.
"우리는 말하는대로 되거나, 믿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
우리는 잘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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